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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파니 S. 리/흔들리며 피는 꽃
2017.05.30 14:11

(271) 스테파니 S. 리: 백 투 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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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며 피는 꽃 (26) 학생이라는 직업

Back to Sch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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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phanie S. Lee, Aspiration & Modern Aspiration, 2015, Ink, color and gold pigment on Korean mulberry paper


“'앎' 은 '퇴적' 과 '침식' 을 동시에 당한다. 살아가면서 자연스레 알게 되는 지식이 있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깎이고 떨어져 나가는 지식도 많다. 공부는 끝이 없다는 뻔한 말이 새삼 무겁게 다가오는 경우도 많다. 여전히 모르는 게 많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 특히 그렇다."  

-이기주 '언어의 온도'-


이 키우느라 당장 직장엔 못나가더라도 뭐든 해봐야 겠다는 생각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지만, 작업활동을 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상당한 비용이 드는 일이었다.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리거나 재활용품을 조합하여 작품을 만드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림을 대하는 마음은 자식을 키우는 마음과 같아서 아무리 모자란 아이라도 내 자식은 이왕이면 힘 닿는데까지는 좋은걸 먹이고 입히고, 좋은 곳에 데려가 구경시켜주고 싶은법이다. 


그런데 붓하나 색 하나를 사도, 액자를 만들어도 만만찮은 비용이 나가니 전업주부로서는 감당하기에 벅찼다. 남들은 남편이 돈 잘 버는데 무슨 걱정이냐 하지만 나는 남의 편 돈을 쓰는게 영 마음이 편칠않다. 아이 키우는데 드는 비용이야 당당하게 받아 쓴다 하지만 적어도 내 개인적인 작업을 하는데 드는 돈 만큼은 스스로 벌어써야 마음의 짐 없이 마음껏 재료를 쓰며 작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짬짬이 그림도 가르치고 디자인일이며 행잉 프리랜스 일도 하지만 투자하는 시간에 비해 댓가가 미비하고 믿을만한 고정수입이 되어주진 못했다.  그래서 평생 재료걱정없이 오래 그림 그릴 수 있으려면 다시 취업을 하는 수 밖에 없겠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고, 그래도 그림과 멀어지는 일 말고 최대한 관련된 분야의, 평생 할 수 있는 직업을 찾다보니 뮤지엄에서 일하는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도 늘 상업 갤러리보다는 도서관이나 공공기관에 관심이 많았고, 그림 그리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뮤지엄이란 기관에 관한 존경심이 있지 않은가. 아주 작은 역할이라도 그런 곳에서 일 하며 나온 수입으로 내 그림을 평생 그릴 수 있다면 참 이상적이겠다 싶은 욕심이 들었다.  


그런데 여기 저기 알아보니 내가 할 수 있는 대부분의 뮤지엄 관련 직업은 대학원 학위를 전제로 했다. 이런, 돈 벌려고 하다 돈 놓고 돈 먹기 되는게 아닌가.

그동안 졸업 후 받게되는 연봉이 부은 학비에도 못미치는데, 본전도 찾지 못하는 학위가 무슨 의미가 있냐. 배움의 목적은 올바른 사회의 구성원이 되는게 아니던가? 성토하며 미뤄왔던 대학원인데…  왠지모를 억울함이 솟았다가 이내, 공부할 동안 애는 누가 봐주나… 만만치 않은 학비는 어찌하나… 하며 풀이죽었다가를 갈팡질팡 하며 핑계거리를 찾아대었지만 결국 다시 학생이 되어보기로 마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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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phanie S. Lee, Aspiration & Modern Aspiration, 2015, Ink, color and gold pigment on Korean mulberry paper


나이에 대학원 학위를 딴다 한들 다시 일을 할 수 있겠나, 계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 육아와 직장 두 가지를 병행하기도 힘든데 거기에 직업까지 더해 해 낼 수 있을까, 가난해야 진정한 예술이 나온다던데 돈 때문에 직업을 갖겠다는 생각이 맞는 것인가, 그림 그리는 일 하나에만 전념해도 좋은 작업이 나올까 말까하는데 다시 고려해야 하는 것 아니냐…  이런저런 우려의 목소리와 걱정이 많았지만 사실 속 마음은 학비가 해결되고, 시간만 허락한다면 사회에 돌아가지 않고 평생 학생하며 살고 싶다.  뭐든 틀려도 되고, 몰라도 용서받는 그런 편한 직업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그리고 앞으로 남은 생을 언제나 새롭게 보고 배울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차피 그림 그리는 것을 평생 하고 싶은 이유도 늘 새롭게 보고 배우는 과정이 그림 그리는 행위이기 때문이 아니었나. 


처음에는 다 안다고 자만하던 사람이 그동안 얼마나 모르고 살았는지를 깨달음으로서 겸손하게되고, 종래에는 남들도 나만큼 모른다는 걸 알게되어 모르면서 안다고 우기는 뻔뻔함을 갖게 되는 게 배움의 과정이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지만, 어찌되었던 간에 이전에 알지 못한 것들에 대해 알게된다는 것은 축복받은 일이다. 


Museums & Digital Culture. 뭔가 나에게 딱 맞는 이름의 학과를 발견해서 대학원(Pratt Institute))에 가겠다는 결심은 섰지만 역시나 또 돈이 문제였다. 이 나이에 학비를 핑계로 손벌리기 싫은데 주부로 오래 있던 터라 몫돈은 없고, $11,000의 장학금을 받아도 모자라서 딸의 학자금으로 모아뒀던 돈을 꺼내쓰기로했다. 그래, 하늘이 무너져도 다 솓아날 구멍이 있는 법이구나. 내가 이러려고 다달이 이 돈을 모아왔던가 보다. 죄책감 갖지말자. 행복한 엄마 밑에 행복한 아이가 자란다고 하지 않았나. 그러니 내가 먼저 살길을 찾아야지. 우리 딸은 똑똑해서 전액 장학금을 받을지도 모르잖아. 내가 얼른  직장을 구해서 다시 메꿔 넣으면 되지…하고 자기최면을 걸며 일을 저지르긴 했지만 뒤늦게 시작한 학생의 길이 쉽지많은 않아 늘 긴장하며 보낸 첫 학기였다.


아이 맡길 곳을 찾지 못해 동동거리고, 숙제 마감시간을 맞추느라 조마조마해 하며 못자고, 못먹고, 쫒기듯 매일이 바쁜 ‘시간 거지’ 였다. 흰머리가 신경쓰여 염색한 머리는 아예 숱이 다 빠져 휑해졌고 때아닌 여드름이 마구 돋아나 만나는 사람마다 너무 말랐다, 피부가 많이 상했다하며 걱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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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bin Museum Café & Happiness Tea  Photo: Stephanie S. Lee


래도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우여곡절 끝에 한 학기가 무사히 끝났다. 학교 하나만으로도 버거운데 유난히 이런저런 일들이 많아 숨쉴 틈이 없던 날들이 기적처럼 무사히 지나가서 얼마나 감사한지… 무사히 맞이하는 첫 학기의 마지막 날을 기념하며 학교 근처 루빈 미술관에서 나만의 명상의식을 갖는다. 흘러나오는 티벳 음악 속에서 ‘happiness’라는, 와인처럼 붉은색의 근사한 이름을 가진 차를 마시는 지금 이 순간의 행복감과 안도감이란… 


다 큰 어른들이 모이는 장소 어느 곳에서나 그렇듯 학교 안에서도 서로의 에고와 에고가 부딪치느라 팀으로 하는 과제는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했지만, 학기를 끝내는 시점에서 학생들은 다시 여유를 되찾아 서로를 격려하고 위로한다. 빡빡한 수업들 속에 날카롭던 신경들이 다시 평정을 유지해  많이 웃고 농담도 하며 강의실이 시끌벅적하게 들떠있다.  그래, 다들 잘 해보자고 그런거 아니었겠나. 결국 우리는 여기서 다 같은 초년생이니까.


첫 학기가 끝나고 같은반 젊은(?) 친구들은 벌써 직장을 구해 일을 시작하지만, 늦깍이 학생인 나는 그저 수업을 무사히 완주한 것에 만족하기로, 조급하게 마음먹지 않기로 한다.  들인 학비를 생각하면 수업보다 취업에 신경을 더 써야 하는게 아닌가 하며 신경이 쓰이기도 하지만 ‘여기까지 온 것도 장하다 장해’ 하며 스스로 위로한다.  짧다면 한없이 짧지만 길게 보면 또 시간은 얼마든지 있지 않은가. 


학기말 발표가 끝난 어젯밤부터 이번 주말까지는 마음 먹고 쉬자고, 나를 위해 시간을 쓰자고 다짐했다. 보고싶었던 영화를 봤고, 아이와 함께 요리를 했고, 12시 이전에 잠들었다. 아침등교시간에 늦지 않았고, 아이가 불러주는 노래를 듣고 함께 웃었으며 그동안 못했던 운동을  다시 시작했다.  오늘 점심 라면은 냄비째 먹지 않고 이쁜 그릇에 제대로 담아 천천히 먹었다. 꽃 묘목에 물을 주고 긴 목욕을 하고나니 개운함과 함께 행복감이 밀려온다. 이대로 잠들었으면 딱 좋겠지만, 아이를 데리러 가야할 시간이라 다시 길을 나선다. 그래도 행복하다. 오늘 나는 만수르 부럽지 않은 시간 부자였다.


시간을 되찾으니 마음도 평정을 되찾고 여유를 부린다. 별것 아닌데 엄살을 떨었었나보다. 내돈 주고 내가 간 학교 다니는 게 뭐가 그리 힘들다고 세상에 온갖 짐을 다 떠안은양 부담을 가졌던가… 다음 학기는 조금 더 여유있게 대처하기로 마음 먹어본다. 


배우 윤여정이 “저도 67세는 처음이에요.” 라고 했듯 어쩌면 우리는 인생에서 모두 처음을 살아가는 초짜 학생들이니까 몰라도 괜찮다. 모른다는 것을 알때는 초조하지만, 다같이 모른다는 사실을 알면 여유가 생긴다. 인생이 언제 계획한다고 계획대로 착착 돌아가주더냐.  처음 배우는 학생의 마음으로 우선은 주어진대로, 닥치는 대로 살고 보자 결심한다.



Stephanie_100-2.jpg Stephanie S. Lee (김소연) / 화가, 큐레이터 
부산에서 태어나 예술고등학교 졸업 후 1996년 뉴욕으로 이주했다. 프랫인스티튜트 학부에서 그래픽디자인을 전공한 후 맨해튼 마케팅회사, 세무회사, 법률회사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다가 딸을 출산하면서 한동안 전업 주부생활을 했다. 2010년 한국 방문 중 우연히 접한 민화에 매료되어 창작민화 작업을 시작했다. 2014년 한국민화연구소(Korean Folk Art)를 창설, 플러싱 타운홀의 티칭아티스트로 활동하며, 전시도 기획하고 있다. http://www.stephaniesle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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