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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 키신 리사이틀: 슈베르트 & 스크리아빈


예브게니 케신이 3월 10일 카네기홀에서 슈베르트와 스크리아빈을 연주한다. 

이에 앞선 6일 뉴저지 뉴왁의 NYPAC에서 리사이틀을 열었다. 이날 키신은 앙코르로 바흐의 '시칠리아노' 쇼팽의 '폴로네이즈' 등 3곡을 선사했다. 

키신은 3월 30일 서울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도 같은 프로그램으로 공연할 예정이다.



kissin2.jpg NJPAC. 3/6/2014



<Update> 키신 티켓 발매 첫날 정오 매진


예브게니 키신이 내년 3월 10일 카네기홀에서 열 콘서트 티켓이 구독자 대상 발매 첫날인 19일 정오에 매진됐다.

일반인 대상 티켓 발매일은 26일이다.




<Update> 키신, 카네기홀에서 선물받은 곰 인형


예브게니 키신이 5월 3일 카네기홀에서 리사이틀을 연다.  


*키신이 카네기홀에서 활짝 웃은 이유 


 

우리 시대의 전설을 만들고 있는 천재 뮤지션   

Evgeny Kiss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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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브게니 키신이 지난 23일 에버리피셔홀에서 뉴욕필과 스크리아빈, 그리그의 콘체르토를 협연한 후 청중의 갈채를 받고 있다. SP 

 

 

이 시대에 뉴욕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 자랑스러울 때가 가끔 있다. 나에겐 마이클 조단의 경기를 봤을 때, 색소폰주자 소니 롤린스의 연주를 들었을 때, 그리고 피아니스트 예브게니 키신의 콘서트에서 그런 생각이 종종 들었다. 


 조단은 오래 전 은퇴했고, 롤린스는 연주자로서 황혼기에 있다. 그러나, 예브게니 키신(Evgeny Kissin), 그는 아직 마흔한 살이니 앞으로도 그의 꿈결같은 연주는 직접 들을 기회가 있을 터이니 뿌듯하다.

 

 같은 러시아 출신 블라디미르 호로비츠(1903-1989) 이후 최고의 피아니스트로 불리우는 키신이 뉴욕에서 자주 콘서트를 여는 것도 아니다. 1년에 1-2회 정도 무대에 오른다. 카네기홀에 매년 돌아오는 키신의 리사이틀은 박스오피스가 열자마자 거의 완전 매진된다. 티켓도 오케스트라석은 200달러에 육박하고, 맨 위층 발코니석도 50달러 안팎이다. 키신을 보려는 음악팬들이 발빠르게 표를 사버린다. 그의 연주회엔 또한 러시아계 이민자들이 대거 몰려든다. 클래식에 조예가 깊은 러시안들이 그들의 자랑인 키신을 놓칠 수 없기 때문이다. 암표상들이 활개를 치는 것도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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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신이 뉴욕필의 음악감독 앨런 길버트와 손 잡고 청중의 환호를 받고 있다. SP 

 

 

 날씨 변덕이 심했던 5월 키신은 히스테리컬한 뉴요커들에게 위안을 주었을 것이다. 그는 지난 3일 카네기홀에서 리사이틀(베토벤, 바버, 쇼팽)을 열었고, 23일엔 에버리피셔홀에서 앨런 길버트가 이끄는 뉴욕필하모닉과 무대에 올랐다. 뉴욕필과는 스크리아빈과 그리그의 콘체르토를 두 곡 연주했으니, 팬들에겐 그저 황홀할 수 밖에 없었다. 키신은 또한 기분이 내키면 팬들의 반응에 따라 앙코르를 자정까지 마라톤으로 연주하는 전설의 피아니스트다. 2007년 5월 카네기홀 리사이틀에서 무려 12곡의 앙코르를 연주했다. 이날 앙코르는 4곡(스크리아빈과 그리그)에 그쳤지만, 그의 보너스에 로열팬들은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키신을 다시 보려면 1년을 꼬박 기다려야 한다. 그는 내년 5월 카네기홀로 돌아온다. 5월 3일 솔로 리사이틀 후 5월 19일 메트로폴리탄오페라 오케스트라와 베토벤의 콘체르토 제 4번을 협연할 예정이다. 이에 앞선 3월엔 정명훈씨가 이끄는 베를린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살즈부르크에서 역시 베토벤의 콘체르토 제 4번을 연주할 계획이 잡혀있다.

 

 

 *바흐의 시칠리아노 감상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프로코피예프의 ‘로미오와 줄리엣’ 

 *마르타 아르헤리치와의 모차르트 더블 피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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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이후 최고의 피아니스트로 불리우는 예브게니 키신. Photo: EMI

 

 

 키신, 러시아의 신동에서 세계의 피아니스트로                                                                 

 

 

 

▶노래하는 유아: 키신은 한 살 때 유아 침대에 서서 누나가 피아노 치는 걸 들으며 자랐다. 어느 날엔 누나가 연습하고 있던 바흐의 푸가 중 테마를 흥얼거려 어른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이후로 아기 키신은 듣는 음악은 무엇이든 노래했다. 누나의 곡이나 라디오, TV, 레코드에서 흘러나오는 멜로디를 따라 부르곤 했다.

 

▶절대음감: 음악을 읽을 줄 아는 절대음감을 타고 났지만, 키신의 부모는 그가 음악에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키신은 “부모님이 내가 음악가가 될 것이라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무엇이든 하게 내버려두셨다. 부모님은 누나가 피아니스트가 될 것이라 생각하셨다”고 회고했다. 


▶안나 파블로나 칸토(Anna Pavlona Kantor): 키신은 영재음악 학교인 그네신 학교(Gnesin School)에서 평생의 사부 안나 파블로나 칸토를 만난다.

 

▶놀이보다 음악을: 키신은 밖에서 아이들과 어울리는 것보다 음악을 더 좋아했다. 그는 “내 어린시절이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내게 음악은 숨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것이었다”고 밝혔다.   


▶신동 피아니스트: 키신은 7살 때 자신이 작곡한 곡을 연주했다. 10살이 되자 오케스트라와 협연했다. 그리고 12살 때엔 드미트리 키타엔코가 지휘하는 모스크바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쇼팽의 콘체르토를 협연한다. 언론은 “쇼팽의 정신이 키신을 통해 나왔다”며 떠들썩했다. 이 콘서트로 키신은 세계적으로 유명해졌고, 바로 전설이 되었다. 러시아에서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이후 최대의 피아니스트가 떠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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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후 장난감 자동차 선물: 그런데, 정작 키신은 그날 연주에 대해서는 잘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1부가 끝난 후 시골집의 한 이웃이 무대에 꽃을 들고 올라왔다는 것, 그리고 연주 후엔 누군가가 커다란 장난감 자동차를 선물했다는 것은 기억하고 있다. 


▶스타 탄생: 다음날 아침 키신이 유명해지자, 부모와 칸토 선생은 어린 키신을 유명세로부터 대피시켰다. 모스크바에서 30마일 떨어진 즈베니고로드로 휴가를 간 것이다. 이 덕에 키신은 자신이 얼마나 유명해져있는지 가늠하지 못한 채 음악에 집중할 수 있었다.

 

▶첫 유럽 여행: 키신이 러시아를 떠나 첫 여행을 한 곳은 동유럽이었다. 동베를린에서 갈라 콘서트를 했을 때 에리히 호네커 동독 공산당 지도자는 콘서트 후 “만일 키신이 없었더라면, 갈라는 몽땅 시간 낭비였을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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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팽의 정신을 그대로 전달하는 로맨티스트 키신. Photo: Eamonn McCabe

 

 

 

▶카라얀의 눈물: 키신은 유럽 일대에 이미 유명해져 있었다. 1988년 열여섯살의 키신은 콘서트 이전 전설적인 지휘자 허버트 폰 카라얀과 처음 만났다. 그리고, 그 앞에서 쇼팽의 콘체르토를 연주했다. 연주가 끝난 후 키신은 카라얀 앞으로 걸어갔다. 카라얀은 키신을 향해 키스로 애정을 표했고, 자신의 선글래스를 벗더니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고 있었다. 카라얀의 아내는 후에 “난 결혼한 지 30년째지만, 남편이 그토록 감동한 것은 처음 봤다”고 말했다고 한다. 카라얀은 키신의 엄마에게 “당신의 아들은 천재요”라고 속삭였다. 그리고, 키신은 뉴이어스데이 카라얀이 이끄는 베를린필하모닉과 무대에 올라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콘체르토 1번을 협연하게 된다.

 


▶평생 하나의 스승: 모스크바 컨서바토리에 입학한 후에도 키신은 스승을 바꾸지 않았다. 컨서바토리 출신 라흐마니노프와 스크리아빈도 위대한 스승 즈베레프를 거쳐 다른 스승에게 배워야했다. 그러나, 키신만은 예외였다. 계속 안나 파블로나를 사사했다. 키신은 말했다. “우린 음악적으로 성격으로도 잘 맞는다. 파블로나 선생님은 내 친구이자 우리 가족이다”라고. 파블로나는 결혼하지 않아 가족이 없었으며, 키신가과 가족처럼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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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혁명후: 1991년 러시아 혁명 후 키신과 가족은 혼란스러운 조국을 떠나 뉴욕으로 이주했다. 어퍼웨스트사이드 아파트에서 어머니, 스승과 함께 지냈으며, 런던에도 아파트를 두고 있다.

 


▶신동에서 성숙한 피아니스트로: 키신은 “연주자로서 음악적으로 성숙해지는 것은 우리의 목표다. 우리는 작곡가의 생각의 모든 깊이를 옮겨야 한다”고 밝혔다.

 

▶연중 스케줄: 키신은 연간 세계 각국에서 40여 차례 콘서트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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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브게니 키신(Evgeny Kissin)

 

키신은 1971년 10월 10일 모스크바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음악교사. 두 살 때 피아노를 만지기 시작해 여섯살 때 영재학교인 모스크바 그네신 음악학교에 들어갔다. 여기서 안나 파블로나 칸토를 만나 평생 사사하게 된다.

 

 10살 때 율리아노프스크 오케스트라와 모차르트의 피아노 콘체르토 K477으로 데뷔한 후 이듬해 첫 리사이틀을 열었다. 그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것은 1984년 3월, 모스크바콘서바토리의 그레이트홀에서 모스크바스테이트필하모닉과 쇼팽의 피아노 콘체르토 1&2를 연주하면서다. 이 콘서트는 전세계에 중계됐다.

 

 1990년 주빈 메타가 이끄는 뉴욕필하모닉과 쇼팽의 피아노 콘체르토를 협연하면서 미국 무대에 공식 데뷔했다. 일주일 후 카네기홀의 100주년 시즌에 초대되어 데뷔 리사이틀을 열었다. 1997년엔 아티스트로서는 러시아 정부 최고의 명예인 ‘트라이엄프상’ 받은 최연소자가 됐다.

 

 2001년 맨해튼음대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았으며, 2003년엔 러시아 최고의 음악상인 ‘쇼스타코비치상’을 수상했다. 이어 2005년 허버트폰카라얀 음악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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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중을 사랑하는 키신은 연주회 후 앙코르를 마라톤으로 선사한다. Photo: E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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