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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0) 이영주: 강원도의 힘 [이영주/뉴욕 촌뜨기의 일기]
  • sukie
    Oct 22, 2016
  • 뉴욕 촌뜨기의 일기 (38) 뮤지엄 산(Museum SAN)



    강원도의 힘


    글: 이영주/사진: 이명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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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rk di Suvero, For Gerald Manley Hopkins, 1983-1989, Museum SAN, Korea. Photo: Melissa Lee 


    물관은 그 나라의 품격입니다. 영국의 대영박물관이며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 스페인의 프라도 박물관, 러시아의 에르미따쥬 국립박물관 등을 가보면 그 나라의 유서깊은 역사와 전통, 풍요한 문화에 충격을 받게 됩니다. 제가 살고 있는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에도 아직 보지 못한 전시물이 많습니다. 특별전과 일부만 봐도 기가 다 빨리는 느낌이어서 쉬엄쉬엄 보아도 피로해서 돌아오게 됩니다. 


    세계 유수의 박물관들은 이렇게 마치 관람객의 등을 떠미는 것처럼 수많은 문화재와 미술품으로 우리를 압박합니다. 그래서 요즘은 편안하게 전시물을 즐길 수 있는 소규모의 미술관들을 더 선호합니다. 프릭 컬렉션(The Frick Collection)을 좋아하는 이유입니다. 철강왕 헨리 클레이 프릭(Henry Clay Frick, 1849~1919)이 살던 집과 수많은 소장품을 기증하면서 설립된 이 미술관은 고급스러운 가구와 인테리어, 아름다운 정원 등으로 건물 자체만으로도 예술적 정취가 사람을 취하게 합니다. 명화들을 보다가 가지각색 꽃들이 만발한 정원에서 쉬다가 하면서 한 나절을 보내고 나면 치유의 은사를 받은 것처럼 몸과 마음이 청량해져서 돌아오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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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도 여행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원주의 한솔 미술관을 찾아갔습니다. 개관할 당시 한솔 미술관이었다가 그동안 이름이 '뮤지엄 산(Museum SAN)'으로 바뀐 미술관은 가는 길부터 혼란스러웠습니다. 강원도 평창 일대는 2018년 동계 올림픽 준비로 온통 도로 공사가 진행 중인 탓입니다.미술관 가는 길도 내비게이션 대로 따라 가는 데도 길이 나오지 않아 무려 40분을 같은 길에서 헤매야만 했습니다. 간신히 운전자의 감각으로 통하는 길을 찾았는데, 세상에나. 꼬불꼬불 산길을 하염없이 가는 것입니다. 그래도 굽이굽이 도는 강원도 깊은 산세와 대기의 신선함이 답답함을 덜어주었습니다. "박물관이라면 대중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있는 게 기본이지, 어떻게 찾아오라고 이런 산 꼭대기에 지어놨지?" "누가 여기까지 전시를 보러 이 고생을 하며 오겠어?" 우리 일행은 산은 좋다면서도 가는 내내 끊임없이 군시렁거렸습니다. 


    오크밸리 정상에 소재한 뮤지엄은 한솔그룹이 전원형 뮤지엄, 슬로우 뮤지엄을 표방하며 8년여에 걸쳐서 준비했다고 합니다. 건축은 일본의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Ando Tadao)의 작품입니다. 산(SAN)은 Space, Art, Nature의 약자입니다.  말 그대로 공간과 자연이 예술과 어우러지는 곳, 안도 다다오가 추구하는 자연과 건축의 합일이 실현된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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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lexander Liberman, Archyway, 1997 Museum SAN, Korea.  Photo: Melissa Lee


    물관은 70 미터에 걸쳐 웰컴센터, 본관 뮤지엄, 제임스 터렐관의 3개 동과 훌라워 가든, 워터 가든, 스톤 가든의 3개의 정원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건물들은 콩크리트 벽과 돌담으로 가려져 있어서 박물관 안으로 들어서면 웰컴센터 빌딩이 전부인 것처럼 보입니다. 안도 다다오의 공간 활용법입니다. 


    웰컴센터에서 표를 산 후 옆문으로 나서면 산으로 둘러싸인, 펼쳐진 광장같은 풀밭이 나옵니다. 훌라워 가든입니다. 빨간 패랭이 꽃밭이라는데, 우리가 갔을 땐 어쩌다 남은 패랭이꽃들이 가끔씩 주근깨처럼 풀밭에 하나씩 말라 붙어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깜짝 놀라게 키가 큰  미국의 조각가 마크 디 수베로(Mark di Suvero)의 작품, '제라드 먼이 홉킨스를 위하여'가 서 있습니다. 그리고 자작나무 오솔길이 이어집니다. 흰 표피의 자작나무가 햇빛에 반사되면서 앙증맞은 잎들이 바람에 흔들리면 신부의 면사포처럼 매혹적입니다. 



    FullSizeRender (4).jpg Photo: Melissa Lee 


    다가 돌아서면 콘크리트 벽으로 숨겨졌던 워터 가든을 만납니다. 사각형 츷계처럼 이어지는 워터 가든은 물의 깊이가 20cm 라는데, 검은색 조약돌이 바닥에 깔려 있고, 맑은 물이 찰랑찰랑 채워져 있습니다. 까만 돌엔 눈꼽만한 이끼가 끼어있지도 않고, 물엔 부유물 하나 떠있지 않습니다. 까만 조약돌은 충남 서산의 해미석이며 워터가든은 2주일에 한번씩 물을 빼고 청소해준다니 그 섬세한 관리에 경의를 표하게 됩니다. 


    그리고 다시 콘크리트 벽을 왼쪽으로 돌아서면 본관을 만납니다. 무엇보다 먼저 눈에 뜨이는 것은 앞쪽에 서 있는 알렉산더 리버만(Alexander Liberman)의 붉은색 대형 철제 조각물입니다. 수베로의 작품처럼 짙은 오렌지 빛깔의 작품이 마치 아치처럼 한쪽 발만 물을 밟고 높게 서 있어서 그 작품을 지나 입구로 걸어가면 마치 사열대가 환영해주는 듯한 착각에 기분이 저절로 업! 됩니다. 


    본관 전시실은 페이퍼 갤러리와 청조갤러리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전시실마다 작품들이 공간에 넘치지 않고 적절하게 전시되어 있어서 편안하게 작품을 음미하며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세계의 어떤 박물관에서 이처럼 느긋하게 공간을 즐기며 전시물을 둘러보겠습니까? 


    한 방은 온전히 백남준 작품만 상설 전시하는 방이고, 다른 방에는 한국 근대사에 만들어진 잡지들의 표지들이 전시되어 있어서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현대문학'이 제일 많았고 '야담', '새가정'까지 있었는데, 새가정은 한 때 친구가 편집장이라 저도 자주 기고했던 잡지라서 애틋하기까지 했습니다. 한국 현대화가 작품실엔 이중섭, 박수근, 유영국, 김영주, 손응성, 이봉상, 최영림, 이쾌대 등과 고석 선생 작품도 두 점 있었습니다. 강원도 여행 동안 고석 선생 유택이 모셔진 아드님 댁에서 신세를 진 터라 더욱 반가웠습니다. 



    IMG_4665.JPG Photo: Melissa Lee 


    임스 터렐관 가는 길에 만들어진 스톤 가든은 안도 다다오의 작품이라고 합니다. 파주에서 가져왔다는 돌로 만들어진 우리나라 8도를 상징한다는 대형 돌무덤들이 이상하게 향수를 불러 일으켜주었습니다. 옐로우 톤의 옅은 갈색 돌들의 색깔이 주는 색감의 요술이라 혼자 생각했습니다. 뮤지엄의 건물과 건물을 숨겨주던 돌담들도 모두 이 파주석이라고 합니다. 대형 돌무덤이 이렇게 감동적일 줄 몰랐습니다. 독특한 착상입니다. 


    빛과 공간의 예술가로서 21세기 예술의 정점을 찍고 있는 제임스 터렐(James Turrell)의 작품들은 매우 난해하기 짝이 없습니다. 빛이 공간에서 조명에 의해 변하는 모습을 보는 인간의 착시와 환영 현상을 보여주는 그의 작품 세계를 저같은 문외한이 이해하기엔 넘기 어려운 산이었습니다. 뮤지엄에선 친절하게도 그런 미술 문외한들을 위한 배려오 안내자와 함께 하는 투어를 시간별로 준비해 놓았습니다. 안내자의 설명을 들으면서 방마다 전시 중인 그의 작품을 보면서 체험하니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터렐관 전시는 터렐의 철학이 안도의 철학과 만나  그 융화점이 만들어내는 감동이 신세계처럼 몽환적이기까지 했습니다.  


    건축과 예술이 자연과 만나 함께 교향학을 연주하듯 어우러져 있는 뮤지엄 산은 영국 파이넨셜 타임스의 표현이 아니더라도 정말 꿈의 뮤지엄이었습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이처럼 평화스럽고, 아름답고, 여유를 누리면서 예술 세계를 사유할 수 있는 뮤지엄은 없다. 혹자는 일본 나오지마 섬에 안도 다다오가 지은 미술관을 얘기하기도 하지만, 그곳과 강원도의 자연은 다릅니다. 오크 밸리의 풍경만이 창조해낸 강원도의 힘입니다. 강원도의 힘은 결국 국력이기도 합니다. 한국도 이제 문화강국의 대열에 들어섰다는 자부심으로 가슴이 터질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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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주/수필가 강원도 철원 생. 중앙대 신문학과 졸업 후 충청일보 정치부 기자와 도서출판 학창사 대표를 지냈다. 1981년 미국으로 이주 1990년 '한국수필'을 통해 등단한 후 수필집 '엄마의 요술주머니' '이제는 우리가 엄마를 키울게' '내 인생의 삼중주'를 냈다. 줄리아드 음대 출신 클래식 앙상블 '안 트리오(Ahn Trio)'를 키워낸 장한 어머니이기도 하다. 현재 '에세이스트 미국동부지회' 회장이며 뉴욕 중앙일보에 '뉴욕의 맛과 멋' 칼럼을 연재 중이다. '허드슨 문화클럽' 대표로, 뉴저지에서 '수필교실'과 '북클럽'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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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선 Melissa Lee/freelancer RISD(Rhode Island School of Design) 대학원 미술교육학 전공, 사진 부전공. 항상 사진을 찍고 싶은 욕망과 사진을 찍으면서 무심코 지날 수 있는 사물과 풍경의 아름다움을 재발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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