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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g Apple People
2016.03.25 13:01

마틴 스콜세지 감독과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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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퀸즈 코로나의 이탈리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나 맨해튼 리틀 이태리에서 자란 뉴요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회고전이 2016년 12월 11일부터 2017년 4월 23일까지 퀸즈 영화박물관(Museum of Moving Image)에서 열린다.

http://www.nyculturebeat.com/?document_srl=3525843



'택시 드라이버' 제작 40주년 특별 상영회

마틴 스콜세지, 로버트 드 니로, 조디 포스터 등 골든 랑데부


4월 21일 트라이베카 영화제


TaxiDriver_press_1.jpg Taxi Driver



"Are You Talking To Me?"


뉴욕을 배경으로 월남전의 후유증을 그린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스릴러 '택시 드라이버(Taxi Driver, 1976)'가 제작 40주년을 맞았다.


2016 트라이베카 영화제(4/13-24)에서는 4월 21일 '택시 드라이버' 40주년 특별 상영회와 함께 스콜세지 감독을 비롯 배우 로버트 드 니로, 조디 포스터, 시빌 셰퍼드와 시나리오 작가 폴 슈레이더가 참가하는 재회의 좌담회를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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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택시 드라이버'에서 조디 포스터와 로버트 드 니로.



'택시 드라이버'는 1976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으며, 아카데미상 작품상과 남우주연상, 여우조연상 및 오리지널 작곡상 등 4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조디 포스터는 당시 13살로 이 영화에서 매춘부 역할을 맡았다. 화가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로버트 드 니로는 '비열한 거리' 이후 마틴 스콜세지 감독과 콤비로 '비열한 거리' '성난 황소' '굿 펠라스' '카지노' '케이프 피어' 등에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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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택시 드라이버' 촬영 현장에서 로버트 드 니로에게 연기 지도를 하고 있다. 


제 15회를 맞는 트라이베카 영화제는 배우 로버트 드 니로가 9/11 이후 트라이베카 지역의 복구를 위해 창설한 영화제. 드 니로는 레스토랑 트라이베카 그릴을 운영하며, 일식당 노부의 투자자이기도 하다.



A Dialogue with Martin Scorsese


<*이 대화는 뉴욕중앙일보 2011년 12월 29일 게재된 기사를 보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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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9월 말 링컨센터에서 열리는 뉴욕영화제가 내년으로 50주년을 맞는다. 유럽의 칸·베니스·베를린 국제영화제에 비견되는 미국에서 가장 권위있는 이 영화제는 상(prize)이 없는 비경쟁영화제다. 따라서 승자도 패자도 없는 세계영화의 축제다.


링컨센터 필름소사이어티는 50주년을 기념한 마라톤 영화제를 열고 있다. 지난 20일엔 뉴요커 마틴 스콜세지(Martin Scorses) 감독의 출세작 ‘비열한 거리(Mean Street)’(1973)의 시사회와 함께 스콜세지와의 질의응답 시간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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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 드라이버(Taxi Driver)’에서 ‘굿 펠라스(Good Fellars)’‘ 뉴욕의 갱들(Gangs of New York)’ ‘순수의 시대(The Age of Innocence)', 그리고 3D 신작 ‘휴고(Hugo)’까지 40여년간 메거폰을 잡아온 뉴요커 스콜세지 감독이 속사포같은 입을 열었다.


‘비열한 거리’는 맨해튼 리틀이태리를 배경으로 가톨릭과 범죄 사이에서 방황하는 청년의 이야기를 그렸다. 스콜세지의 NYU 친구 하비 카이텔이 주인공 찰리 역을 맡았으며, 로버트 드 니로가 자니 보이로 등장한다.



IMG_0564.jpg Photo: Sukie Park


-‘비열한 거리’를 다시 보는 소감은.

“38년이 흐른 지금 이 자리에 서있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 뉴욕영화제에서 상영되는 것은 우리의 꿈이었다. 베르톨루치의 ‘혁명전야’에서 파졸리니 ‘아카토네’ 등까지 주요 교육기관이자, 영감을 주는 곳이다. 이곳에 신작을 소개하는 것은 내 인생 최고의 순간 중 하나였다.”


-당시 영화제에서 기억할만 한 것은. 

“1973년 당시 훌륭한 영화들이 많이 상영됐다. 부모님과 함께 링컨센터에서 내 영화를 보면서 무척 걱정했다. 하도 욕이 많이 나와서 어떤 관객들은 웃고, 어떤 이들은 야유를 하기도 했는데, 논쟁거리가 된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끝난 후 지인이 어머니에게 ‘아들 영화 어떻게 생각하냐’라고 물었더니, 어머니는 ‘한 가지만 말하겠어요. 우리 집 안에선 그런 욕 안해요!’라고 말씀하셨다! 하하!”



mean-street1.jpg '비열한 거리' 촬영장에서


-리틀 이태리가 배경이다. 촬영은 어떻게 했나.

“사실상 스탭이 LA에 있어서 거의 대부분을 LA에서 찍었다. 리틀 이태리에서 촬영하는 것이 무척 까다로웠다. 주민들이 촬영을 좋아하지 않아서 우리 아버지가 여러 사람들과 말로, 또 돈을 주기까지 했다. 우리는 26일간 찍었는데 LA에서 찍으면서 뉴욕 냄새를 나게끔 디자인했다. 하지만, 옥상, 거리 장면, 복도 장면은 뉴욕에서 찍어야했다. LA에선 좁은 타일 복도를 찾을 수 없었다. 지저분한 느낌 말이다.”



Mean Streetts 7.jpg Mean Street


-왜 갱들의 삶에 매료되나.

“리틀 이태리에서 자라면서, 거칠은 사람들이 많았다. 성당에선 사랑과 연민에 대해 설교하지만, 거리에선 알콜중독으로 죽어가고, 폭력으로 사람들이 비참해진다는 점에 매료됐다. 그들은 사실 좋은 사람들이나 삶이나 환경 때문에 그렇게 행동할 수 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들도 착하고, 좋은 사람이고 싶지만. 난 그들은 재단하고 싶지 않았다.”



mean-streets-promo.jpg Mean Street



-음악이 영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기본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노래들을 선정해 쓴 것이다. 내가 어릴 땐 여름철에 에어컨도 선풍기도 없던 때라서 문이나 창문을 열고 있었는데 거리에서 축제 때는 이탈리아 애국가에서 나폴리 민요, 시칠리아 민요, 로큰롤, 컨추리웨스턴 등 다양한 음악을 들었다. 당시는 중세 마을과도 같아서 파티가 있거나 싸움이 나거나 사람들이 꼭 끼어들곤 했다.” 


박숙희 문화전문기자 

sukie@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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