화가로 변신한 조지 W. 부시 대통령
이제는 이젤 앞에 선 조지 W. 부시 대통령
세계 지도자, 참전용사, 이민자 시리즈로 전시, 화보집 출간
달라스의 홈오피스를 개조한 스튜디오에서 인물화를 그리고 있는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Photo: George W. Bush
좋은 그림에는 보이지 않는 힘이 있다. '미술 테라피(art therapy)'도 있지만, 그림은 그리는 이나 보는 이들에게 때로 위로를 주며, 치유를 할 수 있다. 스트레스가 많은 직업 중 하나인 정치인들이나 화려한 왕족도 때때로 그림으로 현실에서 도피했다. 윈스턴 처칠과 아돌프 히틀러, 지미 카터와 조지 W. 부시, 그리고 찰스 황태자도 붓을 잡았다. 윈스턴 처칠 전 영국총리는 생애 500여점의 회화를 남겼고, 올 3월 크리스티 경매에 나온 풍경화 'Tower of the Koutoubia Mosque'는 1천200만 달러에 팔리는 기염을 토했다.
조지 W. 부시(George W. Bush, 1946- )는 아버지 부시(george H. W.Bush) 대통령(1989-93) 덕에 예일대와 하버드 MBA를 마치고, 제 43대 대통령(2001-09) 자리까지 올랐다. 그가 2009년 1월 백악관을 떠난 후 화가로서 새로운 출발을 선언했다. 부시에게 그림에 대한 열망을 촉발시킨 인물은 다름 아닌 윈스턴 처칠이었다. 부시는 처칠의 수필집 '시간 보내기로서의 그림 그리기(Painting as a Pastime)'를 읽은 후 취미로 붓을 잡았다. 처칠이 풍경화를 즐겨 그린 반면, 부시는 인물화였다. 자신의 잠재적인 '렘브란트 재능'을 발굴하기 시작했다.
조지 W. 부시의 욕조 속 자화상/ 조지 W. 부시 수트 차림의 자화상
부시는 2012년 초부터 달라스에 사는 화가 게일 노플리트(Gail Norfleet)를 미술 선생으로 모시고, 2년간 작업실로 개조한 홈 오피스에서 교육을 받았다. 부인 로라 부시는 스튜디오를 '인간의 동굴(man cave)'라 불렀다. 노플리트는 부시에게 자신이 흥미를 느끼는 주변의 것들을 그리라고 조언했고, 부시는 욕조에서 튀어나온 발을 그린 코믹한 '자화상'을 트위터에 공개했다.
노플리트에 따르면 부시는 처음에 미술사에 대해 공부하는 것을 꺼렸다. 그러나, MoMA의 온라인 미술 코스 '1800년대부터 1945년까지'를 수강했으며, 포트워스 현대미술관에서 회고전이 열린 인물화가 루시안 프로이드(Lucian Freud)의 작품을 소개했다. 노플리트는 부시가 선천적으로 경쟁심이 강했으며, 자신감에 차 있었으며, 빠르고, 기억력이 좋았으며, 처음부터 다작이었다고 전했다. 부시는 또한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미술 학생으로서 부시는 가장 재능있는 학생은 아니었지만, 끈질긴 근성은 높이 평가할만 했다.
부시는 노플리트의 지도 아래서 아버지 부시를 비롯, 블라디미르 푸틴, 이명박 대통령, 달라이 라마 등 24명의 세계 지도자 시리즈를 완성했고, 2014년 2월 달라스의 대통령 도서관(George W Bush Presidential Library and Museum)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그러나, 부시의 그림에 대해 월스트릿저널과 가디언지 등은 "포레스트 검프(Forrest Gump)의 미술" "구세군 가게에서 보고 웃고 싶어서 살만한 그림" 이라고 비아냥거렸다.
2014년 달라스 조지 W. 부시 도서관 & 뮤지엄에서 열린 세계 지도자 24인 초상화전
그래도 부시는 때로는 파스텔로, 때로는 물감을 짜고, 붓으로 이젤 앞에서 열심히 그림을 그리면서 화집도 벌써 2권이나 출간했다. 2009년 5월 김해 봉하마을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 추도식에 참석해 추도사를 낭독하고, 자신이 그린 초상화를 노대통령 가족에게 선물했다.
2017년 출간된 화집 '용기의 초상: Portraits of Courage: A Commander in Chief's Tribute to America's Warriors'은 미 참전 용사들의 희생과 용기를 기리는 초상화 모음집으로 66인의 초상화와 패널 벽화 4점이 실렸다.
올 4월 출간된 두번째 인물 화집 'Out of Many, One'은 세계 43개국에서 온 이민자들의 초상화 43점이 소개됐다. 화집 제목 'Out of Many, One' '여럿으로 이루어진 하나(라틴어 "E Pluribus Unum")'으로 1776년 독립한 미국의 모토이자 미 동전에도 새겨져 있다.
조지 W. 부시의 인물화집 '용기의 초상화'(2017)/ '여럿으로 이루어진 하나, 이민자들의 초상'(2021)
이 화집은 이민자들이 미국의 삶과 번영에 기여한 공헌을 강조한다. 자유의 여신상 클로즈업으로 시작해 인권을 위해 싸워온 탈북자 조셉 김(Joseph Kim)에서 17세에 리오그란데 강을 건너 멕시코로 건너온 후 달라스 한 회사의 CEO가 된 인물, 나이지리아 출신 NASA 공학자, 전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Henry Kissinger), 첫 여성 국무장관 매들린 올브라이트(Madeleine Albright) 등 정치, 경제, 군대, 스포츠, 연예 등 다양한 부문의 이민자들의 초상을 소개한다. 1923년 독일 바바리아의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난 헨리 키신저는 1938년 나치를 피해 뉴욕으로 이민왔다. 매들린 올브라이트는 1937년 체코슬로바키아에서 태어나 1948년 콜로라도주 덴버로 이주했다.
미술잡지 '아트 인 아메리카(Art in America)'의 비평가 조이 사무지는 'THE ICE MAN PAINTETH'에서 "부시의 회화는 우아하지 않다. 피사체의 눈은 종종 어긋나 있고, 색채는 때때로 흐릿해지며, 심도와 그림자를 시도하지만, 얼굴의 특징은 궁극적으로 인간의 따스함같은 것을 묘사하는데 실패하고 있다"고 평했다.
조지 W. 부시가 그린 고 노무현 대통령/ 헨리 키신저/ 매들린 올브라이트
사무지는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의 초상화에 대해서는 "그녀의 시선은 직선적이며, 아래로 처진 입꼬리로 그녀의 교유한 능글맞은 미소로 정지시킨다. 재킷의 올라간 컬러는 1948년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난민으로 엘리스섬에 도착한 후 미 최초의 여성 국무장관이 된 경력에 걸맞는 남성적 진지함과 여성적 우아함을 동등하게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한편, 헨리 키신저는 "그의 얼굴은 기민하고, 호기심에 차있으며, 그가 아주 오래 전에 버렸던 청춘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전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2019년 이민자들의 귀화식에서 "이민은 축복이자 힘"이라고 연설했다. 2004년 재임 직후 1천200만명의 불법체류자들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는 이민개혁안의 실행을 약속했지만, 상원에서 공화당 의원들의 반대로 무산됐다. 2009년 퇴임하면서 그의 가장 큰 후회는 이민개혁안을 성사시키지 못한 것이라고 밝혔다. 다음 그의 인물화 주제가 궁금해진다.
-Ela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