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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러브리티
Celebrity(1998)

 

 

celebrity19.jpg 퀸즈보로브리지

 

# 우디 알렌 감독의 영화에 엑스트라로 출연하는 것도 행운이었다. 뉴욕에 온 지 몇개월 되지 않은 어학 연수생이 당돌하게 엑스트라로 자원했다. 1996년 한 여름이었다. ‘타임 아웃-뉴욕’에서 우디 알렌이 제목 미정인 영화의 엑스트라를 오디션한다길래 클래스메이트와 오디션하러 갔다. 땡볕 아래 수백명과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더위를 먹고, 건너편 ‘세렌디피티3(Senrendipity3)’에서 프로즌 핫 초콜릿을 먹은 후 정신 차리고, 다시 오랫 동안 기다린 후 우디 알렌과 2명(아마도 캐스팅 디렉터와 촬영감독 스벤 닉비스트?) 앞에 섰다.

 

 

 약 2-3초 간 서서 ‘Nice to Meet You’를 하니, 안경 뒤로 우디의 눈이 동그레 보였다. 부인이 될 양녀 순이와 닮아서였나 보다. 일주일쯤 후에 ‘엑스트라’ 캐스팅콜을 받았다. 순이와 닮아서였을 것이다. 그 영화가 2년 후 링컨플라자 시네마에서 개봉됐을 때, 제목은 ‘유명인사’ 즉, ‘셀러브리티’였다.

 

*'셀러브리티' 예고편(프랑스판)

 

 

celebrity2.jpg Photo: Miramax 


# ‘애니 홀’ ‘맨해튼’ ‘뉴욕 스토리’ ‘한나와 그 자매들’ ‘맨해튼 머더 미스터리’ 등 뉴욕에서만 영화를 찍으면서 뉴요커들의 총애를 받아온 우디 알렌의 명성은 이즈음 바닥에 내려갔다. 파트너 미아 패로우와 사이의 양녀 순이 프레빈(*사실 작곡가 안드레 프레빈이 양부)의 관계가 발각됐기 때문이다. 졸지에 ‘근친상간’적으로 양녀와 바람핀 파렴치한 남자가 된 알렌이 자전적인 이야기를 만들었다.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 주연의 '달콤한 인생(La Dolce Vita)' 내음이 물씬 풍긴다. 

 

 

주위의 따가운 눈총을 받으면서 만든 ‘셀레브리티’는 흑백영화로, 그의 작품 중엔 가장 부실한 영화이기도 하다. 캐스팅은 캐네스 브래너, 주디 데이비스, 멜라니 그리피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위노나 라이더, 샬리즈 테론 등 화려했지만, 미스캐스팅으로 판명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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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년의 위기에 빠진 작가 리(캐네스 브래너)가 16년만에 아내 로빈(주디 데이비스)과 이혼하고, 모든 것을 바꾸기로 결심한다. 자동차도 바꾸고, 배우, 모델 등 유명인사들에게 추근거리며 수작을 걸면서 새출발을 하려한다. 자신도 유명인사가 되고 싶지만, 쉽지 않다. 영어 교사 출신 로빈은 토크쇼의 진행자가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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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캐스팅콜을 받은 후 의상 스탭이 파티에 갈 정장을 가져오라고 했다. 늙은 유학생에게 무슨 파티? 동대문 시장에서 산 DKNY 재킷과 몇 벌을 들고 갔더니, 쓱 하고 보더니 의상 룸에 데려가서 옷을 골라보란다. 미니 스커트를 들어보이길래 ‘스커트는 싫다’고 하니, 조수는 내게 맞는 엷은 브라운 실크 재킷과 팬츠 한 벌을 추천했다. 테일러에게 가봉을 한 후 옷을 갖고 집으로 왔다.

 

 

일주일 쯤 지난 후 다시 전화. 엑스트라들은 여름날 아침 7시 힐튼호텔에 모여들었다. 수백명의 ‘엑스트라’ 중 대다수는 스크린 엑스트라 길드(SEG)의 회원들이었다. 분장실 7개의 전신 거울 앞에서 미용사들이 엑스트라들을 일일이 분장시켜주고, 정해진 옷 입히고, 핸드백과 액세서리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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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차례가 와서 거울 앞에 앉았다. 미용사가 헤어드라이어로 머리를 손질하는데, 갑자기 전원이 끊겼다. 아무 일도 아니라는 표정으로 미용사는 젤을 듬뿍 발라 내 머리를 ‘올빽’으로 만들어 버렸다. 거울 속의 아시안 여성은 홍콩 영화에서 마피아 두목의 괴퍅한  세번째 애인쯤으로 보였다. 삼삼한 엑스트라를 기대했는데.... 안경을 안썼으니, 소프트 포커스.... 안타깝지만, ‘익명의 섬’ 맨해튼에서 엑스트라 군중 속에서 평생 한번 할까말까한 모험을 하며 즐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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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튼호텔 컨벤션센터엔 엑스트라들을 위한 아침식사(크롸상과 커피)가 마련됐고, 수백명의 엑스트라들은 옷을 멋지게 차려입고 기다리고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기다리는 동안 호텔 안에서 오가는 ‘진짜’ 비즈니스맨들보다 가짜 엑스트라들이 진짜처럼 보였다는 점이다. 진짜가 가짜처럼, 가짜가 진짜처럼... 할리우드는 꿈의 공장이다. 오후 늦게야 건너편 지그펠드시어터에서 촬영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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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엑스트라 오디션을 한 이유는 영화에 나가고 싶어서라기 보다 ‘영화를 어떻게 찍나’ 구경하고 싶어서였다. 충무로에선 간간히 친구들이 영화 찍는 것을 구경한 적이 있었는데, 뉴욕에서는 영화 촬영을 많이 하지만, 철저하게 바리케이트를 치거나, 조수들이 블록한다.

 

기다림의 연속일 줄 알기에 책을 가져갔다. 독서삼매경에 빠져있는데, 심심한 여인이 말을 걸어왔다. 한 6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우아한 백인여성. 그녀는 전문 엑스트라로 우디 알렌 영화에 몇번 나왔으며, 한번은 대사도 있었다고 자랑했다. 계속 기다리다 보니 점심 시간이 됐다. 아주머니 말씀에 “우리는 SEG 멤버라서 유니온(노조)가 있으니, 식사도 챙겨주어야 하고, 오버타임에도 수당을 지급해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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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쩌다 우리 사이에 예쁘장한 젊은 여성이 끼었다. 클레어 데인스를 닮았다. 그리고, 콧수염이 달린 한 엑스트라도 조인했다. 콧수염이 자기가 잘 아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으로 가자고 했다. 윈터가든 시어터 옆의 한 식당으로 우루루 몰려 들어갔다. 그런데, 이 분들은 수프만 시켰다. 클레어 데인스는 “난 ‘제리 맥과이어’에서 기자로 출연했어요!” 콧수염은 “난 며칠 후 ‘로지 오도넬쇼’ 중계방송에 간다. 방청석 티켓을 구했거든!”하며 자랑했다. 메인디쉬를 주문하지 않고, 애피타이저 수프들 위로 이들의 셀레브리티/유명인사들에 관한 대화는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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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다리고 기다리다 5-6시 경 드디어 지그펠드 시어터로 옮기자고 했다. 녹색 레인 재킷을 입은 우디 알렌 감독이 카메라맨과 이야기하는 것이 멀리서 보였다. 우리 잘 차려입은 엑스트라들은 레드카펫이 달린 극장 안으로 들어갔다. 지그펠드는 요즘 시대의 복합상영관이 아니라 고풍스러운 건축양식의 극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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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엑스트라들이 수군거린다. 누구? 멜라니 그리피스야! 내 옆에 꼭 붙어 앉은 우디 알렌 전문 엑스트라 아주머니는 “케빈 코스트너도 한때는 엑스트라였다구”라고 속삭였다. 가수 양희은이 운전을 시작했을 때 자동차 뒷 창문에 "당신도 한때는 초보였다"를 붙였다는 말이 생각났다. 물론이다. 줄리아 로버츠는 메이시백화점의 판매원이었고, 제니퍼 애니스턴도 웨이터레스였고, 잭 니콜슨은 영화사 에이전시 메일룸의 심부름꾼이었다니까.

 

연출 조수가 객석에 앉은 군중을 향해 무어라고 떠들었다. 내겐 안들렸다. 조용히 하라는 말이었는지, 촬영 시작을 알리는 것이었는지는 모르겠다. 기다렸다가 또 다시… 몇 번 손을 휘저으더니, 끝이란다. 아주머니는 “오버타임!”이라면서 사라져갔다. 한달쯤 후에 영화사에서 체크가 왔다. 125달러. 가봉하러 간 교통비 $25과 엑스트라 출연료 $100. SEG 멤버 아주머니는 얼마나 받았는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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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한참 후 영화가 개봉됐다. 흑백영화에, 펠리니 영화 '달콤한 인생’의 미국판이라고나할까? 무언가 바꾸어볼려고 어수선한 삶을 살아가는 남자의 이야기다. 생의 전환기/혼란기에 있던 우디 알렌의 자화상이었나 보다. 아무래도 내가 나오는 극장 장면이 기다려졌다.

 

그런데, 스웨덴 출신 명장으로 한국의 정일성 기사가 존경하는 스벤 닉비스트의 카메라는 영화관의 어두컴컴한 객석을 한번 패닝하더니 끝이었다. 내가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아니 고 장면을 찍기 위해 수백명의 엑스트라들과 분장이 필요했단 말인가? 노장의 프로페셔널리즘인 것이다. 자막에도 이름이 없는 125불짜리 엑스트라였지만, 뉴요커들이 선망하는 우디 알렌 영화의 엑스트라 노릇은 가치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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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동안 런던(매치 포인트), 바르셀로나(비키, 크리스티나, 바르셀로나), 파리(미드나잇 인 파리), 로마(로마에서 사랑으로) 등 유럽에서 영화를 찍어오던 우디 알렌 감독이 최근 어퍼이스트사이드에서 영화를 찍고 있다고 한다. 오랜만에 고향에서 카메라를 돌리고 있는 셈이다. 케이트 블랜쳇, 피터 사가스가드, 알렉 볼드윈이 출연한다는 다음 영화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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