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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56) 김희자: 일장춘몽(一場春夢) [김희자/바람의 메시지]
  • sukie
    Mar 21, 2017
  • 바람의 메시지 (18) 달콤한 인생 (La Dolce Vita)


    일장춘몽(一場春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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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heiza Kim, Wave in silence, 12"x15"x2", 2005, Acrylic on wood with mirror


    늘과 바다가 분별이 되지않는 새벽, 눈 쌓인 창문을 여니 찬 바람이 바늘 침들처럼 뺨에 꽂힌다. 매우 추운 날씨다. 얼른 창을 닫고서 눈만이 눈밭 산책을 나선다. 지난밤 미친듯이 몰아 붙이며 흔들어대던 바람은 수평선 넘어 어디선가 지쳐 골아떨어졌는지, 거세던 파도 소리조차 깊은 잠에 빠진듯 조용하다. 온 숲이 아직 꿈을 꾸고 있는듯 하다. 겨우내 추위로 떨고 섰던 나무들이 부드럽고 긴 하얀 드레스를 입고 손가락 끄트머리까지 우아하게 하얀 장갑들을 끼고 소근거리고들 섰다. 블루스프러스 나무들은 층층 프릴이 달린 풍만한 드레스를 입고서 다정스레 행열을 짓고서 서로의 모습들을 다독이며 신부를 기다리는 들러리들 같다. 웨딩 마치와 함께 결혼식이 곧 시작되고 신부가 어마어마한 페티코트 웨딩 드레스와 긴 면사포를 끌며 들어서는 광경을 연상하며 즐거워하는 내 자신이 참으로 어린 아이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혼자 미소를 진다. 


    겨울을 저주할 만큼 싫어하면서도, 눈이 온 날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축복 받은 날로 느끼는 감정적 이기심이 우스워서다. 내 남편이 자주 내게 하는 퉁이 "너는 언제나 꿈 속에 산다"이다. "정확히 보셨군요"하고, 말은 삼키고 눈 흘기며 대답을 돌려준다. 어차피 인생은 깨고보면 꿈이라는데, 나는 언제나 깨어나고 싶지않은 좋은 꿈 속에서처럼 살고싶은 사람이다. 혹여, 나쁘고 무서운 꿈으로 가위에 눌려도 '꿈이야, 꿈'하고 나를 깨울 능력도 이제 생겼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요즈음 3월의 날씨저럼 겨울과 봄이 시기 질투로 싸움질을 하는 때이면 내 기억의 터널 속으로 영롱한 빛줄기처럼 새어드는 정말 꿈같은 풍경이 하나 있다. 강원도 오대산 상원사에서 하룻 밤을 묵고 적멸보궁(寂滅寶宮)으로 등산을 했을 때 접했던 문자 그대로, '몽유선경'이라 불러야할 한 풍광을 일생 잊을 수가 없다. 나뭇가지 가지마다에 밤에 쌓였던 눈들이 녹아서 길게 얼어 내린 가느다란 고드름들이 햇살에 반사되어 숲 속의 모든 나무들이 수천개 크리스탈 샹들리에가 되었다. 빛이 투사되어 만든 영롱한  무지개들을 머금고서, 부는 바람에 살랑대며 흔들리는 수억개의 고드름들이 서로 부딪히며 내는 청아한 소리는 마치 이승이 아닌 저승에 간듯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천상에나 있을 거대한 악기가 빛과 소리를 섞어서 연주를 하고 있었다. 말 그대로 황홀경이라고 밖엔 표현할 수 없는 그 광경은 내 영혼 속에 상감이 되어져서 아마도 죽어서도 지워지지 않을 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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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heiza Kim, Awaken the stream, 55"X20"X3", 2003, Acrylic on wood with mirror



    금도 그 장면이 되살아 오면  가슴이 맑아지고 정신이 투명해진다. 그 광경을 작품으로 표현해보려 무수히 시도를 해보았지만, 그것은 빛이기에 색깔로는 표현이 불가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글쎄 언젠가 디지탈로 빛을 표현할 작품을 한다면 그것부터 먼저 시도해볼꺼다. 어쩌면 그리도 보고 싶었던 제석천(帝釈天)의 제망 찰해(帝網刹海) 를 구경하고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꿈같은 경험들이 보석처럼 무의식 속에 숨어 있다가 빛을 발하며 어떤 영감이 되어 영혼이 충만함으로 차오르면, 이 세상에 살아있음에 깊이 감사하게 된다. 


    한때 나는 꿈과 무의식에 대한 관심으로 자의식이 없는 무아의 세계로 가보고 싶어서 수행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 그 당시에 내가 알고 있었던 최면이나 관조명상은 일종의 신비주의로 인도의 수피이즘에서 유래된 것인데, 그것을 한국의 선불교에 가서 구할 수 있으리라고 잘못알고 접했었다. 물론 나중에 알고 나니 잘못 간 것이 제대로 가게된 것이어서 천만다행이 되긴 했지만. 인간 정신의 최상의 경지라고 부르는 깨어있는 정신으로 초월하는 도리엔 가볼 수 없었다. 도달할 지, 못도달할 지도 모를 머나먼 열락의 세계를 꿈꾸며, 먼저 모든 감성의 문을 걸어 잠그고 침묵과 좌선에 들어 화두를 들어야 했었다. 꿈 속에서 꿈을 꾸며 망상을 키워내는 일이 천직인 나에겐 힘든 일이 었다. 그들이 말하는 도깨비굴 속에서 살기가 내 삶이라 하나 후회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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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heiza Kim, Forever dreaming, 48"x16"x4", 2010, Acrylic on wood with mirror



    나마도, 온갖 미망의 잡념 중에도 수련을 통해 삶은 오로지 한 길만은 아니라는 터득했었기에 모든 중생은 미물까지도 자신의 고유성을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난다는 진리의 말이 나를 억지쓰기에서 풀려나도록 해주었다. 내 삶에 주어진 은혜 만큼이라도 받아 들일줄 알고, 음미하며 사는 것이 내 길이라고 생각되어서 포기하고 돌아섰다. 윌리엄 블레이크가 일러주는, 한 알의 모래 속에서 세계를 보고,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보려면, 그대 손바닥에 무한을 쥐며, 찰나 속에서 영원을 보라는 경지가 내게는 더욱 설득력이 있었다. 그러한 경지를 보려면, 묵상을 통해 아집을 비우고 오감을 열어 만물과의 걸림이 없는 응시로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가야만이 도달될 것이기에. 

                                                                            

    선불교 공부할 때 들은 안수정등(岸樹井藤)이라는 공안(公案)이 가끔 생각날 때가 있다. 우리 인생의 조건과 삶에 관한 비유이다. 허허 벌판에서 미친 코끼리에게 쫒기고 쫒기다가, 한 우물을  만나게 되어서, 드리워져 있는 칡넝쿨 두레박 끈을 타고 겨우 숨게 됐다. 살았구나 싶어 숨을 돌리고서 깊은 바닥을 내려다 보니 독사들이 우글우글거리고 있는게 아닌가. 아이쿠 또 죽었구나 하고 넋이 빠져 매달려 있는데, 무슨 사각대는 소리가 위로부터 들려 올려다 보니, 하얀 쥐 한 마리와 검은 쥐 한 마리가 칡넝쿨을 갉고 있었다. 이젠 죽음을 면할 길이란 없겠구나 하고 눈물을 글썽이며 하늘을 올려다 보노라니, 벌집 하나가 우물 벽에 매달려 있어서 입 속으로 꿀 방울이 똑똑 떨어지지 않겠는가. 자, 이런 상황에 대해 너는 무어라 답을 하겠는가? 라는 화두이다.


    아 ! 달다! 어느 깨달은 선승의 답이다. 바로 그 '달다'가 삶의 은혜이며 살아 깨어있는 의식의 외침이다. 진정으로 영혼이 자유로운자만이 죽음의 상황 속에서도 생의 에너지를 자아올릴 수 있다. 삶이 아무리 절망스러워도 깨고나면 한낮 꿈에 불과할 뿐이라 하지 않는가. 앞으로 남은 삶의 시간들을 너무도 아름다워 깨고싶지 않은 꿈 속에서처럼 충만함으로 가득 채울 수 있고, 삶이 축제인양 살아가려 다시 한번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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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희자 Wheiza Kim/화가

    이화여고 시절 문예반에서 활동한 후 서울대 미대를 졸업했다. 결혼 후 10여년 동안 붓을 꺾고 있다가, 30대 중반을 넘기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으로 다시 작업을 시도하기 위해 성신여대 대학원에서 판화를 전공했다.1997년 스토니브룩, 뉴욕주립대(SUNY) 방문 초청작가로 와서 한국현대미술을 가르쳤다. 국립현대미술관의 국전을 시작으로 서울과 뉴욕을 오가며 100 여회의 그룹전과 22회의 개인전을 열며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했다. 현재 롱아일랜드 끝자락 노스포크 사운드에 거주하며, 자연과 더불어 작업하고 있다. 

    http://wheizak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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