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 그래미상 보이콧 파장 시리즈 (3) 피해자들 C. 영국의 침공 I: 비틀즈, 롤링 스톤즈, 더 후, 레드 제플린, 퀸
BTS Boycott the Grammys <3> 그래미 패싱 (Grammy Passing) C.
제 1차 '영국의 침공': 비틀즈와 록의 후예들
그래미 스탠다드 팝, 재즈, 이지 리스닝으로 로큰롤 배척

BTS 그래미상 보이콧 파장 시리즈
(3) 그래미 패싱(Grammy Passing): 외면당한 거장들
B. 팝의 디바들: 조안 바에즈, 재니스 조플린, 니나 시몬, 다이애나 로스, 셰어, 마돈나, 로리 앤더슨
D. 변방의 혁신가들: 밥 말리, 아바, 비요크, 싸이(PSY), BTS
선택받은 성골들: U2, 비욘세, 테일러 스위프트, 아델, 빌리 아이리쉬
(5) 영원한 이방인들(Aliens)의 반란: 왜 세계는 BTS 선언을 응원하나

제 1차 '영국의 침공'과 그래미가 배척한 록밴드들
비틀즈, 롤링 스톤즈, 더 후, 레드 제플린, 퀸
"이번 영국의 침공은 '비틀매니아'라는 암호명으로 진행됩니다. D-데이는 수개월 전부터 모두가 알고 있었고, 바로 오늘이 그날이었습니다. 그 침공은 뉴욕 케네디국제공항에서 일어났습니다."
-월터 크롱카이트, CBS 뉴스 (1964년 2월 7일)-

1964년 2월 7일 비틀즈가 뉴욕 JFK 국제공항에 도착한 후 팬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Photo: United Press International
#1964 비틀즈 상륙, '영국의 침공'
1958년부터 1960년대 초까지 미 대중음악 궤도에서 로큰롤 스타들이 연달아 사라졌다. 리틀 리처드는 목사가 되려고 교회로 갔고, 버디 홀리는 비행기 추락으로 사망했고, 척 베리는 감옥으로 들어갔다. '로큰롤의 왕' 엘비스 프레슬리는 군 제대 후 연간 2-3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팝 발라드를 부르는 로맨스 가이로 변신했다. 이 공백을 바비 다린, 바비 빈튼, 바비 라이델, 바비 뷔 등 '틴 아이돌(Teen Idols)'이 채웠다. 그러나, 기획사가 가공한 단정하고 깔끔한 이미지로 팝 발라드를 부르는 '바비즈(The Bobbys)'는 로큰롤의 반항적인 에너지가 거세된 스타들이었다.
1963년 11월 22일 존 F. 케네디(JFK) 대통령의 암살로 미국인들은 집단적 트라우마와 공황 상태에 빠져들게 된다. 전후 태어나 10대로 진입해 문화 소비의 주역이 된 베이비붐 세대는 공황과 갈증을 느끼며 자신들의 정체성을 대변해줄 강력한 사운드를 원하고 있었다. 미국인들이 휘청거리고 있을 때, 영국이 음악으로 전쟁을 도발했다. 1964년 비틀즈(The Beatles)로 시작, 영국의 뮤지션들이 미국의 팝음악 차트와 대중문화를 뒤흔들게된 '영국의 침공(British Invasion)'이다.
비틀즈는 1964년 1월 중순 싱글곡 'I Want to Hold Your Hand'으로 미국 '톱 40' 정상에 오르며 히트 행진의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그해 2월 7일, CBS 저녁 뉴스에서 앵커 월터 크롱카이트는 비틀즈가 미국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보도하면서 "영국발 침공(British Invasion)의 암호명은 비틀매니아(Beatlemania)"라고 말했다. 이틀 후 비틀즈는 에드설리번쇼(The Ed Sullivan Show)에 출연해 폭발하는 에너지와 야성적인 샤우팅으로 연주했다. 이 쇼는 미국 TV 시청자의 45%, 7천3백만명이 비틀즈를 지켜본 것으로 추산되었다.
"1776년 영국은 식민지 미국을 잃었다. 지난 주 비틀즈가 그곳을 다시 되찾았다."
-라이프 잡지, 1964-
"그걸로 끝이었다. 1964년, 미국 가수들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
-코니 프란시스(가수), 2002-
그해 4월 4일 비틀즈는 빌보드 싱글차트 1위부터 5위까지(No. 1, 'Can’t Buy Me Love', No. 2, 'Twist and Shout', No. 3, 'She Loves You', No. 4, 'I Want to Hold Your Hand', No. 5, 'Please Please Me') 동시에 석권했고, 이듬해 한해 동안에만 핫 100 차트에 30곡을 올리는 기록을 세웠다.
한편, 그로부터 62년 후인 2026년 3월, 방탄소년단(BTS)이 군 복무와 공백기를 마치고 발매한 정규 5집 '아리랑(ARIRANG)'의 타이틀 곡 'SWIM'을 비롯, 수록곡들이 미국을 제외한 빌보드 글로벌 차트 톱 10을 점령한 바 있다. 또한, 3월 21일엔 세계 최대 음원 플랫폼 스포티파이(Spotify)의 글로벌 일간 차트 톱 14을 줄 세우는데 성공했다. BTS는 현대 스트리밍 시대 고유의 대기록을 완성했다. 빌보드 핫100은 아니었지만, 너 넓은 글로벌 싱글 차트에서 역사를 썼다.
존, 폴, 조지, 링고의 팹 포(Fab Four, 비틀즈의 애칭)가 성공한 후, 롤링스톤스(The Rolling Stones)와 더 후(The Who)가 따라왔다. 이외에도 킹크스(The Kinks), 좀비스(Zombies), 야드버즈(Yardbirds), 홀리스(The Hollies), 허만즈 허밋츠(Herman's Hermits), 애니멀즈(The Animals), 무디 블루스(The Moody Blues), 크림(Cream), 트래픽(Traffic), 프로콜 하럼(Procol Harum) 등 밴드들와 더스티 스프링필드(Dusty Springfield), 페튤라 클락(Petula Clark), 톰 존스(Tom Jones), 도노반(Donovan), 룰루(Lulu), 그리고 마리안느 페이스풀(Marianne Faithfull) 등 솔로 가수들도 최전선에서 미국을 공략했다.
#1960년대는 '영국의 시대'

영국의 침공은 미국 내 서프 뮤직(surf music), 모타운(Motown) 이전 시대의 여성보컬 그룹, 포크 리바이벌, 내슈빌 컨트리 음악, 그리고 바비 다린, 바비 빈튼 등 십대 우상들의 인기를 사실상 종식시켰다. 롤링스톤 잡지는 1988년 파크 푸터바우(Parke Puterbauh)의 칼럼 "영국의 침공: 비틀스에서 롤링 스톤스까지, 1960년대는 영국의 시대였다(The British Invasion: From the Beatles to the Stones, The Sixties Belonged to Britain)"를 실었다.
그 여파는 음악 뿐이 아니었다. 비틀즈가 미국 상륙 후 선풍적인 인기를 끌 즈음, 극장가는 숀 코네리의 007 제임스 본드 제 3편 '골드핑거'가 박스오피스 2위를 기록하며 흥행가도를 달렸다. 이로써 미국 스파이 장르의 탄생을 촉발했고, TV까지 로저 무어 주연 '세인트(Saint)' 등 영국산 스파이 시리즈가 안방극장까지 공략했다. 영국 배우 줄리 앤드류스는 데뷔작인 뮤지컬 영화 '메리 포핀스'와 '사운드 오브 뮤직'으로 흥행은 물론 아카데미 여우주연상까지 거머쥐었다. 또한, 1962년 '아라비아의 로렌스'가 아카데미 작품상 등 7개 부문을 휩쓴 후 '톰 존스'(1963), '4계절의 사나이(1966), '올리버!'(1968)등 영국 영화 4편이 오스카 작품상을 가져갔다.
당시 영국은 식민지를 잃고 국제정치적 영향력이 급격히 줄어들던 시기였다. 옛 대영제국의 딱딱한 이미지 대신 세련된 수트를 입고 스포츠카를 모는 제임스 본드와 자유분방한 비틀즈의 음악은 전 세계 젊은이들에게 "영국은 가장 힙하고 트렌디한 나라"라는 새로운 인식을 심어주게 된다. "British"는 그 쿨한 이미지의 대명사가 된 것이다. 오늘날 "Korea"가 글로벌 문화 브랜드(K-Culture)가 된 것처럼.

비틀즈가 데뷔한 후 미국은 록음악과 청년문화가 점령했다. 이제 그래미(Grammy Awards)는 미국 음악을 수호해야했다. 레코딩아카데미의 보수적인 투표 성향은 영국의 침공과 록의 급부상을 외면하는 결과로 나타났다.
이로써 1964년부터 1967년까지 4년간 그래미 본상(general field)의 빅 4(올해의 앨범, 레코드, 노래, 신인상)은 미국 전통 팝, 이지리스닝, 재즈와 보사노바 아티스트들이 독식하게 된다. 팝스탠다드 프랭크 시나트라와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영화음악가 헨리 만시니, 재즈 색소폰주자 스탄 게츠와 보사노바 가수 아스트루드 질베르토, 재즈 트럼펫주자 허브 앨퍼트가 올해의 앨범과 레코드를 싹쓸이했다.
그래미상을 주관하는 레코딩아카데미 투표단은 50대 이상의 백인들이 주류였다. 이들은 로큰롤을 청소년들이 좋아하는 불량하고, 시끄러운 음악으로 치부했다. 비틀즈가 미국에 상륙했을 때 그것은 음악계의 지진이었다. 그래미는 로큰롤 파도가 치는 바다 위에서 구명보트를 타고, 자신들이 우아하다고 생각하는 재즈 스탠다드, 이지 리스닝, 전통 팝 음악가들을 태우며 미 대중음악을 사수하게 된다.
#그래미의 비틀즈 외면 연대기
"우리가 진 게 아니야. 노친네들이 이긴 거지."
-존 레논, 1966-

https://www.grammy.com
비틀즈(존 레논, 폴 맥카트니, 조지 해리슨, 링고 스타)는 그래미상 후보에 총 25회 올라 8번 수상했다.
1964년 2월 에드설리번쇼에서 데뷔한 후 폭발적인 인기를 끈 비틀즈가 그래미상 후보에 처음 지명된 것은 1965년 제 7회였다. 비틀즈는 올해의 레코드(I Want To Hold Your Hand), 듀오 또는 그룹 팝퍼포먼스(A Hard Day's Night), 최우수 컨템포퍼리 송, 그리고 신인상(Best New Artist) 부문 후보에 올랐던 비틀즈는 신인상 트로피 하나만 건져갔다.
그해 앨범과 레코드상은 재즈 색소폰주자 스탠 게츠와 브라질 가수 아스트루드 질베르토의 보사노바 곡 '이파네마에서 온 소녀(The Girl from Ipanema)'가 석권했다. 그래미는 거칠고 격렬한 록 사운드 대신, 기성세대가 거실에서 와인을 마시며 들을 수 있는 감미롭고, 이국적인 재즈를 품격있는 음악으로 판단했다.
1966년, 비틀즈는 'Help!'로 '올해의 앨범, 컨템포러리 송, 팝 퍼포먼스(듀오 또는 그룹), 영화음악 작곡상, 그리고 'Yesterday'로 '올해의 노래' 등 5개 부문 후보에 지명됐지만, 수상엔 실패했다. 그해 앨범상은 재즈 트럼펫주자 허브 알버트의 연주곡(A Taste of Honey), 레코드는 프랭크 시나트라(September Of My Years), 그리고 노래는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리처드 버튼 주연 영화 '도요새(The Sandpiper)'의 트럼펫 테마 연주곡(The Shadow Of Your Smile)에 돌아갔다. 그래미가 비틀즈를 철저하게 배척한 것이다. 시상식 직후 존 레논은 "우리가 진 게 아니야. 노인네들이 이긴 거지"라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리고, 1967년 또 다시 비틀즈는 올해의 앨범(Revolver), 노래(Michelle), 컨템포러리 송, 남성 팝 보컬, 편곡, 연주 및 보컬(이상 'Eleanor Rigby')로 5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됐다. 그러나, 올해의 앨범과 레코드는 다시 프랭크 시나트라(A Man and His Music/ Strangers in the Night)이 차지했고, 비틀즈는 올해의 노래와 컨템포러리 송, 트로피 두개만 받아갔다.
마침내 1968년 2월, 제10회 시상식에서 그래미는 비틀즈의 예술성을 본격적으로 인정하기 시작한다.
팝 역사상 최고의 앨범으로 불리우게될 8번째 스튜디오 앨범 '페퍼 상사의 고독클럽 밴드(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가 올해의 앨범을 비롯, 컨템포러리 앨범, 엔지니어 레코딩, 앨범 커버까지 4개 부문상을 수상한 것이다. 이로써 완고했던 기성세대 심사위원들이 마침내 청년문화와 록음악의 예술성을 공인한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정작 주인공들은 시상식장에 없었다. 비틀즈는 인도 리시케시에서 마하리시 마헤시 요기의 초월명상 캠프에 머물고 있었기 때문에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비틀즈는 이후 '길고도 험한 길(the long andwinding road)' 그래미 가뭄기로 다시 돌아갔다. 1969년(Magical Mystery Tour), 1970년(Abbey Road)엔 올해의 앨범 등, 1971년(Let It Be)엔 올해의 레코드 등 후보에 올랐지만, 수상하진 못했다.
그리고, 1970년 비틀즈는 'Let It Be'를 끝으로 공식 해산한다. 이후 멤버들은 솔로로 활동했으며, 밴드로서 다시 그래미를 수상한 것은 약 30년 후인 1997년 뮤직 비디오와 음악영화 부문(Free As A Bird/ The Beatles Anthology)이었다.
그리고, 2025년엔 'Now and Then'으로 올해의 레코드 후보까지 올랐고, 최우수 록 퍼포먼스를 수상했다. '마지막 비틀즈 노래'인 'Now and Then'은 존 레논이 1977년 작곡하고 녹음했으나, 미완성 상태였던 솔로 홈 데모에 매카트니, 해리슨, 스타가 참여해 발표한 싱글이다. 그리고, 비틀즈는 2014년 평생공로상을 받게 된다.
1968년 레코딩아카데미(당시 레코드예술과학아카데미, NARAS)는 비틀즈에게 그래미 '올해의 앨범'을 바치면서 록음악의 예술성을 공식 인정하는듯 했다. 그러나, 이는 록에 대한 전면적인 개방이 아니었다. 여전히 그래미는 하드록과 헤비메탈 등 당대의 혁신적인 록음악을 수십년간 외면하는 보수성을 보였다.
이들에게 비틀즈는 클래식을 전공한 프로듀서 조지 마틴(George Martin, '제 5의 비틀') 덕분에 '세련된 예술'로 수용되었지만, 다른 밴드들의 음악은 그저 '시끄럽고 반항적인 소음'으로 치부되었다. 롤링 스톤즈의 불량한 부랑자 이미지, 더 후와 레드 제플린의 거친 하드 록과 마약 관련 악명 등은 미국의 보수적인 중장년층 심사위원들에게 강한 거부감을 주었다. 그래미는 예술적 혁신보다 가족 친화적이고 단정한 스타를 선호했다.
#'배드 보이' 롤링 스톤즈(The Rolling Stones)

1963년 데뷔한 5인조(믹 재거, 키스 리처즈, 찰리 와츠, 로니 우드) 록밴드 롤링 스톤즈(The Rolling Stones)는 비틀즈가 열어젖힌 문으로 미국에 진입했다. 비틀즈가 '귀여운 단정한 이미지였던 반면, 롤링 스톤즈는 배드 보이즈(Bad Boys) 컨셉이었다. 그들은 흑인 음악 블루스와 R&B를 바탕으로 한 하드록과 블루스 록으로 자유와 저항, 그리고 퇴폐를 대변하는 밴드였다.
롤링스톤즈는 1964년 6월 미국 투어를 시작했지만, 관객수는 저조했다. 1965년, '(I Can't Get No) Satisfaction'가 빌보드 1위를 차지하면서 롤링 스톤즈는 비틀즈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적인 밴드로 우뚝 올라섰다.
그러나, 그래미를 주관하는 레코딩아카데미는 반항적이며, 거친 흑인 블루스 기반의 록음악을 '일시적인 소음'으로 취급했다. 그리고, 퇴폐적인 이미지의 록밴드 롤링스 톤즈를 인정하지 않았다. 비틀즈에 비해 롤링 스톤즈는 섹스, 마약, 스캔달, 퇴폐적인 이미지가 강했고, 레코딩아카데미가 선호하는 신사적인 아티스트의 기준과 거리가 멀었다.
롤링 스톤즈는 1965년 '새티스팩션' 이후 1975년까지 'Paint It, Black' 'Ruby Tuesday', Honky Tonk Women', 'Brown Sugar' 'Angie' 등 7곡을 빌보드 핫100 차트 1위에 올렸으며, 발매하는 앨범마다 메가 히트 행진을 지속했다. 그러나, 이 밴드가 그래미 후보에 처음 오른 것은 황금기가 지난 1979년 '올해의 앨범(Some Girls)' 단 한개의 후보에 올랐다가 디스코 열풍의 정점에 있던 비지스의 영화 '토요일밤의 열기(Saturday Night Fever)' 사운드트랙에 밀려 고배를 마셨다.
롤링 스톤즈 패싱은 기성세대의 보수적인 그래미 투표단이 록음악이라는 장르 자체를 수십년간 인정하지 않았던 엘리트주의를 보여준다. 그래미는 1960-70년대 영국 록의 거장들을 제치고 피프스 디멘션(The 5th Demension), 사이먼 앤 가펑컬, 캐롤 킹 등 미국의 크로스오버, 소프트록이나 이지리스닝 아티스트들에게 '올해의 앨범'을 몰아주게 된다.
결국, 1986년 그래미는 롤링 스톤즈에 평생공로상을 주었다. 첫 그래미였다. 이후 롤링스톤스는 최우수 록 퍼포먼스(듀오나 그룹)과 음악 영화 후보에 5차례 올랐지만 수상하지 못했다. 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밴드 중 하나인 롤링스톤즈는 1995년에서야 최우수 뮤직비디오(Love Is Strong)와 록앨범(Voodoo Lounge)으로 비로소 경쟁 부문에서 그래미 트로피를 받았다. 이에 대해 음악계에선 이미 전성기가 지나 노년기에 접어든 거장에게 그래미가 뒤늦게 갚는 '보상성 수상이'라는 비판이 지배적이었다.
이어 2018년 트래디셔널 블루스앨범(Blues & Lonesome), 그리고, 2025년엔 록앨범(Hackney Diamonds)'을 받아 이제까지 13번 후보에 지명되었으며, 경쟁 부문 수상은 총 4회에 그쳤다.

롤링 스톤즈를 패싱한 반면, 모타운 출신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는 황금기를 누렸다. 1974년 흑인 아티스트 최초로 '올해의 앨범(Innervisions)을 수상한 후 1975년(Fulfillingness' First Finale)과 1977년(Songs in the Key of Life)에도 석권하는 기염을 토했다. 스티비 원더는 뛰어난 작곡 솜씨에 보컬, 연주, 프로듀서, 편곡까지 올라운드 플레이어 뮤지션이었으며, 노래에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았고, 상업적으로도 성공을 거둔 아티스트였다.
그래미는 스티비 원더의 음악을 R&B와 팝, 소울의 계보 내에서 혁신적이라고 높이 평가한 것이다. 따라서 문제는 단순히 인종이나 세대가 아니었다. 그래미가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은 혁신적이더라도 기존 R&B·팝·소울의 문법 안에서 설명할 수 있는 음악이었다.
1976년 그래미 시상식에서 폴 사이먼은 'Still Crazy After All These Years'로 올해의 앨범상을 받으면서 "올해는 앨범을 발매하지 않아 내가 상을 받을 수 있게해준 스티비 원더에게 감사한다"고 말해 화제가 됐다.

Stevie: A Life in the Key of Songs, BAM, May 15, 2026. Photo: Sukie Park/ NYCultureBeat
지난 5월 브루클린아카데미오브뮤직(BAM, Brooklyn Academy of Music)에서는 스티비 원더가 1972년부터 1976년 사이 미 대중음악의 흐름을 바꾸어놓은 5장의 앨범 'Music of My Mind', 'Talking Book', 'Innervisions', 'Fulfillingness' 'First Finale', 그리고 'Songs in the Key of Life'을 통해 그의 천재성을 기리는 3일간의 콘서트 'Stevie: A Life in the Key of Songs'가 열렸다. 스티비 원더는 5월 13일로 76세 생일을 맞았다.
#'록 오페라의 개척자' 더 후(The Who)

전설적인 그룹 더 후(The Who)는 그래미에서 롤링스톤즈보다 더 처참한 기록을 남겼다. 1965년 데뷔한 영국의 4인조(로저 달트리, 피트 타운센드, 존 엔트위슬, 키스 문) 록밴드 더 후는 가장 실험적이며, 선구적인 록밴드 중 하나로 하드록과 헤비메탈 및 펑크 록의 발전에 영향을 주었다. '가장 시끄러운 밴드'라는 명성처럼 거친 무대 매너와 연주실력은 1960-70년대 크림, 지미 헨드릭스, 레드 제플린, 블랙 사바스에서 섹스피스톨즈, 라몬스, 클래시 등 펑크 그룹, 그리고, 1990-2000년대의 알터너티브 록밴드까지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더 후는 1969년 출반한 '토미(Tommy)'로 록오페라를 대중음악의 중심으로 끌어올렸다. 1971년 발표한 'Who's Next'는 록 역사상 가장 중요한 앨범 중 하나로 꼽힌다. 1973년에 낸 '콰드로페니아(Quadrophenia)'는 정체성, 청년기의 소외, 영적 갈망을 다루며 록을 장편 서사와 심리극을 발전시킨 명반이다. 더 후는 록을 예술적 언어로 만들었지만, 그래미는 더 후를 끝내 외면했다.
그래미는 더 후의 전성기에는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그러다가 뒤늦게 1991년(Live-Featuring the Rock Opera 'Tommy')과 2009년(Amazing Journey: The Story of The Who), 그것도 음악 자체가 아니라 음악영화(Best Music Film) 부문에 딱 2번 지명되었다가 수상도 못했다. 그래미는 2001년, 더 후에게 평생공로상으로 사과를 대신했다.
#'하드록의 교과서' 레드 제플린(Led Zeppelin)

1968년 결성된 영국의 4인조(로버트 플랜트, 지미 페이지, 존 폴 존스, 존 보햄) 록밴드 레드 제플린은 하드록과 헤비메탈의 교과서로 1970년대를 풍미했다. 특히 로버트 플랜트의 보컬로 'Stairway to Heaven'(1971)라는 명곡이 수록된 걸작 앨범 'Led Zeppelin IV'(1971)를 비롯, 'Led Zeppelin II'(1969), 'Physical Graffiti'(1975) 등을 냈다.
하지만, 1970년 신인상(Best New Artist) 후보에 오른 것을 제외하면, 활동 기간 중 주요 경쟁부문에서 거의 존재감을 보이지 못했다. 1970년 신인상은 미국산 포크록 그룹 크로스비, 스틸스 앤 내시(Crosby, Stills & Nash)에 밀려났다. 레드 제플린은 1980년 드러머 존 본햄의 사망으로 해체됐고, 그래미는 2005년 평생공로상을 헌사했다.
그리고, 레드 제플린이 다시 그래미 후보에 오른 것은 첫 후보 지명 44년 후인 2014년이었다. 'Kashmir'로 록 퍼포먼스 후보에 올랐고, 2007년 런던 O2 아레나에서 열었던 일회성 재결합 라이브 실황을 담은 아카이브 앨범 'Celebration Day'로 2014년 최우수 록앨범을 수상했다. 전설적인 그룹이 딱 3회 후보에 올라 1개의 트로피를 받은 것이다.
비평가들은 1970년대 레드 제플린 전성기 시절의 수많은 명반은 다 무시해 놓고, 노인이 되어 과거의 곡들을 연주한 라이브 앨범에 상을 주는 그래미에 "역대 가장 황당하고 뒤늦은 뒷북 시상"이라는 조롱을 보냈다. 그래미가 1970년대 대중음악의 최고봉이었던 레드 제플린을 내내 외면함으로써 시대의 흐름을 전혀 읽지 못하는 '고인 물' 집단임을 증명해 보인 셈이다.
#퀸(Queen): 후보 지명 4회, 수상 0회

1970년은 대중음악사에서 가장 거대한 세대교체가 일어난 해다. 1960년대를 지배했던 비틀즈가 공식적으로 해산했고, 1970-80년대를 뒤흔들 밴드 퀸(Queen)이 결성됐기 때문이다. 브라이언 메이(기타), 로저 테일러(드럼), 팀 스타펠(보컬)의 3인조 밴드 '스마일(Smile)'로 활동을 시작했다가, 프레디 머큐리(본명 파록 불사라)가 보컬을 대체하며 밴드 이름을 웅장하고, 장엄하며, 연극적인 느낌을 주는 '퀸'으로 바꾸자고 주장했다. 이듬해 베이시스트 존 디콘을 영입하며 전설의 4인조 '퀸'의 라인업이 완성됐다.
퀸의 멤버들은 비틀즈의 열렬한 팬이었다. 특히 '세기의 보컬' 프레디 머큐리는 존 레논을 영웅으로 모셨다. 1980년 레논이 사망하자 그를 추모하는 곡 'Life is Real(Song for Lennon)'을 작곡하기도 했다. 비틀즈의 바톤을 이어받은 퀸은 하드록, 펑크록, 글램록, 디스코, 뉴웨이브, 그리고 오페라를 결합한 음악으로 세대를 풍미했다. 또한, 1981년 록밴드 최초로 남미 대형 축구 경기장 투어를 하면서 스타디움 록의 시대를 열었다.
빌보드 차트에서도 퀸은 1980년 디스코와 펑크를 접목한 'Another One Bites the Dust'와 'Crazy Little Thing Called Love'로 연달아 핫100의 정상을 차지했으며, 이곡들이 수록된 'The Game'은 앨범 차트 1위를 기록했다. 싱글곡 'Bohemian Rhapsody', 'We Are the Champions' 'We Will Rock You'로도 차트 상위권을 휩쓸었다.
그러나, 퀸의 그래미 성적은 '후보 지명 4회, 수상 0회'다. 1977년 록 역사상 가장 혁신적이고, 정교한 보컬로 찬사를 받았던 'Bohemian Rhapsody'로 팝 퍼포먼스(듀오/그룹)와 보컬 편곡상 후보에 지명됐다. 그런데, 팝 퍼포먼스상은 시카고(If You Leave Me Now)가 가져갔고, '미국판 아바(ABBA)'로 불리운 혼성 4인조 팝그룹 스탈랜드 보컬 밴드(Starland Vocal Band)가 보컬 편곡상에 신인상까지 가져갔다. 그러나, 스탈랜드 보컬 밴드는 'Afternoon Delight' 단 한곡만 히트한 반짝 스타, 'One Hit Wonder'로 남았다.
1981년엔 'Another One Bites the Dust'로 록 퍼포먼스(듀오/그룹)과 올해의 프로듀서 후보에 올랐다가 고배를 마셨다. 밥 시거(Against the Wind)에 밀려 록 퍼포먼스 수상에 실패했다. 그래미는 여전히 단정하고 정제된 미국식 팝과 소프트 록을 선호했다. 레드 제플린처럼 거칠고 폭발적인 하드 록이나, 퀸처럼 장르를 파괴하고 화려한 비주얼을 내세우는 극장식(Theatrical) 록 음악은 그래미의 보수적인 심사위원 성향과 상극이었던 것이다. 비틀즈가 뚫어놓은 문으로 수많은 영국 아티스트들이 들어왔지만, 그래미는 여전히 빗장을 걸어 잠그고 있었던 것이다.
이듬해 미국 투어 당시 콧수염을 길렀던 프레디 머큐리에게 미국 관객들은 무대로 면도기를 던지거나 "게이 새끼"라며 야유를 보냈다. 이에 머큐리는 1982년 9월 LA 공연을 끝으로, 생전에 다시는 미국 땅에서 콘서트를 열지 않았다. 1984년 발매된 싱글 'I Want to Break Free'의 뮤직 비디오에서 퀸의 멤버들은 여장(Drag)으로 등장했다. 유럽에선 영국의 국민드라마 'Coronation Street'의 패러디로 이해하고 열광했지만, 미국에선 달랐다. MTV는 이 비디오를 여장과 동성애 조장이라며 금지시켰다.
이에 퀸은 미국 투어를 과감히 포기하고, 유럽, 남미, 아시아, 아프리카, 호주 등 글로벌 시장에 전념했다. 그러면서 스타디움 투어의 전설을 완성하게 된다.

이처럼 1960년대와 1970년대가 록음악의 황금기였다면, 그래미는 그 황금기를 제때 알아보지 못했다. 레코딩아카데미는 청년세대의 반문화 운동, 베트남 전쟁 반대 시위, 인권운동이 담긴 음악 등을 소음이자 사회적 위협으로 취급했다. 이 시기는 록음악의 황금시대였지만, 그래미 본상에선 안전하고 단정하며 기존 음악산업의 문법으로 설명하기 쉬운 전통 팝, 재즈, 이지 리스닝 등이 그래미 본상을 주도했다.
그러면, 영국의 침공이 미국 대중음악을 전멸시켰을까? 영국 록밴드들이 빌보드 차트를 강타하며, 주도권을 빼앗았다. 그러나, 미국의 자생적인 장르들은 오히려 영국의 침공을 새로운 도약의 발판으로 삼았다.
캘리포니아 서프 문화에서 출발한 비치 보이스(The Beach Boys)는 1966년 앨범'Pet Sounds'와 싱글 ‘Good Vibrations’로 영국 록에 맞설 미국만의 새로운 팝 사운드를 제시했다. 사이먼 앤 가펑컬도 ‘The Sound of Silence’(1966), ‘Mrs. Robinson’(1968), ‘Bridge Over Troubled Water’(1970)로 연이어 히트했으며, 그래미에서도 ‘Mrs. Robinson’으로 올해의 레코드, 'Bridge Over Troubled Water'로 올해의 앨범과 레코드상을 석권했다.
또한, 모타운(Motown) 중심으로 다이애나 로스와 수프림스는 1964년부터 5년간 'Baby Love' 'Stop! In the Name of Love' 등 6곡을 1위에 랭크시켰다. 그리고, 템프테이션스(The Temptations)는 'My Girl' 'Papa Was a Rollin' Stone' 등 4곡, 포탑스(Four Tops)는 'Can't Help Myself (Sugar Pie, Honey Bunch)' 'Reach Out I'll Be There' 등 2곡을 빌보드 1위에 올리며 흑인 소울음악이 인기를 누렸다.
1960년대 중반 베트남 전쟁이 본격화되고 징집이 현실이 되면서, 미국 청년들에게 전쟁과 인권, 사회적 불평등은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었다. 영국 청년들의 노래에만 열광할 수 없었던 이들은 포크록과 언더그라운드 록 등 미국의 저항음악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결국 제1차 영국의 침공은 퇴출로 끝나지 않았다. 미국 밴드들은 음악적 경쟁력을 회복했고, 양국의 음악은 사이키델릭과 히피 문화라는 거대한 트렌드 속에서 융합되면서 ‘영국 대 미국’이라는 이분법적 구도 자체가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이후 이 흐름은 1970년대 하드 록과 프로그레시브 록의 시대로 이어졌다.
그래미가 록을 독립 장르로 인정한 것은 비틀즈와 롤링스톤스가 미국에 상륙한 지 16년이 지난 1980년이었다. 그때까지 로큰롤에서 하드록, 헤비메탈로 진화한 음악을 별도의 록 분야로 체계적으로 시상하지 않았던 것이다. 1980년 남녀 록보컬 퍼포먼스와 연주곡 퍼포먼스 부문을 만든 후 1989년 하드록과 헤비메탈을 묶어 보컬 퍼포먼스(Best Hard Rock/Metal Performance Vocal or Instrumental)를 한해 신설했다가 헤비메탈 그룹 메탈리카 대신 포크 록밴드 제스트로 툴(Jethro Tull)에게 시상하는 해프닝으로 비판받은 후 바로 폐지했다. 그래미의 우왕좌왕은 이어졌고, 메탈 퍼포먼스(1990- ), 1992년 록 송(1992-), 록 앨범(1995- ), 최우수 록 퍼포먼스(2012-)로 재정비해 4개 부문에 시상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는 다시 반복된다.
제1차 영국의 침공이 록 밴드들의 폭발적인 사운드로 미국 대중음악의 지형을 바꾼 역사였다면, 이어진 제 2·3차 영국의 침공은 장르의 경계를 넘어 팝의 지형을 다시 바꾼 역사였다. 그래미가 하드록의 소음에 눈을 감는 동안, 영국의 뮤지션들은 더 유려한 멜로디와 스타성으로 미 대중을 사로잡았다. 특유의 허스키 보이스로 록과 팝을 넘나든 로드 스튜어트, 팝 피아노의 거장 엘튼 존, 록과 소울을 흡수한 80년대 영국 팝의 수퍼스타 조지 마이클, 90년대 걸파워 신드롬의 스파이스 걸즈, 그리고 21세기 글로벌 보이밴드의 효시 원 디렉션에 이르기까지. 그래미는 또 이들을 외면하게 된다.
<계속>
<용어 해설>
#로큰롤(Rock 'n' Roll): 1950년대 미국에서 탄생한 장르로 흑인의 블루스/R&B와 백인의 컨트리 음악이 융합되면서 시작. 경쾌하고 신나는 리듬이 중심, 피아노나 콘트라베이스가 종종 쓰였다. 청춘, 반항, 춤, 사랑, 파티 등 직관적이고 즐거운 에너지를 담았다. 엘비스 프레슬리, 척 베리, 리틀 리처드가 이에 속한다.
#하드 록(Hard Rock):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 일렉트릭 기타 기술과 대형 앰프가 발전하면서 탄생. 로큰롤보다 소리가 훨씬 커지고 거칠어졌다. 블루스에 기반을 둔 '기타 리프(반복되는 멜로디 라인)'와 귀를 찌르는 듯한 고음의 보컬 샤우팅이 특징. 로큰롤의 반항심을 이어받았으나, 더 반사회적이거나 철학적인 메시지, 혹은 성적인 코드를 담았다. 레드 제플린, AC/DC, 딥 퍼플, 건즈 앤 로지즈 등.
#헤비메탈(Heavy Metal): 1970년대 초반 하드 록에서 한 단계 더 극단적으로 진화한 장르. 블루스 색채를 빼고, 마치 거대한 강철(Metal)이 부딪히는 듯한 압도적이고 규칙적인 중량감에 금속성의 사운드. 신화, 판타지, 오컬트, 디스토피아, 죽음, 정신적 고통 등 무겁고 어두운 주제를 다룬다. 블랙 사바스, 메탈리카, 아이언 메이든, 주다스 프리스트 등이 이에 속한다.
#포크 록(Folk Rock): 1960년대 중반 미국에서 탄생한 장르로 어쿠스틱 포크 음악에 일렉트릭 기타와 드럼 같은 록 밴드의 악기 구성을 결합했다. 부드러운 멜로디, 서정적인 선율, 아름다운 하모니에 사회적 메시지를 강조한 음악으로 시대정신과 맞물려 반전, 평화, 인권, 자유 등을 노래하는 저항음악이 성격이 강했다. 밥 딜런, 더 버즈(The Byrds), 사이먼앤가펑컬, 닐 영 등.
#사이키델릭 음악(Psychedelic Rock/Soul): 일렉트릭 기타의 음을 길게 늘이거나, 인도의 시타르(Sitar) 등 이국적인 악기를 도입해 몽환적인 사운드에 종교적인 분위기를 내는 음악. 녹음된 테이프를 거꾸로 재생(백마스킹)하는 등 환각 상태를 유발하기도 한다. 비틀즈, 지미 헨드릭스, 핑크 플로이드, 도어즈가 대표적이다.
#서프 록(Surf Rock): 1960년대 초반 미국 캘리포니아 남부의 서핑 문화에서 탄생한 장르. 대공황과 전쟁을 겪지 않은 미국의 풍요로운 젊은이들이 누리던 '태양, 자동차, 해변, 서핑, 로맨스'를 음악으로 표현했고, 영국의 침공 직전까지 미국 차트를 지배했다. 일렉트릭 기타 소리에 촉촉하고 잔잔한 울림으로 마치 물방울이 튀는 듯한 소리나 파도 속을 통과하는 듯한 느낌을 구현했다. 비치 보이스, 딕 데일 등이 대표 아티스트.
#언더그라운드 록(Underground Rock): 1960년대 중후반 베트남 전쟁 반대 운동과 히피 문화가 확산되면서 탄생했다. 라디오에서 틀어주는 3분짜리 대중적인 팝송을 거부하고, 예술적 실험, 정치적 메시지, 어두운 인간의 내면을 날 것 그대로 다루었던 음악이다. 주류 음악이 외면하던 마약 중독, 성적 소외, 도시의 우울함을 차갑고 거친 소음(Noise)으로 표현했다. 앤디 워홀이 프로듀싱했던 벨벳 언더그라운드(The Velvet Underground), 더 후(The Who)와 도어즈(The Doors)가 이에 속한다.
#프로그레시브 록(Progressive Rock): 1960년대 후반 영국에서 등장. 클래식이나 재즈 등 다른 장르를 흡수해 록 음악을 예술로 끌어올리려 시도한 장르다. 한곡이 10분을 넘거나 앨범 전체가 하나의 테마로 이어지는 '콘셉트 앨범(Concept Album)'이 대표적이다. 박자가 수시로 바뀌며, 화려한 키보드와 신시사이저 연주,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이 특징이다.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 킹 크림슨(King Crimson), 예스(Yes), 제네시스(Genesis) 등이 대표 밴드다.
#글램 록(Glam Rock): 1970년대 초반 영국에서 시작된 록으로 패션과 성 정체성의 모호함, SF적 세계관을 보여준다. 초기 로큰롤과 팝 멜로디를 기반으로 중독성이 강하다. 남성 뮤지션들이 화려한 메이크업과 반짝이는 의상, 통굽구두, 화려한 가발 차림으로 중성적인 매력을 발산했다. 데이빗 보위, 록시 뮤직이 대표적이다.
#펑크 록(Punk Rock): 반항, 파괴, 그리고 DIY 정신으로 무장한 펑크 록은 1970년대 중반 뉴욕과 런던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장르다. 최소한의 악기 구성과 가공되지 않은 날것의 사운드로 사회적 분노와 반항을 표출하는 저항 음악으로 현란한 기타 솔로나 복잡한 편곡을 철저히 배제한다. 징이 박힌 가죽 재킷, 찢어진 청바지, 안전핀 장신구, 모히칸 헤어스타일 등 반문화적(Counter-culture) 패션을 선보였다. 라몬즈(Ramones), 섹스 피스톨즈, 더 크래시(The Clash) 등이 이에 속한다.
#이지 리스닝(Easy Listening):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전 세계적으로 상업적 성공을 거둔 장르로, 말 그대로 '듣기 편안하고 부담 없는 음악'을 뜻한다. 자극적인 사운드나 복잡한 구성 대신, 부드럽고 아름다운 멜로디를 강조하여 일상 배경음악(BGM)으로 널리 소비되었다. 가사가 없는 연주곡(Instrumental)이거나 목소리가 있더라도 속삭이듯 부르는 부드러운 스타일(크루닝, Crooning)을 취한다. 관현악단으로 팝 멜로디를 연주하는 오케스트랄 팝(Orchestral Pop)이 황금기를 이끌었다. 'Love Is Blue'의 폴 모리아(Paul Mauriat) 악단, 퍼시 페이스(Percy Faith), 제임스 라스트(James Last) 등이 대표적이다.
*BTS '아리랑 월드 투어' 5월 세계 그룹 사상 최고 매출 기록
*2026 아메리칸뮤직어워드(AMA)와 'K팝의 침공(KPop Invasion)'
*그래미상 2027부터 '베스트 아시안 팝 뮤직 퍼포먼스' 부문 신설
*한국 EGOT (BIG 4) 국가 공인...골든(케데헌) K팝 사상 최초 그래미상 수상
*롤링스톤: K-Pop의 경이로운 한해를 정의한 10가지 순간들, 2025
*아리랑(Arirang)의 여정: 하워드대 7인에서 나운규를 거쳐 BTS까지 <Korean version>
*Arirang's Journey: From 'The Howard Seven' to Na Woon-gyu and BTS <English version>
*'올해의 아티스트' 후보 BTS, 2026 아메리칸뮤직어워드(AMA, 5/25) 출연

한류를 이해하는 33가지 코드: BTS, 기생충, 그리고 오징어 게임을 넘어서
#26 비틀즈 Vs. 방탄소년단 The Beatles vs. BTS
1960년대 비틀즈(The Beatles)와 오늘의 보이밴드 BTS를 비교한다. 빌보드 No. 1, HOT 100, 베스트셀링 앨범, 비틀 매니아와 BTS 팬클럽 ARMY까지. 그리고, 2022년 6월 휴지기 선언 후 홀로서기 프로젝트에 박차를 가하며 정국, 제이홉, RM, 슈가, 뷔, 지민, 진은 새로운 챕터를 열었다.
https://www.nyculturebeat.com/?mid=Focus&document_srl=4087049
33 Keys to Understanding the Korean Wave: Beyond BTS, Parasite and Squid Game
#26 비틀즈 Vs. 방탄소년단 The Beatles vs. BTS
A comparison between the 1960s Beatles and today's boy band BTS. Billboard No. 1, HOT 100, best-selling album, lyrics, and Beatlemania & BTS ARMY.
https://www.nyculturebeat.com/?mid=Zoom&document_srl=4100896
#26. The Beatles vs. BTS 365
The Beatles vs. BTS by the Numbers 365
From Liverpool to Seoul: Two Boy Band Phenomena 365
Supergroup Comparison: The Beatles and BTS 366
1. Billboard Charts 368
2. YouTube Views 371
3. Bestselling Album 372
4. Music Awards 374
Billboard, AMAs, and MTV VMAs 376
5. Guinness World Records 377
6. Lyrics 378
7. Beatlemania and the BTS ARMY 380
BTS in the COVID-19 Era 382
BTS: Chart-Topping Success 383
BTS: Military Service and Future Plans 385
A Timeless Legacy: The Beatles & BTS 385
'33 Keys to Understanding the Korean Wave: Beyond BTS, Parasite and Squid Game'
한류를 이해하는 33가지 코드: BTS, 기생충 그리고 오징어 게임을 넘어서
https://www.youtube.com/watch?v=29auuZ2a_I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