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나르도 다 빈치일까 추종자들의 그림일까?
다 빈치 밀라노 공방 수제자들, '레오나르데스키' 화풍
'체리를 든 소녀'부터 '페로니에르를 단 미녀'까지 작자 미상 잔혹사

Attributed to Marco d'Oggiono, Girl with Cherries, ca. 1491–95, Oil on wood,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610. Photo: Sukie Park/ NYCultureBeat
메트뮤지엄 '체리를 든 소녀' 미스테리'
오래 전부터 메트뮤지엄 유럽 회화관에 가면 늘 멈추게 되는 그림이 있다. 갤러리 #610에 걸려있는 '체리를 든 소녀(Girl with Cherries, 1491-95)' 속 소녀는 어쩐지 모나리자를 닮았다. 어딘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분위기를 풍긴다. 그러나, 작자 명명(Attribution)은 다빈치가 아니라 레오나르도 추종자(Leonardeschi)로 몇번 바뀐 케이스다.
이 회화는 영국의 아트 컬렉터 마이클 먹클로우 재커리가 소장했다가 1939년 런던 크리스티 경매에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린 '포모나로 분한 젊은 여인의 초상(Portrait of a young lady as Pomona)'으로 나와 93.9 파운드에 팔렸다. 현재 화폐 가치로 약 1만3천500파운드(약 1만8천300 달러)다. 이 그림의 구입자는 제1대 세인트 레오나드 남작이자 대법관 에드워드 서그든이었으며, 그의 사망 후인 1886년 손자가 E. & H. 럼리 경매에서 팔았다.
구입자는 런던 빅토리아앤알버트뮤지엄의 초대 큐레이터였던 존 찰스 로빈슨 경으로 추정된다. 이후 그림은 대서양을 건너 뉴욕의 아트 컬렉터 헨리 G. 마퀀드의 손에 들어갔고, 그는 1890년 유럽 거장 등 자신의 소장품과 함께 이 그림을 메트뮤지엄에 기증했다.

Caravaggio's "Boy with a Basket of Fruit" in Focus, The Morgan Library and Museum, 2026. Photo: Sukie Park/ NYCultureBeat
1890년 당시 '체리를 든 소녀'는 레오나르도의 작품으로 등록되었다가 근래 수십년간 과학적 분석으로 스케치 밑그림의 특징이나 미세한 붓 다루는 습관의 차이가 드러나 다 빈치의 제자 조반니 암브로조 데 프레디스(Giovanni Ambrogio de Predis)에서, 다시 다른 제자 마르코 도조노(Marco d'Oggiono)로 변경되었다. 체리 소녀에게 도대체 누가 그렸냐고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다.
신비스러운 미소를 띤 화려한 차림의 소녀는 담쟁이덩굴로 만든 관을 쓰고 체리가 담긴 그릇을 들고 있다. 처음 기록된 경매에서 이 그림의 제목은 '포모나로 분한 젊은 여인의 초상'으로 나왔다. 포모나(Pomona)는 고대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과일나무와 과수원, 그리고 정원의 여신이다. 19세기 영국 경매 당시 사람들은 이 소녀가 과일의 여신인 포모나를 비유해 그린 초상화로 해석했다.
포모나는 신화에서 숲이나 야생 자연이 아닌, 인간이 정성껏 가꾸는 '유실수(과일나무)와 과수원'을 보살피는 데 집중하는 신이다. 한 손에는 과일이 가득 담긴 바구니나 그릇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가지를 치거나 접붙이기를 할 때 쓰는 전정용 칼(Pruning knife)을 든 모습으로 묘사된다.
클리블랜드뮤지엄의 '성 세바스찬 청년의 초상'은 누가 그렸나?

Marco d’Oggiono, Portrait of a Youth as Saint Sebastian, late 1480s. The Cleveland of Museum of Art
한편, 클리블랜드뮤지엄이 소장한 '성 세바스티아누스로 분한 청년의 초상(Portrait of a Youth as Saint Sebastian)' 역시 레오나르도 추종자들로 이름이 네번이나 바뀐 경우다.
1939년까지는 조반니 암브로지오 데 프레디스(Giovanni Ambrogio de Predis)의 작품으로 표기되다가 1976년 크리스티 런던 경매에 나왔을 땐 인물의 우아한 얼굴 선과 입체감 표현으로 조반니 안토니오 볼트라피오(Giovanni Antonio Boltraffio)로 작자 명명이 바뀌었다. 그리고, 1978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화랑인 런던의 P. & D. Colnaghi & Co.에선 다시 암브리지오 데 프레디스로 표기했다가 1986년 클리블랜드뮤지엄이 뉴욕의 아트딜러 유진 V쏘(Eugene V. Thaw)로부터 구입한 후 마르코 도조노(Marco d'Oggiono)의 작품으로 표기해왔다.
레오나르도의 문하생들도 각자의 스타일이 있었다.
조반니 암브로조 데 프레디스는 보석의 반사광, 복잡한 자수 패턴, 벨벳 의복의 질감 등을 디테일한 묘사에 뛰어난 재능을 가졌으나, 인물의 내면을 표현하는데는 서툴렀고, 밀라노의 전통 초상화 방식인 측면 프로필을 고집해 인물이 딱딱하고, 평면적으로 보이는 경향이 있다.

Giovanni Antonio Boltraffio, Portrait of a boy as saint Sebastian, Pushkin Museum, Moscow
귀족 가문 출신인 조반니 안토니오 볼트라피오는 에나멜같은 표면 마감으로 아름다움을 극대화했으며, 선명한 색채로 화면에 서늘한 분위기를 부여했으며, 정교한 디테일 묘사가 탁월했다. 그러나, 감정이 결여되고, 인물들의 표정이 정형화되고, 화면이 평면적이고, 답답하다는 평을 받는다.
한편, 마르코 도조노는 다 빈치 특유의 부드러운 스푸마토와 극적인 명암을 다루는 감각이 데 프레디스보다 뛰어났다. 피부의 말랑말랑한 질감과 입체감, 심리적 묘사가 높은 평가를 받았다. 모방 능력은 최고였지만, 창의성이 부족해 스승의 '최후의 만찬' 등을 그대로 카피하는 복제화 작업에 재능을 많이 소모했다.
레오나르도의 제자들은 ‘산 세바스티아노(성 세바스찬)로 분장한 청년(Portrait of a Youth as Saint Sebastian)’이라는 주제를 공유하며 여러 버전의 명작들을 남겼다. 당시 세바스찬은 화살을 맞고도 살아남은 기적으로 인해 페스트(흑사병)로부터 인간을 지켜주는 수호성인으로 추앙받았다. 귀족들은 가문의 번영과 건강을 기원하는 개인 기도용으로 이런 초상화를 주문했다고 한다.
전통적인 성 세바스찬 성화는 화살을 맞고 기둥에 묶인 반나체의 순교자로 묘사되었다. 그 시대 화가들이 합법적으로 젊고 아름다운 남성을 아름답게 묘사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핑계가 성 세바스찬이었다. 당시 밀라노 궁정의 시인들이나 귀족들 사이에서는 '사랑의 화살에 맞아 고통받는 신세'를 성 세바스찬의 순교에 비유하는 문학적 유희가 유행했었다. 손에 쥔 화살은 종교적 순교뿐 아니라 '사랑의 열병'을 앓고 있는 청년이라는 로맨틱한 은유이기도 했다.
클리블랜드뮤지엄 소장 마르코 도조노의 그림 속에서 청년은 15세기 말 밀라노 법정 및 귀족층이 입던 화려하고 부유한 의상을 입고 있다. 청년은 손에 화살 한 대를 쥐고 있다. 종교화의 모습을 한 동시대 인물의 초상화다. 푸시킨뮤지엄 소장 조반니 안토니오 볼트라피오의 회화에서 청년은 15세기에 유행하던 보석 왕관과 진주, 루비로 장식된 금발의 곱슬머리 모습이다. 어깨에는 백합 자수가 놓인 망토와 회색 모피 부속을 걸치고 있다. 머리 위에 얇고 섬세한 황금빛 후광(Halo)이 그려져 있어 조금 더 종교적 색채가 짙다. 이 역시 당대 인물의 이상화된 초상화다.
루브르의 '페로니에르를 단 미녀'는 진짜 레오나르도일까?

Leonardo da Vinci, La Belle Ferronnière, 1490–1496, Oil on wood, Louvre Museum, Paris
루브르뮤지엄이 소장한 '페로니에르(*이마에 두른 얇은 보석 끈)를 단 미녀(La Belle Ferronnière)'도 레오나르도의 진품이라는 설과 밀라노의 작업실 제자들 작품이라는 설이 분분하다. 루브르 측은 엑스레이, 피그먼트와 캔바스 밑그림 분석을 거쳐 레오나르도의 진품으로 분류하고 있지만, 미술사 사전이나 일부 도록에선 '레오나르도 다 빈치 또는 그의 밀라노 공방(Leonardo da Vinci or his Milanese circle/workshop)'으로 병기되는 경우가 많다.
2007년 기술 분석 이후 루브르는 이 회화를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친작으로 강력히 고수해왔다. 여인의 가슴과 얼굴, 눈동자의 방향을 각각 미세하게 비틀어 화면 전체에 부드러운 '운동감'을 주는 기법은 다 빈치가 완숙기에 접어들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기법은 훗날 '모나리자'의 모태가 되었다는 주장이다.
또한, 여인의 붉은 드레스 빛이 뺨에 은은하게 반사되어 붉은 핏기가 도는 것처럼 표현된 부분은 다 빈치 수준의 과학적 관찰력을 가진 화가만이 해낼 수 있는 영역이라는 것이다. 또한, 2000년대 이후 진행된 X선 및 안료 분석에서 다 빈치가 사용한 호두나무 패널 성분, 독특한 밑그림 층, 그리고 그가 직접 수정한 흔적들이 대거 발견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베르나르드 베렌슨(Bernard Berensen)을 비롯한 미술사학자들과 비평가들은 '공방(workshop)의 합작 혹은 제자의 작품', 특히 마르코 도조(Marco d'Oggiono)노나 조반니 안토니오 볼트라피오(Giovanni Antonio Boltraffio)가 개입했다고 주장해왔다. 인물 묘사가 레오나르도의 부드러운 명암법인 스푸마토와 달리 딱딱하며, 배경 묘사도 레오나르도의 3차원적 입체감에 비해 여인의 구도가 평면적이며 전통적인 밀라노 초상화 스타일에 가깝기 때문이다. 또한, 다 빈치 특유의 신비롭고 영적인 느낌보다는 다소 세속적이고, 인물이 둔중하다는 비판이 있다. 인물의 내면을 꿰뚫는 다 빈치의 천재성이 다소 희석되어 있다는 지적이다.
레오나르데스키(Leonardeschi): 다 빈치 추종자들

Monument to Leonardo da Vinci, Milan. Photo: Mister No/Wikipedia/ Leonardo da Vinci Photo: G.dallort/ Wikipedia
다빈치 시대 밀라노 공방(Studio)은 거장의 철저한 감독 아래 제자들이 스승의 도안을 완벽하게 복사하는 훈련을 거쳤다. 붓 터치, 음영기법(스푸마토), 안료 배합 등이 육안으로 구별하기 힘들 정도로 닮아 있다. 때문에 X선 촬영, 적외선 반사광 분석, 안료성분 검사 등 현대의 과학기술이 도입되기 전엔 감정을 미술사학자들의 직관과 안목에 의존했다.
레오나르도의 가르침을 직접 받았거나, 그의 화풍과 기법에 영향을 받은 밀라노와 롬바르디아 지역 화가들을 레오나르데스키(Leonardeschi)라 부른다. 직계 제자이자 공방 조수였던 조반니 안토니오 볼트라피오를 비롯, '체리를 든 소녀'의 마르코 도조노, '암굴의 성모' 밀라노 버전에 참가한 조반니 암브로조 데 프레디스, 다 빈치가 숨을 거둘 때까지 그의 곁을 지킨 후 노트, 드로잉, 소묘 유작을 상속받은 프란체스코 멜치(Francesco Melzi), 어린 시절 다 빈치 공방에 들어가 조수, 모델, 동반자가 되었고, '살바토르 문디' 복사본을 남긴 살라이(Salaì/ 본명 지안 지아코모 카로티/ Gian Giacomo Caprotti) 등이 있다.
또한, 다 빈치 공방 출신은 아니었지만, 깊은 영향을 받은 독립파는 밀라노 거장 베르나르디노 루이니(Bernardino Luini), '최후의 만찬'을 복사한 잠피에트리노(Giampietrino/ 본명 지오반 피에트로 리쫄리/ Giovan Pietro Rizzoli), 다 빈치와 플랑드르 회화를 결합했던 안드레아 솔라리(Andrea Solari), 다 빈치 화풍을 로마, 나폴리, 시칠리아 등까지 전파한 체자레 다 세스토(Cesare da Sesto) 등이다.

Giovanni Angelo Boltraffio(from left), Marco d'Oggiono, Cesare da Sesto, Andrea Salaino. Monument to Leonardo da Vinci, Milan. Photo: G.dallort/ Wikipedia
*고요한 갤러리, 거룩한 걸작: 메트뮤지엄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실감개 성모' 전시 중
*바로크 미술의 신호탄 '과일 바구니를 든 소년' Caravaggio's "Boy with a Basket of Fruit" in Focus
*메트뮤지엄 1300-1800 유럽 미술관 45개 갤러리 재개관 (1) 티에폴로(#600)에서 엘 그레코(#619)까지
*메트뮤지엄 1300-1800 유럽 회화관 재개관 하이라이트 (2) 바로크, 로코코에서 신고전주의까지(#620-#634)
*메트뮤지엄 1300-1800 유럽 미술관 재개관 (3) 두치오(#635)에서 고야, 카날레토(#644)까지
*메트뮤지엄 유럽회화관: 톱10 갤러리 & 톱10 회화 (2013)
*살바토르 문디(Salvator Mundi) 위작 논쟁
*토리노 왕립도서관 소장 레오나르도 다 빈치 드로잉전@모간라이브러리
*레오나르도에서 재스퍼 존스까지 메탈포인트 드로잉전@내셔널갤러리(워싱턴 D.C.), 20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