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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성장의 희생양, 한국 여성 노동자들의 오디세이 

베니스 비엔날레 은사자상 임흥순 감독의 '위로공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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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공단



지난해 베니스 비엔날레(Venice Biennale)에서 은사자상을 수상한 작품은 다큐멘터리 영화였다. 임흥순(Im Heung-soon) 감독의 '위로공단(Factory Complex)'이 큰 상을 받은 것이 궁금했다. MoMA PS1에서도 지난해 5월 비디오 작품 '환생(Reincarnation)'이 상영됐다. 임흥순 감독은 미술과 영화를 부드럽게 융합하는 크로스오버 아티스트인듯 하다.


미술가 출신 감독들의 미장센은 특별하다.

장 콕토에서 구로사와 아키라, 데이빗 린치, 그래픽아티스트 출신 왕가위까지 이들이 구사하는 스타일리쉬한 화면, Moving Images들이 특별히 감각적이다. 최근에는 줄리안 슈나벨(바스퀴아)과 스티브 맥퀸(노예 12년) 등 현대 작가들도 영화감독으로 뛰어들었다.


 

78404129390_727.jpg 위로공단


'위로공단'은 링컨센터 필름소사이어티에서 주최하는 다큐 영화제 'NONFICTION SHOWCASE: ART OF THE REAL'에 초대되어 4월 10일 미국내 최초로 공식 상영됐으며 임 감독과의 대화시간도 열렸다. 그 상영회는 놓쳤지만, 22일 특별 추가 상영회에서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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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들의 삶을 그린 영화들이 있었다.

이문열 소설을 원작으로 한 박종원 감독의 '구로 아리랑'(1989)은 검열에서 21개 장면이 난자당했다. 옥소리, 신은경, 윤예령 등 분칠한 배우들로 대표된 '공순이'들의 스토리는 픽션, 극영화였다. '위로공단'은 한국 최초의 노동영화로 꼽히는 '파업전야'(1990)는 보다는 분노가 거세된 다큐멘터리다. 또한, 신경숙의 자전적며 감성적인 소설 '외딴방'보다는 담담하게 느껴지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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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도 임흥순 감독은 카메라 밖에서 지난날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며 투쟁하던 여공들부터 오늘날의 서비스업 여직원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테라피스트같다. 무덤덤하게 자신의 체험을 이야기하던 그녀들은 마침내 눈물을 터트린다. 시나리오 없이, 그녀들의 기억의 우물에서 길어져나온 진실한 목소리들이 관객을 울린다. 그래서 임 감독의 구로공단은 '위로의 공단'이 된다.


그리고, 이전까지 제 3자인 관찰자(언론)의 가부장적인 시각으로 기록되어온 노동투쟁의 역사는 현장에서 실제로 체험했던 여성들의 체험담을 통해 다시 정리된다. 언론의 HisTory는 '위로공단'에서 HerStory로 다시 쓰여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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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에 의해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 공장에서 일해야했던 수많은 여공들의 이야기는 오늘 선진국 대열에 올라선듯한 대한민국의 공적인 역사에서 묵인되기 쉬운 그늘이다. 임흥순 감독은 고속 성장의 뒤안길에 희생되어온 여성 노동자들의 체험을 폭로하기 보다는 베일을 드리워내고, 이야기를 들어둔다. 우리가 잊어서는 안될 과거이자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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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방직 똥물 투척사건을 담은 이는 동네 사진관의 이기복씨(왼쪽), YH 무역 농성 장면.



우리는 그녀들의 입을 통해 언론에서 떠들다가 사라져간 노동투쟁의 역사를 엿보게 된다. 동일방직 누드 시위(1976), 동일방직 똥물투척 사건(1978), YH무역 농성(1979), 구로동맹 파업(1985), 기륭전자 사태(2005), 한진중공업 크레인 농성(2011), 캄보디아 의류 공장 시위(2014) 등 여성 노동의 역사가 그녀들의 목소리로 담담하게 흘러나온다. 벌집같은 방에서 살면서 저임금에 시달렸던 그녀들이 해고되면 마지막으로 갈 곳은 술집이었다. 이 언니들의 자매애는 페미니스트들의 구호가 사치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절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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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공단이 '구로디지털단지'로 근사하게 바뀐듯 하지만, 노동조건이 개선되었을까? 현대 서비스업에서도 여성 노동자들의 혹사는 이어진다. 한때 부러움의 대상이었던 항공기 승무원들은 무릎을 꿇으면서까지 승객에게 친절을 배풀어야하며, 콜센터 직원들과 마켓의 직원들은 탈의실에서 박스를 깔고 휴식을 취할 정도로 혹사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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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9월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열린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 특별전에서 '연인들(1928)'. Photo: Sukie Park



경원대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임흥순 감독은 그녀들의 인터뷰를 릴레이로 들려주면서 장면전환에 서정적인 비디오 아트같은 이미지로 비주얼한 콤마(시각적 쉼표)를 넣어준다. 캄보디아 앙코르바트(?) 유물 파편, 검은 새떼들과 거리에 촘촘하게 핀 꽃들, 일개미들의 행렬, 떨어지는 꽃잎, 눈 가린 채 대나무 숲을 걷는 여성들, 얼굴을 천으로 가린채 바라보는 인물들(르네 마그리트의 '연인들'에서 착안한듯), 직업병으로 삭발해야했던 여공의 증언에 이어지는 가발공장 장면 등 유연하면서도 시적인 장면전환으로 다큐영화를 사이에 대나무같은 마디마디를 심었다. 



42798_55a474d334fc7_b_11[S614,410-].jpg 위로공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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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키 운동화를 만들면서 나이키 한 켤레 사기 힘든 임금을 받고 살아갔던 여성들. 왜 한국 근대사에서 여성들의 인권이 이토록 유린되었나? 임감독은 2014년 구로공단 50주년 행사를 위해 제작된 '수출의 여인상'을 클로즈업한다. 잔다르크를 닮은 투쟁적인 동상은 풍만한 유방에 유두가 드러나는 씨스루 옷차림이다. 한국의 수출 주역이던 여성 노동자들의 실제 이미지와는 동떨어진 다분히 서구중심적, 가부장적 시각의 위선적인 여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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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프롤로그(김민기의 '야근')와 에필로그('이 풍진 세상') 외에는 거의 배제함으로써 여성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진솔하고, 담백하게 기록된다.


영화의 프롤로그에서 김민기의 노래 ' ' 가 흐르면서 등장하는 캄보디아 유물 파편 이미지는 유구한 세월 속에서도 남아있는 역사의 한 조각이다. 에필로그에서 '이 풍진 세상' 노래가 들리면서 할머니와 중년 여성(도우미?)이 산길을 걸어가고 있다. 다음은 육교로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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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은 알게된다. 그 할머니가 40년 이상 봉제공장에서 일했던 임흥순 감독의 어머니라는 것을. 임 감독은 어머니와 백화점 의류, 냉동식품 매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한 여동생, 보험설계사인 형수의 삶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위로공단'은 임 감독 가족사일뿐 아니라 한국 근현대사에서 희생되어온 여성 노동자들에 대한 헌사의 영상시로 오래오래 기억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오늘의 대한민국은 그녀들의 피눈물이 탑이 되어 쌓아진 것임을 잊지 말아달라고 호소하는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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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 '위로공단'을 보는 심정은 착잡했다. '한류(Korean Wave)'라는 화려한 슬로건으로 포장된 한국산 문화에 대한 관심과 한인 예술가들이의 활동이 눈부시지만, 경제발전의 뒤안길에서 그녀들이 희생했고, 지금도 다른 방식으로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주기 때문이다. 몇년 전 오랜만에 서울을 방문했을 때 마주했던 다소 로보트같은 여성들의 과잉친절 서비스 뒤에는 이런 혹사가 있다는 사실은 불편하다. 


여성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는 어제만의 일이 아니라, 오늘도 계속되고 있으며, 내일도 계속될 것이다. 이것이 어디 제 3세계에서만의 일일까? 뉴욕의 수많은 이민 노동자들도 생존을 위해 이런 노동조건을 감내하고 있을 터이다. 부익부, 빈익빈으로 양극화되는 경제구조에서 수많은 인력이 우리도 모르게 희생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11_12_36__55aefc1407897[S614,410-].jpg  *'위로공단' 예고편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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