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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52) 이영주: 문화 아지트 '카카듀' [이영주/뉴욕 촌뜨기의 일기]
  • sukie
    Mar 06, 2017
  • 뉴욕 촌뜨기의 일기 (40) 유별난 카페들 


    문화 아지트 ‘카카듀’


    글: 이영주  사진: 이명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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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들의 청춘은 다방 문화 속에서 꽃피었습니다. 여학교 때 얼결에 선배 언니 따라간 명동의 다방에서 공초 오상순 선생을 뵌 것은 일대 사건이었습니다. 백발의 짧은 머리 공초 선생은 고고한 인상으로 뵙기만 해도 압도적이었습니다. 선생이 먼 곳으로 시선을 향하고 담배를 피우시던 그 몽롱한 모습과 다방의 분위기가 틴에이저인 제겐 그렇게 멋있을 수 없었습니다. 문학의 꿈은 그래서 확실해졌던 것 같습니다. 다방이 일종의 문화아지트 노릇을 하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대학에 들어가면서부터는 고교 때 몰래 간혹 드나들던 고전음악 감상실 ‘르네상스’에 가는 걸 훈장처럼 여겼습니다. 당시 민주당 당사가 있던 인사동 골목 안의 르네상스에 가면 열심히 책을 읽거나 무언가를 몰두해서 노트에 끊임없이 쓰는 사람들, 음악에 맞춰 큰 몸짓으로 지휘를 하는 사람 등등, 그 광경도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나중엔 르네상스가 광화문으로 이사했는데, 왠지 분위기가 낯설어서 또 하나의 고전음악 감상실인 을지로의 ‘아폴로’를 아지트로 삼았습니다. 


    뭐니뭐니해도 우리들 아지트는 다방이었습니다. 문학을 하는 친구와는 을지로 입구 명동 올라가는 샛길에 자리한 ‘설파 다방(여기도 클래식 음악만 틀어줬다)’이 만나는 장소였지만, 광화문에 있는 ‘수련’다방이 우리들의 아지트였습니다. 강의가 끝나면 의레 거기에 가서 죽치고 앉아 DJ에게 줄줄이 희망곡을 신청해서 듣고 또 들었습니다. 시험 공부도 거기서 하고, 글도 거기서 쓰고, 책도 거기서 읽고, 심심해도 거기로 갔습니다. 가보면 우리 패거리 중 하나는 늘 거기 있었습니다. 키가 멋없이 크고, 바짝 마른, 얼굴이 유난히 길었던 빡빡머리 그 DJ는 훗날 제가 국회 출입 기자 시절, 정동에 있던 국회의사당 맞은 편 골목의 다방으로 옮겨 와 있었습니다. 우리들을 보자 우리들이 좋아했던 곡들의 다른 버전을 소개해주며 얼마나 반가워하던지요. 



    IMG_4771.JPG Photo: Melissa Lee


    난 해 10월, 서울에 갔을 때, 서울의 몇 군데 독특한 분위기 카페를 찾았습니다. 오랜 친구인 GQ 편집장 L이 같이 간 보광동의 ‘헬 카페’는 마치 뉴욕의 카페에 간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커다란 테이블과 빈티지 의자들, 크고 작은 테이블이 불규칙하게 놓여진 게 그랬습니다. 커피 맛은 최고였습니다. 모던과 빈티지와 묘한 예술적 향기가 결합된 분위기가 딱 제 스타일입니다. 커피를 사랑하고, 시대를 사랑하고, 문화를 사랑하는, 마치 21세기 르네상스맨 같은 세 사람의 젊은이들이 이상 실현의 한 계단으로 직영하는 멋진 곳이었습니다. 서울에 오직 두 군데 밖에 없습니다. 


    ‘커피 한약방’은 이름부터가 독특합니다. 커피 한약방이라니. 들어가는 입구부터도 예사롭지 않아 한 사람이 겨우 움직일 수 있는 매우 좁은 골목을 걸어가면 입구로 통하는 계단이 나옵니다. 우리나라에서 커피를 제일 처음 맛본 사람이 고종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가 살던 시대를 재현했다는 실내는 올드 패션의 타일 바닥과 자개 가구들이 우선 눈에 뜨였습니다. 그리고 옛날 유성기, 구리로 만든 커피 드립기들, 암튼 뭐가 많습니다. 그중 최고는 화장실입니다. 고전적으로 예술적으로 꾸며진 아름다운 화장실에선 알 수 없는 꽃향기가 났습니다. 화장실에서 향기가 나는 곳은 정말 흔치 않으므로 저는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한약을 달이는 정성으로 커피를 내린다 해서 커피 한약방이라 작명했다는데, 커피 맛은? 잘 모르겠습니다. 


    요즘 한국서 뜨는 커피 브랜드는 ‘테라 로사’라고 합니다. 원두를 사다가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로스트한 것이라고 합니다. 전 이 집이 참 마음에 듭니다. 우선 인테리어가 모던하고, 넓으며 온통 유리벽으로 되어 있어서 시야가 시원합니다. 커피 맛도 수준급 입니다. 저같은 보통 사람에겐 곳곳에 있으면서 적당히 멋스럽고 커피맛도 제대로인 이런 집이 편하고, 커피 향내와 여가를 즐길 수 있는 공간입니다. 여기 역시 큰 테이블이 빠지지 않습니다. 



    IMG_5043.JPG Photo: Melissa Lee



    제 문화 아지트를 표방하는 카페를 본격적으로 소개하겠습니다. 원주에 있는 북카페 ‘터득골(강원도 원주시 흥업면 대안 3리)’ 입니다. 터득골은 곤지암에 계시는 도예가 김기철 선생이 좋은 사람들이 좋은 북카페를 냈다면서 분위기도 좋고, 브런치도 맛있으니 꼭 가보라며 추천해 주셨습니다. 흥업면 대안저수지 고개를 넘어 1.5㎞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어서, 우리는 좀 힘들게 찾았습니다. 월요일은 문을 닫고 오전 11시부터 밤 8시까지 운영한다고 합니다. 


    터득골은 산 위에 지은 집입니다. 주인이 직접 지었다는 소박한 건물에 방마다 주인들이 좋아하고 권하고 싶은 책들이 진열되어 있고, 큰 테이블과 의자들이 있습니다. 자연 속에서 책도 읽고 차도 즐길 수 있는 곳입니다. '터득골'은 마을의 옛 지명이었다는데, 이곳에서 많은 이들이 삶의 지혜를 터득하길 바라는 주인의 바램으로 지어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저도 처음 얘기 들었을 때 이름부터 마음에 들었습니다. 출판을 맡고 있는 나무선씨와 그림책 글 작가인 이효담 대표는 두 사람 부부 아니랄까봐 얼굴 모습부터 ‘착한 나라 사람’이라고 써 있습니다. 책은 직접 읽고 권하는 책, 해당 분야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도서를 정선했고, 손꼽히는 명작 그림책이나 생활기술을 배울 수 있는 전문도서는 해외 서적까지 분야별로 잘 정리되어 있어서 고르기가 편했습니다. 우리 일행 모두 원하는 책이 눈 앞에 있으니 책을 샀습니다. 효승씨는 제 손자 블루를 위해 색채가 영롱한 유명 그림책을 사주었습니다. 


    이 북카페 손님들을 위해 분위기에 맞는 그릇을 김기철 선생께서 이 선물같은 착한 부부에게 선물로 만드셨습니다. 마침 그릇이 완성되어서 우리 갔던 날 그 접시와 컵으로 점심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금방 구운 치아바타 빵에 닭고기와 치즈, 마당에 심은 싱싱한 야채를 넣은 샌드위치가 얼마나 따뜻하고 맛있었는지요. 커피도 직접 내려 주시고, 김기철 선생이 잘 대접하랬다며 맛있는 디저트까지 새로 구워 대접해 주셨습니다. 어디 가나 소개해주신 분의 힘으로 남보다 더 대접을 받으니 사실은 아주 기분이 좋습니다. 하하. 



    IMG_4781.JPG Photo: Melissa Lee


    원도에서 또 잊을 수 없는 곳이 있습니다. 카페 '이화에 월백하고 (강원도 평창군 평창읍 고길천로 859, 033-334-8642, 010-5365-2969)' 입니다. ‘이화에 월백하고’란 상호는 이조년 (李兆年 1269~1343, 자 원로元老, 호 매운당梅雲堂)의 유명한 시조 '다정가'의 첫 대목입니다. 카페는 지동면 청옥산 꼭대기에 있습니다. 꼬불꼬불 산으로 올라가는 길 자체부터 예쁩니다.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만 문을 여는 이 카페는 목공예를 하는 주인의 손길로 만들어진 분위기가 무척 예술적입니다. 달콤하고 분위기 살리는 클래식이 조용히 흐르면서 주인이 직접 볶고 갈아서 내려주는 커피를 마시면 그 자체가 힐링이 됩니다. 


    목공예를 하는 주인의 작업장도 뒤에 있지만 인테리어들 모두 직접 만든 것이며 쟁반, 접시, 집기들 역시 주인장의 손끝에서 만들어진 작품들이어서 얼마나 정감이 풍기는지 모릅니다. 의자처럼 길게 기역자로 깔아놓은 자리가 밖에 만들어 놓은 페치카에서 불을 때는 온돌입니다. 오래 앉아 있으면 찜질방에 앉아 있는 것처럼 슬그머니 땀이 날 정도로 따뜻합니다. 박기태 교수가 소개했다고 하니 포도와 날밤을 그림처럼 예쁘게 담아 내왔습니다. 그리고 밤은 까기 힘들다고 직접 까주는 바람에 은은한 클래식 선율 속에서 꿈같은 추억을 또 한 페이지 그렸습니다. 참, 터득골이며 이화에 월백하고 화장실에는 페이퍼 타올 대신 손 닦을 새하얀 타올이 예쁜 바구니에 한 가득 담겨 있습니다.


    한국에 최초로 생긴 다방은 1909년, 일본인이 문을 연 남대문역 다방이지만, 한국인이 처음으로 연 다방은 1927년, 안국동 입구 쪽에 영화감독 이경손이 문을 연 ‘카카듀’라고 합니다. 여기서 문학 간담회도 하고 전시회도 하고 문화아지트 역할이 왕성했다는 기록입니다. 이름부터 특이한 ‘카카듀’는 불란서 혁명 때 경찰의 눈을 피해 모이는 비밀아지트인 술집 이름의 하나라고 합니다.


    너무 장황하게 소개했습니다만, 그만큼 다방은 문화적으로 빈곤했던 저희 세대에겐 중요한 아지트였던 까닭입니다. 그동안 한국에 가서도 옛스런 다방이 없어서 불편하게 여겼는데, 이젠 의외로 나의 카카듀가 많이 준비되었습니다. 제가 미처 가보지 못했지만, 서울 근교며 지방에는 카페로 혹은 책방의 형태로 자기만의 멋과 스타일로 적지 않은 카카듀가 존재한다고 합니다. 요즘 저의 카카듀는 뉴저지 팰팍 브로드웨이에 있는 '카페 M'입니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쫄깃한 금방 구운 따끈따끈한 붕어빵에 아메리카노를 마시면 더 없이 마음이 훈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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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주/수필가 강원도 철원 생. 중앙대 신문학과 졸업 후 충청일보 정치부 기자와 도서출판 학창사 대표를 지냈다. 1981년 미국으로 이주 1990년 '한국수필'을 통해 등단한 후 수필집 '엄마의 요술주머니' '이제는 우리가 엄마를 키울게' '내 인생의 삼중주'를 냈다. 줄리아드 음대 출신 클래식 앙상블 '안 트리오(Ahn Trio)'를 키워낸 장한 어머니이기도 하다. 현재 '에세이스트 미국동부지회' 회장이며 뉴욕 중앙일보에 '뉴욕의 맛과 멋' 칼럼을 연재 중이다. '허드슨 문화클럽' 대표로, 뉴저지에서 '수필교실'과 '북클럽'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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