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라이트(Moonlight) ★★★★★


절망의 나락에서 피어난 꽃 

A flower blooming from the hell of despair.


<Update>

배리 젠킨스 감독의 '문라이트'가 1월 8일 제 74회 골든글로브상 시상식에서 드라마 부문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했다.

*수상자 풀 리스트 


1663.jpg Moonlight



우리는 스토리를 좋아한다. 소설이나 영화 등 내러티브를 따라가며 남의 삶을 엿보고, 체험하고, 때때로 인생수업을 한다. '레 미제라블' '엉클 톰스 캐빈' '돈키호테'같은 소설은 현실의 시간과 공간을 떠나 주인공이 사는 세계로 상상의 여정을 떠나 감정이입하며 귀중한 체험을 하고 제 자리로 돌아온다. 영화는 2-3시간 다른 이의 삶 속에 풍덩 빠져 '현실의 나'를 접고, '세상 밖의 타자들'을 이해하며 삶의 지혜를 터득하는 방법이 되기도 한다. 


인종이 이슈가 되는 미국에서 소수계 이민자로 살아가는 것 자체가 고단한 일이다. 하물며 흑인, 빈곤, 동성애까지 3중의 굴레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배리 젠킨스(Barry Jenkins) 감독의 '문라이트(Moonlight)'는 흑인 소년이 성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 3부작이다. 영화는 3절의 서정시처럼, 세폭의 풍경화처럼 처절하고 아름답게 그려낸다. 뉴욕타임스의 비평가 A.O. 스캇은 "첫 장면부터 마지막까지 당신이 본 영화 중 가장 아름다운 영화일 것이다. 컬러는 풍부하고, 선명하게 빛을 발한다.(촬영감독은 제임스 랙스톤). 음악은 힙합에서 R&B, 영리한 클래식 선곡에 니콜라스 브리텔의 미묘한 작곡까지 놀랍고도 완벽하다. 그리고, 아마도 '문라이트'의 가장 아름다운 점은 쉬운 요약이나 카테고리에 저항하는 개방성에 있다고해야할 것이다"라고 찬사를 보냈다. A.O. 스캇은 무려 세번이나 보고, 비평을 썼다. 그만큼이나 매혹적인 영화다. 



moviereview_moonlight_110316_image4.jpg Moonlight


 2016 10월 뉴욕영화제에 초청됐던 '문라이트'의 언론 시사회를 여행 일정으로 놓쳤다. 12월에서야 언론의 극찬이 쏟아지는 것에 자극받아 뒤늦게 보러갔다. 흑인, 마약, 왕따, 폭력, 가난, 동성애라는 전혀 유혹적이지 않은 어두운 소재의 '문라이트'는 그러나, 캄캄한 한밤중의 보름달빛 만큼이나 영롱하고, 슬프고도, 아름답다. 달의 이면을 그린 작품이지만, 보고난 후 극장을 나가면서 다음날까지 문득문득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다. 그리고, 다시 보고 싶게 만드는 끌림의 영화다. 대부분의 할리우드 스튜디오 영화처럼 흑인을 조롱하거나, 과장하거나, 미화하지 않는다. 


성공한 흑인감독 스파이크 리처럼 분노에 차있지 않고, 존 싱글턴(보이후드)처럼 싱겁지도 않다. 왕가위 감독의 멜란콜리한 소외는 사치에 가까울 정도다. 지난해 본 짐 자무쉬 감독의 시쓰는 버스 운전수 이야기 '패터슨(Patterson)'도 걸작이었지만, '문라이트'에 비하면 헐렁하고, 순진해 보인다. 슬픔이 복받치는 케네스 로네건의 '바닷가 옆 맨체스터(Manchester by the Sea)'는 '문라이트'에 비하면, 신파조로 느껴진다. A.O. 스캇의 선언처럼 '문라이트'는 2016년 최고의 영화(‘Moonlight’: Is This the Year’s Best Movie?)인듯 하다. 뉴욕타임스의 비평가 스티븐 홀덴(Stephen Holden)도 2016년 영화 1위에, 마놀라 다지스(Manohla Dargis)는 3위에 선정했다. 


*'문라이트' 예고편 Moonlight Trailer



moonlight-11.jpg Moonlight


A Moon in the Gutter


'문라이트'는 샤이론(Chiron)의 이야기를 소년기부터 사춘기, 성년기까지 3부(Little/Chiron/Black)로 그린다. 1부에서 마이애미의 빈곤지역에서 과로에 시달려 마약에 의존하는 엄마와 사는 샤이론은 왜소한 몸으로 별명도 '꼬마(Little)'. 늘 학교에서 늘 왕따 당하는데, 어느날 도망다니던 그를 마약 딜러 후안과 그의 여자친구 테레사가 돌보아 준다. 후안은 샤이론 엄마에게 마약을 팔지만, 아버지 없는 쉬론의 멘토로 그를 보살피고, 바닷가에서 수영도 가르쳐준다.


2부에서 사춘기에 이른 샤이론은 급우들로부터 '동성애놈(패곳)'이라며 폭력에 시달린다. 엄마의 마약 중독은 더욱 심해지고, 마음 둘 곳 없던 샤이론 어느날 밤 바닷가에 다가온 급우 케빈과 육체적으로 친밀해진다. 하지만, 케빈은 급우들의 등쌀에 대표주자로 샤이론을 폭행한다. 상처입은 샤이론은 복수한 후 감옥에 들어간다.  



moonlight.jpg  Moonlight


3부에서 샤이론은 30대 초반의 근육이 왕성한 남자로 후안처럼 마약 딜러가 되어 있다. 엄마는 재활원에 들어갔고, 샤이론은 아틀란타에서 홀로 산다. 어느날 한통의 전화가 온다. 옛날 바닷가에서 친밀했던 사춘기의 케빈, 이제는 식당의 요리사다. 그가 폭행에 사과하며, 한번 오면 요리해주겠다고 제안한다. 샤이론은 그의 다이너로 향한다. 고요하게 흐르는 마지막 시퀀스가 드라마틱하고 파워풀하다.    



moonlight3.jpg Moonlight


배리 젠킨스의 영화가 시처럼 압축적이며, 정갈한 것은 쓸데없는 대사가 없기 때문이다. 1부에서 소년 샤이론의 침묵 속에서 어쩌다 뱉는 말은 생의 아이러니이며 파워풀한 관찰이다. 2부 소년 샤이론의 침묵은 성 정체성의 혼돈, 무력감, 연약함의 상징인듯 하다. 3부에서 성인 샤이론은 케빈에게 침묵하다가 마지막 한 마디를 내뱉는다. 이 말이 아주 오랫동안 관객의 귓전을 맴돌며 고통스럽게 가슴을 울릴 것이다. 



Sound of Silence, Less is More


1.jpg Moonlight


마이애미의 상징인 야자수 트리와 비키니, 나이트 클럽의 사우스비치와는 동 떨어진 리버티 시티(Liberty City)는 흑인 100%의 빈곤지구다. 가난, 폭력, 마약, 10대 임신, 범죄로 범벅된 동네는 소년에게 전 우주다. 배리 젠킨스 감독은 핸드헬드 카메라와 클로즈업으로 쉬론을 둘러싼 사람들을 매우 친밀하게 그려낸다. 여기에 상투적인 마약딜러=나쁜 남자라는 등식의 스테레오 타입이 아니라 보다 복잡하고, 인간미가 있는 인물들로 묘사한다. 

 

'문라이트'에서 물은 중요한 메타포다. 후안이 샤이론을  대리고 대서양으로 나아가 수영을 가르치는 장면은 마치 세례식같다. 쉬론은 욕조에 들어가며 비누로 거품을 낸다. 2부에서 샤이론은 달빛이 교교한 바닷가에서 케빈과 친밀해지고, 케빈으로부터 폭행을 당한 후엔 세면대에 쌓인 얼음 속에 얼굴을 찜질한다. 바다는 엄마의 품이자, 성인식의 상징이다.


배리 젠킨스 감독은 샤이론의 삶을 통해 흑인, 빈곤, 마약, 중독이라는 최악의 환경에서 섬처럼 고립된 한 인간에게 필요한 것이 친절과 소통과 연민과 사랑이라는 점을 일깨워준다. 우리 삶을 돌이켜보면, 어려웠을 때 어깨를 대주는 사람들이 떠오르게될 것이다. 이것이 우리 인간의 삶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줄 터이다.  



2016-10-30-1477863644-6514640-moonlight.jpg 


샤이론 역을 맡은 세 배우(알렉스 히버트 Alex Hibbert, 애쉬톤 샌더스 Ashton Sanders, 트레반테 로즈 Trevante Rhodes)와 후안 역 마허샬라 알리(Mahershala Ali)의 절제된 연기가 '문라이트'를 더욱 친밀하며 감성적인 영화로 만든다.  '문라이트'는 골든글로브상 최우수 작품, 감독, 각본, 남우주연, 여우 조연, 작곡상 후보에 올라 있다.


'문라이트'는 무엇보다도 할리우드에서 반 할리우드적으로 제작됐다. 순수하게 원작, 감독, 배우 등 흑인들에 의한, 흑인의 영화다. 그러나, 모두를 위한 영화다. 소수계 영화로 지리멸렬하게 대도시 몇군데서 상영될 작품이 아니라, 국민영화로 확대 상영되어야할 영화일 것이다. 영화에 백인이 등장하지 않지만, 브래드 피트가 제작자 중 한명이다. 8년에 걸친 긴 제작기간 중 브래드 피트의 격려가 엔진이 되었다. 브래드 피트는 젠킨스 감독에게 "스토리를 가져와요. 나는 스토리를 만들 줄 모르지만, 스토리가 만들어지도록 도와줄 수 있어요!"라고 부추겼다고 한다. 



Boyz II Men


moonlight-19405x.jpg 

마이애미 리버티 시티에 오버랩된 삶. 작가 태럴 앨빈 맥크레이니와 감독 배리 젠킨스. 



스토리의 시작은 예일대 출신으로 맥아더 천재 펠로우인 흑인 작가 태럴 앨빈 맥크레이니(Tarell Alvin McCraney)에게서 왔다. 마이애미의 빈민굴 리버티 시티에서 자란 그는 소년기 어느 날 자전거를 타려 시도했다가 실패하는데, 한 남성이 다가와 자전거에 앉혀놓고 타는 법을 가르쳐주었다고 한다. 그는 마약 딜러 '블루'였고, 바로 영화 속 후안이다. 자전거를 배워놓고, 친아버지에게는 미안해서 못타는 척해야 했다던 청년이 맥크레이니다. 그는 이처럼 기대하지 않던 순간에 찾아온 관대함에 대해서, 블루와 45분간의 만남에 대해 그리워하며 시나리오를 썼다고 밝히고 있다. 


맥크레이니의 원작 '달빛 아래서는 흑인 소년들이 청색으로 보인다(In Moonlight Black Boys Look Blue)'은 대리인을 통해 배리 젠킨스의 손을 들어갔고, 1살 차이인 맥크레이니와 젠킨스는 리버티 시티 한 동네에서 살고 같은 학교를 다녔으며, 둘다 엄마가 중독자였다는 것을 그제서야 알게 된다. 기묘한 운명의 수렛바퀴.  



08JENKINS-MCCRANEY-kids-jumbo-v2.jpg

5-6세 때의 맥크레이니가 세례식 후(왼쪽). 1학년 때의 젠킨스.(NYT)



태럴 앨빈 맥크레이니는 1980년 마이애미에서 태어나 예일대에서 극작을 전공했다. 맥아더 펠로우쉽과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의 거주작가를 지냈다. 현재 마이애미대 교수로 출강 중이다. 1979년 마이애미 출신 배리 젠킨스 감독의 부모는 어려서 별거했으며,12살 때 아버지를 여의었다. 가난한 집에 의탁해 성장하면서 고교 때 축구팀에서 활약했으며, 플로리다주립대에서 영화를 전공했다. 2008년 장편 데뷔작 '멜란콜리를 위한 약(Medicine for Melancholy)'을 연출했으며, '문라이트'는 두번째 연출작이다.


마이애미의 빈곤지역에서 자란 두 소년이 30여년 후에 만나 하나는 맥아더 천재가 되었고, 하나는 오스카상 물망에 오르는 영화감독이 되었다. 가난했어도, 부모에게 버림받았어도, 그들에게는 책이 있었고, 그들의 재능을 발견한 교사들이 있었다. 

그리고, 달빛 행운도 함께 했다. 


*From Bittersweet Childhoods to ‘Moonlight' (NYT) 



Moonlight_(2016_film).png Moonlight Showtime

Regal E-Walk Stadium 13 (247 West 42nd St.)

1:15pm, 4:20pm, 7:15pm, 10:15pm


Angelika Film Center (18 West Houston St.)

11:30am, 2:05pm, 4:45pm, 7:30pm, 10:10pm


City Cinemas Village East (181-189 Second Ave.)

11:00am, 1:40pm, 4:20pm, 7:00pm, 9:40pm



miko-banner.gif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