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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임 유엔 사무총장 정책특보 임명된 강경화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 사무차장보 [Big Apple People]
  • sukie
    Dec 13, 2013
  • "나의 삶 선택 기준은 새로운 도전과 경험

    강경화(Kyung-Wha Kang)
    UN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 사무차장보

    강경화 유엔 인도주의업무보정국(OCHA) 사무차장보가 안토니오 구테레스(António Guterres) 제9대 유엔 사무총장의 정책특보(Special Advisor on Policy)로 임명됐다. 유엔 사무총장에 이은 2인자인 사무부총장에는 아미나 모하메드(Amina Mohammed) 나이지리아 환경장관, 사무총장 비서실장에는 마리아 루이자 히베이루 비오치(Maria Luiza Ribeiro Viotti) 독일 주재 브라질 대사가 기용되며 여성 보좌관 트로이카 시대를 연다. https://www.un.org/apps/news/story.asp?NewsID=55810 <2016. 12. 18 Up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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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석부를 때 제 1번이었을 법한 강경화 OCHA 사무차장보는 세계의 인권을 감시하고, 인도주의를 실행하는 파워 우먼이다.


    은발이 아름다운 여성들이 있다.
    50대가 넘은 중년 여성들에겐 ‘적’일 수도 있는 새치나 흰 머리가 추하지 않고, 더 매력적인 여성들이 따로 있다.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프로페셔널리즘과 당당한 자부심으로 무장한 여성들에게 은발은 오히려 왕관처럼 보인다.

    강경화(Kyung-Wha Kang, 58) UN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 Office for the Coordination of Humanitarian Affairs) 사무차장보(Assistant of Secretary General)을 본 순간 은발이 멋진 여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UN에서 최고위직에 오른 한인 여성이다. 

    인권을 감시하고 인도주의를 실행하는 강경화 OCHA 사무차장보가 12일 맨해튼 코리아소사이어티에서 젊은 직장인들을 위한 위한 대담회 '영 프로페셔널즈 네트워크 브라운백 런치 시리즈(Young Professionals' Network Brown Bag Series)'에 초빙되어 대화를 나누었다. 

    비비안 리(Vivian Lee) NY1 앵커/리포터의 사회로 진행된 이 대담에서 강경화 OCHA 사무차장보는 온유한 카리스마를 풍기면서 일과 가정, 그리고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다음은 이날 대화를 간추린 것이다.

    04-04-2012kyungwhakang.jpg Photo:Jean-Marc Ferré

    ▶UN 업무의 동기
    강경화: 무엇보다도 난 야심있는 사람이 아니라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다. 부모님(*아버지는 강찬선 전 KBS 아나운서)도 매우 개방적이셨으며, 한번도 내가 하려는 일에 대해 “안돼”라고 말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내게 기회가 왔을 때 탐험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셨다. 요점은 만반의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인권과 인도주의는 모든 이들의 관심이다. 인도주의는 인간의 고통에 대한 연민이며, 인권은 불공정한 일이 발생할 때의 분노에 끌린다. UN의 가치는 가장 보편적인 기구로서 커다란 도덕적인 중량감에 있다. UN 감투를 쓰면, 무엇을 하던 그런 권위감을 갖게 된다.


    ▶UN에서 일하게 된 계기
    강경화: 1995년 베이징에서 열린 세계여성대회에 참석했다. 당시 난 대학에서 강의를 하면서 NGO(비정부기구) 여성단체에서 활동 중이었다. 매일 여성 리더들과 만나면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글로벌 이슈라는 걸 알게 됐다. 그건 새로운 발견이었다. 한국에서 자라면서 평화와 개발 등 UN 등 국제기구에 의존하고 감사했다. 그러나, UN이 정작 어떤 일을 하는 지는 몰랐었다. 베이징에서 UN과 내가 매일 다루어온 이슈가 직접 연관성이 있다는 걸 알게된 후 UN에서 일하고 싶었다. 마침 기회가 왔고,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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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기문 UN 사무총장(중앙)이  OCHA의 고위급 행사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오른쪽으로 발레리 아모스 OCHA 사무총장보, 강경화 OCHA 사무차장보. Photo: Rick Bajornas

    ▶UN에서 일하고 싶은 젊은이들에게 주고 싶은 조언
    강경화: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UN의 채용은 투명하다. 온라인에 광고한다. 첫 번째 심사에서 눈에 띄게 하려면, 최소한의 자격을 갖추어야 하며 그걸 상세히 설명해야 한다. 단순히 ‘UN에서 일하고 싶다’보다는 ‘왜 UN에 삶을 바치고 싶은가와 환경이나 기후 변화, 인권 등 일하고 싶은 분야’를 밝히는 것이 좋다. 그리고, 그 분야의 경력을 제시하라. 초보자 레벨부터 직위마다 최소 3년, 5년 경력 등 최소한의 자격을 갖고 있어야 한다.


    ▶UN에서 인권과 인도주의
    강경화: 인권과 인도주의는 같은 어머니에서 태어난 형제다. 인권이란 정부가 어떻게 국민을 다루는가에 대한 것이다. ‘무엇이 잘못 됐나’에 관한 것, 단순히 말해서 나쁜 이에게 ‘당신 나빠요’라고 하는 것이다. 인도주의는 힘을 가진 정부에 고통받는 이들을 돕겠다고 접근/비자/동의을 요청하는 것이다. 때로는 이런 대화가 순탄하고, 어떨 때는 어렵다. 인도주의의 기본적인 원칙은 인종, 국가, 정치와 무관한 ‘필요(need)’다. 시리아, 사우스 수단 등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곳에서 마찬가지다. 인권침해는 무언가 큰 위기가 오는 징조다. 그러므로 이런 인권 침해는 다루어져야 하며, 중단되고, 예방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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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경화 OCHA 사무차장보가 사우스 수단의 종글레이 피보 카운티에서 주민들을 만나고 있다. Photo: OCHA

    ▶여성 교육에 투자하라
    강경화: 한국 출신으로서 UN에 일하고 있는 나로서는 돈이 있다면, 교육에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여성 교육이다. 소녀들은 동등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으며, 위기가 발생했을 때 기존의 사회질서를 증폭하는 경향이 있다. 성차별이 있는 사회에서 위기는 이를 더 강화한다. 추가의 노력이 없다면, 소녀들은 학업을 중단하게 된다. 재정위기가 있는 나라에서 이런 현상을 늘 보아왔다.


    ▶여성의 지위와 성차별
    강경화: 지원기구 정책결정자 그룹이 남성 위주인 곳도 있지만, OCHA의 경우는 고위급에 두 여성이 있으므로 예외다. 어떤 기구엔 남성들이 대부분이며, 현장에 가도 남성 위주다. 그러므로 우리는 표면상으로 관찰한 것 이상으로 더 나아가야만 한다. 최근엔 지원기구에서 자원을 남성이 아니라 여성에게 주어야 한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다. 여성은 가정을 위해 자원을 활용하지만, 남성은 그가 보는 우선권으로 가게 된다. 내가 자랄 때 우리 어머니도 자신의 건강이 마지막 관심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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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2월 인권위원회 제 19회기에서 네이비 필레이 UN 인권최고대표(오른쪽)와 강경화 부대표. Photo: Jean-Marc Ferré

    ▶필리핀의 재난 구호
    강경화: 필리핀에 하이옌이 닥친 지 1개월째다. 1400만명이 피해를 봤고, 400만명이 집을 잃었다. 필리핀은 지진, 홍수, 태풍 등이 잦아 재난예방을 잘하는 국가의 모델이었다. 이번 태풍은 막강했디. 의료 지원은 충분하다. 공항에 도달한 구호물자 중 이불 같은 것은 돌려보내지기도 한다. 지원의 가장 좋은 방법은 기금이다.  


    ▶일과 가정의 균형
    (아들 보스턴에서 공학, 두 딸은 제네바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남편은 연세대학교 컴퓨터과학과 이일병 교수. 7년째 떨어져서 살고 있다.) 

    강경화: 명백한 것은 남편과 처음부터 내가 일하겠다고 밝혔으며, 지원해주기로 했다. 이제까지 무척 지원을 잘했다. 어떤 여성들은 가사일에 행복을 느낄 수도 있다. 난 완벽한 아내거나 엄마는 아닐 것이다. 난 항상 말해왔다. “각자가 최선을 다하면 돼!” 난 점수에 연연해하지 않았다. 난 ‘이 게 내가 하는 일이고, 이해해주어야 하며, 감사해야 하며, 전적으로 지원해주어야 한다’고 말해왔다. 당신은 당신 일을 하고, 나는 나의 일을 하고… 난 애들이 스스로 원하는 걸 하게끔 만들고, 공직에 진출하라, 무엇이 되라고 부추기지 않았다. 애들이 무엇보다 나를 사랑하며, 내 일을 존중해주고, 내가 행복하게 일하고 있는 것에 행복해한다. 우리 애들은 엄마가 하는 일에 대해 대단하게 말하지 않는 스타일이다. 우리 시부모님과 어머니가 지원해주신 것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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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차별주의와 삶의 교훈 
    강경화: 일반적으로 지금과 내가 처음 일을 시작할 때의 상황은 큰 차이가 난다. 학위를 따고 한국에 돌아가서 대학에서 가르치려 했을 때 날 환영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건 완전 오해였다! 그들은 성차별에 대해 노골적이었다. 대학 강사에 지원했는데도 “난 여성이 지원할 줄 몰랐다”며 놀라워했다. 난 3~4년간 최저 임금을 받는 시간 강사, 소위 ‘보따리 장사’를 했다. 궁극적으로 대학에서 일하던 중 국회의장 비서관에 자리가 나서 공직을 시작하게 됐다. 그러다 외무부에서 일하게 됐다. 물론 미국과 UN에서 성차별은 훨씬 덜하다. UN은 반대 방향이다. 반기문 사무총장의 지도력으로 여성에게 고위직 자리를 주는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래도 아직까지도 머리 속에서는 끊임없이 자문하게 된다. 일이 잘 안되어갈 때는 ‘내가 여자라서 이런 대우를 받나?’ 혹은 ‘내가 한국인이라서 이렇게 취급하나?’ 등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의미 없는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 상대방에서 무슨 이야기를 했을 때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고, 의심하지 않는 것이다. 왜 그런 말을 했을까 등 재삼 추측하는 것은 건강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하기는 참 쉽다. 마음의 함정에 빠진 동료들을 많이 보았다. 리더쉽의 자리에 있을 때 여러 문화에서 온 스탭과 일할 때는 기본적인 신뢰로 접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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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로 선택의 기준
    강경화: 난 항상 새로운 경험을 선택해왔다. 인권 사무국에 들어가려고 했을 때 외무국의 동료들은 “대담하다”고 했다. 만일 외무국에 머물렀다면, 안정된 생활을 하고 승진해서 어느 나라의 대사가 됐을지도 모른다. 그건 내게 배에서 뛰어내려 완전히 다른 길로 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난 위험요소로 생각하지 않았고, 전혀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게 성공으로 이끌건, 실패로 가건 간에 경험 자체가 새 일을 택하게 된 이유였다. 만일 다시 생각해봐도 그렇게 했을 것이며, 훌륭한 경험이 됐다. 도전의 새로움이 내 동기였던 셈이다. 물론 가족을 항상 염두에 두었다. 우리 애들이 아침에 행복할까?


    ▶일 최고의 순간
    강경화: 난 매일 내 일에 감사하고 있다. 이 일을 통해 무척 많이 배웠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3년 전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에서 일할 때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성폭력이 체계적으로 발생하고 있었다. 이들을 직접 만나서 그런 혹독한 경험에서 인간으로서의 위엄을 어떻게 복구할 수 있을까? 그런데, 모든 여성들이 좌절하지 않았다. 건강이 회복된 여성들은 “자식을 학교에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잔인성이 상상을 초월하는 극도에 달한 상황에서도 천사들, 의사들, NGO들이 희생자들을 돌보기 위해 나타났다. 여기서 인간성의 최악과 최선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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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경화 康京和 Kyung-Wha Kang 

    1955년 서울에서 태어나 이화여고와 연세대학교 정외과 졸업 후 KBS 영어방송 PD 겸 아나운서로 일했다. 1984년 매사추세츠 주립대학교에서 언론학 박사 학위 취득 후 세종대학교 영문학과 조교수를 지냈다. 국회의장 국제담당 비서관으로 발탁된 후 김대중 대통령의 영어통역관을 지내면서 빌 클린턴 대통령과의 통역을 담당했다. 1998년 외교부 장관 특별보좌관, 국제기구심의관을 거쳐 2001년 주유엔 대표부 공사참사관으로 인권과 사회분야를 맡았다. 2003∼2005년 유엔 여성지위위원회 의장을 거쳐 2006년 한국 여성 최초로 UN 인권고등판무관실 부판무관을 지냈다. 2007년부터 코피 아난 사무총장에 의해 제네바에 본부를 둔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 Office of the High Commissioner for Human Rights) 부대표로 일했다. 2013년 3월 반기문 UN 사무총장에 의해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 United Nations Office for the Coordination of Humanitarian Affairs) 사무차장보(ASG)에 임명됐다. 2006년 한국 여성단체협의회 선정 '올해의 여성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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