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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자/바람의 메시지
2016.03.21 22:50

(171) 김희자: 꽃밭을 망쳐서 미운 짐승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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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메시지 (5) 사슴과의 전쟁

 

꽃밭을 망쳐서 미운 짐승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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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속의 Irise, 12x12, computer graphic

                                                              

 

장자리만 녹고, 아직 둥그런 얼음 덩이로 떠있는 작은 연못에서 물을 핥던 사슴 가족이 초봄 첫 나들이를 왔다. 한겨울을 지내며 사람에 대한 두려움을 잊어버렸는지 검은 눈망울들로 모두 나를 빤히 쳐다본다. 지난 겨울 사슴 사냥철을 잘 모면했구나 싶어 안심이 되고 너무도 반가웠다. 언제나 다섯 마리가 함께 다닌다. 세 마리의 새끼들이 많이 컷구나 하며, 마치 오랜만에 손주들을 보듯 미소를 함박 짓게된다. 아직은 스노우 릴리와 크로커스 꽃싹이 띄엄띄엄 오르고 있을 뿐, 제데대 먹을 만한 푸른잎들도 없어 억센 침엽수잎들을 뜯어 먹고있는 새끼 사슴들을 보면, 입안이 헐었겠다 싶어 참 안스럽다.                                                                                                                                                                                                      

옛적에, 내 아이들을 키우던 때 동화책 속에 있는 아기 꽃사슴을 보며 “밤비, 밤비다” 하며  함께 즐거워 했던 야생 꽃사슴들이 뒷정원에 처음 나타났을 때가 기억난다. 너무도 예쁘고 신기하여 도망이라도 갈까, 몰래 숨어서 사진을 찍어대곤 했다. 그 정경이야 말로  파라다이스라는 이름의 그림 한폭이었기에, 환희심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러나, 언젠가 부터 그들을 보면 쫓으려고, 나뭇가지 막대를 들게 되었다.                                                                                                                                                                

몇해 전에 망쳐버린 야채밭은 이미 포기를 한거지만, 내가 사랑하여 가꾸어가는 아이리스 꽃밭까지도 포기 할 수는 없어서 요즘 무척 불안하기 때문이다. 이웃 사람들의 얘기로는 그들이 물을 마시러 오는 것이 화근이니, 그들을 막기 위해서는 연못을 메꾸고, 분수 역시 없애야 한다는 의견들이다. 꽃들이 봉오리를 맺기 전에 그일을 결심을 해야 한다고 모두 조언을 한다. 옳은 말인 것 같긴 하지만, 내게는 너무 어려운 주문이다.

 

물방울을 튕기며 재재거리며 목욕하는 여러 종류의 새들을 지켜 보던 즐거움, 리듬을 연주하는 풍경 소리와 하모니를 이루던 경쾌한 분수 물떨어지는 소리를 포기할 수가 없다. 봄이면 어김없이 연못 근처로 와서 늦가을까지 나무그늘 속에 살며, 가끔은 연못 속에서 헤엄을 치곤 하는 동그란 등을 가진 매우 귀여운 주황색 땅 거북이들도 곧 올텐데 라는 생각을 하면 도무지 그 결심을 할 수가 없다. 

 

내 생각엔 연못을 없앤다고 해서 해결된다는 보장 또한 없다는 생각도 해본다. 주변의 팜들이 계속 철책들을 두르기 때문에 사슴들이 먹이를 구하기 어려운 사정이 되어서 동네 정원에까지 침입을 하기 시작한 것이라는 의견이 맞는 것 같다.  또 다른 의견으로 개를 키우는 것이 방법이라고들 해서 그럴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그러나, 3년 전 키우던 개가 나이가 들어 죽은 후로, 함께 오래 정붙여 살던 식구를 잃는 상실감이 매우 견디기 어려워서 우리 부부는 다시는 개를 키우지 않겠다고 결심을 했었다. 가만히 유추해보면 개가 죽은 후부터 사슴들이 정원에 나타나기 시작한게 맞는말 같다. 아마 동물들의 영역 표시에 의한 동물세계의 질서였을까? 온갖 궁리와  방법을 모색하면서도 도무지 결심이 서질 않아 생각만 복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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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달다, 33x33x4. 2006

 

                                                                                                                                 

작년 초여름, 경악할 사건이 일어났었다. 서너해 동안 가꾸던 채소밭엘 나갔더니 한 개의 잎 줄기조차 없는 내가 뭘 심은 적이 있는 것이 사실인가 의심이 들 정도로 텅 비어있었다. 크진 않았지만, 온갖 채소와 허브로 가득했던 두식구 충분히 먹고남아서 집에 놀러오는 사람들에게도 나누어주던 자랑스런 밭이었다. 사슴의 짓이라는 걸 알게 됐고, 분노가 치밀어 보기만 하면 죽여버리겠다고 살기를  띠며 벼르게 되었다. 그 이후로 밭이 없으니 앞뒤 정원 전체의 모든 꽃들까지 먹기 시작했다. 그래서 꽃사슴이라고 불리는 지 알 수 없지만, 꽃봉오리들이 올라오는 쪽족 먹어버리곤해서, 꽃구경을 할 수가 없었다. 사슴이 싫어한다는 케미칼을 뿌려가며 막아 보았지만, 간혹 밤새 비가 내린 걸 방심   하면, 어김없이 참수를 당한 꽃대들만 조르륵 남아 있곤했다.

                                                                                                                                                       

그나마도 불행중 다행이랄까, 내가 사랑하는 아이리스만은 희생되지  않고 잘  피어주어서 , 아마도 아이리스엔 그들이 싫어하는 무언가가 있나 보다고 안심을 하고, 지난 가을 엔 포기 나누기로 번식을 꽤 넓게 시켰다.  오로지 남은  희망은 아이리스 꽃 가꾸기 뿐인데 요즈음 그간 먹은 일이 없던, 아이리스 새순들을 먹어치웠으니 몹시 불안하다. 내 추측으로 아이리스는 5월말경에 피기 때문에 주변 어디에도 그들이 좋아하는 연한 새잎들이 풍부하기 때문이 아닐까고 유추를 해본다.

     

그제 저녁 동네 부인들의 채팅 파티에서  몇 집 건너에 사는 에드워드의 부인이 작년 봄, 사슴 때문에 겪은 참혹한 얘기를 듣게 됐다. 그녀는 아직도 분을 참지 못해 눈물을 뚝뚝흘리며 절규에 가까운 하소연을 했다. 사연인즉, 양로원에 계신 어머니가 네델란드에서 젊어 이민을 왔기에, 튤립 필드의 사진만보아도,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눈시울을 적시는지라 2년 후 90세 생일날에는 튤립 꽃밭에서 깜짝 파티를 해드리려고, 두어해 전부터 식구들과 비밀 플랜을 세우고 다양한 꽃 색깔의 구근 이백여 개를 심어 가꾼지 세번째 해였다고 한다. 실하고 많은 꽃을 피우게 하려고 농원 전문가와 의논해서 특별한 거름도 했다 한다. 지속적으로 필드를 확장해가며 온갖 정성을 다하여 육백여 송이의  꽃봉오리를 세어가며,  온 식구들과  함께 어머니를 행복하게해 드릴 수 있을 멋진  파티를 상상하며 황홀한 꿈을 꾸며 지내던 어느 날 아침, 악몽 속에서 나 있을 법한 일이 일어났었던 거다.

 

전날 저녁까지도 색색으로 봉긋한 입술을 살짝 열고, 귀염을 떨고 있었던 꽃봉오리들이 흔적도 없이 앙상한 대만 고스란히 남은 처참한 광경이 벌어진 거였다. 부인은 그것이 꿈이라고 생각했었다고 한다. 깨어나려고 눈까지 비벼가며 몇 번이나 다시 살펴 보았다 한다.  그러나 그게 꿈이 아님을 알았을 때, 마치 벼락이라도 맞은듯이 전류가 온몸으로 흐르고,  찌르는듯한 고통과 함께 머릿속이 완전히 텅 비어 버리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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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mb of nature, 33x33x4, 2015

 

                                                                                                                                       

후로 그녀는 얼마 동안 실성한 상태로 지났었고, 지금도 사슴만 보면 장난감 총이라곤 하지만, 맞으면 충분히 심한 상처를 입힐 수도 있는 비비건을 쏘아대며, 미친 사람처럼 소릴 지르게 된다고 하며 부르르 몸을 떨었다.  아직도 가시지 않은 그녀의 광기에 가까운 꽃에 대한 애착이 내게도 두려움으로 닿아왔다. 만약에 사슴들이 내 아이리스 꽃봉오리를 다 먹어치우면, 나도 아마 그녀같이 혼이 나간 사람처럼 될지도 모르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 역시 수 년간 다른 모양과 색깔의 아이리스를 보기만하면, 이곳저곳에서 어렵게 수집하여 심어 왔다. 옛날 같았으면 지렁이는 보기만 해도 소리치며 멀리 도망가고 말았을 텐데, 온 몸에 소름이 돋음에도 참아가며 땅을 북돋우고, 근처 코넬대학 시험농장에서 오가닉 거름도 얻어와서 주고, 열심히 잡초를 제거하며, 꽃들과 함께한 시간이 마치 내 자식들을 돌보던 때와 다를 바가 없었다. 꽃 한송이 송이가 피어오를 때마다  마치 환희의 샴페인이라도  터트리듯 즐거웠다. 오랜만에 버겨운 기쁨으로 절로 노래가 나왔었다. 내가 한국을 떠날 무렵 듣기 좋아했던 “꽃밭에서”란 노래를 흥얼거렸다.” 이렇게 좋은 날에~~ 내님이 오신다면 ~~~~”   

 

검은 벨벳 칼라, 붉은 와인색, 코발트 블루, 황금색, 진주빛 하얀색, 색실로 수를 놓듯 보카시로 흰색을 섞어놓은 꽃잎들, 속잎과 겉잎이 다른 매칭으로 피어나는 꽃, 매우 다양하다. 십수년 그림을 그리며 다루어온 물감 으로도 도무지 표현되지 않는, 색이라기 보다는 빛으로 이루어진 그 오묘함에 젖어 그들 빛깔마다의 고유한 속삭임을 수없이 스케치하곤 했다. 머지 않아, 나의 낙원의 꽃꿈도 접게 될지, 끝까지 투쟁을 해야 할지. 그들 사슴은 생존을 위해 먹이를 구하기이니, 내가 양보해야 하고 그들을 용서해야 할지.  그들의  배고픔 만큼이나 중요한 내 영혼의 양식을 너희들이 갉아 먹고있는 거라고, 그들이 알아듣는다면, 나도 행복할 권리가 있다고 통 사정이라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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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stasy/버겨운 기쁨, 12x15x3, 2005

 

 

년 전, 내가 이동네로 이사 왔을때, 지역 신문에서 “사슴을 죽일 권리를 달라”라는 피켓을 들고 사냥총을 어깨에 멘 사람들이 시위하는 사진을 보았을 때만 해도, 그들이 몹쓸 사람들이라 여겨졌었다. 그 순하고 예쁜  짐승들을 도대체 왜 죽이겠다는 건지 의아했다. 내용을 읽어보니, 그들은 사슴들이 좋아하는 사과밭, 양상추밭, 부드럽고 향기가 좋은 아시안 채소밭 등의  농장 주인들이었는데 , 몇년 동안 사슴 때문에 생긴 피해가 막심하여, 더는 참을 수가 없는 상황이라는 이유였다. 동물보호 법에 의해 이 지역에서는 사슴사냥이 불법이었다. 그후에 법이 통과되어 겨울 일정 기한 동안 사냥을 하도록 되긴 했으나, 해마다 더많은 농원들에 6피트가 넘는 포로수용소를 연상시키는 흉물스런  철책을 두르는 것을 보면 그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않는 모양이다.  

                

여기는 아일랜드 북쪽 해변가로 길게 WILD WOOD STATE PARK가 연결이 된 자연보호 녹지 벨트여서, 사슴들이 서식하기가 좋은 조건이라 내버려두면 사슴의 숫자가 늘어나서 피해가 더욱 심각 해질 것이라고 그들은 주장했다. 그 넓은 나무 농장들도, 사슴이 나무의 새싹들을 다먹어쳐서 나무가 죽어서 어쩔 수 없이 그 넓은 농장 둘레에 철책을 두르니 마치 수용소를 연상하게 만든다. 내가 사슴들로부터 피해를 당하기 전에는 농장에 무슨 금덩이라도 땅에 묻었나, 도대체 왜 저런 흉물스런 철책들을 세우는 걸까하고 이해할수가 없었다. 자신이 당해 보지않으면 결코 타인의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반성하고있다.  

 

그러나, 설상가상으로 얼마 전부터 사슴 몸에 붙어 다닌다는 틱(Tick bug)에 물리면 걸리는, 라임 디지즈(Lyme disease)를 앓고 있는 농장일을 하는 이도 아닌, 동네 늙은이들의 얘길 들은 후로, 남편은 즐기던 정원관리와 풀숲을 걷기조차 기피하고 두려워하고 있다. 정원이나 팜에서 일을 하는 젊은 남미인들은 별탈이 없지만, 면역력이 약한 노인들에겐 치명적일 수 있다고 한다. 모든 것 다 포기하고 시내 가깝고 노후에 살기 편리한, 콘도미니엄으로 이사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남편의 주장대로 결론이 내려질까봐 나혼자 속 앓이를 앓고있다. 사슴과의 전쟁에서 지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내 낙원의 꿈은 갈등과 고민으로 철책을 두르게 된다. 

 

 

 

00000kim100.png 김희자 Wheiza Kim/화가

 

이화여고 시절 문예반에서 활동한 후 서울대 미대를 졸업했다. 결혼 후 10여년 동안 붓을 꺾고 있다가, 30대 중반을 넘기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으로 다시 작업을 시도하기 위해 성신여대 대학원에서 판화를 전공했다.1997년 스토니브룩, 뉴욕주립대(SUNY) 방문 초청작가로 와서 한국현대미술을 가르쳤다. 국립현대미술관의 국전을 시작으로 서울과 뉴욕을 오가며 100 여회의 그룹전과 22회의 개인전을 열며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했다. 현재 롱아일랜드 끝자락 노스포크 사운드에 거주하며, 자연과 더불어 작업하고 있다. 

http://wheizak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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