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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법정에서 형사법정까지

별거(A Separation) ★★★★★ 

부부가 법정에 왔다. 이혼을 하려는 것이다. 이들 사이엔 10대 외동 딸, 그리고 치매를 앓는 시아버지가 있다.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 살고 있는 한 가족의 이야기다. 아스가 파하디가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한 영화 ‘별거(A Separation)’는 올 베를린영화제 최고상인 금곰상,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걸작이다. 26일엔 아카데미상 외국어영화상과 오리지날 각본상 후보에 올랐다.  그리고, 지난 26일 오스카 트로피(최우수 외국어영화상)를 품에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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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순한 부부의 별거로 인해 벌어지는 두 가족의 비극을 추리극의 형식으로 담아낸 이란 영화 '별거. Photo: Sony Classics    

 

 중산층 아내 시민(라일란 하타미 분)은 딸 테르메를 데리고 외국으로 나가려 한다. 아버지를 모셔야하는 은행원 남편 나데르(페이만 모아디 분)는 강력하게 반대한다. 급기야 시민은 파출부를 데려다놓고 친정으로 가버린다. 별거 중인 가정에 어린 딸을 데리고 집 안 일을 봐주던 파출부는 어느 날 낮에 치매 노인을 두고 외출한다. 나데르가 집에 오니 아버지가 침대에 묶여진 채 숨이 넘어가고 있다. 나데르는 돌아온 파출부에게 ‘집에 돈도 없어졌다’며 내쫓는다. ‘도둑으로 몰려 억울하다’는 파출부는 일당을 달라고 매달리지만, 나데르는 뿌리친다. 이때 파출부가 계단 아래로 구른다. 

 

 이 가족에겐 설상가상이나, 관객에겐 점입가경이다. 스크린 속의 인물들은 갈등에 고민하지만, 관객은 더욱 더 극을 즐기게 된다. 나데르는 며칠 후 파출부가 유산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시민과 나데르가 사과하러 병원으로 찾아가지만, 빚더미에 앉은 파출부의 실업자 남편은 ‘아기를 죽인 놈’이라고 공격한다.

  

 나데르는 살인 혐의를 받고, 이혼법정에서 이번엔 형사법정으로 간다. 부모의 결합을 바라던 딸 테르메는 끝내 울음을 터트린다. 며칠 후 부부는 돈을 갖고 파출부 남편에게 합의하러 간다. 그런데, 과연 유산의 원인이 나데르에게 있는 것일까? 코란을 앞에 두고 진실이 도마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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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란에선 딸이 해외에 나가려면, 아버지의 동의가 필요하다. 중산층 가족은 엄마의 열망으로, 빈민 가족은 가난으로 각각 위기를 맞고 있다. 감독은 어느 누구의 편에 서지 않는다. 관객은 아내, 남편, 딸, 파출부, 그리고 그녀의 남편의 행위까지도 모두 동정하지 않을 수 없다.

 

 ‘별거’는 단순한 중산층 가족 멜로드라마가 아니다. 추리극의 형식을 띤 이 영화는 이란의 여성, 계급, 종교와 진실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부부 간의 갈등은 가족 간의 전쟁으로 비화한다. 그런 면에서 조지 클루니가 하와이 셔츠를 입고 식물인간으로 죽어가는 아내의 애인을 찾아 뛰어다니는 할리우드 영화 ‘디센던트(Descendants, 알렉산더 페인 감독)’는 사카린처럼 느껴진다.

 

 영화 오프닝에서 부부가 카메라를 향해 언쟁한다. 감독은 카메라의 시점을 판사이자 관객으로 의도한 것이다. 감독은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테르메와 파출부의 어린 딸로 대표되는 차세대 이란 여성들의 지난할 것이라는 점이다. 테르메 역을 맡은 사리나 파하디는 감독의 딸이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상에 '별거'가 호명되어 아버지가 무대로 올라가자 차도르를 쓴 그녀는 감격해 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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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 외국어영화상 후보엔 '별거'외에 4편이 경쟁했다. 탈무드를 연구하는 아버지와 아들(Footnotes, 이스라엘), 나치 학살을 피해 하수구에 유대인을 숨겨준 폴란드 노동자(In Darkness, 폴란드), 마피아에 체포된 벨기에 농부(Bullhead, 벨기에), 알제리를 탈출해 캐나다의 초등학교 교사가 된 남자(Monsieur Lazhar, 캐나다)를 가볍게 재친듯 하다. 

 

  장훈 감독의 전쟁영화  '고지전'은 한국 대표작으로 출품됐으나 후보에 오르지 못했다. 한편, 오리지널 각본상은 '아티스트''미드나잇 인 파리스''브라이드 메이드' 등과 경합했지만, '미드나잇 인 파리스'의 우디 알렌에게 돌아갔다. 

필름포럼•링컨플라자시네마 상영. www.filmforum.com. www.lincolnplazacinem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