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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아 조 신작 '오버진(Aubergine, 가지)'


9월 12일-10월 2일

@플레이라이트 호라이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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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사 아들 레이를 못마땅해하는 아버지가 간암으로 위독하다. 삼촌이 방문해 자라탕을 끓이라고 한다. Photo: Joan Marcus

 


인간의 감각기관 중에서도 입은 삶의 두가지 중요한 기능을 한다. 먹고, 말하는 것. 우리는 먹어야 산다. 또, 살면서 의사 표현을 하고, 세상과 소통이 가능해야 행복하다. 호모 사피엔스에겐 '언어'가 있다. 


기나긴 공백을 깨고 돌아온 한인 2세 희곡작가 줄리아 조(Julia Cho)의 '오버진(Aubergine, eggplant, 가지)'은 한인 이민자 가족의 음식과 소통, 갈망과 화해, 그리고 죽음에 대해 변주곡이다. 9월 12일 오프브로드웨이 플레이라이트 호라이존(Playwright Horizon)에서 공식 개막되는 '오버진'은 아버지의 죽음을 앞둔 요리사 레이(팀 강 Tim Kang 분)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프롤로그는 전형적인 미국 여성 다이앤(제시카 러브 Jessica Love 분)이 무대로 나와 음식여행가인 남편과의 에피소드를 이야기한다. 미슐랭 스타, 스타 셰프, 테이스팅 메뉴 등 현대인들의 집착이 되어버린 음식. 다이앤은 자신에게 가장 기억에 남았던 음식은 어릴 적 아버지가 수술 전 날 한밤중에 만들어준 핫 파스트라미 샌드위치였다고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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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천달러가 넘는 칼을 산 아들에게 호통치는 아버지. Photo: Joan Marcus



요새처럼(마치 배터리파크의 '클린턴 캐슬'처럼) 둥근 이동식 무대가 열리면 병원이다. 한인 2세 외아들 레이는 어려서 사고로 어머니를 잃었다. 레이는 평생 아버지와 잘 안맞아왔다. 어느날 레이는 간암으로 중환자실에서 죽음을 앞둔 아버지(스티븐 박 Steven Park 분)를 집으로 모셔온다. 레이는 홀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 이 세상에 고아가 된다는 현실에 직면해 있다. 그러면서도 늘 자신의 일에 무관심했던 아버지에 대해 야속해한다. 봉건적 사고의 아버지는 레이의 직업에도 불만이며, 아들이

신용카드로 1천달러를 호가하는 식칼을샀을 때 격분해 카드를 칼로 잘라버린다. 


레이가 18코스 테이스팅 메뉴를 자랑스럽게 선보였을 때도 아버지는 'Interesting'만 반복하다가 한밤중 라면을 끓여먹는다. 이때 레이는 너무 실망해서 자살을 하고 싶을 정도였다고 고백한다. 무의식을 헤매는 아버지가 레이에게 했던 말은 "물 줘" "밥 먹었어?"다. (이 한국어 대사는 자막이 없어서 타민족 관객에겐 알 수없는 언어일 것이다.) 먹어야한다는 본능과 아들의 안부를 묻는 아버지로서의 절실한 대사인 셈이다. 아버지는 다시 무의식 상태로 돌아간다.


아버지를 돌보는 피난민 출신 방문 간호원 루시안(마이클 팟츠 Michael Potts 분)은 어느 날 텃밭에서 기른 가지(eggplant)를 레이에게 준다. 그는 '계란 화초(eggplant)'라는 영어보다 프랑스어로 가지를 뜻하는 오버진(aubergine)이 훨씬 맛있게 들리며(혹시나, 발음이 오! 버진 Oh, Virgin!과 유사해서 그런 것은 아닌지?), 자신의 나라에서 먹는 작은 종자의 가지가 미국산 대형 가지보다 더 맛있다고 말해준다. 그러면서, 음식은 물리적일뿐만 아니라 정신적이고, 정서적인 자양분의 보편적인 언어라고 말한다. 루시안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음식은 오크라 수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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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는 삼촌이 가져온 자라로 탕을 만들어야 한다. 루시안은 음식이란 가지(오버진)를 예찬한다. Photo: Joan Marcus



레이의 한국계 애인 코넬리아(수진 김 Sue Jean Kim 분)는 냉장고만 4개인 집에서 자랐다. 엄마가 강박적으로 요리해 먹이는 것을 거부해온 코넬리아는 레이가 어느날 식탁에 멀베리를 준비하자 감동한다. 그녀에게 멀베리는 애틋한 기억이다. 


한국어를 못하는 2세 레이는 한국에서 태어나 이민온 1.5세 코넬리아를 통해 전화로 한국의 삼촌에게 아버지의 위독한 병세를 알린다. 소식을 접한 삼촌이 예고 없이 미국으로 온다. 영어가 서툴은 삼촌과의 대화는 몸짓, 발짓으로 거북하다. 삼촌은 레이에게 거북이를 주면서 아버지를 위해 자라탕을 끓이라고 요구한다. 그러면서 같은 형제간에도 레이 아버지와 자신은 너무 달랐고, 어머니 사랑도 달랐다고 말해준다. 형(레이 아버지)이 미국으로 이민오기 전날 요리를 잘하던 어머니(레이의 친할머니)는 진수성찬 대신 무국을 끓여서 밥상에 올렸고, 무뚝뚝했던 형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는 에피소드를 들려주면서 말로 하지 못하는 본심을 알려준다. 


코넬리아는 어려서 생선 한마리가 식탁에 올라오면, 아빠가 몸통을 자신의 접시 위에 올려주었고, 머리와 꼬리를 먹었다고 회고한다. 엄마는 생선조차 먹지않았다. 아마도 생선을 싫어했을까? 부모가 자신을 위해 식탁에서도 무언의 희생을 해왔다는 것을 문득 느끼게 된다. 레이는 어릴 적 맥도날드가 최고의 식당이었지만, 가난으로 더블맥조차도 사치였다. 그런가하면, 삼촌에게 최고의 음식은 친구들과 산에 올라가 해먹던 음식이다.


소통이 단철된 인간관계에서 음식은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이 된다. '밥 한번 먹자'는 말은 친교하자는 의미이며, '밥통'이야!라는 말은 어리석다는 뜻이 아닌가? 밥은 그저 밥이 아니라 정서적인 소통의 매개체인 것이다. 특히나, 언어와 문화를 이식하면서 자녀와도 소통하기 힘든 이민자 사회, 유교문화에 길들여진 기성세대와 미국식 교육을 받은 2세의 관계에선 음식이 언어를 대치하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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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가 불편한 아버지, 한국어를 모르는 요리사 아들에겐 음식이 소통의 수단일까? Photo: Joan Marcus



하지만, 줄리아 조는 음식과 소통의 화두에 우리 인간 모두의 종착역인 죽음을 상기시킨다. 레이 아버지가 대학시절 기숙사에서 혼자 인스턴트 라면을 먹으면서 거울 앞에서 마주한 것은 죽음이었고, 레이가 아버지의 양복을 입고 거울 앞에 섰을 때도 보이는 것은 자신의 모습, 죽음의 그림자였다. 우리 모두는 먹으며, 소통하며, 즐기며, 고통받으며 살다가 마지막엔 모두 죽음의 관문을 통과하게 되는 것이다. 레이는 마지막에 관객을 향해 말한다. "우리가 항상, 이미 죽은 것이라면, 왜 살아보지 않으렵니까?" 역으로 줄리아 조는 '오버진'을 통해 삶을 찬미하고 있다.


에필로그에선 프롤로그의 다이앤이 다시 등장한다. 그녀는 레이와 코넬리아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메뉴 없는 오마카세(테이스팅 메뉴)를 시킨다. 놀랍게도 코넬리아는 핫 파스트라미 샌드위치를 갖다준다. 다이앤이 그리워했던 추억의 음식이다. 이처럼, 음식은 기억의 흔적을 연결하는 도구이기도 하다. 인생의 사소한 즐거움은 이렇게 예고없이 찾아온다.


줄리아 조는 전작 '상실의 구조' '듀랑고' '피아노 선생'에서 사막과 같은 황량한 소외감을, '언어의 보관소'에서는 상실과 소통의 문제를 섬세하게 그렸다. 아버지의 죽음을 겪은 후 집필한 '오버진'은 식욕과 소통에 대한 인간의 욕망과 더불어 더 깊이 죽음에 대한 성찰로 관객을 깊은 철학의 우물 속으로 깊게 끌고간다.


'오버진'을 이끌어가는 팀 강의 진솔하고, 파워풀한 연기는 오래 기억할만 하다. 이민자 아버지와 언어, 사고방식, 세대 차의 갈등을 모두 감내해야하는 젊은 한인 세대의 표상을 온몸으로, 섬세하게 연기한다. 팀 강에게서 말론 브란도식의 메소드 연기가 떠오르는 것은 팀 강 자신이 한인 이민 2세로서 직접 체험했을 법한 캐릭터이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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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릭 맥레인(Derek McLane)의 이동식 세트는 '오버진'의 주제와 절묘하게 조화된 무대다. 조각가 리처드 세라의 작품처럼 거대한 원형의 열렸다 닫히는 '문'은 인간의 입이자 인간의 소화기관인 위, 그리고 더 나아가 죽음의 관문같은 메타포 구실을 한다. 또한, 언어들 통해 소통하고, 불통하는 상징적인 '문'이기도 하다.

 

줄리아 조의 '피아노 선생'을 연출했던 케이트 호리스키(Kate Whoriskey)는 이민자 가족의 갈등과 오해, 그리고 화해를 시적인 톤으로 연출했다. 한국어 대사가 종종 등장하는 것도 타민족과는 달리 특별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오버진'에서 아쉬움이라면 아버지 역의 스티븐 박이 너무 젊어보인다는 점이다. 체중조절이나, 분장을 통해 쇠약한 간암환자로 변신시켜야할듯.


그러면 왜 제목이 '오버진'일까?

가지, eggplant, aubergine...나라마다 생김새도, 부르는 이름도, 조리법도 다른 채소로 마치 언어처럼 다른 뉘앙스를 담고 있다. 채소가 이러한데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는 사람의 마음은 언어를 통해 얼마나 전달이 될까? 사람과 사람 사이, 완벽한 소통은 불가능할까? 또한, 제 2국어로 '번역이 반역되는' 상황까지 감안한다면, 우리는 늘 오해 속에서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C'est le Vie! 

'오버진' 공연은 10월 2일까지. https://www.playwrightshorizons.org/shows/plays/auberg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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