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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극 徐克, Tsui Hark



"감독으로 살아남으려면, 결코 상업성 잊지 말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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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본색’‘첩혈쌍웅’‘천녀유혼’‘동방불패’‘소오강호’‘황비홍’‘신용문객잔’… 
1980년대에서 90년대 중반까지 한국 영화계를 휩쓸었던 홍콩느와르와 무협영화는 서극(수이 하크·Tsui Hark, 64)가 제작하거나 감독한 작품들이 대다수다.
 
‘아시아의 스티븐 스필버그’로 불리우며 홍콩 뉴웨이브를 이끌던 서극 감독은 스타 군단의 사령관이기도 했다. 
주윤발·장국영·유덕화·이연걸·양조위·양가휘에서 임청하·왕조현·장만옥·엽청문·유가령 등까지 초특급 홍콩 스타들을 키워낸 장본인이기도 하다. 성룡·원표·홍금보 등 쿵푸영화의 트리오가 휘청거릴 무렵 새로운 스타일과 화려한 SF 테크닉으로 무장한 새 영화를 선보인 서극은 2000년대 침체기로 들어갔다.
 

용문비갑2.jpg 용문비갑

그 서극이 돌아왔다. 
지난해 유덕화·유가령 주연의 ‘적인걸: 측천무후의 비밀’로 화려하게 컴백했다. 이 영화는 베니스 영화제에 초대됐으며, 홍콩의 아카데미상인 금상장 감독상 등 6개 부문을 석권했다. 

올해엔 사상 최초의 3D 무술영화 ‘용문비갑’의 연출을 맡았다. ‘용문비갑’은 자신이 제작하고, 이혜민이 연출했던 93년작 ‘신용문객잔’의 리메이크다. 양가휘·임청하·장만옥 대신 이연걸·주신·계륜미 주연 ‘용문비갑’의 메거폰을 직접 잡았다.
 
‘용문비갑’ 후반 작업에 한창인 서극 감독이 뉴욕에 왔다. 제 10회 뉴욕아시아영화제가 11일 링컨센터 월터리드시어터에서 서극 감독에게 평생공로상을 헌사했다.
 
 
*이 인터뷰는 한국 중앙일보(2011.08.13)에 실린 것을 보완한 것입니다.


An Interview with Tsui H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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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공로상을 받는 소감은.
“영화를 만드는 것은 내 꿈이다. 어느 곳에서도 어떤 상도 받을 것이라고 눈치채지 못했다. 평생공로상을 받는 것은 여러 감정이 복합적으로 느껴진다. 내가 과연 어떤 평생의 성과를 거두었는가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든다.  난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이었나 궁금해진다. 
몇년 전 홍콩감독협회에서 평생공로상을 받은 적이 있다. 난 평생공로상이란 한 감독이 그의 전 생애에서 모든 것을 다했을 때 결과를 의미한다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지금 내 커리어의 중도에서 평생공로상을 받게됐다. 같은 장소에서 또 다시 평생공로상을 또 받는 사람이 있을까 궁금해진다.”
 
-뉴욕에서 받는 특별한 의미가 있나. 
“뉴욕에서 평생공로상을 받는 것은 내게 무척 의미있는 일이다. 70년대 뉴욕에서 살던 아주 초보 영화감독 시절을 상기시켜주기 때문이다. 당시 난 다큐멘터리 영화의 스탭으로 일했다. 그 시절을 생각하면, 내가 지금까지 영화산업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것이 참 멋지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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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시절 ‘누가 빈센트 친을 죽였는가’의 한국계 다큐멘터리 감독 크리스틴 초이와도 함께 작업했는데. 
“1974년, 뉴욕에서 일자리를 찾고 있던 중 크리스가 대표로 있던 다큐멘터리 회사에서 일하게 됐다. 당시 크리스가 철도 노무자였던 중국계 미국인들과 현대 의류공장에서 일하는 중국계 미국인들에 대한 다큐 ‘못에서 축까지(From Spike To Spindle)’를 준비 중이었다. 당시 난 영화감독 지망생이었으며, 아시안아메리칸 역사에 대해서 관심이 무척 많았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크리스와 일하게 됐다. 

그 해는 아시안아메리칸이 고용 기회의 평등권을 위해 투쟁하던 해였다. 난 시청 앞에서 시위대를 만나는 훌륭한 스탭들과 함께 일했고, 우린 아시안아메리칸 문제에 관심이 있는 흥미로운 사람들을 인터뷰했다. 지금 오랜만에 뉴욕에 오니 다시 아시안아메리칸에 관한 다큐를 만들고 싶어진다.”
 
-당시 먹고 살만 했나. 
“그때 난 차이나타운의 중국 신문에서 기자로 일하며 다큐멘터리에서 조수로 일했다. 둘 다 재정적으로 어려워서 동시에 두 가지 일을 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매우 가난했고, 생존 문제에서 무척 불안정했다. 어떤 시점에서 임금이 밀리자 크리스는 보상으로 우리에게 샌드위치를 만들어 주기도 했다. 우린 매우 일을 열심히 했고, 난 당시 경험에서 많이 배웠다.”


촉산.Zu.Warriors.From.The.Magic.Mountain.Shu.shan.1983.DV.jpg 촉산
 
-임청하·홍금보·원표가 출연한 ‘촉산’(83)은 특수효과가 무성했다. 
“골든하베스트를 위해 만든 영화였다. 그 전에 친구가 내게 ‘왜 특수효과를 쓰지 않느냐’고 물었다. ’촉산’은 중국의 무협지에 ‘스타워즈’의 특수효과팀이 가담된 영화다.”
 
-‘천녀유혼’을 제작한 이유는. 
“영화를 만들다 보면 종종 왜 내가 영화를 만드는가를 자문할 때가 있다. 난 내가 어렸을 때 영화를 보며 무척 흥분했던 시절을 생각하게 된다. 옛날에 이한상 감독의 ’천녀유혼’을 보던 때를 생각하며, 리메이크하게된 것이다.”
 

동방불패.jpg 동방불패

*'동방불패' 주제가 Sea smile-The Legend of the Swordsman
http://youtu.be/fmz3rvvUm0c


-‘동방불패’‘상하이 블루스’‘도마단’‘철갑무적 마리아’‘신용문객잔’‘청사’ 등에 등장하는 여인들은 강인하다. 또한 남장여성들이 많다. 어디서 오는 것일까. 혹시 어머니가 강인하신가.
 
(당초 서극 감독은 ‘영웅본색’을 여자들의 영화로 계획했다. 그는 주윤발이 맡았던 역을 ’예스마담’의 양자경(미셸 여)에게 맡겨 여자들 사이의 관계를 탐구할 계획이었지만, 주윤발로 낙점됐다.)
 
“내 생각에 우리 어머니만 강인한 여성일뿐만 아니라 자녀를 갖고, 키우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이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은 매우 강인하다. 난 영화감독은 자신의 작품의 어머니라고 생각한다. 좋던 나쁘던 간에 그의 자식들은 그의 육체와 피로부터 태어난 것이다. 내 영화 중에서 ‘상하이 블루스’는 내가 처음 여성 캐릭터들을 우선에 둔 챕터였다. 아마도 난 영화 속에서 약한 여성 캐릭터들을 충분히 봤을지 모른다. 내겐 강인한 여성이 보다 더 흥미롭다.”
 
(서극은 86년 ‘도마단(Peking Opera Blues)에서 임청하를 남장 여성으로 캐스팅했다. 임청하는 청순하면서도 독특한 패기를 발산했다. 서극은 임청하에게 긴 머리를 자르라고 했고, ‘동방불패’의 주인공으로 출연시켰다. 이연걸이 주연한 ‘황비홍‘에서도 관지림은 남성복을 입으며,’동방불패’에서 이가흔, ‘칠검‘의 양채니도 남장으로 등장한다.)

 
Double_Team.jpg 더블 팀


-90년대 할리우드에서 영화를 만들었다. 무엇을 배웠나. 

(서극은 97년 할리우드에서 장 클로드 반담과 농구선수 출신 데니스 로드맨 주연의 ’더블 팀’, 이듬해 반담과 다시 ‘녹오프(Knock Off)’를 연출했다.)
 
“매우 중요한 한 가지는 이 세상 도처에서 온 스탭과 일한 경험이었다. 그들은 매우 개인적이며, 독특한 스타일과 비전을 같고 있었다. 좋은 친구들을 사귀었고, 그들과 다시 함께 일할 날을 기다리고 있다.”
 
-자막에서 설명이 부족해 아쉽다. 
“내가 걱정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내 영화가 외국에 배급될 때 번역은 배급회사가 맡는다. 난 로케이션이나 노래의 가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종종 번역에서 빠진다. 좋은 번역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2000년대 여러 영화가 나왔지만, 상업적으로는 성공하지 못했는데. 
“난 할리우드에서 돌아온 후 이전에 하지 않았던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싶었다. 새로운 시작이라 생각하며 반복하기 보다는 전혀 새로운 프로젝트를 하고 싶었고,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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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극 최초의 멜로드라마 '양축(Lovers, 1994)'.
 

-장쯔이 주연으로 리메이크작 ‘촉산전’을 만들었는데. 결과에 만족했나. 
“개인적으로 완전한 재난이었다.”
 
-당신 영화의 엔딩에서 주인공들은 대개 결별을 한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나도 몰랐던 사실이다(웃음). 아마도 부모님이 베트남에 이주해 중국인이었고, 그런 가족적 배경이 나의 정신상태에 영향을 준 것이 아닐까. 홍콩 반환 때도 이주가 이슈였다. ‘이주의 저주’가 나타난 것이 아닌가 싶다. 우리는 다시 어디론가 떠날 준비를 해야 한다.”  
 
 
 
감독은 ‘복서’, 제작자는 ‘코치’
 
 
knockoff-tsuihark.jpg 할리우드에서 서극
 
-당신에게 영화는 오락인가 예술인가. 
“홍콩의 감독으로서 상업적인 것이 생존의 방법이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전략이다. 상업적인 예술이 기본적인 생각이며, 예술적인 것은 필수다. 이 두 가지 사이에 모순된 적은 결코 없었다. 위대한 영화감독이 되고 싶다면, 그는 반드시 예술가로서 매우 다재다능해야 한다. 그리고 살아남으려면, 감독은 상업성을 결코 잊어서는 않된다.... 

때때로 난 무언가 특이한 것을 시도하는 실험적인 감독이 되고 싶다. 그런 경우 난 예측하지 못한 결과에 항상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결과야 어떠하든 간에 난 항상 그 경험을 활용해 새로운 프로젝트로 옮겨간다. 실험을 통해서 어떻게 더 재미난 영화를 만들 것인가를 배운다.”
 
-연출 작품과 제작만 할 작품을 어떻게 결정하나. 
“제작자는 복싱을 하고 있는 감독을 링 바깥에서 지켜보는 코치와 흡사하다. 감독과 나누어 갖는 것은 비전이다. 좋은 프로듀서는 감독이 훌륭한 영화를 창작할 수 있도록 강점을 활용하고 증진시키게 해준다. 내가 처음 프로듀서를 맡았을 때, 난 사실 내가 영화를 촬영하려고 준비 중이었다. 그런데, 일정 때문에 감독을 데려다가 만들게 했다. 프로듀서 경력의 초창기에 몇가지 영화들은 내가 연출할 작정이었던 프로젝트들이었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 내가 프로듀서가 되고, 나의 매우 좋은 감독 친구들이 연출하게 됐다. 난 내가 존경하고, 좋아하는 감독들하고만 일할 수 있다. 좋은 친구가 되려면 소통을 잘 해야하며, 생각을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황비홍2.jpg 황비홍


-한국 감독들은 80년대 홍콩영화에 열광했다. 제작 기간도 짧았고, 수많은 스타들이 동시 다발로 출연했다. 이런 쾌속 제작을 그리워 하나. 쾌속 제작의 장점은. 
“신속하게 제작하는 제작 과정에서 빠져나오지 않았다. 여전히 그 안에 있다. 차이점이라면, 점점 더, 난 다른 장소에서 온 스탭들과 일하게된다는 점이다. 지금은 홍콩보다 중국 본토에서 온 인력과 더 일을 많이 하고 있다. 우린 세트에 더 많은 인력이 있으며, 때때로 그토록 많은 인력이 있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매니지먼트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난 항상 이런 방식에 변화를 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더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만은 아니다.”
 
-경제 위기 이후 홍콩의 영화산업은. 
“중국에 시장이 열린 후 감독들이 만들고 싶어하는 아이디어를 선호하는 투자자들을 선택할 여지가 더 생겼다. 홍콩 영화산업은 동쪽으로, 서쪽으로 시장이 열리는 단계로 들어갔다. 아이러니하게도 홍콩의 지역 시장은, 즉 박스 오피스 결과는 이전처럼 이상적이지는 못하다. 그러나, 난 매우 낙관적이다. 난 영화감독들이 매우 창의적이라고 믿는다. 미래에 어떤 종류의 좋은 놀랄만한 사건이 발생할 지도 모를 일이다.”
 
 
용문비갑.jpg 용문비갑


-‘용문비갑’을 3D로 리메이크하는 이유는. 
“난 항상 새로운 것을 추구한다. 이전까지 3D 영화는 서양의 액션영화가 많았다. 난 중국의 전통적인 것과 3D를 결합하고 싶었다. 무협영화를 3D로 찍으니, 이야기 서술 방식도, 편집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 ‘용문비갑’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2D와 비슷하나, 한 가지 매우 명백한 장애물은 카메라들의 크기와 무게다. 또 하나는 3D에 경험이 별로 없는 효과실와 거래하는 후반작업이 어렵다. 그 외에 3D는 재미나다.”
 
 
 
‘서유기’ 영화화가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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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부터 영화광이었나. 처음 본 영화는. 
“영화를 처음 본 것은 한 살 때였을 것이다. 10살 때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첫 영화는 카메라 앞에서 내가 마술을 부리는 것을 찍었다. 난 학교 다닐 때 마술을 배웠고 학교 무대에서 종종 마술 공연도 했다. 그런 후엔 수퍼8 카메라를 쓸 수 있게 되자 카메라 앞에서 마술하는 것에 점점 더 매혹됐다.”
 
-독서를 많이 하나. 가장 좋아하는 책은. 
“시간이 나면 많은 책을 읽으려고 노력한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책은 ‘서유기(Journey to the West)’다. 언젠가 영화로 각색하고 싶은 작품이기도 하다.”
 
-80년대 활동하던 뉴 웨이브 홍콩 감독들은 대개 영국 유학파가 다수다. 왜 텍사스 유학을 결정했나. 
“열여섯살 때 영화감독이 되기로 결정했을 때 내겐 두가지 선택이 있었다. 하나는 홍콩의 영화산업에 바로 들어가는 것으로, 어떤 작품이던 주어진다면 엑스트라를 포함해 조수로 시작하는 것이다. 

다른 한가지의 선택은 영화 만드는 법을 배울 수 있는 장소를 찾아가는 것으로, 홍콩을 떠나 외국의 학교를 찾아보는 것이다. 그때 이탈리아나 프랑스에서 공부하고 온 훌륭한 중국 감독들이 있다고 들었다. 대부분의 영화학도들은 유럽을 선호했는데, 난 어디로 가야할지 솔직히 몰랐다. 난 나를 합격시켜줄 곳을 찾아 원서를 접수시켰는데, 텍사스대학교에서 합격통지를 보내왔다. 그래서 미국으로 가게 됐다.”
 

천녀유혼2.jpg 천녀유혼


-주윤발, 장국영, 유덕화, 임청하, 장만옥 등이 등장한 영화를 비롯 80년대 한국에서 홍콩 영화는 전성기를 누렸다. 지금 한국영화는 국내 시장과 아시안 시장에서 잘 되고 있다. 한국영화가 어떻게 변했다고 생각하나. 
“한국인들은 무엇을 하던 매우 강한 끈기를 지닌 것 같다. 60년대 한국영화에 대한 내 인상은 울고 짜는 비극적인 드라마들이었다. 지금 한국 영화산업은 멋지게도 다양한 장르로 돌아섰다. 한국 감독들로부터 수많은 놀라움과 흥분을 발견하는 것은 훌륭한 느낌이다. 

현재, 난 몇 감독, 프로듀서들과 친구가 된 이후로 한국 영화산업과 어느 정도 연결되어 있으며, 후반 영화 작업도 한국에서 진행된다. 내 옆에서 이런 프로젝트에 나란히 일하는 한인 프로듀서가 있다. 내 생각에 우린 중국인이냐, 한국인이냐를 따질 필요 없이 가족과도 같다. 우린 모두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다.”
 
-인상적인 한국 영화와 감독이 있나. 
“무척 많다. 내가 그들에 대해 더 알고 싶고, 그들로부터 배우고 싶을 뿐이다.”
 
-인생을 바꾼 영화가 있나. 
“구로사와 아키라의 ‘요짐보’, 히치콕의 ‘사이코’ 트뤼포의 ‘줄과 짐’ 고다르의 ‘브레스리스’ 그리고 킹 후(호금전)과 이한상 감독의 영화 등등이다.”

 
TouchofZen613x463 (1).jpg 호금전 감독의 '협녀'


-본명이 서문광(徐文光)인데, 왜 서극(徐克)으로 바꾸었나.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이름이 단순하길 원했다. 내 본명엔 단어가 너무 많다. 아마도 난 단순한 감독, 단순한 사람이 되길 원하는 걸 반영할지도 모른다. 두번째는 ‘수이 하크(Tsui Hark)’가 추이 만 궝(Tsui Man Kwong)보다 더 감독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하크를 선택한 것은 기본적으로 내 가장 좋아하는 사운드이자 극복한다는 의미 때문이다. 난 경제적으로, 진로에 대해 많은 어려움이 있던 10대에 서극이라는 이름을 선택했다. 아마도 그때가 내 나이 열여섯이었을 것이다.”
 
 
000200IMG_8042 (2).jpg 서극 (徐克)
 
1950년 베트남 사이공에서 약사의 아들로 태어남. 16형제 중 일곱번째로 열살 때 8미리 영화를 만들기 시작, 열세살 때 홍콩으로 이주한다. 텍사스 사우스메소디스트대를 거쳐 텍사스대에서 영화를 전공했다. 
1977년 홍콩으로 돌아가 TV 방송국에 입사한 후 79년 뉴웨이브의 시발탄인 무협물, 살인 미스테리, SF가 믹스된 ‘접변(나비살인)’으로 데뷔. 84년 부인 시남생과 필름워크숍(전영공작실) 창설 후 홍콩영화계의 파워커플이 됐다. 
필름워크숍은‘영웅본색‘‘첩혈쌍웅’ 등을 제작하며 홍콩 느와르를, ‘천녀유혼‘ 시리즈로는 무협 호러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는가 하면, ‘동방불패’‘소오강호’‘황비홍’ 등 정통 무협영화로 홍콩 영화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지난해 유덕화·유가령 주연의 ‘적인걸‘까지 40여편을 감독했고, 40여편을 제작했다. 2004년 칸국제영화제 심사위원을 맡았다. 
 

용문비갑4.jpg 용문비갑

서극 감독 연출작                                                                                          

적인걸2: 신도해왕의 비밀 (Young Detective Dee : Rise of the sea dragon, 2013)
용문비갑 (2011)
적인걸: 측천무후의 비밀 (Detective Dee and the Mystery of the Phantom Flame, 2010)
올 어바웃 우먼 (Not All Women Are Bad, 2008)
심해심인 (The Missing, 2008)
트라이앵글 (The Iron Triangle, 2007)
칠검 (Seven Swords, 2005)
흑협 2 (Black Mask 2: City of Masks, 2002)
촉산전 (The Legend Of Zu, 2001)
순류역류 (Time and Tide, 2000)
넉 오프 (Knock Off, 1998)
황비홍 서역웅사 (Once Upon a Time in China and America, 1997)
더블 팀 (Double Team, 1997)
대삼원 (Tristar, 1996)
황비홍 팔대천왕 (Fei Hung Series: The Eight Assassins, 1996)
황비홍 소림고사 (1996)
화월가기 (Love in the Time of Twilight, 1995)
금옥만당 (The Chinese Feast, 1995)
서극의 칼 (The Blade, 1995)
양축 (The Lovers, 1994)
황비홍 5 (Once Upon A Time In China V, 1994)
황비홍 3 - 사왕쟁패 (Once Upon A Time In China 3, 1993)
청사 (Green Snake, 1993)
호문야연 (The Banquet, 1992)
황비홍 2 - 남아당자강 (Once Upon a Time in China II, 1992)
쌍룡회 (Twin Dragon, 1992)
재숙지횡소천군 (The Raid, 1991)
황비홍 (Once Upon A Time In China, 1991)
소오강호 (Swordsman, 1990)
용행천하 (The Master, 1989)
영웅본색 3 (A Better Tomorrow III, 1989)
대행동 (The Big Heat, 1988)
철갑무적마리아 (I Love Maria, 1988)
동방여신 (Peking Opera Blues, 1986)
타공황제 (King Worker, 1985)
최가박당 3 - 여황밀령 (Aces Go Places III: Our Man From Bond Street, 1984)
상하이 블루스 (Shanghai Blues, 1984)
촉산 (Zu: Warriors From The Magic Mountain, 1983)
귀마지다성 (All The Wrong Clues, 1981)
지옥무문 (Hell Has No Gates, 1980)
제일유형위험 (Dangerous Encounters Of The First Kind, 1980)
접변 (The Butterfly Murders, 1979)


글/사진=박숙희 뉴욕중앙일보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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