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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도시 피렌체의 상징 '다비드(David)' 

 바르젤로 뮤지엄 Museo Nazionale del Bargel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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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켈란젤로(1501-04)                          베로키오(1473-75)                          도나텔로(1440)


성경에서 거구 골리앗을 물리친 양치기 소년 다비드(다윗)는 지혜와 예지력의 상징이다. 힘과 맞서는 지성의 승리는 바로 르네상스의 시대 정신을 반영하는 것이고, 피렌체의 미술가들이 즐기던 소재였다. 

피렌체의 조각 전문 미술관 바르젤로 뮤지엄(Museo Nazionale del Bargello)은 미켈란젤로의 걸작 ‘다비드’(1504, 피렌체 아카데미아 갤러리 소장)에 앞서 제작된 두 점의 청동 다비드를 소장하고 있다. 


th_2_5_110428210459.jpg 감옥에서 뮤지엄으로


요새를 연상시키는 바르젤로는 피렌체의 시청사에서 검찰청사를 거쳐 한때 감옥으로 이용되며 안뜰에서는 교수형이 처하곤 했다. 1865년 14∼17세기 이탈리아 고딕과 르네상스 조각을 모아 뮤지엄으로 전환된다.


바르젤로 뮤지엄의 두 다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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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나텔로의 다비드(1440년 경): 1430년 피렌체의 조각가 도나텔로(1386-1466)는 피렌체의 부호 코시모 드 메디치의 명으로 다비드상을 제작하라는 위임을 받았다.

그로부터 10여년만에 메디치 궁전에 모습을 드러낸 청동의 다비드상은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킨다. 건축물의 부속품이 아니라 단독 누드 조각상이 나온 것은 고대 이후 최초의 사건이었다. 

월계수 잎으로 장식한 모자에 긴 부츠 차림, 골리앗의 잘린 목 위에 발을 올린 채 수수께끼의 미소를 짓고 있는 청년 다비드는 성기가 정교하게 묘사된 나체였다. 도나텔로가 20대에 제작했던 대리석의 다비드상은 골리앗의 시체 위에 의관 입고 위풍당당하게 서있는 왕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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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여년 후에 제작한 청동의 다비드상은 도나텔로가 동성애자인 것을 드러낸 작품으로 평가된다. 실제로 도나텔로는 평생 결혼하지 않고 스튜디오에서 조수들과 함께 산 것으로 전해진다.

도나텔로의 다비드는 피에로 드 메디치가 축출되자 메디치 궁전을 떠나 우피치미술관 인근의 시뇨리아 광장으로 옮겨졌다가 바르젤로 안으로 들어왔다. 

런던의 빅토리아 앤 알버트뮤지엄에 칼이 잘려나간 복사품이, 커네티컷주 노위치의 슬레이터 뮤지엄에도 복사품이 있다. 


296px-Museo_pushkin,_calchi,_verrocchio,_david_01.JPG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모델로 한 베로키오의 다비드.
▶베로키오의 다비드(1473-75): 피렌체 태생의 베로키오(1435-88)는 도나텔로의 제자였다고 한다. 베로키오는 또한 레오나르도 다 빈치·페로기노·지란다이오, 그리고 보티첼리의 스승이었고, 미켈란젤로에게 영향을 준 미술가였다. 

베로키오는 천재성이 풍부했을 뿐만 아니라 미소년이었던 레오나르도를 애지중지한 것으로 전해진다. 우피치 미술관에는 사제가 나란히 그린 유화 ‘그리스도의 세례’(1475)가 있다. 베로키오는 이 그림을 완성한 후 제자를 뛰어넘을 수 없다고 생각해 붓을 꺾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다비드상은 베로키오가 레오나르도와 ‘그리스도의 세례’를 함께 그리던 시기에 제작한 청동 조각으로, 그 모델은 다름 아닌 ‘아름다운 청년’ 레오나르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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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로키오의 다비드는 골리앗의 절단된 머리 위에 칼을 들고 서 있는 젊은 왕의 모습을 하고 있다. 금박이 장식된 시스루 원피스를 입은 다비드는 차라리 패션모델 같다.

다비드는 1476년 베키오 궁전에 세워졌다가 바르젤로로 들어간다. 미술사가들은 따로 떨어져있는 골리앗의 머리를 어디에 두어야 하는가를 두고 논쟁을 거듭해왔다. 바르젤로 뮤지엄에서는 다리 사이에, 워싱턴DC의 국립미술관과 애틀랜타의 하이뮤지엄 전시 중에는 머리가 오른쪽 칼 아래 배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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