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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운 오리새끼에서 백조가 된 요리사

세계 최고 레스토랑 노마(NOMA)의 르네 레드제피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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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뉴욕 최고 레스토랑 퍼 세(per se)가 뉴욕타임스의 비평가 피트 웰스로부터 별 4개 만점에서 별 2개를 깎여 식당계가 술렁거렸다. 지난 달엔 맨해튼 랜드마크 선샤인시네마에서 다큐멘터리 한편이 개봉됐다. 세계 최고 레스토랑으로 꼽혀온 덴마크 코펜하겐의 '노마(NOMA)'와 셰프 겸 대표 르네 레드제피(Rene Redzepi)의 성공 스토리다. 

 

퍼세와 노마는 테이스팅 코스 메뉴를 제공하며 미식가들을 사로잡아왔다. 하지만, 퍼세의 토마스 켈러와 노마의 레드제피는 키친을 수석 요리사들에게 맡긴 상태. 그래도 세계 최고, 미국 최고 식당의 음식이 한결같을까?  부자들의 지갑과 입맛에 의존하는 테이스팅 메뉴 전문 레스토랑이 지배하는 요즘 요식업계를 다시 생각해본다.

 

다음은 '노마' 리뷰.

*'노마: 나의 완벽한 폭풍' 예고편

 

 

NOMAMy Perfect Stor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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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사는 언어를 창조하는 사람이며, 재료는 알파벳. 그러므로 어휘가 다양할수록 글은 아름다워진다."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 그건 어처구니 없는 것이다. 하지만, 레스토랑을 변하게 한다."

 -르네 레드제피-

 

 

과학 실험실같은 키친, 핀셋/트위저로 마이크로 요리를 장식하는 셰프, 10-20 코스 테이스팅 메뉴에 3시간 이상에 달하는 디너, 이 세상의 1% 이하만 맛볼 수 있는 요리...  요즈음 세계에서 톱 클래스에 꼽히는 레스토랑의 공통점일 것이다. 요리사가 스타가 되고, 세계에서 영향력있는 인물로 꼽히고, 백만장자 대열에 오르고 있다. 미슐랭 스타가 셰프의 운명을 좌우하며, 제임스비어드재단상이 '요리사들의 오스카상'이 되는 요식업계는 무혈의 전쟁터인듯 하다. 

 

최근 한국에도 미슐랭 암행 감사가 나온다는 뉴스 이후 식당들이 업그레이드에 혈안이 되어 있다고 한다. 미슐랭과 더불어 '레스토랑' 잡지가 선정하는 세계 식당 순위까지 가세해서 오스카와 골든글로브상인양 요식업계의 주목을 끌고 있다. 

 

 

26949.jpg NOMA

 

 

'노마(NOMA)'는 덴마크 코펜하겐에 있는 식당의 이름이다. 영국에서 발간되는 잡지 '레스토랑(Restaurant Magazine, http://www.theworlds50best.com/list/1-50-winners)'에 의해서 2010, 2011, 2012, 그리고 2014년 세계 1위의 식당(Best Restaurant in the World)으로 선정된 레스토랑. 

 

그러나, 미슐랭 스타는 2개뿐이다. 노마는 뉴욕의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처럼 우아한 인테리어에 넥타이와 셔츠를 입은 웨이터의 품격있는 서비스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노마는 부둣가의 창고 건물에 자리해 있으며, 웨이터들은 문신을 자랑스러워 한다. 게다가 요리도 미슐랭 평가단을 사로잡는 프렌치나 일식 또는 뉴 아메리칸이 아니라 노르딕(북유럽) 음식이다. 노마는 덴마크어로 노르딕(nordisk)과 음식(mad)을 합성한 조어.

 

 

noma3.jpg NOMA

 

 

세계 레스토랑에 순위를 매기는 것이 과연 마땅한가 하는 의문이 들지만, 모든 것이 수치화되는 시대. 식도락가들이 거품을 물고 1위에 네차례나 선정한 세계 제일의 식당이라면, 분명 특별한 것이 있을 것 같았다. 2016 뉴욕에 미슐랭 스타 3개를 머리에 올린 식당 6곳(퍼세, 마사, 장 조지, 르 버나단, 일레븐 매디슨 파크, 셰프즈 테이블 엣 브루클린 페어)이 요새처럼 요지부동의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면, 도대체 무엇이 노마를 특별하게 만들까? 그것이 궁금했다. 영화는 비행기 타지 않고도, 여행을 하게 해준다. 노마의 키친을 훔쳐볼 수도 있다. 영화관에서 노마 맛여행을 가보았다. 그러나 평일 오후 극장 안엔 5명 남짓의 관객만이 썰렁하게 영화를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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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2.jpg NOMA

 

 

피에르 드샹(Pierre Deschamps)의 다큐멘터리 '노마, 나의 완벽한 폭풍(Noma, My Perfect Storm)'은 노마의 셰프 겸 대표인 르네 레드제피(Rene Redzepi)의 성공과 좌절, 그리고 영광을 담고 있다. 랜드마크 선샤인 시네마에서 2주 남짓 상영되는데 그쳤다. 

 

우연히도 '노마: 나의 완벽한 폭풍'은 덴마크 화가들의 이야기를 그린 톰 후퍼 감독의 '대니쉬 걸(The Danish Girl)'을 본 다음 날 보러 갔다. 평일 낮 관객은 대여섯명에 불과했다. 이틀 연속 덴마크 영화를 보니 비행기 타지 않고, 덴마크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 들었다. 비행기와 식대는 절약했지만, 다큐멘터리 '노마'는 아쉬운 작품이었다.

 

노마의 부상은 뉴욕 중심의 편견을 완화시킬 수 있는 한 단서가 될 것 같았다. 프랑스 요리에 점수를 잘 주는 미슐랭 스타와는 달리 영국에서 출간되는 레스토랑 잡지가 선정하는 베스트 레스토랑 순위는 정보의 균형을 위해서도 볼만한 다큐멘터리임이 분명했다. 노마는 파리나 런던, 로마나 바르셀로나가 아닌 코펜하겐의 식당이다. 프랑스나 이탈리안이 아니라 노르딕(스칸디나비아) 요리를 테마로 한 코스 요리 전문 레스토랑이다.

 

 

noma-doc-rene.0.0.jpg NOMA

 

 

아웃사이더의 북구 요리 혁명

 

이 다큐멘터리는 노마의 셰프 르네 레드제피의 독창성과 리더쉽, 그리고 열정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놀랍게도 르네 레드제피는 마세도니아 출신 이민자이며, 아버지가 이슬람교도이며, 어머니가 덴마크 사람이라는 점이다. 어려서 이민생활을 하면서 왕따를 당했던 소년이었다. 10식구가 한 방에서 뒹굴면서 자고, 텃밭과 가축에 둘러싸여 성장했던 어린 시절이 그의 요리관과 무관하지 않다. 때문에 레드제피는 계절 식재료를 사용하되, 실험적이다. 산 개미를 접시에 올리기도 한다.

 

레드제피가 일본식당에서 일하다가 노마를 오픈했다고 다큐멘터리에선 소개하지만, 사실 레드제피는 캘리포니아의 미슐랭 3스타 프렌치 론드리(French Laundry)의 토마스 켈러와 스페인 산세바스찬에 있는 전 '베스트 레스토랑' 엘 불리(El Bulli)의 페란 아드리(Ferran Adri) 키친에서도 수련했다. 그리고, 팝-업 일식당을 거쳐서 비빔밥으로 탄생한 것이 노마인 셈이다. 이민자이자 캘리포니아와 스페인에서 유학한 아웃사이더의 헝그리 정신이 코펜하겐을 식도락가들의 목적지로 만들었고, 관광객을 끌어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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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드라마에 위기가 있듯이 노마에도 위기는 있었다. 2013년 홍합 때문에 고객 60여명이 식중독에 걸린 것이 세계에 퍼졌다. 그러면서 베스트 레스토랑 자리도 스페인 카탈로니아의 엘 셀러 드 칸 로카(El Celler de Can Roca) 밀려난 것. 하지만, 이듬해 노마는 전화위복으로 '베스트 레스토랑'으로 복귀한다.  

 

 

00001.jpg NOMA

 

 

하지만, 노마가 미슐랭 2스타에 머무른 것에 대해 레드제피는 단호하게 말한다. "별이 뭐 그렇게 중요한가요? 노란색을 좋아하는 것처럼 취향일 뿐이지요." 피에르 드샹의 다큐멘터리에서 아쉬운 점은 레드제피의 이야기와 키친에 비중을 두었지만, 식탁에 나온 테이스팅 메뉴와 고객의 반응 클로즈업은 소홀했다는 점이다. 요리사와 키친의 스토리만큼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식도락가들의 반응, 실험실에서 나온 것 같은 마이크로 요리의 맛이 어떨지 진짜 궁금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전히 멋은 있지만, 맛에 대해서는 모른 채 극장 문을 나서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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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는 12월 18일 뉴욕 랜드마크 선샤인 시네마 등 5개관에서 개봉되어 17일 동안 1만6700달러의 수입을 거두는데 그쳤다. 일본과 덴마크에서 상영됐으며, 2월 호주에서 개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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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는 2015년 베스트 레스토랑 3위로 밀려났다.

'북구 요리의 대부'로 불리우는 르네 레드제피는 어디로 갈까? 2006년부터 2009년까지 4년 연속 1위였던 레드제피의 스승 페란 아드리의 엘 불리(El Bulli)는 문을 닫고야 말았다. 열망은 요리사를 넘어서는듯 하다. 노마가 4차례나 세계 최고의 식당이었다면, 다음 목표는 무엇일까? 에베레스트산을 4차례나 정복한 산악인은 어디로 갈까? 노마는 오픈 12월 31일로 12년 노마의 문을 닫고(모두 예약이 찼다고 한다), 내년 농장을 갖춘 새 식당으로 문을 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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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파라 피자리아의 도미니코 디 마르코씨(왼쪽)와 구루마 스시의 우에츠상. Photo: Sukie Park

 

 

내게 가장 멋진 요리사는 주방을 지키는 사람이다. 인기를 업고, TV 출연하며, 운영자로 물러나면 더 이상 그는 셰프가 아니다. Food Cooking보다 Money Making에 더 주력하는 것처럼 보인다. 요즘 뉴욕 셰프들은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하면, 체인화한다. 마이애미, 라스베가스, 듀바이까지 진출한다. 20여년 전 노부(Nobu)가 지금 세계 도처에 체인을 둔 노부가 다르다. 우리는 그가 만들어낸 레시피를 따르는 조수들이 만든 음식을 먹고 있는 셈이다. 오리지널 셰프의 손맛과 영혼이 떠난 것이다. 

 

브루클린의 허름한 '디 파라 피자리아'의 드 마르코씨나 미드타운 2층 일식당 쿠루마 스시의 우에츠상처럼 70대 안팎의 연로하신 키친을 지키는 것에 비하면, 요즘 인기 셰프들 은 경영인들이다. 노마의 르네 레드제피도 주방의 지휘자일 뿐 이미 연주자가 아닌 것. 모든 것이 거대화하고, 체인화하는 자본 이데올로기에 짓눌린 오늘 작은 식당, 키친을 지키는 연로한 요리사들이 더 아름다워 보인다. 멋은 있지만, 맛이 사라진 요리는 공허하고, 기억에 남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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