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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바 헤세(Eva Hesse)가 오래 살았었다면...

다큐멘터리 '에바 헤세' 솔 르위트와의 아름다운 우정 스포트라이트



001 Barbara Brown.jpg Eva Hesse



"인생의 모든 것이 나에겐 쉽지 않았다. 미술만 빼고는..." 


1936년 독일 함부르크에서 태어난 유대인 소녀 에바 헤세, 두살 때 언니와 나치를 피해 네덜란드로 가는 유대인 어린이용 기차(Kindertransports)를 탄 후 영국에서 부모와 재회, 뉴욕으로 피신했다. 그녀가 10살 때 우울증에 걸린 엄마는 18층에서 투신 자살한다.


프랫인스티튜트를 중퇴하고 쿠퍼 유니온과 예일대에서 수학한 헤세는 아이리쉬계 조각가 톰 도일(Tom Doyle)에 반해 6개월만에 결혼했다. 그러나 도일-헤세의 관계는 4년만에 파경에 이른다.



1963.jpg 톰 도일과 에바 헤세


*에바 헤세와 톰 도일의 무성 영화 Tom Doyle and Eva Hesse: A Silent Movie by Werner Nekes


1964년 독일에서 도일을 레지던트 작가로 초대하자 부인으로 동행, 25년만에 나치즘을 피해 떠나야했던 고향으로 돌아간다. 헤세는 유럽 곳곳 뮤지엄에서 거장들의 작품을 감상할 기회를 얻었다. 독일의 버려진 직물공장에서 도일과 작업하면서 회화에서 조각으로 방향을 바꾼다. 



eva-hesse-doc-05-768x563.jpg 독일 공장에서 작업 중인 헤세, 1964



뉴욕으로 돌아왔을 때 부부 사이는 벌어져 있었다. 유대교로 개종까지 했던 도일은 바람둥이 기질과 알콜벽을 버리지 못해 그녀를 불행하게 만들었고, 마침내 바워리 스트릿 작업실에서 쫓겨난다. 건너편 빌딩으로 이주한 도일은 이혼을 신청한다. 


지난 27일 필름포럼(Film Forum)에서 개봉된 마시 베글라이터(Marcie Begleiter)의 다큐멘터리 '에바 헤세(Eva Hesse)'에선 톰 도일이 변명을 한다. 어느날 도일이 35달러짜리 물건을 샀더니, 헤세가 "나가버려!"라고 소리질렀다고 회고한다. 



"나의 삶과 작품은 떨어질 수 없다."


hesse2.jpg


소녀시절의 악몽과 정신적 지주였던 아버지의 사망, 그리고 이혼으로 인한 우울증과 불안, 뉴욕 뮤지엄에 만연한 성차별주의 분위기 속에서 작업에 대한 불확실함에 용기를 준 이는 동료 작가 솔 르위트(Sol LeWitt)였다. 그와 편지를 교환하며, 자신감을 찾는다. 



sol-lewitt.jpg Eva-Hesse-circa-1959-Stephen-Korbet.gif 

솔 르위트(왼쪽)와 에바 헤세



에바 헤세는 미모에 카리스마가 있었다. 그녀를 짝사랑한 작가들도 수두룩했다. 

같은 유대계였고, 소울 메이트였던 솔 르위트와의 플라토닉 러브는 끝내 아쉽다. 

헤세는 말한다. "어떻게 오빠와 잠자리를 하겠어요?" 

르위트는 헤세보다 8살 위였다. 에로틱한 작품을 종종 제작했던 헤세는 르위트에게서 남성을 느끼지 못했던 모양이다.



 562f8d651900002d00b94f96.jpeg 헤세가 르위트에게 보낸 편지


가장 인상적인 편지는 1965년 솔 르위트가 슬럼프에 빠진 헤세에게 보낸 글이다. 


"작가는 작업 결과 뿐 아니라 과정에도 만족해야 하지요. 그런데, 나는 아니예요." 

-에바 헤세-


"그만 깊은 생각에 대한 근심은 버려요. 

당신은 어리석고, 우둔하고, 생각하지 않고, 비워버리는 연습을 해야 해요. 

그러면, 당신은 할 수(DO)있을 꺼예요." 

-솔 르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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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ar Eva,


Just stop thinking, worrying, looking over your shoulder, wondering doubting, fearing, hurting, hoping for some easy way out, struggling, grasping, confusing, itching, scratching, mumbling, bumbling, grumbling, humbling, stumbling, rumbling, rambling, gambling, tumbling, scumbling, scrambling, hitching, hatching, bitching, moaning, groaning, honing, boning, horse shitting, hair splitting, nit picking, piss trickling, nose sticking ass­gouging, eye­ball poking, finger pointing, alley­way sneaking, long waiting, small stepping, evil eyeing, back­ scratching, searching, perching, besmirching, grinding, grinding, grinding, grinding away at yourself.


Stop it and just 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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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a Hesse, No title, 1969-70, Latex, rope, string, and wire, Dimensions variable,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지난해 4월 다운타운 휘트니뮤지엄 개관전 '미국은 보기 어려워'에 전시된 에바 헤세의 작품. 



남편보다 더 그녀를 깊이 이해했던 솔 르위트와의 우정도 그녀의 죽음으로 종지부를 찍는다. 솔 르위트는 훗날 결혼해서 두 딸을 두었고, 2007년 세상을 떠났다. 


안도버의 필립스아카데미의 애디슨 갤러리(The Addison Gallery)에선 지난해 9월부터 올 1월까지 헤세(1936–1970)와 르위트(1928–2007)의 아름다운 우정에 헌사하는 특별전 'Converging Lines: Eva Hesse and Sol LeWitt'를 열었다. 


evahesse4-e1462395627843.jpg Eva_Hesse_-_Repetition_Nineteen_III.jpg

에바 헤세(왼쪽), Eva Hesse, Repetition Nineteen, III, 1968, fiberglass and polyester resin, 19 units each 19 to 20 1/4" x 11 to 12 3/4", Museum of Modern Art



에바 헤세는 1965년 이후 회화와 조각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업으로 포스트모던, 포스트미니멀리스트의 대표주자로 주목을 받는다. 그로부터 5년간 라텍스, 파이버글래스, 플라스틱 등 혁신적인 소재와 방식으로 치열하게 작업하다가 1970년 뇌종양으로 눈을 감는다. 그녀 나이 34세였다. 이후 구겐하임, 테이트, MoMA, 퐁퓌두센터 등지에서 회고전이 이어졌다. 



hesse1.jpg  *'에바 헤세' 예고편


다큐멘터리 '에바 헤세(Eva Hesse)'는 불꽃처럼 살다간 에바 헤세의 삶을 그녀가 남긴 일기 나레이션(배우 셀마 블레어 목소리)과 친구, 동료들과의 인터뷰로 담담하게 들려준다. 


헤세는 말년에 머리를 싹둑 잘랐고(지금 보아도 힙하다), 뇌종양 수술을 받으면서는 삭발 후 가발을 썼지만 친구들에겐 낙천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만일 헤세가 프랑스 조각가 루이스 부르주아(Louise Bourgeois, 1911-2010)처럼 오래 살았다면, 어떤 작업을 했으며, 미술사에서 어떤 평가를 받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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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Marcie Begleiter(왼쪽부터), 제작자 Karen Shapiro, 촬영기사 Nancy Schreiber, 편집자 Azin Samari


이 다큐멘터리는 여성 제작자(Karen Shapiro), 여성 감독(Marcie Begleiter), 여성 촬영기사(Nancy Schreiber), 여성 편집자( Azin Samar)i가 만든 여성 미술가에 관한 영화다. 여성의, 여성에 의한 영화지만, 이 세상의 모든 작가들이 한번쯤 보아야할 작품일 것이다. '에바 헤세'는 5월 12일까지 필름 포럼(209 West Houston St.)에서 상영된다. http://filmforum.org


*Eva Hesse  미국 상영 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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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 르위트(Sol LeWitt, 1928-2007)

뉴욕에선 컬럼버스서클 지하철역의 리드미컬한 색동 벽화로 친숙해진 미니멀리스트. 솔 르위트는 코네티컷주 하트포드의 러시아계 유대인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 어머니의 손에 끌려 하트포드의 미술관 왜즈워스 아테니엄(Wadsworth Atheneum, 사진 솔 르위트 작품)의 미술 수업에 간 후 화가가 되기로 결심, 시라큐스대에서 미술을 전공했다. 유럽 여행을 하면서 올드 마스터 걸작에 매료되어 돌아온 후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1953년 뉴욕으로 이주한 후 로어이스트사이드의 헤스터스트릿에 정착, 스쿨오브비주얼아트에서 수학했다. 이후 패션 잡지 '세븐틴(Seventeen)'를 거쳐 건축가 I.M. 페이의 사무실에서 그래픽디자이너로, MoMA에서 리셉셔니스트로 일했다.  1960년대  NYU와 SVA에서 가르치다가 1980년대 이탈리아 스폴레토를 거쳐 1980년대 후반 귀국해서 코네티컷주 체스터에서 살았다.  부인과 두 딸을 두었으며, 2007년 78세에 암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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