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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병렬/은총의 교실
2017.11.27 11:59

(312) 허병렬: 빵과 서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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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총의 교실 (33) 삶의 원동력


빵과 서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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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우데자네이루 산타 테레사의 벽화.


올림픽이 각종 운동기능을 견주는 것과는 달리, 월드컵은 축구 단일경기의 각축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인 관심을 끈다. 자기도 모르게 축구경기에 몰입하다가 곁다리 즐거움까지 느끼게 된 것을 더 큰 수확으로 안다. 그 곳 경기장에서 벌어지는 아름다운 장면들이 눈에 띄었다. 선수들이 입장할 때 제각기 어린이와 손을 잡은 모습은 말없이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다. 전에도 이런 장면을 본 일이 있지만 한층 아름답게 비쳤다. 각국의 국가를 부를 때의 모습도 여러 가지였다. 선수들끼리 어깨동무를 하는 모습이 이채로웠다.


어쩌다가 보여준 관중석의 어린이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자기 나라가 졌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넘어진 다른 편 선수를 일으켜주는 장면도 보았다. 경기를 하면서 승부를 가려야 하겠지만 그 이전에 우리들은 인간이라고 말하는 장면들이다. 보는 재미에서 빠뜨릴 수 없는 것은 선수들의 유니폼 디자인이다. 티셔츠에 반바지의 간단한 유니폼이지만 각국의 특색을 나타내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색상과 무늬 등의 다양함은 경기장을 아무런 거리낌없이 자유자재로 약동하는 선수들을 한층 더 미화하고 있다.


경기장에서는 오직 발과 머리만 있는 선수들의 팔과 손을 대신하는 것은 골키퍼 역할인 것이다. 선수들은 발과 헤딩으로 공의 방향과 속도를 조절하면서 공을 몰아간다. 그러다가 골인을 하면 천하일품의 볼거리가 된다. 관전 초기에는 선수들이 넘어지는 모습이 안타까웠으나 곧 이것도 전술의 하나임을 깨닫는다.


경기장을 에워싸고 있는 세계 유수기업 광고 중 한국 것이 눈에 띄며 반가워서 앉은 자세를 바로잡게 된다. 그 뒤에 공간이 있어 경호원들이 관객석을 바라보고 서 있다. 관객석 앞에 있는 간막이 디자인이 단순하면서도 효과적이다. 경기 중 적지 않은 선수들이 빨강이나 노랑 티켓을 받게 된다. 규칙 위반을 한 선수는 말 할듯 말듯 하다가 물러선다. 정보기계로 무장한 감시원들은 오판이 나지 않도록 정보교환을 하면서 신속하게 판단한다는 것이다. 


월드컵 참가국을 보면 낯선 나라 이름들이 섞여 있다. 이것이 축구경기의 장점이라고 본다. 축구공과 넓은 마당과 골문만 있으면 어디서나 경기가 가능하다. 그래서 성장 중인 작은 나라에서도 선수를 보낼 수 있다. 월드컵 경기장 중앙 큰 동그라미 둘레에는 인종을 초월하여 친구를 사귀자는 뜻의 표어가 있다. 월드컵 본선 진출 32개국 슬로건을 보면 이들은 경기 이전에 이미 투지를 불태우고 있다. ‘우리는 축구다’를 비롯하여 ‘국기는 나의 인생, 축구는 나의 열정, 월드컵은 나의 목표’ ‘승리를 위한 열정과 갈증’ 등 국가를 대표하는 선수들의 결의가 대단하다.


그러나, 게임에 따르는 승부는 단지 그 때의 게임 결과에 불과하다. 결과보다 중요한 것은 게임에 열중했다는 사실이다. 경기 과정에서 선수와 응원단이 하나가 되어 정열을 쏟은 사실이 존귀하다. 이런 정열은 각 개인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주위 사람과의 유대를 강화하며 소속 국가 민족에 대한 긍지를 가지게 한다. 먹고사는 일도 아닌데 광기 어린 행동으로 열중함이 어리석다고 판단할 것은 아니다.


죽기 살기로 열심히 경기에 참가하겠다고 할 때 왜 이것 때문에 죽어야 하느냐는 질문이 나왔다는 것도 재미있다. 전쟁터에 나가는 결심으로 출전하였다는 아버지 세대와 하나의 게임에 참가하겠다는 자녀 세대와의 거리가 있다. 하지만 경기할 때 승패에 무관심할 수는 없지만 최선을 다했다면 그것도 허심탄회하게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는가. 


미국이 하품하는 만화가 있고 일반인이 흥미를 못 느끼고… 이런 와중에 미국 선수들이 성적을 올리지 못하였다. 이를 두고 축구 경기가 스코어를 올리기에 힘이 들고 성과의 숫자가 작은 것이 원인이라는 지적이 있다. 그럴 듯하다. 하여튼 월드컵은 세계의 축제이고 누군가가 ‘빵과 서커스’가 국가를 다스리는 기본이라고 말한 것을 실감한다. 월드컵도 빵과 함께 삶의 원동력이다.



허병렬100.jpg 허병렬 (Grace B. Huh, 許昞烈)/뉴욕한국학교 이사장

1926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성여자사범학교 본과 졸업 후 동국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1960년 조지 피바디 티처스칼리지(테네시주)에서 학사, 1969년 뱅크스트릿 에듀케이션칼리지에서 석사학위를 받음. 서울사대부속초등학교, 이화여대 부속 초등학교 교사를 거쳐 1967년부터 뉴욕한인교회 한글학교 교사, 컬럼비아대 한국어과 강사, 퀸즈칼리지(CUNY) 한국어과 강사, 1973년부터 2009년까지 뉴욕한국학교 교장직을 맡았다. '한인교육연구' (재미한인학교협의회 발행) 편집인, 어린이 뮤지컬 '흥부와 놀부'(1981) '심청 뉴욕에 오다'(1998) '나무꾼과 선녀'(2005) 제작, 극본, 연출로 공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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