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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의 시대'에 대한 경배

 

 

What is Cinema?
 지난 26일 제 84회 아카데미영화제에서 팽팽하게 경쟁을 벌인 두 작품은 공교롭게도 1920-30년대의 '초창기 영화에 관한 영화들'이었다. 10개 부문 후보에 오른 프랑스에서 온 흑백 무성영화 ‘아티스트(The Artist)’와 11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된 할리우드 3D영화 ‘휴고(Hugo)’의 접전이었다. 여기에 최우수 각본상을 우디 알렌의 '미드나잇 인 파리스(Midnight in Paris)'까지, 올 아카데미상은 노스탤지어의 잔치였다.

 

 

 연기상도 레트로(retro) 성향이 짙었다. 이제까지 17회나 오스카 후보에 올랐던 메릴 스트립은 리얼한 대처 연기를 펼친 '아이언 레이디(Iron Lady)'로 Mr. 오스카(여우주연상) 하나를 더 보태 3분을 집안에 모시게 됐다. 82세의 노장 크리스토퍼 플러머는 게이 아버지로 출연한 영화 '초보자(Beginners)'로 난생 처음 오스카(남우조연상)를 품에 안았다.

 

 

 올 1월 아카데미상 후보가 발표된 후부터 '아티스트'와 '휴고'의 대결은 주목거리였다. 미국에선 거의 무명에 가까운 ‘아티스트’의 미셸 아자나비슈스 감독과 연출 경력 40년이 넘는 베테랑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하필이면 같은 해에 영화에 관한 오마쥬로 세계 관객들과 만났다. 유사한 소재를 가장 심플하게 연출한 로맨틱 코미디와 고난도의 하이테크로 무장한 모험영화가 오스카상 시험대에 오른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노령 회원(*평균 연령  62세)이 대다수를 이루는 아카데미 5765여명의 향수를 불러일으킨 ‘아티스트’가 최우수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작곡상, 그리고 의상상까지 5개 부문을 석권했다.  반면, 휴고’는 아카데미 촬영, 미술, 음향편집, 사운드 믹싱, 시각효과 상 등 마이너 부문에서 5개의 오스카를 받는데 그쳤다.

 

 

 아카데미가 '아티스트'에 표를 던진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스콜세지 영화 제목처럼 '순수의 시대(Age of Innocence)'가 어필했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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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리우드 무성영화 시대에 대한 오마쥬를 담은 '아티스트'가 올 아카데미 작품, 감독, 남우주연, 작곡, 의상상 등 5개 부문을 수상했다.
  이는 아카데미 84년 역사상 첫회에 이은 두번째 무성영화 작품상 수상작이다.  Photo: Peter Iovino/Weinstein Company

   


 두 영화의 각축전이 이에 앞선 2012 그래미상의 극적인 대결을 연상시킨다. 가창력과 가사로 정면 승부한 영국 가수 아델(Adelle)과 무대마다 기상천외한 패션과 안무로 깜짝 쇼를 벌여온 레이디 가가(Lady Gaga)의 대전에서 아델이 KO승을 거두었다. 아델은 ‘Someone Like You’와 ‘Rolling in the Deep’으로 그래미 최우수 앨범, 레코드, 노래, 팝보컬 등 6개 부문을 휩쓸었다.
 

 

 올해의 아카데미와 그래미상 결과가 시사하는 것은 무엇일까? 영화와 대중음악은 그 시대 집단적인 대중의 욕구를 반영하기 마련이다. 영화 ‘아티스트’와 가수 아델의 승리는 오늘날  대중은 단순하고 소박한 것을 갈망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 아닌가? 스마트폰과 소셜 네트워크가 세상을 움직이는 하이테크 시대, 순수함, 소박함과 진정성의 회복을 외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Less is More’, 제프 쿤스의 화려한 쇼맨쉽보다 마크 로츠코의 색면화같은 미니멀리즘으로 우리는 복귀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두 영화 이야기로 들어간다. 할리우드와 파리에서 무성영화가 유성영화(talkie)로 기술혁신을 하고던 시대 이야기인 '아티스트'와 조르쥬 멜리에스가 원시 SF영화 ‘달세계 여행’을 만든 후 잠적한 시대를 배경으로 한 ‘휴고’를 흥미로운 장소에서 봤다. 생각해보니 파리에서 할리우드 영화(배경은 파리)를, 뉴욕에서 프랑스 영화(배경은 할리우드)를 본 것은 무척 아이러니했다. 올 1월 호 파리 여행 갔을 때, 마침 파리를 배경으로 한 스콜세지 영화니 파리에서 보는 것도 기억에 남을 것 같아 영화를 보러갔다. 오페라 옆의 유서깊은 극장 고몽(Gaumont) 에서 플라스틱 3D 글래스를 끼고 ‘위고’를 봤다. ‘아티스트’를 본 곳은 맨해튼 플라자호텔 건너,  버그도프굿맨 백화점 옆의 ‘파리 시어터’였다. 이 극장은 상영작을 믿을 만 하다. AMC Lowes나 Clearview, UA 등 멀티플렉스 극장보다 훨씬 운치있을 것 같아서였다. 사실 타임스퀘어 인근의 멀티플렉스에서는 종일 극장에서 진을 치는 홈리스도 종종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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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2월 링컨센터에서 마틴 스콜세지 감독.
  Photo: Sukie Park

 

 

 

 사족일 수도 있지만, 샛길로 빠지고 싶어진다. 완전매진된 ‘아티스트’를 뒷자리에서 보고 있는데, 상영 중 마지막 줄에서 계속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이야기하는 여인이 있었다. 부언하자면, ‘아티스트’는 무성영화다.극장 안에선  '침묵이 금이다'.  몰상식한 관객이라 생각하고, 너무 괘씸해서 영화가 끝난 후 뒤돌아봤다. 그녀는 다름 아닌 배우 이자벨라 로셀리니. 로셀리니는 이탈리아계 이민자의 자손인 마틴 스콜세지의 세번째 부인이었다. 스콜세지는 로셀리니와 부부였을 때 불후의 명작 ‘성난 황소(Raging Bull)’을 만들었다.

 

 
 로셀리니는 또한 ‘블루 벨벳’’와일드 엣 하트’’트윈 픽스’를 만든 또 한명의 명 감독 데이빗 린치의 연인이기도 했다. 이탈리안 네오리얼리즘의 명장 로베르토 로셀리니와 스웨덴 명배우 잉그리드 버그만의 DNA를 물려받은 쌍둥이 중의 한명이다. 다른 쌍둥이 잉그리드 로셀리니는 NYU와 SUNY에서 이탈리아 문학을 가르치는 교수 겸 박사다. 그날 밤 이사벨라와 대화를 나누던 여성이 잉그리드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들은 소통하는 언어가 이탈리안인지 스웨덴어였는지, 혹은 영어인지는 알 수 없었다. 뉴욕에서 사는 재미 중의 하나가 이런 예술가들을 지나치며 본다는 점이다.
 

 

  리틀 이태리에서 태어난 뉴요커 마틴 스콜세지는 영화학 박사라 해도 좋다. 어려서 천식 때문에 동네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한 채 극장에서 시간을 보냈다. ‘시네마 파라디소’의 토토를 연상하면 딱 알맞다. 그는 뉴욕대에서 영문학을, 대학원에선 영화로 석사학위도 받았다. ‘택시 드라이버’’성난 황소’’굿 펠라스’ 등으로 작가 반열에 오른 스콜세지는 극영화를 연출하면서도 종종 록음악과 영화에 관한 다큐멘터리도 만들었다. 스콜세지는 '굿 펠라스'에서 무려 40곡이 넘는 팝송을 삽입한 열혈 음악광이기도 하다.  

 

 

 96년에 나온 4시간짜리 다큐 ‘미국영화를 통한 마틴 스콜세지와의 개인적인 여정(A Personal Journey with Martin Scorsese Through American Movies)’에서 스콜세지는 미국 감독을 4가지 유형으로 분석했다. 3년 후 ‘이탈리아로 가는 나의 여정(My Voyage to Italy)’에선 로베르토 로셀리니, 비토리오 데 시카, 루키노 비스콘티, 페데리코 펠리니, 그리고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까지 이탈리아 영화의 거장들을 다루었다. 두 다큐를 만드는 동안 ’카지노’와 ‘쿤둔’같은 기대 이하의 영화를 연출한 스콜세지는 2000년대부터 기사회생한다. ‘뉴욕의 갱들’’애비에이터(Aviater)’’디파티드(Deoparted), ‘셔터 아일랜드(Shutter Island)’ 등 업스케일 영화들로 컴백했다. 다큐를 만들며 영화사의 거장들로부터 수혈을 받았을 법 하다.

 

 

멜리에스에게 보내는 러브레터  '휴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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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 몽파르나스역 시계를 돌보며 살아가는 고아소년 휴고.
 Photo: Paramount Pictures

 

 

 

 액션 영화의 거장 스콜세지가 갑자기, 왜 어린이 주인공 영화에 끌렸을까? 참고로 그에겐 다섯번째 아내에게서 얻은 열두살짜리 딸이 있다.(지난 12월 링컨센터에서 열린 뉴욕영화제 50주년 기념 '비천한 거리(Mean Street, 1973)' 상영회에서 스콜세지가 관객과 만났다. 공개 인터뷰 내용은 뉴욕중앙일보 링크(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328597) 참조.

 올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딸이 아빠 옆에 앉아서 영화인들의 잔치를 구경하고 있는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됐다. 조르쥬 멜리에스라는 거장과 딸에게 바치는 영화가 바로 ‘휴고’일 것이다. 그리고 멜리에스는 73세 감독 자신의 알터 에고(alter ego)인지도 모른다.

 


 영화 ‘휴고’는 벤자민 셀즈닉의 베스트셀러 그림동화 ‘위고 카브레의 발명(The Invention of Hugo Cabret)’이 원작이다. (*프랑스어 발음은 빅토르 위고와 같은 ‘위고’지만, 미국에서는 자기네식 발음대로 표현한다.) 1931년 파리, 아버지가 사고로 죽자 고아가 된 열두살 소년 휴고(아사 버터필드)는 몽파르나스 기차역 시계탑을 관리하며 살아간다. 아빠가 죽기 전 박물관에서 가져온 로봇 인형을 수리하려고, 장난감 가게 물건을 훔치던 휴고는 주인에게 발각되고 만다. 주인은 바로 세계 최초의 극영화로 기록되는 ‘달세계 여행’(1902)'의 감독 조르쥬 멜리에스(벤 킹슬리 분)다. 그 화려했던 날은 가버린 것이다. 휴고는 멜리에스의 손녀 이자벨과 로봇 인형의 비밀을 캐기로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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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술사에서 영화감독, 그리고 장난감 가게 주인으로 전락한 조르쥬 멜리에스가 사실 '휴고'의 주인공이다.
 스콜세지는 그가 원시적인 특수효과로 촬영하는 과정을 길게 보여주며 오마쥬를 표한다.

 

 

 스콜세지 감독은 3D 카메라로 기차역을 종횡무진하며 현란하게 이미지를 끌어나간다. 잠깐 파리의 기차역은 바로 영화와 발명가인 뤼미에르 형제가 첫 영화 '기차의 도착'을 찍은 곳이 아니던가?

 

 마술사 출신이었던 멜리에스가 1세기 전 각종 트릭을 써서 SF영화를 만들었다면, 그를 존경하는 스콜세지는 21세기 3D라는 새 테크놀로지로 멜리에스 시대를 컬러풀하게 그려낸다. 관객은 SD라는 롤러코스터를 타고 별세계로 여행을 한다. 하지만, 이야기는 도중에 실종되고 만다. 스토리가 진행되어도 관객은 주인공 휴고를 동정하기 힘들다. 영화사에서 기억할만한 두 명의 토토, ‘시네마 천국’의 살바토레(토토)나 ‘내 영웅 토토’같은 천진무구하고 따뜻한 캐릭터가 아니다. 버터필드의 휴고는 너무 차갑다. 아역배우에겐 미안하지만, 미스캐스팅이다.  또한, 휴고를 추적하는 검표원 사샤 바론 코헨과 검은 개가 휴고를 치열하게 추적하는 장면은 어딘지 사악하며, 현기증까지 일으킨다.

 

 

 아카데미상에선 ‘아티스트’에 눌렸지만, 스콜세지는 올 초 할리우드 외신기자 클럽이 시상하는 골든글로브 감독상을, 영국의 아카데미상인 BAFTA에선 특별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자신의 고향인 아카데미는 프랑스 영화에 최고상을 바쳤다. 참고로 스콜세지는 오스카와 인연이 없다. 그는 총 7번 노미네이트됐지만, 2007년 '디파티드'로 작품상과 감독상을 수상하는데 그쳤다. 

 

 *이 영화 맛보기  

 

 말도, 색채도 없던 그 시대 할리우드  '아티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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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리우드의 엑트스라였던 페피는 유성영화가 도래하면서 스타덤에 오른다. 아르헨티나 출신
 베레니스 비조는 미셸 아자나비시우스 감독의 실제 부인이기도 하다.

 

 

  ‘휴고’가 특수효과가 넘치는 모험영화인 반면, ‘아티스트’가 미니멀리즘 러브 스토리다.  

 

  1927년 할리우드, 무성영화 시대의 스타 조지 발렌틴(장 뒤자르댕 분)은 출연작마다 흥행에 성공하며 수퍼 스타가 된다. 어느 날 영화 시사회에서 엑스트라였던 열혈팬 페피 밀러(베레니스 베조 분)와 부딪히는데, 그만 이 사진이 찍혀 버라이어티지에 'Who's That Girl'로 대서특필된다. 영화기술이 진보하면서 유성영화 시대가 왔다. 'Garbo Talks!'. 무성영화만 고집하던 ‘아티스트’ 조지는 대공황까지 겹쳐 파산지경에 이른다. 아내도 떠나고, 운전사도 떠나고, 애견만이 그의 곁을 충실하게 지킨다. 한편 페피는 조지가 얼굴에 점을 찍어준 후 출연한 유성영화로 스타덤에 오른다. 페피는 우울증으로 자살을 꿈꾸는 조지를 남몰래 사랑하는데….

 


  미셸 아자나비시우스 감독은 그동안 아내인 베조와 뒤자르댕을 콤비로 한 프랑스판 007 액션 코미디 ’OSS 117’ 시리즈로 흥행에 성공했다. 그리고, 비로소 자신이 오랫동안 만들고 싶었던 무성영화에 도전했다. ‘아티스트’는 무성영화가 유성영화로 전환되면서 벌어지는 할리우드 걸작 ‘싱잉 인더 레인(Singing in the Rain)과 ‘스타 탄생(A Star is Born)’의 모티프를 분명히 빌려다 썼다. 조지 발렌틴은 루돌프 발렌티노에서 빌려왓고, ‘시민 케인(Citizen Cane)’의 부부 간 식사 장면 등이 본듯한 장면들이지만, 영화에 대한 사랑이자 오마쥬다.

 

 

 추락하는 무성영화 시대의 스타와 떠오르는 유성영화의 스타 간의 사랑과 구원, 그리고 충직한 운전사와 견공까지 영화와 인간에 대한 경배와 따뜻한 시선이 관객의 마음을 사로 잡는다. 뒤자르댕과 베조의 진실된 연기, 운전사 제임스 크롬웰과 잭 러셀종의 애견 어기(Uggie)의 감초 연기까지 겨울날의 동화처럼 달콤하게 여운을 남긴다.

 

 

 페피가 조지의양복 팔에 자신의 팔을 넣어 로맨틱한 상상을 하는 장면은 오래 기억할만 하다. 작곡가  루드비히 보르스는 대사 없는 이 영화에 다채로운 장르의 음악으로 옷을 입히며 지루할 틈을 없앴다.

 

 

 사실 '아티스트'에 대사가 하나도 없는 것은 아니다. 마지막 장면, 조지와 페피가 영화 촬영 중 댄스 장면에서 조지는 마침내 말문을 연다. 감독이 "컷!"하고 외친 후 "한번만 더 해보겠어요?"라고 요청하자 조지는 "기꺼이요.(With pleasure)"라고 마침내 말문을 연다. 그 발음은 강한 프랑스 억양이다. 빌리 와일더 감독을 숭배하는 한 프랑스 감독이 할리우드 무성영화 시대에 보내는 연애편지의 마침표인 셈이다.

 

 

 ‘아티스트’는 아카데미 역사상 두번째로 작품상을 수상한 무성영화로 기록됐다. 아카데미 시상식은 1929년 시작됐고, 그 해 클라라 보우와 게리 쿠퍼가 출연한 사일런트 무비 ‘날개(Wings)’가 작품상을 수상했다.

 

  *이 영화 맛보기  

 

 

아카데미 회원은?

 오스카상 투표권이 있는 미영화과학아카데미 회원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배우, 감독, 제작자, 영화사 간부, 무대미술, 의상디자인, 촬영기사, 편집자, 분장사, 헤어스타일리스트, 작곡가, 작사가,특수효과맨, 음향기사,  다큐멘터리 감독, 만화영화가, 단편영화 감독, 그리고 홍보 담당 등 15개의 분야에서 뽑힌 할리우드의 엘리트 클럽이다.

 LA타임즈에 따르면, 2012년 아카데미상 투표권이 있는 회원은 총 5765명으로 94%가 백인, 77%가 남성, 평균 연령은 62세, 그리고 이전 수상이나 후보 경력자가 33%로 나타났다. 인종별 자료는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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