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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파니 S. 리/흔들리며 피는 꽃
2016.07.10 18:35

(200) 스테파니 S. 리: 50:50에 반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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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며 피는 꽃 (16) 미술계 갑질에 관하여



50:50에 반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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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Peace, Stephanie S. Lee, 2015, 30˝ (H) x 24˝ (W) x 2˝ (D), Gold and color pigment and ink on Hanji



직 미술시장을 겪은지 얼마 되지않아 이런 생각을 하는 걸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조금 더 객관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건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작가와 판매자가 작품비를 반반으로 나누는 것은 공평한 것 같지가 않다. 구상에서 완성까지 들어간 정성과 시간은 재쳐두고서라도 재료비까지 떠안으면 반은 커녕 훨씬 더 적은데, 그림에 손도 안댄 사람과 반반씩 나누는 이런 불공정한 거래가 어째서 통상적이 되었는지 좀처럼 이해되지 않는다.


내가 모르고 있는 다른 상품이나 제품들도 그러한가? 그렇다면 그 모든 거래에도 반대한다. 그것이 어떤 분야든 노력의 댓가를 불공정한 기준으로 책정하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 그렇다면 수많은 예술가들은 어째서 이런 불공정한 제안을 업계의 불문률로 여기며 받아들이고 있는것인가? 착해서? 셈에 약하고 계산하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기획과 판매, 홍보를 할 능력이 없어서 그만큼의 돈을 들이는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니다. 정말로 절박하기 때문에, 부당한걸 알지만 이마저도 거절하면 수입원이 하나도 없어지기 때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까다로이 굴었다가 전시 기회마저 놓칠까봐, 좋은게 좋은거지 밉보이지말자 하며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계약에 동의한다. 작가들은 사실 작품에만 집중하기에도 힘이 들어서 다른 것에 신경쓸 여력이 없다. 대부분의 작가들이 기획, 판매나 홍보에 능숙하지 못하며, 좋은 기획과 홍보가 좋은 작품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홍보와 기획에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든다는 것도 인정한다.


게다가 판매수익을 반반씩 나눈다고 해도 전시 중에 작품을 하나도 판매하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하고 그렇게 되면 돈과 시간을 들인 기획자나 갤러리는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갤러리는 작가 홍보비 외에도 장소 임대료와, 유지비등 고정적으로 지출되는 비용을 감당해야 하는데 갤러리가 자선단체도 아니고 매달 임대료와 유지비를 쏟아부으며 예술성만 따질 수는 없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작가가 없다면 작품이 나오지 않는데, 작품이 없다면 기획자나 갤러리가 존재할 수 있을것인가?  작가가 최고라서 작가 마음대로 뭐든 해도 된다는 것이 아니다. 갤러리나 컬렉터가 없다면 작가 역시 작업활동을 지속하기 힘들긴 마찬가지 일테다. 그렇다면 상생을 위해서 갤러리 고정지출의 일부분을 작가가 어느 정도 부담하고 작품 판매에 관한 배분을 좀 더 공평하게 하는 것이 서로에게 좋을 것 같다. 그런데, 미술계에는 대관하는 갤러리는 좋은 갤러리가 아니고, 대관을 해서 전시하는 작가는 훌륭한 작가가 아니라고 여기는 이상한 편견이 있는듯 하다.


‘초대전’이라는 말에 다들 집착하는데 어떤때는 갤러리 측보다 작가가 이말에 더  집착해서 허울좋은 초대전을 열어놓고 본인이 판매에 연연해 하며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부담을 주는 일도 빈번하다. 작품을 전시한다는 것은 같은데 둘의 차이가 뭐가 그렇게 중요한지 사실 난 잘 모르겠다. 세상에 공짜란 없는 법이거늘 초대전으로 내 돈 안들이고 전시한다는게 그렇게 좋아할 일일까 싶다. 정당한 요구를 하려거든 상대의 비용도 정당하게 치뤄주는 것에서 시작해야할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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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u Piece, Stephanie S. Lee, 2015, 30˝ (H) x 24˝ (W) x 2˝ (D), Gold and color pigment and ink on Hanji



시작하는 작가들은 미술시장에서 언제나 ‘을’의 입장이다. 을도 이런 서러운 을이 없다. 의사들 한테 가서 ‘수술 한번 그냥 해주세요’ 라고는 못할텐데… 하다못해 빵집에 가서 빵하나 공짜로 달라고 하는 것도 이보다는 어렵게 생각할텐데... 재능기부며 작품기증은 너무도 당연하게 요구하고, 키워주겠다며 아무 조건 없이 작품을 달라는 사람들도 부지기수다. 작품 손상에 대한 책임도 없이, 배송비도 안주면서, 팔아줄테니 작품을 보내라는 갤러리들도 한두군데가 아니다. 


아무런 댓가없이 믿음 하나로 자식같은 작품을 맡겨두고 몇해가 지나도록 돌려받지 못해도 뾰족한 조치를 취하기는 커녕, 싫은 소리 해서 관계가 상하지나 않을까 전전긍긍 눈치만 보는 작가들이 대부분이다. 전시하고 싶어하는 중견작가들이 줄을 섰는데 전시 기회를 주면 어떠한 불공정한 계약도 영광으로 알고 고마워 해야 하는 지경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인터넷에서 물건을 사더라도 돈을 먼저 지불하고 물건을 받는데 왜 피땀흘려 만들어낸 작품은 배송비 한푼 안주고 먼저 내 놓으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일단 니돈들여서 보내주면 여기저기 보여줄텐데, 팔린다는 보장은 없어.’ 라는 조건으로 후한 인심쓰듯 ‘안팔리면 우리가 배송비 들여서 돌려보내줄게.’라고 하는 말도 안되는 제안이 말이 되게 느껴지는 열악한 상황이 심히 속상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런 제안을 처음부터 딱 부러지게 거절 못하고 눈치를 본 내 자신에게 몹시 화가 난다. 나는 왜 한걸음 떨어져서 보면 말도 안되는 불공정한 거래조건을 처음부터 거절하지 못했던 것일까? 그것을 통해 도대체 무엇을 기대했던 것인가? 미술계의 갑을 관계 더럽다 치사하다 하면서 그림 그리기도 모자란 시간에 눈치보며 여기저기 얼굴 내비치느라 바쁘지 않았던가… 그런 내 마음 뒤에는 무엇이 있었던가?


쏘아대던 화살과 불만들이 이내 따가운 자기반성으로 되돌아온다. 세상물정 모르는 작가들을 약삭빠른 사업가들이 이용만 해먹는다 볼멘소리를 했었는데 어쩌면 그것만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예술을 몰라주고 돈만 밝힌다고 불평할 동안 나는 과연 제대로 된 작품을 만드는 데 온전히 집중하고 있었던 것일까.


자세히 들여다보니 어쩌면 내 속에 허영과 욕심이 스스로 ‘을’이 되기를 를 자처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명해지려는 욕심, 전시를 많이 하려는 욕심, 그림을 많이 팔려는 욕심과 함께  잘보이지 않으면 혹시 도태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 속에 굽신거리며 지내온게 아닌가 반성한다. 시댁의 부당한 요구에 적응하다 못해 길들여져서 싫다싫다 하면서도 요구하지 않은 것 까지 눈치껏 해다 바치며 미움받지않고, 인정받고 싶어 하는 며느리처럼…


누가 그랬다. 미술계란게 연기가 썩 좋지 않아도 무대와 조명과 관객에 따라서 스타가 되고 아니고가 결정되는 연예계와 닮았다고.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술계가 연예계와 닮아가는 것에 반대하고 싶다. 애초에 인기를 위해서, 혹은 돈을 벌려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사람이 어디 있던가? 

그림을 그리는 것이 좋아서, 그림을 통해 전하고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표현하지 않고서는 참지 못하는 열정이 있었기에 시작한 일이 아닌가? 


그러니 생계가 급급한 상황에 처한 것이 아닌 예술인들만이라도 불공정한 거래에 반기를 들 수 있는 용기를 내서 버텨줬으면 한다. 적어도 작가라면 잘 팔리는 작품이 좋은 작품일 경우는 있으나 팔리지 않는 그림이 좋지 않은 그림은 아니라는 것에 확실한 믿음을 가져줬으면 좋겠다. 나 하나 조금 더 팔고, 조금 더 많이 전시하고, 조금 더 잘 알려지겠다고 말도 안되는 작품 가격이나 재능기부에 동의하지는 말아줬으면 좋겠다. 나는 돈 안받아도 생계유지가 될런지 모르겠지만 내가 그렇게 헐값에 동조해버리면 작업에 온 식구 생계를 책임지고 살아가는 작가들은 어쩌란 말인가. 


작업에 심혈을 기울이고, 작품을 최상의 상태로 선보이는 것에는 열과 성을 다 하되 작품과 제품을 혼동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진심어린 평가는 겸허히 받아들이되 시장논리에 입각한 비평에는 흔들리지 않았으면 한다. 순진한 희망사항일지언정 돈이 아니라 작품이, 예술이 좋아서 전시를 해 주고, 작품을 상품으로 보지 않고 자존심을 지켜주는 예술인과 기획자들이 남아있어주기를 소망한다. 예술이 시대와 금전을 초월하는 가치를 담을수 있는 이유는 어떤 처지에서도 비판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것, 어떠한 상황에도 굴하지 않고 희망을 찾아낸다는점 아니겠는가. 



Stephanie_100-2.jpg Stephanie S. Lee (김소연) / 화가, 큐레이터 
부산에서 태어나 예술고등학교 졸업 후 1996년 뉴욕으로 이주했다. 프랫인스티튜트 학부에서 그래픽디자인을 전공한 후 맨해튼 마케팅회사, 세무회사, 법률회사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다가 딸을 출산하면서 한동안 전업 주부생활을 했다. 2010년 한국 방문 중 우연히 접한 민화에 매료되어 창작민화 작업을 시작했다. 2014년 한국민화연구소(Korean Folk Art)를 창설, 플러싱 타운홀의 티칭아티스트로 활동하며, 전시도 기획하고 있다. http://www.stephaniesle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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