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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자/바람의 메시지
2017.07.16 19:56

(281) 김희자: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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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메시지 (22) 장미와 어린왕자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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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iza Kim, A rose of soul, 33"x33"x4", 2009, Acrylic on natural wood


얀 벽 위 거꾸로 매달린 마른 피같이 검붉은 드라이 플라워 장미다발이 무심한 나를 바라본다. 어쩌면 '벌써 몇년을 그대로 두고 먼지가 쌓이게 버려두냐'고 묻는 것 같다. '충분히 마르고 나면 언제나 꽃을 따서 병에 넣고서 향수를 뿌려 장미의 존엄을 지켜주던 그 행위를 왜 하지 않냐'고 질책을 하는가 싶다. 소위 잊지 말아야 하고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날들에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받은 것들이다. 그 붉은 장미들을 드라이 플라워를 만들어 색깔 별로 유리병에, 큰 토기 속에, 예쁜 도자기의 빈 가슴에 사랑의 추억들을 가득가득 채워 놓았다. 가끔은 향수를 뿌려서 사랑의 향기가 퍼져서 사람들을 순간이나마 행복한 느낌을 나누곤 했다.

  

가끔 붉은 한송이 장미가 예쁘게 투명 포장지에 싸여 리본을 멘 걸 보면 옛날 대학 시절에 문학동호회에서 만났던 시인 지망생이 사랑을 구걸하며 들고온 장미가 떠오른다. 아마 내 일생에 처음이자 마지막의 순애보 영화 속에서나 볼만한 구애 장면이었을 꺼다. 장미 가시에 찔려서 죽은 것으로 전해지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를 흠모하고 흉내를 내는듯 하여서 너무도 역겹고 싫었다. 전혀 얼굴은 기억에 남은 게 없고 단지 초라하고, 삐쩍마른 전형적인 글쟁이 모습이었다는 것만 남아 있다. 분명 매우 순수한 낭만 시인이 되었을텐데, 내가 무어 그리 잘났다고, 그리도 박절하게 대했었나 싶다. 얼마나 마음을 허트시켰을까 생각이 들면 지금이라도 어느 하늘 아래 살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깊이 용서를 구하고 싶다.


그 사람과의 만남에서 영원히 잊을수 없는 쌩텍쥐베리의 '어린왕자'를 소개받은 것은 늘 고마웠다. 어린왕자는 여우에게 자신의 두고온 장미에 대한 고백을 하고, 여우는 그것이 서로 길들여 지는 관계라고 일러주는 장면을 열심히 이야기하면서 그 귀절이 얼마나 멋진가하고... 어린왕자가 자기의 장미가 너무나 앙탈을 하고 고집스럽지만, 늘 물도 주고 보살폈지만, 그 장미를 도무지 이해를 할 수가 없다는 이야기를 여우에게 고백하며, 자기의 별을 떠날 때 혹시 양이 와서 먹어 치울까 걱정이 되어서 유리병을 씌어두고 왔다고... 그게 바로 사랑이지 않겠냐며 어린왕자의 우주적 진실 운운하며 열변을 하던 모습만 아직도 남아있다. 아마도 그는 내게 어린왕자의 복음을 전하러 이 세상에서 잠시 만나기라도 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었다. 왜냐면 나는 그 책 내용 전부를 늘 가슴 깊이 간직하고 살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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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iza Kim, She waters that .....,  45"x65", 1994,  Acrylic on shaped canvas


연히 마음이 헛헛해져서 얼마 동안 내려가 보지 않은 해변에 해당화들이 얼마나 굉장할까 하고 산책을 나섰다. 예상했던대로 긴 모래 언덕에 엷고 진한 분홍색 해당화가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해당화는 장미의 조상격인 야생종이며, 장미가 풍요한 산성 토질을 좋아 하는데 비해, 해당화는 아무 영양가 없이 척박한 모래땅만을 좋아한다. 그래선지 그 꽃잎의 얇기가 마치 내가 어릴 적 꽃 만들때 쓰던 색깔 습자지같이 하늘거려서 더욱 친근감이 가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날이 더워지고 해수욕 시즌이 되면 꽃들이 지고, 부드럽고 통통한 오렌지색 씨들이 남는데 그 또한 참으로 볼만한 광경을 이룬다. 


꽃차 전문가인 친구가 있는데, 그 씨열매로 차를 만들어 먹는다고도 한다. 나는 아직 테이스트를 해본 일이 없지만 꽃의 향기와 더불어 분명 좋은 차일꺼란 생각이 들어 나도 올해는 한번 시음을 해봐야겠다 싶다. 꽃차를 사랑하는 그 친구가 보내주었던 미니 아프리칸 장미차를 처음 마셔보았을 때, 매우 향그럽고 자그마한 꽃들이 찻물 속에서 봉긋이 피어나는 모습이 참 아름다웠었다.


정원으로 돌아오며 펜스 위를 가득하게 매운 분홍색 덩쿨장미들을 몇개 짤라와서 서재에 놓았다. 오랜 만에 흔하디 흔한, 그러나 항상 어김없이 아름다움으로 사람을 매료시키는 장미에 대한 생각을 해본다. 사람들이 기억해야 주어야 한다고 생각되는 날엔 장미를 선물하는게 관례처럼 되어있다. 사실 그것이 특별한 의미가 없이 그냥 축하한다는 의미일 뿐인경우가 보통이다. 그러나 서로 좋아하는 인간관계에선 의미를 띄우기 위해 색깔을 구별해가며 친구냐 연인이냐를 따져가며 주고 받는다. 그 많은 색깔들의 다른 뜻을 어찌 다 알아챌 수 있는지 관심없는 사람에겐 무의미한 것이지만, 혹시그 의미를 해득하지 못했을 땐 난처한 넌센스가 벌어지는걸 소설이나 영화에서 가끔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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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iza Kim, Transient existence, 23"x18", 1999, Acrylic on natural wood


하튼 장미는 모든 인류 역사와 특히 서양 신화 속에서 사랑의 상징이며 숭고함의 표상으로 남아있다. 사랑을 구걸하는 무수한 이들의 그 붉은 장미들은 다 어딘가에서 타올라 불길만큼이나 검게 변하고 재가되어 흩어졌겠지. 셰익스피어의 말대로 사랑은 한 자루의 초와 같은데, 어찌 영원히 타오르기를 기대하냐던 시니컬한 말이 아니어도 열애에 빠진 사람들은 의심없이 사랑이 영원할 것이라고 약속을 한다. 그 사랑의 약속인 장미는 결혼식장을 덮다시피 장식하고, 신부의 손에 들려지고 사랑의 천사 큐피트가 신부의 발길 아래 뿌려준 수천잎의 하얀 장미의 수난을 댓가로 얼마나 행복하게 그 향기답게 그들의 결혼생활을 향그럽게 해주고 있을지. 아마도 그 많은 장미들의 헌신은 공허한 약속이 되어서 그 흗어져 내리고 사라져가는 약속들을 가슴에 에코처럼 모아서 끌어안고 사는 여인들이 내가 하듯 마르고 변질된 드라이 플라워에 인종의 향수라도 뿌리며 버텨내며 살아 가는지도 모르겠다.


장미에 대한 이야기는 그 태생부터가 신화속의 모든 여신들의 비밀스런 사랑과 질투 속에서 피어 난다. 그리스 로마 신화속 에서 흰장미가 미의 여신 비너스(아프로 디테)의 탄생과 함께 태어난다. 그러나 그녀가 사랑한 아도니스의 죽음을 향해 달려가다가 장미가시에 찔려서 그 피가 눈물과 섞여서 붉은 장미가 되었다는 얘기로 붉은 장미의 전설이 신화에서 등장된다. 그리고, 사랑의신 에로스가 어머니의 비밀스런 밀회를 소문 내지 말아 달라고 침묵의 신 헤포크라테스에게 부탁을 하니, 그 응답으로 붉은 장미를 주었다 한다. 그래서 붉은 장미는 밀회의 비밀을 지켜준다는 약속의 의미를 지니게 됐다고 한다. 


그런 탓에서인지 불륜의 연인들은 신화를 알지 못할지라도 육감으로 서로 붉은 장미를 교환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또한,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에서 쫒겨나기 전에는 동산의 장미에 가시가 없었는데, 쫓겨나며 그 들의 원죄를 기억 속에 새기기위해 창조주는 가시를 박았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숭고한 종교 속에서도 장미는 영적으로 모든 종교와 연결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흰색 장미는 그 상징적 의미와 영역을 볼 수 있다.

 

중세 유럽에서는 기독교를 상징하는 꽃으로 중요시하였다. 장미가 기독교의 상징이 된 것은, 지금 우리들이 흔히보는 장미는 19세기후 하이브리드로 변종된 것들이지만, 원종의 장미는 해당화처럼 5잎이기 때문에 기독교의 '성스러운 5'라는 숫자 즉,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혔을 때, 5곳에 상처가 났기 때문에 신성시했다. 기독교에서 장미는 그리스도의 피에서 유래된 은총, 자선과 순교를 의미한다. 또한 백장미는 동정녀 마리아의 순진, 청결, 정조 등과 연관이 있다. 이것은 천국의 꽃이며 아름다움, 완벽 그리고 향기를 나타내는 것이다.  그리고, 황금장미는 교황의 표지이기도하다.  유태인의 경우 장미는 생명수의 일부로 여기고 있었다. 즉 중심에는 태양이 있고 장미 꽃잎은 자연 속의 풍요를 나타낸다고 생각했다. 장미는 곧 우주를 축소시켜 놓은 것이다. 이슬람교에서는 장미가 예언자의 피를 상징한다. 장미의 종교적 의미가 무었인지를 이번 기회에 리써치를 해보았기에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으로'라는 소설의 연원을 이해할 기회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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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자 Wheiza Kim/화가

이화여고 시절 문예반에서 활동한 후 서울대 미대를 졸업했다. 결혼 후 10여년 동안 붓을 꺾고 있다가, 30대 중반을 넘기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으로 다시 작업을 시도하기 위해 성신여대 대학원에서 판화를 전공했다. 1997년 스토니브룩, 뉴욕주립대(SUNY) 방문 초청작가로 와서 한국현대미술을 가르쳤다. 국립현대미술관의 국전을 시작으로 서울과 뉴욕을 오가며 100 여회의 그룹전과 22회의 개인전을 열며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했다. 현재 롱아일랜드 끝자락 노스포크 사운드에 거주하며, 자연과 더불어 작업하고 있다. 

http://wheizak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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