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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자/바람의 메시지
2017.01.09 11:54

(241) 김희자: 그림과 글 속에서 길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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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메시지 (16) 첫 마음


그림과 글 속에서 길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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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iza Kim, I planted a willow expecting to see him, 40"x30", 1986, acrylic on shaped canvas

       

은 푸른 색으로 칠을 입힌듯한 새벽, 언덕 아래 마을 가로등불이 마치 르네 마그릿의 작품, 빛의 제국 속의 가로등 불빛처럼 레몬색으로  비밀을 머금은듯 하다. 집으로 서둘러 가고 있던 하현달이 고개를 돌려 힐끔 나를 본다. 햇살이 하늘 커텐을 열어 젖히면, 달빛이 엷어져서 사라지고, 동쪽에서 뜨는 햇살이 서쪽 하늘의 구름들을 밝그레하니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게하는 아침 드라마 무대 셋팅을 지켜보는것이 내 하루 시작의 습관이다. 

 

맑은 공기를 마시려 창문을 여니, 차가운  바람 결에 마른 오크잎 하나가 맴을 돌다가 창턱에 내려 앉는다. “한개의 떨어지는 가랑잎 소리는 들려도, 지구가 돌아가는 굉음은 듣지 못하는게 인간이니라”하시던 노 스님의 말씀이 내 일생의 첫 마음에 깃들어, 발아된 씨처럼 내 영혼을 자라나게 해주었다고 느끼는 귀절이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우주의 순환에 적응되어진 하나의 자연물에 불과하나 사유능력을 부여 받았음에, 늘 깨어있는 의식으로 순간을 알아 차리며 살아야함을 경책하시는 말씀이었을 것이다. 언외도리를 공부하던 시절 많은 선시를 배우며, 내삶 속에서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한 귀절로 남겨져 있다.


마음과 마음, 느낌과 느낌으로 전해질 뿐, 그 무엇도 무엇이라고 언어로 표현하면, 이미 그르친다 하시고  절대 말에 매여선 안된다고 늘상 일러 주셨 었다. 고등 교육을 받은 자일수록 그 병폐가 심하고, 학자라는 직업을 가진자는 무언가를 분석하고 구분하여 규명짓고 하는 것이 생업이여서, 그것이 병인지 조차도 알지 못하는 채, 그러한 것을 업적이라 하며 쌓고 간다. 후인들은 그것으로 또 배우고 익히며 그 관념의 틀 속으로 끼어든다. 


언어를 통해 사유하고 분별하며, 경쟁하여 뭔가를 이루어 내려는 우리 삶이 얼마나 지독하게 말에 매달려 자기 본연을 잃어버리고 말의 노예로 시간을 다 바치며 살고 가는지. 사람은 본시부터 내면에 완전한 감성과 이성이 잘 갖추어진 완전한 본성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배움이라는 지식 쌓기를 통해서 사회적 선입견과 고정관념이 입력되며 사물이나 현상을 제대로 듣고 보지못하고 왜곡시키며 온전함을 잃게된다. 그에 정반합의 삼단논리로 판단을 하기에 길들여진다. 어떻게 하면 인간의 본연을 회복하여 진정한 사물을 보고, 느끼며, 각성하여 세상의 모든 것이 서로 반사되고, 연결되어진 관계임을 볼 수 있는 순수한 자연 자체로의 본성 그대로 살아갈수 있을까가 내 생의 한 주제가 되어 나를 움직였다.    



A Thousand and One Aims   24”x24”x4”.jpg 

Wheiza Kim, A thousand and one aims, 24"x24'X4", 1998, acrylic on shaped canvas



는 독서를 통해서 수도사이며 명상 화가라 불리는, 프레데릭 프랑크의 말인 “진정한 예술은 예술이라는 것 너머에 있고, 진리는 종교라는 울타리 밖에 있으며, 사랑은 껴안는 행위 너머에 있다”라는 말에도  깊이 공감하고 지내던 때가 있었다. '예술이다' '진리다' '사랑이다'라는 언어가 지시하는 현상이 그단어의 본래 의미가 사람 각자마다의 다른 시각의 렌즈를 통해 다른 굴절 각도로 만들어지는 현상이며, 마치 만화경처럼 서로가 서로를 반사하여 이루어진 세상이기에 더욱 혼란스러운 말로, 상상 이미지까지 합하여서 생산되게 된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흔히 세속인이 말하는 “세상은 요지경이야”라는 매우 쉽고 흔한 단정에 이르는데 참으로 긴 시간을 낭비한 걸 느끼며 쓴 웃음을 짓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나, 얻어들은 지식은 빗물이 고임과 같고, 스스로 깨달은 지혜는 땅속에서 솟아오르는 물과 같다는 금언이 있기에 스스로를 위로하며, 바로 그것이 가치있게 보낸 생의 시간임에 나를 위로할수 있었다. 또한 말과 글이란 생명을 가졌기에 그 진정성을 느껴 가슴에 와닿을 수 있는 최상의 힘을 가졌다는 사실을 인정하기에, 단 한사람에게라도 뿌리 성한 나무의 꽃과 향기의 진정성을 전달되게 할 그 무엇을 찾아, 그리기와 쓰기의 행위 속에서 길을 찾아 나섰다.


말도 사람처럼 살아있는 것이라 세상 변화를 따라 나고 자라고 죽고하며 변한다. 그래서 인간이 자기가 지은 행위대로 받는 것처럼, 언어도 시대와 사회의 흐름과 변화에 따라 그 시대 사람들이 짓는 공동행위와 생각의 업을 짓기에 그 시대의 산물로의 언어적인 업을 짓고, 받고하며 변하는 것이란 생각에 이르렀다. 오가는 말과 글로 이루어진 것들이 얼마나 의도적이고 표피적인 뿌리없이 떠다니며 사람들을 현혹시키는가 싶다. 그래서 한동안 벙어리가 되어 살아보고 싶은 시절이었다. 그러나 사실상 언어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언어를 해석하고 사용하고 전달하는 과정의 문제라는 걸 알았기에 묵언 그 자체에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라는걸 깨달았다.

 

새벽의 고요함 속에 앉으면 싸아하며 귓전을 지나는 파도소리와 바람소리를 들을 때마다, 아~ 이게 지구가 돌아가는 소리이리라고 알아채는 현존하는 나. 내 깊은 속에 항상 존재하지만 보려해도 보이지 않는 나와의 첫 만남을 기억한다. 그 첫 마음을 영원히 잃지 않고 지니며 살기를 내게 다짐을 하며 언젠가 내가 그리고, 쓰고 했던 글을 읽어 본다.



가치로운 삶이 무어냐고 묻지마라,

묻고자 간절했던 그 첫 마음 속에

이미 그 대답이 있었느니라.

  

생의 지혜를 얻고자 누구를 찾아 헤메이는가.

찾고자 뜻을 품은 그 순간에

네 속에 본래 묻혀있던 지혜의 씨가

이미 싹을 틔웠으니.


네 마음 속을 고요히 하고 

잘 들여다 보려마.

첫 마음 낸 그 자리에 한그루 지혜의 나무가

이미 싹이 터 있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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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자 Wheiza Kim/화가

이화여고 시절 문예반에서 활동한 후 서울대 미대를 졸업했다. 결혼 후 10여년 동안 붓을 꺾고 있다가, 30대 중반을 넘기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으로 다시 작업을 시도하기 위해 성신여대 대학원에서 판화를 전공했다.1997년 스토니브룩, 뉴욕주립대(SUNY) 방문 초청작가로 와서 한국현대미술을 가르쳤다. 국립현대미술관의 국전을 시작으로 서울과 뉴욕을 오가며 100 여회의 그룹전과 22회의 개인전을 열며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했다. 현재 롱아일랜드 끝자락 노스포크 사운드에 거주하며, 자연과 더불어 작업하고 있다. 

http://wheizak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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