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필 황/택시 블루스
2016.02.01 09:35

(157) 필 황: 사고 현장의 천사(天使)

조회 수 1065 댓글 0

택시 블루스 <12> 진정한 시민정신 


사고 현장의 천사(天使)



사고는 불운이지만 그를 만난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그는 진정한 시민정신을 내게 보여줬다. 

내가 요구하지도 않았는데 자청해서 증언을 해주었다. 

앞으로 다른 사람이 곤경에 처한다면 나도 그와 같이 행동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00001.jpg
Photo: Phil Hwang


1월의 마지막 운행을 사고로 마무리했다.


31일 새벽 4시경,  5시 교대를 위해 6th Ave에서 북쪽으로 차를 몰고 있었다. 젊은 남자 손님 2명이 탔다. 116th St& 3rd Ave로 가자고 했다. 데려다 주고 가면 시간이 맞을 것 같았다. 52가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동쪽으로 향했다. Park Ave 교차로를 통과하는 순간이었다. 왼쪽에서 득달처럼 차가 달려들더니 택시를 들이받았다. 너무 순간적인 일이라 급정거를 할 틈도 없었다. 내 차는 순전히 충돌에 의한 충격으로 멈춰섰다.


‘맙소사 무슨 일이 일어난거지? 지금 사고가 난건가? 아 정말 영화에서 처럼 급작스럽게 와서 받는구나.’


뒷좌석에서 손님이 괜찮냐고 물었다. 나는 괜찮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곧 그게 나한테 묻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다른 한 명이 다친 것이다. 그들은 택시에서 내리더니 흥분해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가해차량 운전자는 흑인이었다. 그는 내게로 다가와 별로 미안한 기색도 없이 어떻게 하길 원하느냐고 물었다. ‘어떻게 하다니 당연히 경찰을 불러야지.’  또 다른 누군가가 다가와 자신이 사고 장면을 목격했으며 경찰이 오면 증언해주겠다고 했다.


‘일단 정신을 차리자. 사고 수습이 우선이다.’


조수석을 통해 택시 밖으로 나가보니 남자 한 명이 얼굴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그는 흥분된 목소리로 누군가와 통화하고 있었다. 응급차를 부르나 싶었는데 들어보니 가족이나 친구와 통화하는 것 같았다. 가해차량 운전자가 자신의 차를 움직이기에 그대로 있으라 했다. 차량 사고가 나면 상대차량 운전자와 언성을 높일 필요가 없다. 경찰에 리포트하고 보험사끼리 다투면 그만이다.   



00003.jpg Photo: Phil Hwang



911에 전화해 사고를 알렸다. 다친 사람이 있으며 얼굴에 피가 나고 있다고도 얘기했다. 잠시 후 병원 앰블란스가 먼저 왔다.  얼마 있다 경찰이 왔다. 가해 차량 운전자는 이때부터 말을 바꿔 내가 빨간불에 지나갔다고 주장했다. 거짓말이다. 나는 주위를 두리번 거리며 아까의 목격자를 찾았다. 기다리다 간 것일까? 다행히 그는 가까운 곳에 있다가 경찰관에게로 다가가 자신이 목격자라고 말했다. 


경찰관은 나하고 아는 사이냐고 물었다. 아니라고 했다. 경찰관은 그에게 신분증을 요구하고 그의 증언을 들었다. 그는 자신이 "길 건너편에서 횡단보도를 걸어오던 중이었으며 내가 진행하던 방향의 파란색 신호가 9초 이상 남았었다"고 말했다. 목격자가 진술을 한 탓인지 경찰관은 내게는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았다.


경찰관에게 증언을 마친 그는 내게로 왔다.

“필요하면 연락처를 남겨줄테니 얘기하세요.”


나는 수첩에 그의 이름과 연락처를 받았다. 나는 그제서야 그의 얼굴을 자세히 볼 정신이 있었다. 그는 40대 정도로 보였는데 짧은 수염이 얼굴을 덮고 있어 민족을 가늠하기 어려웠다. 중동계인 듯도 하고 터키 쪽인 듯도 했다.

“당신 차입니까? 빌려 타는 차입니까?” 그가 물었다.

“빌려 타는 차입니다.”

“그러면 병원에서 카이로프락틱 치료를 좀 받으세요.”


몇 년전 아내도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당일에는 멀쩡해 보였으나 나중에 척추 디스크로 한참 물리치료를 받았다. 나도 자고 일어나면 어딘가 쑤실 지 모를 일이다.

나는 그에게 재차 감사를 표했다. 그는 당연한 일을 한 것인냥 말했다.

“별 말씀을. 내 동생도 경찰입니다.”

그는 경찰 가족이었던 것이다.



고는 불운이지만 그를 만난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그는 진정한 시민정신을 내게 보여줬다. 내가 요구하지도 않았는데 자청해서 증언을 해주었다. 앞으로 다른 사람이 곤경에 처한다면 나도 그와 같이 행동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일 당장 죽을 것처럼 살라는 유명인사들의 말을 흘려들었다. 가령 스티브 잡스가 했다는 ‘내일 내가 죽는다고 해도 지금 내가 하는 일이 가치 있는 일인가’ 하는 식의 말. 내일 죽는다면 도대체 의미있는 일이 뭐가 있겠는가? 우리들 대부분은 내일 당장 죽지 않으며 모레도 살아야 한다. 그래도 이런 정도는 용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일년 후에 죽는다고 해도 지금 하는 일이 가치 있는가? 하는 질문. 그런데 사고를 당하고 보니 스티브 잡스가 옳다는 생각도 든다. 




002황길재100.jpg 필 황/택시 드라이버, 전 뉴욕라디오코리아 기자

1960년대 막바지 대구에서 태어나 자라고 1980년대 후반 대학을 다닌 486세대.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한 후 독립영화, 광고, 기업홍보 영상, TV 다큐멘터리, 충무로 극영화 등 영상관련 일을 주로 했다. 서른살 즈음 약 1년간의 인도여행을 계기로 정신세계에 눈뜨게 된 이후 정신세계원에서 일하며 동서고금의 정신세계 관련 지식을 섭렵했다. 2007년 다큐멘터리 영화제작 차 미국에 왔다가 벤처기업에 취업, 뉴욕에 자리를 잡았다. 2010년부터 뉴욕라디오코리아 보도국 기자로 활동했으며, 2013년 여름부터 옐로캡 드라이버로 일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