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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한때는 엘리스였다

아이리쉬 스타일 아메리칸 드림  '브루클린(Brooklyn)' ★★★


Home is Home. Home is not a Place, It's a fee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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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클린이 뉴스나 스파이크 리의 영화에서 보여진 분노의 보로, 범죄의 온상이 아니라 쿨한 보로가 되기에는 긴 긴 시간이 걸렸다. 우디 알렌,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닐 다이아몬드, 장 미셸 바스퀴아, 노라 존스, 카멜로 안소니의 고향, 데이빗 베컴과 빅토리아 베컴 부부의 첫 아들 이름이 '브루클린'이며, 사라 제시카 파커와 매튜 브로데릭 부부는 브루클린 하이츠에 타운하우스 두채를 사서 개조 중이다. 'Made in Brooklyn'은 멋진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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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 '브루클린(Brooklyn)'의 빈티지풍 포스터와 주인공(씨어샤 로난)의 순수한 눈매에 끌렸기도 하거니와 15년 가까이 브루클린에 살면서 이 영화는 꼭 봐야할 것 같았다. 브루클린의 영화관에서. 


예고편조차 보지 않고 브루클린아카데미오브뮤직(BAM)의 로즈 시네마로 갔다. 맨해튼 개봉관은 $15.50까지 하지만, BAM의 멤버라 $7에 볼 수 있으니. 알고 보니 '브루클린'을 연출한 아이리쉬 감독 존 크롤리(John Crowley)는 바로 영화 '캐롤(Carol)'의 감독으로 물망에 올랐다가 토드 헤인즈에 밀려난 인물이다. 형 밥 크롤리는 브로드웨이 뮤지컬 '원스(Once)'와 '파리의 미국인'의 세트 디자이너.



15-director.jpg 존 크롤리(중앙) 



'캐롤' '브루클린' 모두 1950년대 뉴욕을 다룬 여성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주인공이 백화점의 점원이라는 것도 유사하다. 레즈비언 로맨스와 두 남자 사이에 낀 이민자의 러브 스토리라는 점이 다르다. 덕분에 다시 한번 50년대 빈티지 뉴욕에 빠져 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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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클린' 예고편 


영화를 보면서 1996년 1월 말 구름이 잔뜩 낀 JFK 공항에 도착한 후 한동안 어학생으로, 그후엔 이민자로서 고단하게 살았던 나 자신의 삶과 오버랩되는 것을 어찌할 수 없었다. 아일랜드의 작은 마을 떠나 브루클린으로 이민온 엘리스(씨어샤 로난, Saoirse Ronan)의 스토리 '브루클린'은 모든 이민자들이 한번쯤 보아야할 영화일 것이다. 


그녀의 이름이 이민자들의 관문 '엘리스 아일랜드'와 같다는 것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아이리쉬와는 달리 우리에겐 향수병 외에도 문화 차이와 언어 장애, 그리고 도처에 잠복해있는 인종차별로 더욱 더 고단한 이민생활을 시작했지 않았나? 그 고단증을 피해서 영화관으로, 영화관으로 달려갔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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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의 집으로 저녁 식사 초대를 간 엘리스. 조카가 "이탈리안은 아이리쉬를 싫어해!"라고 공격한다.



그렇다고 영화 '브루클린' 걸작은 아니다. 그저 누구라도 동화할 수 있는 따뜻한 스토리이며, 무엇보다도 탤런트 김희애씨를 연상시키는 씨어샤 로난의 청순하고 말똥말똥한 눈동자와 절절한 연기가 훈훈하게 느껴지는 작품이다. 특수효과 범벅의 액션이나, 관객을 모독하는 코미디, 아이들과 보기에 무안한 유머의 애니메이션이 홍수를 이루는 이 할러데이 시즌, 참으로 참신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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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찾아 뉴욕, 엘리스 아일랜드로 가는 배에서 엘리스.



1952년 아일랜드의 작은 마을, 성깔이 괴퍅한 여인이 운영하는 가게에서 일하는 엘리스에게는 희망이 없다. 남자들도 촌스러운 그녀에겐 관심이 없다. 언니 로즈는 미래를 위해 신부의 도움으로 엘리스를 뉴욕으로 보낸다. 


엘리스는 배를 타고 뉴욕으로 가는 도중 배멀미와 식중독으로 고생하다가 마침내 아이리쉬들이 모여사는 브루클린에 정착한다. 가십을 좋아하는 여인들이 모인 기숙사에 살면서 백화점에 일자리도 얻었다. 그리고 야간엔 회계학 공부도 시작했다. 엘리스는 언니에게 편지를 쓰며 향수병을 달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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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집에 초대되자 기숙사의 친구들이 스파게티 먹는 법을 가르쳐준다.


6.jpg 백화점 직원으로 취직

11.jpg 기댈 언덕이 된 토니



엘리스는 어느 날 파티에서 이탈리안 배관공 토니(에모리 코헨, Emory Cohen)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토니는 가족 없이 외롭고, 고달픈 엘리스의 이민 생활에 의지할 언덕이 되어준다. 뉴욕 생활이 안정될 즈음, 언니 로즈의 갑작스런 사망 소식을 듣는다. 고향으로 가기 전 엘리스는 토니의 제안으로 시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 



brooklyn-saoirse-ronan-john-crowley.jpg 언니의 죽음

17.jpg 금의환향

1-2.jpg 부유한 마을 청년 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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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한 청년 짐과 함께 고향 아일랜드 바닷가를 걷다



아일랜드로 금의환향한 엘리스. 떠날 때의 촌스러운 엘리스가 아니었다. 뉴욕이라는 신세계의 물을 먹은 세련되고 당당한 여성으로 변신한 것이다. 친구 결혼식으로 체류기간이 길어지면서 일자리도 생기고, 부유한 청년 짐과 데이트를 한다. 이 편안한 고향에서 자신이 기혼녀라는 사실도, 뉴욕의 토니도 잊고 싶어한다. 


뉴욕을 잊어버리고 홀어머니와 친구들이 있는 아일랜드에서 짐과 결혼해 안정된 생활을 할 것인가? 아니면, 토니가 있는 브루클린 이민자로 돌아갈 것인가?  엘리스는 어떤 선택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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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관공 토니와 함께 코니아일랜드에서


컬럼비아대 콤 토이빈 교수의 소설을 원작으로 닉 혼비(하이 피델리티)가 각색한 존 크롤리 감독의 '브루클린'에서 단연 돋보이는 것은 청순한 주인공 엘리스 역의 씨어샤 로난의 순박한 연기다. 탤런트 김희애씨를 연상시키는 씨어샤 로난의 연기는 찬사를 받았다. 뉴욕비평가협회가 올 최우수 영화로는 '캐롤'을 선정하면서도 씨어야 로난에게 여우주연상을 안겼다. 물론, 케이트 블랜쳇이 2013년 '블루 쟈스민'으로 여우주연상을 받았기에 영광이 돌아갔을지도 모른다.


'브루클린'은 런던영화비평가협회 최우수 영화, 최우수 여우상을 받았으며,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드라마) 후보에 올라있다. '캐롤'의 케이트 블랜쳇, 루니 마라와의 치열한 경쟁이 예상되는 골든글로브 시상식은 내년 1월 10일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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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스 아일랜드에서 미국 입국 절차를 밟으려는 엘리스.



1840년대 아일랜드의 감자 대기근으로 수많은 아이리쉬들이 식량을 찾아 미국으로 왔다. 100여만명이 식량난으로 목숨을 잃었고, 100만명이 미국으로 이주했다. 하지만, 1952년 엘리스는 보다 낳은 삶을 위해 뉴욕으로 온다. 엘리스의 이민 스토리는 우리 삶에 더 가깝다. 유신으로, 독재 때문에 교육을 위해, 색다른 삶을 위해, 또는 여러가지 이유로 이민자가 된 우리는 어느 정도 향수병과 딜레마를 달래며 살아왔을 것이다. 



21.jpg 기숙사 친구들



뉴욕으로 가는 배를 탄 엘리스는 갑갑한 고향을 벗어났지만, 배멀미와 식중독으로 '성장통'을 겪어야 했다. 또한, 기숙사에선 터줏대감 여인들 사이에서 외톨이가 된다. 하지만, 토니와 당시 최고의 휴양지였던 코니아일랜드로 놀러가기 전 수영복을 챙겨주고, 토니네 가족과 만나기 전 스파게티 먹는 법을 가르쳐 주는 장면까지 디테일이 정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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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_s.gif 토니와 코니아일랜드에서의 데이트


토니가 이탈리안과 앙숙인 아이리쉬 여인에게 빠지는 것, 조카에게 편지를 써달라는 것, 코니아일랜드에서 타월에 가려 수영복으로 갈아입는 장면, 지금은 배관공이지만, 언젠가 롱아일랜드로 데려가 그림같은 집을 짓고 살고 싶어하는 것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애잔한 장면들이다.



BROOKLYN


'브루클린'은 아메리칸 드림이다. '브루클린'은 향수병이다. 

'브루클린'은 우리가 끊임없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 모두 한때 엘리스였기에 영화 '브루클린'을 보면서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된다. 

우리는 어떻게 어디까지 왔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Home is Home. Home is not a Place, It's a feeling.



24.jpg *'브루클린' 상영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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