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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베르 브레쏭 감독 '돈/라르장(L'Argent)' ★★★★★ [Review]
  • sukie
    Nov 01, 2016
  • 절제의 감독 로베르 브레쏭의 걸작 '돈, 라르장(L'Argent)'
    자본주의 속성과 악의 원천에 관한 영상시 ★★★★★ 

    11월 11일-17일 링컨센터 '돈/라르장' 상영
    11월 4일-15일 BAM 로즈시네마 'Bresson on Cine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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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보다 양으로, 정신보다는 물질로 평가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프랑스 감독 로베르 브레쏭(Robert Bresson, 1901-1999)은 다시 주목해야할 인물이다. 20세기 초에서 세기말 기운이 감돌던 1999년 12월까지 살다간 로베르 브레쏭은 42세에 첫 장편영화를 만들었고, 그후로 40년간 겨우 13편만을 연출한 과작의 감독이다. 따라서 그는 프랑스 누벨바그와도 동떨어져 있었다. 누벨 바그의 거장 장 뤽 고다르는 "도스토예프스키가 러시아 소설이며, 모차르트가 독일 음악이듯이 로베르 브레쏭은 프랑스 영화"라고 쓴 바 있다.
     
    최순실 게이트로 한국은 물론 세계의 한인들의 마음을 착잡하게한 최순실 게이트의 핵심인 돈과 권력을 향한 인간의 욕망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이즈음, 로베르 브레쏭의 유작 '돈/라르장(L'Argent/Money, 1983)'이 11월 11일부터 17일까지 링컨센터에서 복원판으로 리바이벌 상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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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라르장(L'Argent)'을 처음 본 것은 대학 시절 삼청동의 불란서문화원에서였다. 퀘퀘한 화학약품 내음이 나던 불란서문화원은 나의 영화에 대한 사랑을 키워주던 시네마테크, 영화 사랑방이었다. 그로부터 30여년 후 링컨센터 시사회에서 '라르장'을 다시 보니, 더 많은 디테일이 보였다.  

    '라르장'은 브레쏭이 톨스토이(Leo Tolstoy)의 단편소설 '위조쿠폰(The Forged Coupon)'을 각색한 영화다. 알프레드 히치콕이 종종 덜 알려진 단편소설을 원작으로 스릴러를 만들었던 것처럼, 단편은 영화의 먹음직스러운 소재다. 장편소설을 각색한 영화는 늘 무언가 부족하다. 장편소설의 디테일한 묘미를 2-3시간 짜리 영상에 담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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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의 한 소년이 아버지 사무실로 찾아가 용돈을 달라고 한다. 아버지는 그달의 용돈을 주지만, 아들은 친구에에 빚이 있다면서 더 달라고 조른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용돈을 덤으로 주지 않자, 이 소년은 자신의 시계를 친구에게 저당잡히고, 친구는 500프랑을 준다. 이것이 위조지폐였기에 도미노로 문제가 발생한다. 소년은 사진가게에서 위조지폐로 액자를 사고, 가게 주인은 가스공(이봉)에게 위폐를 건낸다. 이봉이 식당에서 계산하려하자 웨이터가 위폐임을 알아채고 이봉은 체포된다. 

    경찰은 이봉을 사진가게로 데려기 위폐받은 것을 현장검증하지만, 주인과 직원(루시앙)은 거짓말을 한다. 이 사건으로 이봉은 실직자가 된다. 아내와 딸을 부양해야하는 이봉은 일자리를 찾던 중 은행강도의 도피차량 운전자로 연루됐다가 체포되고, 3년형을 받는다. 이 와중에 법정에서 위폐를 이봉에게 준적이 없다고 진술했던 사진가게 점원 루시앙은 해고당한 후 복수심으로 친구들과 사진가게를 턴다. 그리고, 연달아 범죄를 저지르면서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주는 로빈훗 행세를 하다가 감방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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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편, 이봉은 옥살이 중 어린 딸이 병으로 죽고, 아내도 새 남자를 찾아간 것을 알게된다. 절망해서 모아놓은 진정제를 먹고 자살을 시도했다가 실패한다. 3년 후 석방됐지만, 이봉에겐 갈 곳이 없다. 억울하게 범죄자가 되었고, 옥살이를 했던 이봉은 이번엔 진짜 자신의 의지로 범죄를 저지른다. 호텔 관리인을 살해한 후 서랍을 턴다. 

    그리고, 길에서 만난 친절한 여인의 집에서 은신한다. 이봉은 여인의 아버지가 학대하는 것을 목격한 얼마 후 돈을 훔치려다 아예 가족을 도끼로 몰살한다. 이때 이봉은 "돈 어딨어?(Où est l'argent?)"하고 외친다. 사건 후 이봉은 시내의 한 식당에서 경찰에 자수한다. 감옥이야말로 그에게 가장 편한 집이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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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르장'을 처음 봤을 때 기억에 오래 남았던 것은 아마추어 배우들의 마네킹같은 무표정한 연기와 배우들이 프레임 밖을 사라진 후 여운으로 남아있는 빈 화면들이었다. 얼핏 어설픈 편집으로 보이지만, 브레쏭은 치밀하게 의도한 것이다. 그의 영화에서 빈 화면은 마치 글에서의 패러그라프 간격같기도 하고, 그림에서의 여백같다. 일종의 숨통이자 장면과 장면과의 연결고리다. 따라서, 인물들이 사라진 빈 프레임은 일종의 마침표와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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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에 다시 보면서는 이와 함께 수많은 문들의 열고 닫힘을 주시하게 됐다. 브레송은 파리의 아파트, 사무실, 사진가게, 감옥 등으로 로케이션을 이동하면서 물질만능 도시의 배금주의와 비정함을 각각 열렸다가 닫히는 문, 즉 폐쇄성과 편협성을 보여준듯 하다. 그리고 창틀 사이로 종종 등장하는 인물들은 '자본주의'의 이데올로기, 함정에 빠진 현대인들이다. 배금주의와 범죄의 종착역인 감옥의 철창과 자물쇠는 그 가장 적나라한 상징물이다. 자본주의의 속성이 사유재산이므로 문은 항상 닫혀있고, 잠겨있는 것이다.  

    그러나, 영화 후반에서 이봉이 호텔에서 살인을 저지르고, 은행에서 나오는 여인을 미행해 간 시골에선 늘 문들이 열려있다. 여인은 이봉이 도피 중이라는 것을 알고, 그를 받아들인다. 여인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고 싶다"는 종교적인 말을 한다. 이봉과 그녀와의 관계에서 문들은 모두 열려있다. 이봉은 일만하고, 학대받는 그녀에게 왜 자살이라도 하지 않냐, 기적을 믿냐고 묻는다. 여인은 기적을 믿지 않는다고 답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봉은 학살을 선택했다. 마지막 장면은 이봉이 학살을 자백한 식당의 열린 문을 통해 구경하는 사람들이다. 문. 자본주의의 문, 마음의 문이 화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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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레쏭은 아마추어 배우들을 쓰며, 대사를 절제한다. 그는 그들을 배우 대신 '모델'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브레쏭에게 영화 배우들은 프레임 안에서 말을 많이 하고, 감정을 표출하지 않는 인물들이다. 이로써 관객은 그들에게 바로 동화해버리는 효과가 있다. 즉, 그들의 말과 표정을 통한 감정이입이 아니라 그들이 보고, 겪는 사건 속으로 직접 들어가는 것이다.  Less is More인 셈이다. 브레쏭은 시인처럼 장면과 대사를 압축하고, 절제하면서 관객의 상상력을 동원시킨다.  

    또한, 브레쏭은 배경 음악을 전혀 쓰지 않다가 후반 시골집 여인 아버지의 피아노 연주를 들려준다. 효과음이나 별도의 음악없이 스토리가 펼쳐지다가 피아노 연주로 음악이 튀어나와 낯설게 들린다. 여기서 와인잔이 깨어지며 여인의 출렁이는 커피잔처럼 복선이 된다. 무고하게 체포되고, 수감되고, 가족을 잃은 이봉에게 희망은 없다. 이봉은 처음으로, 자신의 의지대로, 범죄를 저지르고 마는 것이다. 브레쏭은 자본주의의 속성에 대해 쇼킹한 결론을 내린다. 악은 어디서부터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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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레쏭은 '라르장'으로 1983년 칸영화제에서 '노스탈쟈(Nostalgia)의 소련 감독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Andrei Tarkovsky)와 공동으로 감독상(Prix de la mise en scène)을 수상했다. 그리고, 같은 해 뉴욕영화제에 초대됐다. 상영시간 83분. https://www.filmlinc.org/films/largent

    한편, 브루클린아카데미오브뮤직(BAM)의 로즈시네마(Rose Cinema)에선 11월 4일부터 15일까지 브레쏭 영화제 'Bresson on Cinema'가 열린다. 이 영화제에선 '소매치기' '무셰뜨' '시골 사제의 일기' '저항(A Man Escaped)'와 브레쏭에게 영향을 준 '전함 포템킨' '자전거 도둑' '도시의 불빛' '황금광 시대' 등이 상영된다. http://www.bam.org/film/2016/bresson-on-cine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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