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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자/바람의 메시지
2016.12.05 12:11

(232) 김희자: 낙엽 쌓인 숲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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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메시지 (15) 친구에게...


낙엽 쌓인 숲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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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heiza Kim,  Up to the sky, 84"x24"x4", 2010, acrylic on natural wood

친구야,
가을 숲을 거닐며 네게 오랫만에 긴 편지를 쓰고 싶어졌다. 무어 그리 가을이 새삼스러우냐 할지도 모르겠다만, 올해의 가을은 어디 다른 별에서 맞는 것처럼 생소한 느낌이다. 언젠가부터 내가, 나 자신을 멀리서 타인처럼 바라보기를 하며 살아서인가 싶기도 하다. 카카오 톡이란게 생긴 이후로 벌써 몇년이 넘게 짧은 안부나 전하며 살았네. 오늘은 우리 가끔식 했던 깊은 마음 얘기를 연필로 쓰고, 책갈피에 눌린 아마도 내장산 단풍만큼 붉디 붉은 미국 단풍잎과 함께 보내고 싶다.  

푹익어 가고있는 가을 숲에 들면 전신의 감각이 다 열리고 몸과 의식이 충만으로 가득해진다. 봄날의 모든 꽃나무들이 한순간에 다 함께 꽃을 피운다한들, 이처럼 온하늘과 땅을 가득하게 메울 수가 있을가 싶다. 봄꽃의 향과 색들은 부드러운 파스텔 톤으로 부드러운 아이스크림같이 달큰한 냄새로 코를 즐겁게 하여 저절로 미소를 짓게 하지만, 가을의 잎들은 방금 떨어지는 것에서부터 땅 속으로 삭아들기 전까지의, 여러가지 다른  향으로 아우러져서 연민을 자아내는 묘한 향을 머금고 있다. 만약 이 형언할 수 없는 고혹적이면서도 영혼에 스며드는 냄새를 향수로 만든다면, 아마 향이 담긴병은  호박색과 재색으로 마불링시켜 오크통 모양으로 만들어야할 것 같아. 마치 오래 잘 숙성된 와인의 취기를 연상시키며, 형언할 수 없는 깊은 가을의 정취가  목구멍에까지 느껴질 향수를 너도 한번 상상해봐. 마치 무의식 깊이 농축된, 살아온 모든 날들의 희노애락을 정제한 내음이 바로 낙엽지는 가을숲 향기가 아닐까 싶다. 

우리 둘다 매우 인상 깊게 책을 읽고 영화로도 보았던 파트리스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 속의 주인공인 추악하디 추악한 모습의 쟝 그르누이가 떠오르더라. 첫사랑의 여인의 향기를 만들어 보려고 많은 여인들을 죽여서 영혼의 정수를 뽑아 내어 향을 만들어내던, 그 악마같은 향수의 천재라면 분명히 이 숲의 에쎈스들을 정제하여서 향기로 뽑아낼 수 있을테지. 그러면 이숲의 내음을 네게 도전할수 있지 않을까하며 혼자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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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heiza Kim,  Obsession's trap,  24"x24"x4", 2008, acrylic on natural wood 

친구야, 
아마 너도 그러리라 생각되는데, 낙엽지는 숲을 걸으면 발길 아래 어김없이 속삭이며 따라오는 목소리가 있지않니?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라며 사각대며 묻는 정다운 그 목소리. 사춘기적의 기억으로부터 이어져서 나는 지금도 그 소근거림이 들린단다. 대부분 여자들의 학창시절, 교과서에는 없는 구루몽의 시 한편은 가을의 추억창고를 여는 매스터 키가 아닐까 싶어.  아마도 그 시야말로 낙엽지는 숲과 연관해서 지은 시중에 가장 아름답고 촉촉한 시정을 담아 시대를 넘어 가슴에 스미게하여 준 절묘한 시라 여겨진다. 시몬이라는 여성을 가을 숲으로 초대하는 귀절로, 여성들은 누구나 시몬 되고, 시인의 애인이 되어서  함께 걷고 싶은 잠재의식을 충동질하는게 아닌가 싶다. 

낙엽은 정답고 모양은 쓸쓸하고, 버림받아 땅 위에 흩어져있다. 너도 언젠가 그와 같은 늙음을 맞으리라고 은근히 겁을주며, 이리 가까이 오라는 미묘한 유혹의 노래로 만추의 숲으로 유인시키던 그 시. 처녀시절 누구나 가슴 설레이게 하던 얼마나 순수하고 막연한 미지의 연정으로 가득하던 젊은날이었던가 싶다. 이젠, 더이상 그러한 달고 부드러운 성정의 즙은 말라버린 과일같아서 짜도 나올 것 같지가 않다.

내가 서울을 떠날 무렵 오랜 세월을 망상새와 무명초를 그리며 후회와 우울증에 시달리며 지냈었다는걸 너도 잘 알겠지만, 환경이 바뀌니 이젠 망념으로 심히 동요되던 마음이 덜 부대끼니 참 편안해. 마치 곪았던 상처에서 독기가 말끔히 빠져 나간것 같아. 여기 바다와 숲에 동화되어 살면서 늘상 조금은 쓸쓸하지만,  파도와 바람의 위로를 받으며 행복하단다. 가끔, 사람들이 그 아름답고 가능성으로 가득하고 싱싱하던 젊은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으냐고 묻고들 하는데, 내 대답은 절대로 사양하겠다야. 그 질기고 강한 무엇에건 더 잘해보겠다는 욕망의 열기와 인간관계에 대한 집착의 연결고리가 너무나도 자연스레, 마치 가을나무 잎자루의 떨켜처럼 끊어져 내림이 참으로 홀가분하단다. 

요즈음은 하루하루가 옛날에 애지중지하며 고운색으로 물들여 간직했던 잎맥뿐인 잎들 같아. 알콜에 끓여서 가녀린 망사 조직만 남아서 바스라질듯, 모든 의문들의 살점이 다 녹고 삭아내린 것 같아. 이젠 내 삶이그 남은 잎맥처럼 투명해져서, 꿈 속에서 꿈인줄 알면서 꿈을 꾸며 형유하는 자각몽 속에서 유체이탈을 한듯, 내 삶을 먼곳에서 바라볼 수 있을 만큼 내 의식이 자유롭다는 느낌으로 지내. 꿈이던 현실이던, 모든 주변 상황과 인간 관계들이 내 생각이나 마음대로가 아닌체 펼쳐지곤 하지만, 수정하고 싶은 의지는 없이 다만 측은함으로 바라봐져.

내 의도와 목표로 설정한 욕망이 내가 책임져야하는 과보이며, 그 옭매임 속에서 불평과 시비로 하루에 열번도 더 도망하고픈 탈옥수의 마음으로 살며, 한치 앞이 보이지 않았었지. 이젠 확실하진 않지만 어떤 예지가 내게 방향은 제시해주는 것 같아. 결코 짧지 않은 수십여년, 결코 내가 선택하지 않은 여자로의 삶을, 당할 만큼 당하고, 겪을대로 겪으면서, 왜냐고 이유를 찾아 얼마나 방황을 했었나 싶다. 나는 책 속에  길이 있나하고 무수한 철학책과도 꽤나 씨름을 했었고, 가끔 우리 생이 어찌 전개될지 미래를 알고 싶어서 유명하다는 점쟁이에게도 가곤 했었잖니. 

또한, 여행삼아 먼곳 산 속에 계시는 높은 지혜를 터득했다는 분들을 만나려고 헤매일 때 들은 얘기들 기억하니?  있지도 않는 답을 찾다가 허송 세월을 하다가 가는게 인생이라며 본래 답이 없는거라고 말하는 현자도 있었고, 인간은 본래 갖추어져 태어난다는걸  믿고서 어떤 일에도  판단시비를 중지하면, 어느날 뭔가가 보일꺼라는 현자를 만나기도 했었지. 이제 내 살아보니, 그 나름 그 마다의 상황 속에서 다 맞는 진리의 말이다. 어떤 집에나 창이 나 있어서 그 집에 사는이들은 그 창으로만 세상을 바라 보듯이 누구나 사람들은  각자의 시야를 갖고 사는 걸 알게 되었어. 단지 남의 의도를 말과 배경을 바꾸어서 공통 분모 찾기로 이해 할수 있을 뿐, 결코 꼭 같을 수도 없다는 생각을 하게돼. 중년이 다가도록 순간순간을 엄습하는 무의미함들 속에서, 참으로 휘청거렸었지.

숲에 쌓인 수억이 넘을 낙엽들 수만큼이나 찰나마다 생기고 꺼지는 기포마냥 모든 미망과 설레임이 저절로 때가 되어 꺼져내리는것이 얼마나 홀가분한 은혜인지를 예전엔 어찌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지. 환갑이 넘도록 사는 사람들의 사그러 드는  인생을 보며, 도대체 뭣하러 저나이가 되도록, 무슨 낙을 얻을 게 있다고 사는거냐라고 비아냥대며, 살아 보지도 않은 주제에 젊다고 부린 만용이 얼마나 창피스러운지 가끔 얼굴이 화끈거리곤해. 이리도 맑게 반짝이는 보석같은 날들을  묻어 두고 말 없이 기다려준, 볼려도 볼 수 없는 내 운명의 가이드에게 나의 교만했음을 진심으로 참회하고 용서받고 싶단다. 하늘과 땅 사이 살아 숨쉬고 있는 모든 것들에  티끌만큼도 다를바 없이 똑같이 내려주는 자연의 존엄한 순리와 사랑을 따라살아 가야함을 일깨워주려 그 많은 날의 시련을 준것이리라 느낀다. 더욱 감사와 깨어있는 마음으로 남은 날들을 아끼고 사랑하며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가을 숲에서 또 다시 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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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iza Kim, Lonely passage,  32"x12"x3",  2004, acrylic on natural wood 

친구야,                                                                                                                                                                
곧 이해의 마지막날도 저 낙엽들처럼 떨어져서 삭아 제 뿌리로 돌아갈터이지. 송년날이면, 언제나 다를게 없이 뜨고지는 해를 가지구선 새해 새날이라고 이름지어 나를 비롯해, 모두들 그날 새 계획을 세우고, 새로 태어나기라도 하는양 온갖 시늉들이 얼마나 희극적인가라고 늘 생각하였는데, 몇해 전 진정한 새날에 대한 가르침을 준 글귀를 만났어. 
"새 마음을 먹는 날이 바로 새날이요, 새해다"라는 오즉 마음먹기 기준에 의해 새날이 되고 새로 태어날 수도 있는 캘린더와는 아무 상관없음  말이야. 인간들이 사회적 약속을 위해 만들 수 밖에 없었던 어떤 명분과 이름에 걸려 무수히 실망하며 살은 어리석음이 싹 쓸려 나갔지. 떨어져 쌓인 잎들이 겨우내 삭아서 스스로의 자양분이되듯, 우리의 영혼도 겨울의 얼음 밑 긴 묵언 속에서 더욱 정화되리라 믿어. 새해, 봄이오면, 눈을 뚫고 제일 먼저 침묵을 깨고 피어 오르는 스노릴리와  크로커스처럼 우리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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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자 Wheiza Kim/화가

이화여고 시절 문예반에서 활동한 후 서울대 미대를 졸업했다. 결혼 후 10여년 동안 붓을 꺾고 있다가, 30대 중반을 넘기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으로 다시 작업을 시도하기 위해 성신여대 대학원에서 판화를 전공했다.1997년 스토니브룩, 뉴욕주립대(SUNY) 방문 초청작가로 와서 한국현대미술을 가르쳤다. 국립현대미술관의 국전을 시작으로 서울과 뉴욕을 오가며 100 여회의 그룹전과 22회의 개인전을 열며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했다. 현재 롱아일랜드 끝자락 노스포크 사운드에 거주하며, 자연과 더불어 작업하고 있다. 

http://wheizak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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