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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주/뉴욕 촌뜨기의 일기
2016.11.14 19:31

(227) 이영주: 강원도의 맛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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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촌뜨기의 일기 (38) 


강원도의 맛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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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38횟집, 유천막국수, 꿩만두, 양푼네. 사진= 유천막국수: 이명선, 김종옥/ 양푼네: 이명선/ 38횟집: 노재숙



울에 가서 한달 있는 동안 강원도에 세 번이나 다녀왔습니다. 저는 강원도 철원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철원에 가보지 못했습니다. 이상하게 강원도는 덜 열려진 땅 같아서 쉽게 찾아가게 되질 않습니다. 미국 오기 전에 용평 스키장 몇 번 간 게 전부고, 한국 갔을 때 한 두 번 골프 치러 가거나, 강릉에 별장이 있는 선배 덕에 강릉이나 오간 게 전부입니다.


강원도는 참으로 산세가 풍요하고 아름답습니다. 첩첩이 겹쳐진 산세들이 정답기 짝이 없고, 그윽한 자태가 마음을 편하게 해줍니다. 그리고 음식은 전라도가 제일 발달했다는 고정관념이 이번에 깨졌습니다. 강원도의 소박한 음식이 주는 은근한 맛이 감성을 자극해서 사람의 마음을 가지고 롤러 스케이트를 타듯, 내재된 매력이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평창 쪽으로 가면서 제일 먼저 들른 곳은 유천막국수집(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 유천리 747-2, 033-332-6423)이었습니다. 막국수의 역사, 아니 유천 냉면의 효시가 바로 이 집이라고 합니다. 큰길에서 들어가 골목 안에 있는 크지 않은 집이었습니다. 살림집처럼 몇 개의 방이 이어져있는데, 우리가 들어간 방에는 이곳을 다녀간 유명인들의 글들이 벽에 잔뜩 써있었습니다. 혜민 스님의 글이 눈에 확 띠었습니다. 


막국수와 묵사발을 주문했습니다. 막국수는 다른 집들처럼 달지도 않고 국물도 매우 담백한 게 특징이랄 수 있겠습니다. 전혀 자극적이 아니어서 마치 평양냉면 홀릭들이 평양냉면의 순한 맛을 아끼듯, 이곳의 막국수도 국물까지 남기지 않고 마실만큼 묘하게 산뜻했습니다. 묵사발은 도토리 묵이 주인공입니다. 솔직히 도토리묵은 제가 더 잘 쑵니다. 도토리 묵을 만들 땐 마지막에 오랫동안 뜸을 들여야 쫄깃쫄깃 해집니다. 영업집에선 그렇게 정성을 들이기 힘들겠지요. 그렇지만 그것도 막국수처럼 맛이 순해서 금방 그릇을 비웠습니다.


묵사발까지 먹으니 배가 불러서 비스듬이 앉아 있는데, 문득 벽에 붙어 있는 꿩만두 시작했다는 안내가 보였습니다. 꿩만두라니까 신기해서 꿩만두도 추가로 주문했습니다. 제가 꿩만두를 무척 좋아합니다.


40 여 년 전만해도 제주도에 가서 변두리로 나가면 꿩들이 돌담에 앉아 있는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꿩 사냥은 그런 꿩들만 잡아도 충분했습니다. 잡은 꿩은 제주시의 꿩요리집에 가지고 가면 튀겨주기도 하고 볶아주기도 해서 맛있게 먹을 수 있었습니다. 남은 꿩은 집에 가지고 와서 꿩만두를 만들었습니다. 꿩만두는 끓이면 껍질이 반들반들 해지면서 만두 속도 감칠맛 나게 좋아서 저는 특히 꿩만두를 좋아하게 된 것입니다.


막국수집의 꿩만두는 자연산은 아니고 사육한 꿩고기라는데, 만두의 맛이 일미였습니다. 식당에 가서 먹어본 꿩만두 중에 최고였습니다. 아니 만두집에서 먹어본 만두 보다도 더 맛이 뛰어났습니다. 호랑이 시어머니 대를 이은 며느리까지 동원된 막국수집의 별미가 제게는 막국수보다 꿩만두였습니다. 화장도 하지 않고 검게 그을긴 했어도 빼어난 동양적 미인인 며느리 얼굴이 지금도 눈에 보이는 듯 합니다.



IMG_5147.JPG 유천막국수집 혜민 스님의 글


창 대화시장은 5일에 한번씩 장이 섭니다. 재래시장은 언제 가도 정다운 곳이지요. 그 시장에도 맛집이 있었습니다. 양푼네 집(양푼네 24시 국밥집, 강원도 평창군 대화면 대화 3길 34, 033-336-8882, 010-4245-7178) 입니다. 6천원짜리 백반에 나오는 매일의 국이 일품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잘못 알고 청국장을 시켰는데, 청국장은 별로였음.) 밥은 색깔이 날아간 양은 쟁반에 색깔이 벗겨진 미니 양푼 그릇에 담아져 나왔습니다. 그 양은 집기들만 보고도 가슴이 뭉클했는데, 거기에 담겨진 반찬들 맛이 여간 구수하지 않았습니다. 두부며 감자볶음, 메추리알 졸임, 가지나물, 콩자반, 고추 장아찌, 분홍색 양배추, 얼갈이 김치까지 어릴 적 엄마가 해주던 그 맛이었습니다. 아, 맛있다! 맛있다! 하며 너무 맛있게 먹으니 무를 절였다가 꼭 짜서 무쳤다는 낯선 무 요리까지 덤으로 주었는데, 그 무 무침도 쫄깃쫄깃하니 입에 착착 붙었습니다. 감자볶음은 감자바위답게 물론 최고의 감자볶음이었습니다. 세 번이나 리필해서 먹었습니다. 반찬이 이렇게 맛있는 집이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양푼네 소머리국과 내장탕도 일미라고 합니다. 담에 꼭 다시 가서 먹어볼 것입니다.


속초의 ‘삼팔횟집 (강원도 양양군 현북면 기사문리 94, 033-672-1109)’은 제가 행복했던 집입니다. 비록 싱싱한 회는 먹지 못했어도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회덮밥을 먹었기 때문입니다. 여학교 총동창회 임원들이 가는 모임에 함께 갔으므로 단체음식을 먹어야 했지만, 회덮밥에 나오는 생선들이 장난이 아닙니다. 이 집은 주인이 매일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는 어부의 집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어느 곳보다도 싱싱한 생선을 맛볼 수 있는 집이지요. 다음에 가면 꼭 생선회를 시켜서 배를 두드리며 먹을 작정입니다. 먹기 바빠서 회덮밥 사진을 깜빡 잊고 찍지 않았습니다.


우리 일행들은 ’아구 지리‘도 먹었는데, 세상에나. 아구지리가 그렇게 맛있는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습니다. 그냥 국이 맑고 생선 냄새 하나 나지 않고 깔끔하기 짝이 없습니다. 어찌나 국물이 시원하던지 옆 테이블에서 주는대로 사양하지 않고 다 받아 먹었습니다. 최고로 포식했습니다. 교장선생님이셨던 이사장님께서도 “난 이 집이 제일 맘에 든다. 아주 잘 먹었다.” 하셨습니다. (사실 이사장님은 10년전 뉴욕에 오셨을 때, 일주일 계시면서 대구머리탕을 3번이나 잡수셨을 정도로 생선을 좋아하십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상에 깔아주는 반찬들이 얼마나 푸짐한지 모릅니다. 방어찜에, 가재미 구이, 간장 게장, 두부, 도토리묵, 도라지나물, 파래무침, 오징어젓, 김치 등등이 한 상 가득인데, 모두 간이 잘 맞고 홈메이드 같이 맛이 뛰어납니다. 정성이 들어간 반찬입니다. 모두들 “와아, 이 반찬만 먹어도 배부르겠다!”, 한 마디씩 할 정도였으니 상상이 가실 겁니다. 강원도 인심이 바로 이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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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라고 하면 의레 값비싼 식당을 머리에 떠올리게 됩니다. 혹시 미슐렝 별 3개짜리 식당에라도 다녀오면 동네방네 자랑하고 싶어지는 게 인지상정입니다. 강원도에서 서민들의 식당에서 전에는 맛보지 못했던 진짜 맛을 경험하면서 맛집의 정의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미식가 중의 미식가로 꼽히는 P교수에게 맛집의 정의를 물었습니다. 첫째, 한 가지 음식만 10년 이상 해오는 집. 둘째, 테이블이 6개 미만인 집. 셋째는 착한 가격. 넷째, 그 지방에서 나는 계절 식재료를 쓰는 집. 다섯째는 주인이 직접 요리하는 집. 저도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러고보니 우리가 갔던 강원도의 맛집은 모두 소박한 곳이었습니다. 혼자만 알고 지나기엔 아쉬운 진짜 맛집들은 역사가 있으면서, 이처럼 소박하기 이를 데 없는 곳들입니다.


음식은 제임스 비어드의 말이 아니더라도 우리의 공감대이며 세계의 공감대입니다. 히포크라테스도 우리가 먹는 것이 곧 우리 자신이 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제가 한 마디 덧붙이겠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함께 하는 사람은 맛있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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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주/수필가 강원도 철원 생. 중앙대 신문학과 졸업 후 충청일보 정치부 기자와 도서출판 학창사 대표를 지냈다. 1981년 미국으로 이주 1990년 '한국수필'을 통해 등단한 후 수필집 '엄마의 요술주머니' '이제는 우리가 엄마를 키울게' '내 인생의 삼중주'를 냈다. 줄리아드 음대 출신 클래식 앙상블 '안 트리오(Ahn Trio)'를 키워낸 장한 어머니이기도 하다. 현재 '에세이스트 미국동부지회' 회장이며 뉴욕 중앙일보에 '뉴욕의 맛과 멋' 칼럼을 연재 중이다. '허드슨 문화클럽' 대표로, 뉴저지에서 '수필교실'과 '북클럽'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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