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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병렬/은총의 교실
2016.07.31 17:37

(203) 허병렬: 소나기식 교육, 가랑비식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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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총의 교실 (11) 우중명상(雨中瞑想) 


소나기식 교육, 가랑비식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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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stave Caillebotte. Paris Street, Rainy Day, 1877. Art Institute of Chicago



더운 날씨에 쏟아지는 소나기는 마치 청량수이다. 찌는 듯이 더운 날 갑자기 세차게 내리다가 곧 그치는 비는 그 속을 활보하고 싶게 만든다. 오래 가지 않을 소나기 때문에 잠시 비를 피하며 멈추기를 기다리는 마음도 홀가분하다. 이런 비에 연관되는 속담에 ‘소나기밥’이 있다.


어느 때는 조금 먹다가 어느 때는 놀랄 만큼 많이 먹는 밥을 말하며 ‘소나기밥에 체한다’고 이어진다. 또 ‘소나기술’이란 말은 보통 때는 마시지 않다가 어쩌다가 놀랄 만큼 마시는 술을 말하며 ‘소나기술에 인사불성이 된다’고 이어진다. 소나기가 여름의 정취를 불러 일으키지만, 일상에서는 이런 현상이 생활의 리듬을 깬다.


여름의 다른 계절적인 특색의 하나는 특정 지역에서 길게 이어지는 장마가 있다. 여러 날 동안 비가 계속하여 내리니까 그만 지쳐서 파란 하늘을 그리게 된다. 게다가 장마철이 지나면 가가호호를 비롯하여 그 지역에서는 뒷처리에 바쁘게 된다.이렇게 비에 관해 생각하게 되는 것은 학생이 공부하는 방법이나 가정·학교에서 하고 있는 교육 방법에 이를 비유할 수도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소나기밥·소나기술만 있는 것이 아니고, 소나기 공부도 있지 않은가. 시험을 앞두고 당일치기로 하는 공부가 이에 해당한다고 본다. 소나기는 시원하지만, 소나기 공부는 본인에게 고생이 될 뿐만 아니라, 효과도 거의 없다. 시험이 끝나면 그 흔적도 사라지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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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리 도넌, 진 켈리 연출 진 켈리 주연의 뮤지컬 영화 'Singing in the Rain'(1952) 중에서.


*Singing in the Rain <YouTube>



육 방법에 있어서도 평소에는 거의 무관심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열성을 보이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자녀들에게 그 교육 방법이 일과성 소나기 현상으로 느껴진다면 그 효과를 바랄 수 없다.


그렇다면 어느 특정 기간에 집중적으로 하는 교육은 어떨까. 자녀나 학생의 학습 동기가 있고, 사전에 잘 계획된 학습 활동이라면 그 효과를 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지루하고 효과가 적은 학습이 될 수도 있다. 마치 장마에서 느끼는 피곤함을 줄 수도 있고, 그것을 치유하는 기간이 필요하게 된다.


그런데 비에는 소나기와 장마비만 있는가. 폭우도 있고 가랑비도 있다. 폭우같은 교육 방법은 그 효과를 믿을 수 없지만, 가랑비는 생각해 볼만 하다. 가랑비는 가늘게 내리는 세우(細雨)이다. 가랑비에 연관되는 속담에는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는 것이 있다. 가랑비에 옷이 조금씩 젖는 줄도 모르게 젖어가듯이,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거듭되면 무시하지 못할 정도가 된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말을 긍정적인 방향에서 해석해 보자.가랑비처럼 모르는 사이에 자녀나 학생들의 마음을 차츰차츰 순화하는 작용을 말한다. 너무 권위적으로, 강압적으로, 일방통행적으로 그들을 끌고 가는 것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그들을 이해하고 사랑하면서 가랑비처럼 조금씩 스미는 작용을 말한다. 지식 교육도 이런 방법을 취할 수 있겠지만,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그들에게 필요한 정서교육을 말한다. 자칫 황폐해지기 쉬운 이곳 생활에서 가랑비가 되어 그들이 의식하지 않으면서 감정과 인간미가 풍부하게 자라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인간의 교육 기간은 길다. 어떤 동물들은 태어나자 마자 그 자리에서 걷기 시작한다. 그러나 우리는 한 20년을 교육 받아야 유능한 사회인으로 활동할 수 있다. 이 동안에 소나기 같은 교육보다는 가랑비 같은 교육이 바람직하다고 생각된다. 특히 뿌리교육은 개인의 정체성 확립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므로 일상생활에서 꾸준히 계속되어야 한국문화를 사랑하게 될 줄 안다.어른들만 미국 생활이 어려운 것은 아니다. 자녀나 학생들도 어른 못지 않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이런 것을 예측하고 시작한 생활의 도약이 아닌가.


학생 중심이며 개성을 존중하고 개별적으로 창의력 계발을 교육 이념으로 삼으며, 교육 기술이 우수한 미국학교라고 하더라도 한국 가정과 한국학교에서 할 일은 따로 있다. 공교육이 미치지 못하는 부분, 즉 한국의 특성을 살리고 인성(人性) 교육을 하는 것은 바로 우리들의 일이다. 




허병렬100.jpg 허병렬 (Grace B. Huh, 許昞烈)/뉴욕한국학교 이사장

1926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성여자사범학교 본과 졸업 후 동국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1960년 조지 피바디 티처스칼리지(테네시주)에서 학사, 1969년 뱅크스트릿 에듀케이션칼리지에서 석사학위를 받음. 서울사대부속초등학교, 이화여대 부속 초등학교 교사를 거쳐 1967년부터 뉴욕한인교회 한글학교 교사, 컬럼비아대 한국어과 강사, 퀸즈칼리지(CUNY) 한국어과 강사, 1973년부터 2009년까지 뉴욕한국학교 교장직을 맡았다. '한인교육연구' (재미한인학교협의회 발행) 편집인, 어린이 뮤지컬 '흥부와 놀부'(1981) '심청 뉴욕에 오다'(1998) '나무꾼과 선녀'(2005) 제작, 극본, 연출로 공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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