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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임/창가의 선인장
2016.04.04 20:43

(175) 이수임: 이태원에서 온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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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가의 선인장 (35) Ask Me Not



이태원에서 온 여자



이태원에서 온 여자, A woman from Itaewon.jpg

Windy day, 2010, gouache & pen on paper, 15 x 11 inches



“그래, 나 이태원에서 온 여자다. 그래서 어쨌다는 거야!” 

소리가 목구멍까지 올라와 혀끝에서 뚝 떨어지려는 것을 꾹 누루고 쏜살같이 밖으로 튀어나왔다.


오래 전, 브루클린의 한 야채 가게에서 있었던 일이다. 가게 주인 아저씨 왈 

“한국사람이에요?" 

"이 동네 살아요?"

"미국에 언제 왔어요?” 

대꾸하기 싫지만, 한국사람끼리니까 순수히 대답했다. 

“어디서 살다 왔어요?” 

“이태원…”


말이 끝나기도 전에 독수리처럼 날카로운 눈으로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계속 묻던 아저씨의 신상 조사가 갑자기 멈췄다. 이태원에서 왔으면 뻔하다는 표정이었다.


그 야채 가게 아저씨와 알고 지내는 동네 한 아주머니는 굳이 초대도 하지 않은 우리 집에 불쑥 찾아왔다. 물증을 잡으려는 예리한 눈으로 집안을 둘러봤다. “결혼 사진이 없네. 결혼식은 했어?” 의심스러운 눈길로 물었다. 신상 조사를 한 아저씨의 말을 증명하기 위해 호구조사를 나온 사람 마냥.



는 남산동에서 태어나 남산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이태원으로 이사 왔다. 미국 오기 전까지 이태원에 살며 길에 지나다니는 외국인을 자주 봤다. 당연히 미국에 와서도 다른 한인 이민객과는 달리 외국인에 대한 시각적 저항감이 별로 없었다.


이태원 중심가에 ‘웨스턴하우스’라는 서양 식당을 어릴 적부터 아버지 따라 드나들어 서양 음식과 문화에 대한 접촉을 자연스럽게 대할 수도 있었다.


이태원(梨泰院)이라는 명칭은 조선 시대 이 지역에 배나무밭이 많다는 이유로 유래하였다고 한다. 이곳은 또한 임진왜란 중에 성폭행을 당한 여성들, 그 여성들이 낳은 혼혈인들이 모여 살던 동네라고 이태원(異胎圓)으로 불리기도 했단다. 임오군란 때에는 청나라 부대의 주둔지였고 일제시대에는 일본인 전용 거주지였다. 한국전쟁 이후엔 미군기지가 들어오면서 기지촌 성격을 띠게 됐다고 한다. 


이태원 산기슭에 울창한 나무에 둘러싸인 음침한 사당이 있었다. 여러 차례의 전란으로 외군에게 치욕을 당한 여성들의 한 많은 사연을 품은 듯 근처만 가도 한여름에 등 줄기가 써늘해지곤 했다.


‘외국 어디에 나갔다가 온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외국은커녕 이태원도 가 본 적이 없다.’는 우스갯 소리가 있을 만큼 이태원은 한국 속의 외국이다.


그런 험난한 사연을 가지고 있는 이태원에서 온 나는 신원조사를 할 것 같은 한인이 운영하는 가게는 피해 다녔다. 아니면 가게 밖에서 한인 업주나 케셔가 있나 없나 슬쩍 안을 들여다보곤 발길을 돌려야 했던 편치않은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요즈음은 미주 한인 삶의 연륜이 쌓이다 보니 외국인 점원을 쓰기도 하고 1.5세 자식들이 물려받아 운영하는 가게가 많아졌다. 이 가게 저 가게를 마음 놓고 들락거려도 아무도 나에게 관심을 두고 물어보는 사람이 없다.


이태원에서 온 여자는 한결 자유로워졌다. 그런데 왜 이리 허전한 걸까! 



Soo Im Lee's Poto100.jpg 이수임/화가
서울에서 태어나 홍익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서양화 전공으로 학사, 석사를 받았다. 1981년 미국으로 이주, 뉴욕대에서 판화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4년 대학 동기동창인 화가 이일(IL LEE)씨와 결혼, 두 아들을 낳고 브루클린 그린포인트에서 작업하다 최근 맨해튼으로 이주했다. 2008년부터 뉴욕중앙일보에 칼럼을 기고해왔다. http://sooimlee3.blogspo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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