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YT: 브루클린 하이츠-뉴욕 최초의 교외지역, 사람들이 영원히 머무르고 싶은 곳, 2023
Brooklyn Heights: A Historic Waterfront Community Minutes From Manhattan
The neighborhood, known as New York’s first suburb, is a place where ‘people want to stay forever.’
뉴욕타임스가 11월 22일자 부동산 섹션에서 브루클린 하이츠를 특집으로 다루었다. 타임스는 브루클린하이츠가 뉴욕 최초의 교외지역이며, 사람들이 일단 이주하면 영원히 머무르고 싶은 동네라고 전했다. 최근에 몬태규 스트릿에 들어선 컬트 베이커리 아파트먼트 4F와 책방 'Books Are Magic'을 소개하고, 주민들과의 인터뷰와 함께 타운하우스와 아파트 가격을 보도했다.
https://www.nytimes.com/2023/11/22/realestate/brooklyn-heights-nyc-neighborhood.html
브루클린 하이츠 워킹 투어 가이드 <2012>
아이 셋을 둔 사라 제시카 파커와 매튜 브로데릭 부부가 브루클린하이츠 스테이트스트릿의 두 타운하우스를 합칠 예정이다.
19세기 건축 양식과 위대한 작가들의 파노라마
Brooklyn Heights Walking Tour
'섹스 앤더 시티(Sex and the City)'의 배우 사라 제시카 파커와 매튜 브로데릭 부부가 브루클린으로 이사온다. 맨해튼 그리니치빌리지에서 아들(9)과 딸 쌍둥이(3)를 길러온 스타 커플이 최근 브루클린하이츠(Brooklyn Heights)에 타운하우스 두 채를 매입했다. 아틀랜틱애브뉴 인근 스테이트스트릿(State St.)에 위치한 4층짜리 집 두 채를 트면 총 7000스퀘어피트 규모다. 뒤엔 제법 큰 정원도 있다.
브루클린하이츠는 예전부터 유명 작가들이 살던 동네다. ‘세일즈맨의 죽음(Death of a Salesman)’을 쓴 희곡작가 아서 밀러(Arthur Miller)는 하이츠에서 네 번씩이나 옮겨다니며 살았다. 윌로우, 피에르폰트스트릿과 그레이스 코트를 거쳐 마릴린 먼로와 결혼 후 몬태규스트릿에서 살다가 맨해튼으로 이주했다.
오드리 헵번 주연 영화로 더 유명한 ‘티파니에서 아침을(Breakfast at Tiffany’s)’의 트루만 카포테(Truman Capote)도 윌로우스트릿의 지하에서 명작 ‘콜드 블러드(In Cold Blood)’를 썼다. 영화 ‘헨리와 준’의 주인공인 작가 헨리 밀러(Henry Miller)는 파리로 건너가기 전 이 동네에서 살았고, 퓰리처상을 두 번 받은 소설가 노만 메일러(Norman Mailer)는 죽기 전까지 40년간 컬럼비아하이츠에서 살았다.
또, 시인 월터 휘트만(Walter Whitman)은 오렌지스트릿의 플리마우스 교회 뒤에서 성장했으며, 소설가 토마스 울프(Thomas Wolfe)도 이곳에서 여생을 보냈다.
1965년 뉴욕시 최초의 사적지구로 지정된 하이츠는 페더럴, 퀸 앤, 고딕 리바이벌 등 다양한 양식의 타운하우스가 즐비하다.
브루클린하이츠. 19세기의 주택들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는 이 동네는 월스트릿에서 지하철로 한 정거장, 시청에서 브루클린브리지를 건너면 바로 닿는 지역이다. 1965년 뉴욕에서 최초의 사적지구(Historic District)’로 지정되어 더 이상 모던한 빌딩들이 개발되지 못하게 됐다.
순수의 시대
1890년대 뉴욕 상류사회를 배경으로 다니엘 데이 루이스, 위노나 라이더, 미셸 파이퍼가 출연한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영화 ‘순수의 시대(Age of Innocence/ 사진 위)’가 하이츠의 브라운스톤 하우스에서 촬영됐다. 줄리아 로버츠는 1950년대 웰슬리 대학가를 무대로 한 영화 ‘모나리자 스마일(Mona Lisa Smile)’을 찍으면서 산책로를 걸었다. 또, 셰어와 니콜라스 케이지가 로맨틱 커플로 등장하는 ‘문스트럭(Moonstruck)’도 이 동네에서 촬영됐다.
브루클린의 면적은 맨해튼의 거의 4배에 달한다. 1898년 뉴욕시에 편입되기 전까지만 해도 항구도시로 명성을 날린 브루클린은 미국에서 뉴욕과 필라델피아에 이은 3대 도시였다고 한다. 시에서 보로(Borough)로 강등되어 오늘날에 이르렀고, 약 250만여명이 살고 있다.
월스트릿에서 지하철로 한 정거장인 하이츠의 자랑거리는 바로 맨해튼 스카이라인이 들어오는 프로미나드. 아래로 BQE.
브루클린하이츠 프로미나드에서 본 선셋.
미 최초의 우주왕복선 엔터프라이즈가 보잉747에 업힌 채 2012년 4월 버지니아주 덜레스 공항을 떠나 뉴욕 항구로 들어오고 있다.
1700년대 말까지만 해도 브루클린은 농업지였다. 맨해튼이 문명의 세계였다면, 브루클린은 시골. 1814년 증기선(Fulton Ferry)이 운행되면서 맨해튼과 왕래가 가능해졌고, 브루클린도 개발이 시작된다. 당시 브루클린하이츠 대부분은 조리스 렘센이라는 부호의 땅이었다. 1883년 브루클린브리지가 개통되면서 페리는 역사 속으로 들어간다. 브리지 개통 첫날 15만여명이 1페니를 내고 다리를 건넜다.
뉴욕 문화의 뿌리는 브루클린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할리우드의 전설적인 제작자 어빙 탈버그, 감독 스탠리 크래이머, 우디 알렌, 배우 매 웨스트, 수잔 헤이워드, 바바라 스탠윅, 에디 머피, 리처드 그리피스, 제니퍼 코넬리, 가수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캐롤 킹, 신디 로퍼가 브루클린 출신이다.
맨해튼이 뉴욕의 주류문화, 고급문화의 집산지라면 브루클린은 미래의 물결을 만들 언더그라운드 문화의 산실이다. ‘브루클린아카데미오브뮤직(BAM)’에서는 세계의 첨단 공연이 펼쳐지며 프로스펙트 파크의 서머 스테이지는 제3세계와 언더그라운드 뮤지션들의 무대이다
집도 예술처럼 짓던 '순수의 시대', 1800년대 페더럴 양식의 전형. 덧 창문이 달려 있는 집이 많다.
하이츠는 그야말로 건축가들의 진수성찬이다. 브라운스톤을 사용한 건물에 빅토리아 시대의 높은 천장과 벽난로가 특색인 타운하우스가 하이츠의 전형적인 주택이다. 1820년대부터 남북전쟁 시기인 1862년 이전에 세워진 타운하우스들은 페더럴(조지언) 양식(1820년대), 그리스 리바이벌(30년대), 고딕 리바이벌(40년대), 이후엔 로마네스크 리바이벌, 르네상스 리바이벌 양식으로 건축됐다. 남북전쟁 이후에는 퀸 앤 스타일, 콜로니얼 리바이벌, 네오클래식 스타일에서 모던 양식으로 유행이 바뀌었다. 여기에 보자르(Beaux Art) 양식 건물까지, 파노라마를 감상할 수 있다. 건축양식의 이름을 다 기억할 필요는 없지만, 눈썰미로 감상하는 것도 흥미롭다.
매력적인 건축양식의 집들이 이어지는 거리들, 군데군데 숨은 골목(*Street 대신 Lane, Place, Court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 그 사이에 끼어있는 마차간(carriage house)를 개조한 집, 블록마다 나타나는 교회당, 그리고 무엇보다도 로어맨해튼의 스카이라인이 스펙터클하게 들어오는 산책로 브루클린 프로미나드(Brooklyn Promenade)가 하이츠의 매력이다.
140-142 클린턴스트릿의 쌍둥이 하우스. 캐스트 아이언으로 창문과 문을 장식, 우아한 멋을 냈다.
필자는 1996년 1월 맨해튼 컬럼비아대학교 인근에서 6년 살다가 2002년 9월 브루클린하이츠 중 가장 매력없는 거리(Clark St.)로 이사왔다. 하지만, 뒤에 제법 큰 정원이 있다. 워킹 투어를 위해 카메라를 들고 다시 관광객처럼 거닐다보니 하이츠가 더욱 정겨워진다.
화창한 날 오후 브루클린하이츠를 걸어보자. 오래된 집들의 아기자기한 매력, 스펙터클한 로어맨해튼의 전망, 그리고 브루클린 피자가 기다린다.
브루클린브릿지가 없을 땐 보트가 다녔고, 자동차 전엔 마차가 달렸다. 말의 숙소도 집으로 개조됐다. 그레이스코트 앨리.
브루클린 하이츠 워킹 투어
하이츠 워킹투어는 맨해튼에서 지하철 2, 3 혹은 4, 5를 타고 브루클린 첫 스탑 보로홀(Borough Hall)에서 하차. 혹은 R을 타고 Court St. 하차.
▶브루클린 보로홀(Brooklyn Borough Hall): 1849년 완공됐을 때 이 건물은 보로홀이 아니라 시티홀이었다. 당시 브루클린은 독립된 시였다.(☞몬태규스트릿으로 직진하면 오른쪽에 웅장한 두 은행이 보인다.)
▶시티 뱅크(Citibank, 183 Montague St.): 1903년 로마사원을 본 따 대리석으로 지어졌다. 원래 피플즈트러스트컴퍼니(People’s Trust Company) 건물.
▶체이스뱅크(Chase Bank, 177 Montague St.): 뉴욕시를 통털어서 가장 웅장한 은행으로 꼽힌다. 베로나의 궁전을 본 딴 이탈리안 르네상스 리바이벌 양식의 외관에 인테리어도 호화롭다.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이 쫓기는 은행원에 관한 스릴러라도 촬영해야할 것 같은 고풍스런 느낌이 든다. 은행 치안 때문에 내부 촬영은 금지되어 있다. (☞클린턴스트릿 코너에 교회를 보라.)
▶세인트앤&홀리트리니티처치(St. Ann and Holy Trinity Church, 157 Montague St.): 1848년 고딕리바이벌 양식으로 지어졌다. 미국에서 처음 스테인글래스 창문이 설치된 곳이다. 홍성진씨가 지휘하는 원월드심포니가 정기적으로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우회전해서 피에르폰트스트릿 스탑.)
▶브루클린히스토리컬소사이어티(Brooklyn Historical Society, 28 Pierrepont St.): 1881년 조지 B. 포스트가 로마네스크 스타일로 지었다. 브루클린의 역사를 보존하기 위한 뮤지엄이다. (☞좌회전해서 피에르폰트스트릿 직진. 먼로플레이스의 교회.)
▶First Unitarian Church(Monroe Place@Pierrepont St.): 1982-84년 목수 출신 건축가 미나드 레이피버(Minard Lafever)가 지은 교회. 안에 티파니 스테인드글래스가 볼만 하다.(☞먼로플레이스 건너편의 웅장한 건물로)
▶뉴욕주 최고 항소심 법원(Appellate Division, N.Y.S. Supreme Court): 1938년 슬리&브라이슨(Slee&Bryson)의 클래시컬리바이벌 건물. 도리아 양식의 기둥이 묵직하다.(☞피에르폰트 스트릿으로)
▶아더 밀러의 하얀집(102 Pierrepont St.): 지금 브로드웨이에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 주연으로 리바이벌된 ‘세일즈맨의 죽음(Death of a Salesman)’, 지난해 스카렛 요한슨 주연으로 공연됐던 연극 ’다리에서 본 전망(A View From the Bridge)’의 극작가 아더 밀러가 1940년대 이곳에서 살았다. 밀러는 브루클린하이츠에만 네 곳(55 윌로우스트릿, 31 그레이스코트, 62 몬태규 스트릿))을 옮겨다니며 살았다. 1956년 마릴린 먼로와 재혼한 후엔 62 몬태규스트릿에서 한동안 살다가 맨해튼으로 이주했다. 61년 먼로와 이혼 후엔 사진작가 인지 모라스와 결혼, 딸 레베카 밀러(배우, 감독)를 낳았으며, 사위가 배우 다니엘 데이 루이스다. 밀러에겐 다운증후군에 걸린 아들(67년 생)이 있었는데 밀러가 아버지 노릇을 하지않고, 격리한 채 살고 있다가 사위 루이스가 화해시켰다고 전해진다. (☞헨리, 힉스스트릿을 지나 윌로우스트릿에서 우회전.)
▶아더 밀러의 빨간집(55 Willow St.): 왼쪽 끝이 밀러가 살던 집이다. 옆의 57, 59 Willow St.는 이 거리에서 가장 오래된 집들이다.(☞클락, 파인애플스트릿을 지나면.)
♣과일 거리(Fruit Street)가 생긴 이유는?
윌로우(Willow St.)에서 클락(Clark)을 지나면 파인애플, 오렌지, 크랜베리 등 과일 이름의 거리가 나온다. 렘센, 피에르폰트, 힉스, 헨리 등 브루클린하이츠의 거리 이름은 이 지역의 유명인사 이름을 따서 붙여졌다. 어느 날 힉스 가문의 미다(Middah) 여사가 홧김에 거리 표지판을 내려버리고 과일과 식물 이름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윌로우와 포플러(Poplar)까지 생겨나게된 것이다.
▶트루만 카포테의 지하방(70 Willow St.): 1830년대 그리스 리바이벌 양식으로 지어진 주택. 카포테는 50-60년대 지하에 살면서 명작 ‘콜드 블러드’와 ‘티파니에서 아침’을 집필하면서 밤엔 종종 파티를 열었다. 이 건물은 최근 비디오게임 ‘Grand Theft Auto’의 작가에게 1250만 달러에 팔렸다.(☞과일 거리 이름이 계속된다. 오렌지스트릿에서 우회전해 힉스스트릿을 지나면 교회.)
▶플리마우스 교회(Plymouth Church, 75 Hicks St.): 클래식리바이벌 양식의 교회. 1847년부터 40년간 노예해방주의 목사 헨리 워드 비처(Henry Ward Beecher)가 설교를 했다. 비처 목사는 ‘엉클 톰스 캐빈’의 저자 스토우 부인의 오빠이기도 하다. 에이브라함 링컨이 이 교회에서 예배를 드린 적도 있었다. 링컨의 부조도 있다. 뿐만 아니라 마크 트웨인, 찰스 디킨스, 월트 휘트만 등 문인들이 이곳에서 예배를 드렸다. 특히 시인 휘트만은 1820년대 이 교회 뒤에서 자랐다고 한다. 비처 목사의 동상은 ‘러쉬모어 마운틴’의 조각가 보글럼(Boglum)의 작품이다.(☞다시 힉스로 돌아가서 우회전, 미다스트릿에서 좌회전하면서 윌로우스트릿까지 서서히 간다.)
▶나무 집들(31, 30, 29, 27, 28, 24 Middah St.): 이 주소들은 1820년대 즈음 나무로 지어진 하우스들이다. 이중 1829년 페더럴 양식으로 지어진 하우스(24 Middah St./ 사진 아래)은 미건축가협회(AIA)의 ‘뉴욕가이드’에서 ‘브루클린하이츠의 여왕(Queen of Brooklyn Heights)’로 불리웠다. 하이츠의 왕은 나란히 쌍둥이처럼 세워진 저택(2, 3 피에르폰트플레이스)이다. 목재 주택의 전형인 24는 정원에 이어진 오두막집과 다락방이 달려있다.(☞파인애플 스트릿까지 올라가서 우회전, 컬럼비아하이츠에서 좌회전)
▶노만 메일러의 집(142 Columbia Heights): ‘빌리지 보이스’의 기자로 시작해 퓰리처상 2회 수상 작가가 된 메일러가 꼭대기 층에서 2007년 죽을 때까지 살았다. 성격이 난폭했던 메일러는 맨해튼 전망이 장관인 2베드룸에 살면서 두번 째 아내를 칼로 찌르기도 했다고. 메일러는 다섯번 결혼했다. 이 집은 지난해 10월 208만불에 팔렸다.(☞클락스트릿에서 우회전해 프로미나드로 들어가 좌회전.)
▶브루클린하이츠 프로미나드(Brooklyn Heights Promenade): 오렌지스트릿에서 렘센스트릿까지 1/3 마일 이어지는 산책로. 다우지수가 박동하는 월스트릿에서 브루클린브릿지, 미드타운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과 크라이슬러빌딩까지 맨해튼 스카이라인이 웅장한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WTC 쌍둥이빌딩이 사라지면서 스카이라인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뉴요커들의 쉼터로 남아있다. 프로미나드의 아침은 조깅하는 사람들로 시작된다. 오후에는 롤러스케이터들, 개와 산책하며 일몰이나 야경을 보는 이들. 일요일 아침엔 두꺼운 뉴욕타임스지를 열독하는 주민들로 메워진다. Remsen-Orange St.(☞피에르폰트 스트릿에서 좌회전, 놀이터를 끼고 우회전)
▶Kings of Brooklyn Heights(2, 3 Pierrepont Place): AIA에 따르면, 뉴욕에 남아있는 가장 우아한 브라운스톤 하우스(1857년 건축가 프레데릭 A. 피터슨). 1,2,3이 나란히 있었으나, 1번지는 BQE(Brooklyn-Queens Expressway)와 프로미나드 건설 즈음 놀이터가 마련되면서 사라졌다. 2번지의 오리지널 소유주는 브루클린식물원을 조성한 박애주의자 알프레드 트레드웨이 화이트(Alfred Tredway White), 3번지는 도자기 무역으로 부자가 된 에이비엘 로(Abiel Low). 나란히 있는 두 집이 미남 쌍둥이 형제를 보는듯 하다.(☞직진해 몬태규를 지나 렘센스트릿에서 좌회전해서 고풍스러운 19세기 집들을 파노라마로 즐긴다.(☞힉스스트릿에서 우회전해 그레이스코트 코너에 교회)
▶그레이스 처치(254 Hicks St.): 1847-49년 월스트릿 트리니티처치의 건축가 리처드 업존(Richard Upjohn)이 고딕 리바이벌 스타일로 세운 교회. (☞그레이스코트를 따라 내려가다가 31번지 스톱)
▶다시 아더 밀러의 집(31 Grace Court): 1940년대 아더 밀러가 살았고, 50년대엔 흑인 최초로 하버드에서 박사학위를 딴 인권운동가 W. E. B. 드보아도 이 집에서 살았다.(☞다시 렘센스트릿으로 돌아가 우회전해 왼쪽 91번지 스톱)
▶헨리 밀러가 살던 집(91 Remsen St.):1939년 '북회귀선'을 발표, 외설로 인해 61년까지 판매금지 처분을 받은 소설가 헨리 밀러가 두번째 부인 준 맨스필드(June Mansfield)와 결혼 후 1924-25년에 살던 집이다. 이들은 나무로 꾸며진 이 집을 ‘일본식 사랑의 둥지(the Japanese Love Nest)’라고 불렀다. 그러나 이 집의 세가 너무 비싸 나중에 들르게 될 현 CVS가 있는 Love Lane의 하우스로 이사한 후 파리로 떠나게 된다. 영화 ‘북회귀선(Henry & June, 1990/사진 위)’은 밀러와 양성애 아내 준, 그리고 쿠바 출신 여성작가 아나이스 닌의 삼각관계를 그렸다. 우마 서먼과 마리아 드 메데이로스가 출연했다.(☞렘센스트릿으로 다시 걷다가 헨리 스트릿 교회)
▶레바논 성당(Our Lady of Lebanon Roman Catholic Church, 113 Remsen St.): 1844년 교회전문 건축가 리차드 업존에 의해 설계된 미 최초의 로마네스크 리바이벌 양식의 청교도 교회였다. 1934년 청교도 교회가 플리마우스처치로 이주해가면서 레바논 성당이 됐다. 양쪽의 문은 1942년 허드슨강에서 침몰한 프랑스의 호화선 노르망디의 청동 식당문을 경매에서 사들여서 붙인 것이다.(☞헨리스트릿으로 가다 몬태규스트릿에서 좌회전하면, 힉스스트릿 코너 왼쪽에 호텔 건물)
▶호텔 보써트(Hotel Bossert, 98 Montague St.): 하이츠의 대형 건물을 다수 소유하고 있는 여호아 증인(Jehovah’s Witness) 소유 유스호스텔. 1908-13년 헬름&휴버티(Helme&Huberty)가 설계한 호텔로 1920년대 사교계의 메카였다.(☞몬태규스트릿으로 계속 내려가면 왼쪽에)
▶또 아더 밀러가 살던 곳(62 Montague St.): 아더 밀러가 마릴린 먼로와 결혼해 살던 집이다. 지금은 보수 공사 중이라 스캐폴드가 건물을 가리고 있다.(☞다시 헨리스트릿으로 돌아가서 좌회전)
▶허만 버 맨션(82 Pierrepont St.): 1888년 지어진 이 저택의 이름은 허만 버 맨션(Herman Behr Mansion). 그런데, 허만 버 사망 후 ‘팜 호텔(The Palm Hotel)’이 되어 마담과 콜걸이 장사진을 친 매춘굴이 됐다. 네덜란드 출신 자비에라 홀랜더라는 이름의 마담은 1971년 ‘행복한 매춘녀(The Happy Hooker: My Own Story)’라는 회고록도 내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다. 이후 세인트 프란체스코칼리지가 신부들을 위한 연구소로 이용하다가 이후 아파트로 개조됐다. 2008년 마켓에 나와 1098만달러에 팔렸다.(☞헨리스트릿으로 직진하면 러브레인 코너에 CVS 편의점)
▶CVS(22 Love Lane): ‘북회귀선(Tropic of Cancer)’ 등 노골적인 성묘사가 특기인 소설가 헨리 밀러와 아내 준이 살던 집이다.(☞헨리스트릿으로 직진하면 클락스트릿 코너에 호텔 건물)
▶세인트 조지 호텔(St. George Hotel): 지하철 2, 3역이 있는 이 대형 건물은 1885년 완공됐을 때 2,632개의 객실을 갖춘 뉴욕시의 최대 호텔이었다. 몇 차례의 보수 공사를 거치면서 건물이 분리됐다. 지금은 EHS(Educational Housing Service)가 대학생 기숙사로 운영하고 있다. 1957년 뉴욕필하모닉의 지휘자였던 레너드 번스타인이 차이코프스키의 ‘로미오와 줄리엣’ 서곡을 이곳에서 녹음했다. 2년 후엔 조지 거쉰의 ‘랩소디 인 블루’와 ‘파리의 미국인(An American in Paris)’을 녹음했다.(☞워킹투어 끝. 지하철 타고 집으로.)
*허리케인' 샌디가 할퀴고 간 자국: 덤보 & 브루클린하이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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