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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과 영화음악 거장 잠들다 

마빈 햄리쉬 Marvin Hamlisch(1944. NY-2012. LA) 

  
오스카 트로피 3, 그래미상 3, 골든글로브상 4, 에미상 4, 토니상 하나, 그리고 퓰리처상까지... 미 음악계의 상을 두루 제패한 작곡가가 눈을 감았다. 할리우드와 브로드웨이를 오가며 창작력을 과시해온 마빈 햄리쉬(Marvin Hamlisch)가 6일 LA에서 68세로 사망했다. 햄리쉬는 최근 잠시 앓던 중 넘어진 후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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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러스라인  

 *뮤지컬 '코러스라인' 중 'One'

 

뮤지컬 ‘코러스라인(A Chorus Line)’ 영화 '스팅(Sting)’ ‘추억(The Way We Were)’ 그리고 007 시리즈 ‘나를 사랑한 스파이(The Spy Who Loved Me)’까지 불후의 영화 주제곡을 남긴 햄리쉬는 뉴요커였다. 

 

지난해 5월 뉴저지 브런스윅의 스테이트시어터에서 햄리쉬의 콘서트를 볼 기회가 있었다. 극장의 베너핏 공연에 초대된 햄리쉬는 피아니스트로서 반주를 하면서 자신의 대표곡을 선별해 밴드, 싱어들과 함께 연주했다. 마지막 곡은 다름 아닌 ‘뉴욕, 뉴욕'. 뉴저지에서 한 갈라 콘서트였지만, 그는 뉴욕을 사랑한 작곡가임이 분명했다. 햄리쉬는 올 12월 16일 뉴저지 스테이트시어터에 돌아와 뉴저지심포니오케스트라를 지휘할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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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리쉬는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에게 불후의 명곡 'The Way We Were'를 헌사했다.

 

 *The Way We Were' 
 

햄리쉬가 음악가로서 처음 브로드웨이에 발을 디딘 것은 1964년 연극 ‘퍼니 걸(Funny Girl)’의 리허설 피아니스트로 취직되면서다. 이때 주연인 바브라 스트라이샌드(Barbra Streisand)와의 인연이 시작됐다. 브루클린 출신 바브라 스트라이샌드는 햄리쉬를 처음 만나 "당신은 라이자 미넬리보다 더 빠르게 말하네요!"라고 했다고 핼리쉬는 찰리 로즈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바브라 스트라이샌드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너무도 슬프다...그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내 삶 안에 들어왔다. 그는 1998년 내 결혼식에서도 연주했다”고 밝혔다. 햄리쉬는 1994년 스트라이샌드의 투어 공연의 음악 디렉터 겸 편곡자를 맡았으며, 1995년과 2001년 스트라이샌드의 TV 특집쇼로는 에미상을 두 차례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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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 폴락 감독,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와 로버트 레드포드 주연의 '추억(The Way We Were)'.

 

마빈 햄리쉬가 작곡한 영화음악은 40여편에 이른다. 90년대 초 KBS-2FM 라디오 ‘영화음악실’의 스크립을 쓰면서 종종 틀었던 음악이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의 ‘The Way We Were’였다. 한국에선 ‘추억’으로 알려진 이 영화의 주제가다. 또한, 폴 뉴만과 로버트 레드포드가 도박사로 등장하는 ‘스팅’의 경쾌한 피아노곡 ‘The Entertainer’는 영화음악실의 인기 곡이었다. 햄리쉬는 1974년 두 편의 영화로 오스카 트로피 3개를 거머쥐게 된다. 

 

*'스팅'의 주제가 'The Entertai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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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팅' 

 또한, 로저 무어가  제임스 본드로 등장하는 '007 나를 사랑한 스파이(The Spy Who Loved Me)'의 센슈얼한 주제가 'Nobody Does It Better'는 칼리 사이먼이 불러 대히트를 기록했다.

 

*칼리 사이먼의 'Nobody Does it Be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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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 나를 사랑한 스파이'에서 로저 무어와 바바라 바크. 

 

이외에도 햄리쉬는 메릴 스트립 주연 ‘소피의 선택’, 로버트 레드포드 주연의 ‘보통사람들(The Ordinary People), 우디 알렌 감독의 코미디 ‘바나나’, ‘세 남자와 아기 바구니’, 에디 머피 주연 코미디 ‘너티 프로페서(The Nutty Professor)’까지 폭넓게 곡을 써왔다. 최근까지만 해도 햄리쉬는 자신이 작곡한 뮤지컬 ‘너티 프로페서’가 초연되고 있는 내쉬빌에 갈 예정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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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빈 햄리쉬와 뉴욕필. Photo: Chris Lee

그는 미국 대도시의 팝스 오케스트라 지휘자로도 활동했다. 피츠버그, 밀워키, 달라스, 파사데나, 시애틀, 샌 디에이고 등지의 오케스트라를 이끌기도 했다. 최근까지도 필라델피아오케스트라의 팝스 오케스트라 지휘와 뉴욕필하모닉의 뉴이어즈이브 콘서트를 지휘할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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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빈 햄리쉬 Marvin Hamlisch  
1944년 뉴욕에서 유대인 아코디언 연주자 막스 햄리쉬의 아들로 태어났다. 다섯살 때부터 라디오에서 들은 곳을 피아노로 연주할 정도로 신동이었다. 7살 때 줄리아드예비학교에 입학하면서 줄리아드 역사상 최연소자로 기록됐다. 이후엔 퀸즈칼리지를 다녔다. 

 

1964년 브로드웨이 뮤지컬 ‘퍼니 걸’의 리허설 피아니스트로 발탁되어 일하면서 무용 편곡도 맡았다. 이때 오디션에 주목하면서블록버스터  뮤지컬 ‘코러스라인’의 아이디어를 얻었다. 70년대에 할리우드가 있는 LA로 이주했지만, 햄리쉬는 자신은 여전히 뉴요커임을 고수했다고 한다. 이유에 대해 “뉴욕은 당신이 넥타이 매는 것을 허용하는 유일한 장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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