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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숙희/수다만리
2017.01.31 00:23

(244) 박숙희: 나오미 캠벨의 첫 뉴욕,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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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만리 (16) 의료보험이 필요했던 초보 뉴요커


수퍼모델 나오미 캠벨의 첫 뉴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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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omi Campbell


1986년. 로날드 레이건이 대통령, 조지 H.W. 부시가 부통령이던 시절이다. 1월 우주왕복선 챌린저호가 발사 직후 폭발패 승무원 7명 전원이 사망했다. 메릴 스트립과 로버트 레드포드 주연의 '아웃 오브 아프리카'가 아카데미 최우수상을 받았으며, 톰 크루즈 주연의 '탑건'이 그해 흥행 1위를 차지한다. 뉴욕항에서 자유의 여신상 100주년 기념식이 열렸고,  뉴욕에선 가수 레이디 가가(본명 Stefani Joanne Angelina Germanotta)와 배우 린제이 로한이 태어났다. 



2738.jpg 1986년 뉴올리언스에서 나오미 캠벨  Photo: Martin Brading



"난 16살이었다. 나는 안나 윈투어(Anna Wintour)가 호출해서 미국판 '보그(Vogue)'지를 위해 스티븐 마이젤(Steven Meisel)의 촬영에 참가하기로 되어 있었다. 난 브리티시 에어웨이 콩코드를타고 있었다. 공항을 떠나면서 난 운전수에게 말했다. "낙서 기차(Graffiti Train)'을 보고 싶어요." 내가 뉴욕을 본 것은 모두 영화를 통해서였고, 난 "The Warriors'1979)를 보았던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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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전사들(The Warriors)'의 낙서 가득한 뉴욕 지하철 장면.



나오미 캠벨은 1970년 사우스 런던의 스트리삼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중국계 피가 섞인 자메이카인, 친할머니의 성이 명(Ming)이었다고 한다. 엄마도 자메이카계 댄서. 아버지는 나오미가 4개월째 엄마 뱃 속에 있을 때 떠났다. 엄마의 뜻에 따라 평생 친아버지는 만나지 못했으며, 뮤지션 퀸시 존스와 음반 제작자 크리스 블랙웰을 양부로 섬기고,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은 그녀를 명예 손녀로 부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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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미 캠벨과 댄서였던 엄마 발레리 모리스(왼쪽). 1974년 밥 말리의 뮤직 비디오 'Is This Love' 촬영장에서 밥 말리가 나오미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있다. 



나오미 캠벨은 7살 때엔 레개의 전설 밥 말리(Bob Marley)의 뮤직 비디오 'Is This  Love'에 출연했다. 현대무용하는 엄마를 따라 로마에서 이주해 살면서 10살 때 발레스쿨에 다녔다. 


모델계에 입문한 것은 15살 때. 런던 코벤트가든에서 쇼핑하다 모델로 발탁되어 16세가 되기 전 영국 '엘르(Elle)'지의 표지에 등장했다. 1986년 런던에서 창고 카탈로그 촬영하면서 만난 크리스티 털링턴(Christy Turlington)과 뉴욕에서 룸메이트가 되어 활동하기 시작, 평생 친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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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마이젤이 촬영한 나오미 캠벨과 크리스티 털링턴.(왼쪽) 파리 보그지의 표지로 등장한 크리스티와 나오미.



"크리스티 털링턴과 나는 소호 센터스트릿의 로프트에서 룸메이트로 함께 살았다. 그 빌딩에는 패션 사진작가 아서 엘고트(Arthur Elgort)가 스튜디오를 갖고 있었다. 내가 성공한 배경에는 크리스티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다. 당시 유색 인종 모델들은 일자리가 없었던 때였다.


뉴욕에서의 첫 여름은 힘겨웠다. 더위는 참을 수 있었지만, 모두들 도시를 떠났고, 나는 참 외로웠다. 난 계절감각을 배우지 못했다. 그래도 난 센트럴파크와 사랑에 빠졌다. 친구들과 델리에 가서 피크닉 음식을 샀다. 보트하우스에 가서 사람들이 연주하거나 드럼을 두드리는 것을 보곤 했다. 웨스트 14스트릿에 넬스(Nell's)가 막 오픈했다. 가수 프린스(Prince)가 자주 갔던 곳이다. 난 넬스가 아늑해서 좋았고, 항상 친구들과 어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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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마이클의 뮤직 비디오 'Freedom! 90'에 등장했던 수퍼모델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나오미 캠벨, 타티아나 패팃, 크리스티 털링턴, 신디 크로포드, 린다 에반젤리스타.



"난 당시 댄스클럽 '하우스 오브 엑스트라배간자(House of Extravaganza)'에 가거나 내가 촬영을 하던 근처 웨스트사이드 하이웨이로 놀러 나가곤 했다.  어느날엔 도로에 춤추던 이가가 누워있는 걸 봤는데, 앰뷸런스가 데려가기를 거절해서 깜짝 놀랐다. 난 그때까지 의료보험에 대해 몰랐던 것이다. 영국의 응급 서비스와는 반대다. 난 엄마한테 전화해서 "내가 오늘 뭘 봤는지 알아요, 엄마?"라고 하면, 엄마는 말했다. "의료보험이나 가입해라."고 말하셨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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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런던 다우닝스트릿 디너에서 미셸 오바마(오른쪽)와 나오미 캠벨


나오미 캠벨은 지아니 베르사체에서 다이앤 폰 퍼스텐버그까지 톱 클래스 패션디자이너들과 사진작가 피터 린드버그, 허브 리츠, 브루스 웨버의 모델로 활동하면서 1980년대 말 크리스티 털링턴, 린다 에반젤리스타와 3인조 수퍼 모델로 인기를 끌게 된다. 1990년대 초엔 신디 크로포드, 클라우디아 쉬퍼까지 5인조로 패션계의 수퍼모델로 불리웠다. 


배우와 가수로도 활동했다. 1991년 'Cool As Ice'에 가수로 출연한 이후 스파이크 리 감독의 'Girl 6' 그리고 '빌 코스비 쇼' 등에 특별 출연했으며, 1995년엔 앨범 'Babywoman'을 출반했다. 그녀의 별명은 "검은 바르도 (Black Bardot)" "아프리카 마릴린Africa Marlyn)". 오프라 윈프리와 미셸 오바마에 이어 가장 유명한 흑인 여성으로 연봉이 4800만 달러에 이른다.



sukiepark100.jpg 박숙희/블로거 

서울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후 한양대 대학원 연극영화과 수료. 사진, 비디오, 영화 잡지 기자, 대우비디오 카피라이터, KBS-2FM '영화음악실', MBC-TV '출발! 비디오 여행' 작가로 일한 후 1996년 뉴욕으로 이주했다. Korean Press Agency와 뉴욕중앙일보 문화 & 레저 담당 기자를 거쳐 2012년 3월부터 뉴욕컬처비트(NYCultureBeat)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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