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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자/바람의 메시지
2016.10.09 13:31

(216) 김희자: 세상에 돌 던지기

조회 수 2423 댓글 2

바람의 메시지 (13) 작가와 사회성


세상에 돌 던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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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아일랜드 노스포크 사운드의 스튜디오에서 김희자 작가.


람결에 소근대는 나뭇잎들의  마른 목소리가 실려온다. 숲엔 이미 가을이 온 모양이다. 어김없는 자연의 순리에 대해 가장 깊이 느끼게 되는 계절이다. 아침마다 요가를 하고나면 몸과 마음이 매우 상쾌하여, 오늘 하루 또 이렇게 살아있는게 얼마나 감사한 것인가하며 저절로 경배를 하게 된다. 갓 세수한 아이 얼굴처럼 해맑은 가을 하늘을 보며,한점 티없이 살고싶다던 옛 시인의 싯귀가 떠오른다. 오늘은 무언가 맑은 영감이 떠오를 것같은 느낌이다. 마무리에서 막혀있는 작품에 대한 생각을 하려는 중에 뜬금없이 수년전 유명세를 누리던 한 여성 평론가가 내게 하던 말이 마치, 고요한 수면에 한개의 돌을 던지듯이 물방울을 튀기면서 마음에 파문을 만든다. 

                                             

그녀는 한때 나를 유망주로 치켜세워 미술 잡지에 전시평 내지는 대표작가 운운하며 몇번 글을 쓰곤 했었다. 그런 몇해 후 그녀가 내 작품에 너무나 사회적 이슈가 결여되어 있다며, 세상을 향해 돌을 던지질 않으니, 어떻게 유명해지길 바랄 수가 있겠느냐고  불평같은 실망을 표현했던 적이 있다. 가끔 그말이 생각이 나면, 언듯 모욕적인 불쾌감이 느껴지곤 했는데, 오늘 또 그말이 떠올라서 내 머리속을 어지럽게 한다. 그것이 바로 그녀가 나에게로  돌을 던진 거다. 나중에사 그 생각에 이르러 화가 치밀었었다. 그 말을 들었을 당시에는 뭔가 뒤통수를 맞은듯 찌리한 느낌뿐, 무슨 뜻인지 해석이 되질 않았다. 변명할 말도 없어서 그냥  "그렇게 생각하세요?" 라고 대꾸했을 뿐이다.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거리가 그리도 먼줄 몰랐었던 경험이다.


여하튼 그 말의 돌질이 내 가슴에 박혀 결석이 되어버린듯, 가끔 나를 고통스럽게 한다. 어쩌면, 그녀는 내가 무엇을 그리려 하는 작가인지, 내 컨셉의 뿌리를 이해하지 못한게 아닐까 의심은 하지만, 굳이 변명하고 설득할 생각은  지금도 없다. 단지 평론가와 발을 맞춰 주지못한 작가로써 미안할 따름이다. '세상에 돌을 던진다'는 말이 은유하는 것이 이 사회에 일어나는 문제들을 비유로 끌어내어 작품 혹은 행위예술로 타인들에게 질문을 한다는 뜻일 터이고, 그 소통의 방법이 강하고 혁신적일 수록이 성공한 유명작가가 된다는 걸 모르는 바가  아니다. 그러나 사실 나는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것들은 스스로 원인이 있어 일어 나는 것이기에, 때가 되면 저절로 꺼지는 거품과 같은 거라는 생각을 가졌기에 시비를 할 일이 없다는 게 내 지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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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자 작가의 롱아일랜드 노스포크 사운드의 스튜디오.


학의 발달로 우주의 모든 것이 다 밝혀져도, 가장 깊고 큰 인간이라는 우주를 이해하고 알지 못한다면, 결코 우주의 최후 비밀이 밝혀질수 없으리라며, "네 자신을 알라"라는 소크라테스의 말에 동의 할 뿐 아니라, 나는 내가 스스로 돌질을 해서라도 늘 깨어 있게 하고 싶은 것은 나의 정신일 따름이다. 20세기 말 앤디 워홀이 유명을 획득한 후 유명에 대한 정의를 말한 적이 있어 파문을 일으켰었던게 생각난다. '자기가  이것이 예술이다라고 말하면 그것은 그 자리에서 예술품으로 탄생되는 파워가 주어 지는 것이 바로 유명에 대한 정의'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던 그 시절엔 얼마나 사람을 기만하는 소리냐고 했지만, 지금은 그말이 유명의 본질이 되어 당연지사로 여기며 수많은 작가들과 화랑들이 예술이 뭔지 모르는 자들을 우롱하는데 활용된다. 개념예술을 운운하며, 자기의 배설물을 깡통에 넣어서 통조림을 만든후 싸인을 해서 런던 테이트 갤러리에서 같은 무게의 금값으로 환산하여 팔던 이태리작가 피에르 만조니라는 작가도 있지만, 그와 유사한 짓거리는 늘 지속되고 있다. 더 기상천외할 일들을 만들어 부와 명예의 경악을 불러일으킬 그 무었을 찾아내려고, 수많은 젊은 작가들의 머리에 쥐가 나고 있다. 백남준이 말했던 "예술은 고등사기"라는 말이 표피적으로만 받아들여져서 황당무개한 작품을 해득시킬 때 사용하고 있다. 그 말의 본질적인 의도는 예술의 진정한 자유정신을 일컬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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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스토니브룩 뉴욕주립대 스톨러센터 화랑에서 '게릴라 걸스(GUERRILLA GIRLS)'이라는 주제의 전시를 보았는데, 그건 정말 세상에 돌질을 위해 큐레이팅한 전시임이 역력했다. 현제 국제적인 반응을 얻어서 대학 화랑들로 순회전을 하고 있는 중인 것 같았다. 지금까지의 역사적인 데이타를 모아서 미술 메카들, 비엔날레나 뮤지엄과 개인 컬렉션, 경매 등등에서 여자 작가들에게 얼마나 불평등한 대접을 했는지를 여러 측면으로 고자질을 하고 있었다. 가장 큰 질문이 여자는 누드로만 메트로폴리탄뮤지엄에 들어갈 수 있는가?(Do women have to be naked to get into the Met.Museum?)라는 고전주의 작가 앵그르의 그랑드 오달리스크의 관능적인 누드화의 얼굴이  분노한 고릴라의 얼굴로 바뀌어져서 시니칼하게 중앙에 매우 큰 사이즈로 걸려있었다.  그리고 덧붙여서 뮤지엄의 현대미술 섹션에 여성작가는 4%도 못되지만, 76%의 누드화로의 여자 그림들이 걸려있다고 통계적 고발을 하고 있었다.


그 전시회로 의해 사회로부터 얻고자하는 것은 '여성 작가를 평등하게 대접하라'이다. 나는 그 전시회를 보면서 때가 되면 그 불평등은 저절로 다 해소될텐데 하고 혼자 웃었다. 서구인들의 생각으로는 그러한 운동을 마치 여성이 선거권을 획득 해낸 것처럼, 목소리를 모아 주창했기 때문에 여권이 신장된 것이라고 규명하여 페미니즘 운동에 박차를 가해 진행되어 왔었다. 어떤 조직적 시스템을 만들어야만 여성 균등의 사회로 변해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 삶은 자연섭리대로, 조금은  빠르고 조금은 느리게 평형을 이루기도하고 기울기도하는 마치 달이 변하는 모습 처럼 드러나는 것일 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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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iza Kim, 집착의 덫/Obsession"s trap. 24"x24"x4", 2008. Acrilic on natural wood with mirror

                                                                   

는 동양의 기철학인, 주역이 말하는 우주의 변화에 대해 공부를 한적이 있는데,  우주의 기운은 180년 주기로 음과 양이 역류를 하는 현상이 반복된다고한다. 기철학인 음양오행설에 의하면, 우주의 기운은 어떤 주기율에 의해 음과양이 뒤집혀 흐른다고 말한다. 그 주기에 접어들면, 드러나있는 양의 기운이 음의 기운에 짓눌려 맥을 추지 못하고 눌려있던 음의 기운이 왕성하게 작동하며 드러난다고 한다. 가장 오래되고 큰 변화의 증거가 바다 밑이 땅이 되고, 땅이 물밑으로 잠기는 이미 과학이 증명한 수억년 전에  일어난 음과 양의 뒤집힘은 누구나 알고 있다. 지금 21세기로 접어들며 또 다시 음의 기운이 왕성해진 시대에 도래했기 때문에 여러가지의 증상이 일어나고 있다 한다. 


옛날에도 여왕이 있던 시절들이 있었지만, 이곳저곳에 여성 통치자들이 나타나고는 이유가 그렇고, 양기운이라 할 백인들을 리드하는 미국의 흑인 대통령이 선출되어 통치를 하는 것도 그러하다 한다. 그리고 그를 이어 다음엔 여자가 대통령이 되리라고 음양학자들은 예언을 한다. 그리고 우리가 살고있는 이 시대에서의 가장 큰 증거로는 양인, 아날로그 방식의 기기들이 음의 디지탈화로 되어 모든 눈에 보이지 않는 음의 에너지로 작동이 되지 않은가. 크게는 우주선에서부터 인공지능 알파고나 로봇, 홀로그램, 무인 자동차, 드론 등등. 문명은 3분마다 바뀌어 격을 달리한다고 말하는 시대에  우린 살고 있다. 물론 가족 구성도 여성과 남성의 역할과 위상이 달라져가는 현실 외에도, 그동안 규명되어 세상을 지배했던 양 위주의 도덕율이나, 사회정의가  모래성처럼 서서히 무너져 내리고 있지 않은지.


여하튼, 시끄럽기 그지 없는 세상에 한 목소리를 더 낼일도 없지만, 하나도 자연의 섭리에서 벗어나지 않는 인간 만사에 돌을 던질 아무런 이유도 없지만, 내가 아니라고 부정하여 돌을 던지면, 언젠가 어디엔가에서 그에 반대하는 돌을 맞을 꺼라는 인과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 인과는 던진 부메랑과 같아서 반드시 언젠가 돌아 온다. 하늘을 우러러 부끄럽지않게 사는 인간 본연의 삶이 '예술가'라는 명칭보다 먼저여야 하는 것이 바람직한 삶이라고 나는 늘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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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자 Wheiza Kim/화가

이화여고 시절 문예반에서 활동한 후 서울대 미대를 졸업했다. 결혼 후 10여년 동안 붓을 꺾고 있다가, 30대 중반을 넘기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으로 다시 작업을 시도하기 위해 성신여대 대학원에서 판화를 전공했다.1997년 스토니브룩, 뉴욕주립대(SUNY) 방문 초청작가로 와서 한국현대미술을 가르쳤다. 국립현대미술관의 국전을 시작으로 서울과 뉴욕을 오가며 100 여회의 그룹전과 22회의 개인전을 열며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했다. 현재 롱아일랜드 끝자락 노스포크 사운드에 거주하며, 자연과 더불어 작업하고 있다. 

http://wheizak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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