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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파니 S. 리/흔들리며 피는 꽃
2015.12.12 14:45

(142) 스테파니 S. 리: 모성(母性), 그 환상에 대하여

조회 수 1702 댓글 1
흔들리며 피는 꽃 (2) 뉴욕에서 엄마 되기

모성(母性), 환상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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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phanie S. Lee, Leash, 2015, Color pigment, gold pigment, ink on Korean Mulberry paper, 16 ¼˝ (H) x 14 ½˝ (W) x 2 ¾˝ (D)


들리다 못해 휘청 널부러졌던 시기.
많은 이들이 생에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라던 출산이 나에게는 그랬다.

결혼이야 얼른 해치웠지만, 아이를 낳는다는것은 아무래도 내키지 않아 도망다니다가 코너에 몰리고서야 떠밀리다시피 계획했다. 남들 다 하는거 하지 않으면 큰일 나는 거니까. 그런데 왠걸, 마음만 먹으면 ‘남들 다 하듯’ 생기는건 줄 알았더니 쉽지가 않았다. 어렵게 생긴 아이가 한번 가고, 두번 가니 초조해졌다. 갖지 못하는 세상의 모든 것은 소중해지는법이다. 회사도, 일도 더이상 중요하지 않았고 아이를 잃지 않는 것이 인생의 새로운 목표가 되었다.

어렵게 다시 아이가 생겼고, 이번에는 없어지지 않아줘서 눈물나게 고마운 내 새끼를 위해 나는 만사를 제쳐두고 엄마가 되기로 했다. 이것저것 배우러 다니고, 방을 꾸미고, 육아책을 닥치는대로 사 읽으며, 이만하면 됐겠거니 자만하며 엄마가 될 날을 기다렸다. 혹시 손가락이 다섯개가 아니면 어쩌나 살짝 불안하긴 했지만, 뱃살은 트고 몸은 무섭게 부풀었지만, 다들 잘 하니까. 엄마들이란 무릇 모성애가 자동장착되어있는, 아이를 낳고 키우기 위해 태어난 존재이니까. 

마취주사 맞을때 좀 떨긴 했어도 내발로 걸어들어가서 별로 아프지 않게 아이를 낳았는데, 누구말처럼 요즘엔 의술의 발달로 진통없이 너무 쉽게 아이를 낳는다는게 문제였을까… 마취에서 깨듯 모성애에 대한 환상도 고통스럽게 깨졌다. 영화 속 출산의 하이라이트 신. 엄마가 미소로 아이를 안아 눈맞춰줘야 하는 타이밍에 미안하게도 나는 버둥거리며 우는 아이를 제대로 안지도 못했다. 뜨겁고 미끄러운 덩어리. 제 힘으로 눈도 못뜨는 이 작고 연약한 존재를 내가 잘못 안다가 떨어뜨려 어떻게 되버리는건 아닌가 무서웠다. 적어도 나보다는 경험있는 간호사가 더 잘 안을것 같아 얼른 넘겨줘버렸다. ‘왜 저렇게 우는거야. 뭐 잘못된거 아니야?’ 너무나 부담스럽고 무서웠다. 맙소사. 모성애라니. 

정신없이 몇 시간이 가고 마취가 풀리자 화장실 가는게 무서워 앞으로 굶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만큼 아프기 시작했지만 아이를 혼자 떼어둔다는 것이 불안했던 나는 신생아실로 찾아갔다. 수십명의 다른 아이들 사이에서 울어대는 애를 보자니 도저히 혼자 놔 둘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혼자서 아이를 방으로 데려오는것은 더 자신이 없어서 신생아실 안에서 몇시간을 애를 안고 앉아있다가 간호사 교대시간이 되서야 결국 내방으로 쫒겨났다. 입원실로 돌아와 혼자 노심초사하며 아이를 안은 채 밤을 꼬박 새운 그날부터 5년이 지난 지금까지 잠을 푹 자 본 기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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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phanie S. Lee, Flower, 2015, Color pigment, gold pigment, ink on Korean Mulberry paper, 23 ¼˝ (H) x 20 ¼˝ (W) x 2 ¾˝ (D)


으로 돌아오니 간호사도 의사도 없고 ‘남의 편’은 더없이 공사다망하시고 아이와 나, 단 둘이다. 잠이라도 푹 자주는 순한 아가면 좋을 것을 성질머리는 나를 닮아 예민하고 체력은 나를 안닮아 지치지도 않고 운다. 울다 지쳐 잠드는 법도 없이 맹렬하게 운다. 나는 씻기도 혼자해야 하고 밥도 혼자 차려먹어야 하고 할일이 많은데 아이한테는 내가 전부다. 내가 씻겨줘야 하고 먹여줘야 한다. 안그러면 큰일 난다. 이 어렵게 생산된 생명이 죽어버릴지도 모른다. 

어제까지만 해도 없던 이 작은 생명체는 제 목도 혼자 못가눠서, 운이 나쁘면 자다가 베개에 숨이 막혀 죽기도 한다는데 어찌 무섭지 않겠는가. 사람이 죽고 사는 일이다. 화초하나 죽여놓고 ‘난 식물을 기르는데는 소질이 없는 사람이야’ 하며 넘어갈 수 있는 차원의 일이 아니란 말이다. 개나 고양이라도 키워볼것을 그랬다며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걔네들은 용변도 스스로 하고, 밥도 주는대로 먹고, 내내 짖어대는 일도 없겠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좋은 연습이 되었을텐데… 화분하나 제대로 못키워 죽여버리던 나는 어쩌자고 모성을 믿었던것인가.

혼자 하는 유학생활 내내 한국이 딱히 그리운 적이 없었다. 그런데 출산 이후 처음으로 한국 생각이 절실해졌다. 가족이 간절해졌고 혈육이 가까이 없다는 사실이 그렇게 절망스러울 수가 없었다. 막상 한국에 간다한들 애 맡아줄 사람은 마땅히 없었을테지만 그래도 마음의 부담은, 그 무거운 책임감은 식구들의 수 만큼 나눠져 반의 반쪽이 될텐데… 그것만으로도 나는 안도하며 쪽잠이라도 한숨 잘 수 있을테고, 잠시 뜨거운 샤워라도 할 수 있을테고, 시원하게 변이라도 볼텐데…  망할놈의 핵가족화. 옆집에 애도 마음대로 못맏기는 이런 신용없는 현대사회같으니… 자식을 일곱여덟씩 낳고도 밭을 메러 다녔다는 할머니들은 대체 어떤 삶을 산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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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phanie S. Lee, Mother and Daughter, 2013,  Color pigment, gold pigment, ink on Korean Mulberry paper, 15 ½˝ (H) x 15 ½˝ (W) x 2 ¾˝ (D) each


이를 낳고서야 알았다. 당연히 있어야 할 모성애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책임감이 조금 더 무거운 쪽이 도망갈 수 없고, 도망갈 수 없는 쪽의 두려움이 더 큰 것 뿐이다. 지치고 힘들어도 누군가는 이 아이의 생명을 유지시켜야하기 때문에, 그것이 대체로 동정심이 좀 더 강한 여자들이기 때문에 떠안게 되는것 뿐이다.  

사랑이란 건 유전자 속에 미리 탑제되어 있다가 어느날 갑자기 발현되는 것이 아니라 자라나는 것이다. 의사소통이 가능한 성인 남녀가 만나 첫눈에 반한 사랑도 시간을 들여야 이루어지는데, 말도 안통하고 제 몸도 못가누는 미성숙한 생명체와 마주해 처음부터 사랑이 샘솟는다는것이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남자가 배고프면 여자도 허기지고, 아빠가 졸리면 엄마도 잠이 온다. 설령 모성애가 존재한다고 한들 세끼 먹던 사람이 안먹어도 배가 부르고, 자동적으로 잠이 줄어들 리 없지 않은가. 모성애가 넘쳐서 늘어났던 몸이 정상으로 돌아오기도 전에 힘이 불끈 솟아나는것이 아니란 말이다. 당신도 배고프고, 나도 배고프고, 아이도 배고프지만 아이는 스스로 찾아먹지 못하고, 못먹으면 죽어버리고마니까 참을 수 있는 내가 참는거다. 어쩔수 없으니 버티는 것이고, 죽을 만큼 급한 사람이 있으니 견딜수 있는 사람이 양보하는것이다. 나도 죽을것만 같지만 나는 아이처럼 금방은 안죽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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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ire with Hydrangea  Photo: Stephanie S. Lee


즘 연예인 신 모씨의 모성애 논란이 화제다. 자세한 내막은 당사자들만 아는것이겠지만 적어도 있지도 않은 모성애라는 굴레를 잣대로 엄마도 아니라며 비난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정상적인 아이 기르기도 힘든데, 장애가 있는 아이를 기르기는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잠든 아이를 차에 혼자 놔두고 장보러 들어갔다 왔다고 너무 죄인 취급 하지도 말아줬으면 좋겠다. 그럴 수 있겠구나. 계단도 모서리도 다 피해다니느라 하루종일 씨름하다 겨우 잠깐 아이가 잠들었는데… 모처럼 푹 자는 아이를 굳이 깨워안고 무거운 짐까지 이고지고 오느니 애 잠든 틈에 가벼운 몸으로 얼른 장보고 오는게 빠르겠다 생각할 수 있었겠구나, 이해해 줘라. 미치지 않고, 도망가지 않고, 견딘 것만으로도 장하다고 해줘라.

제대로 배운 적도, 공부한 적도 없고, 답도 없는 문제를 난생 처음으로 받았는데 절대로 틀리면 안된다면? 무조건 맞춰야 하는데, 틀리면 사람이 죽을지도 모르는데, 아는건 없고, 문제를 다 풀기 전까지 그동안 하던 사회생활도 끊고, 친구도 못만나고, 잠도 못자고, 밥도 못먹고, 제대로 씻지도 못한다면? 그런데 사람들은 당연히 내가 답을 잘 알고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면? 과연 당신은 도망가지 않고 끝까지 앉아 문제를 마주할 자신이 있는가?

설령 도망을 갔다한들 손가락질 말아라.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생존이 최우선인 이기적인 존재다. 아마도 살아야 했을 것이다. 살고자 했을 것이다. 그만큼 절박하고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니 그저 그럴 수도 있었겠다… 해줘라.

남들 다 하던 거 하고 살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잠도 못자면서 ‘밥과 똥’, ‘우유와 기저귀’ 같은 원초적인 것들에 둘러쌓여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매일을 반복해야 한다. 그들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사람이 견딜수 있는 최대치를 견뎌내고 있는 것이다. 할수 있었던 모든 것들은 죄다 할수 없는 것이 되어버리고 모성애 대한 기대마저 박살나 망연자실한 경력단절자, 사회적 도태자, 피로가 누적된채 고립된 한 인간인 것이다. 

여자는 참 많이 변한다. 소녀에서 여성으로, 부인에서 며느리로, 임산부에서 엄마로… 몸도, 역할도 여러번 바뀐다. 설령 모성이란것이 존재한다쳐도 그 모성애로 가는 길은 여성이 헤쳐나가야 할 다른 길들 보다 훨씬 더 힘들고 먼 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나고 보니 참으로 다행인 것은, 자식에 대한 부모의 애정은 함께한 시간에 정비례해 기하급수적으로 증폭한다는 사실이다. 잠시 반짝 타올랐다 시간이 지날수록 식어버리는 남녀간의 사랑과는 다르더라는 것이다. 모성애 따위 없어도 자식에 대한 사랑은 세상의 그 어떤 사랑보다 크고 굳건히 자라나는 것이더라. 



Stephanie_100-2.jpg Stephanie S. Lee (김소연) / 화가, 큐레이터 
부산에서 태어나 예술고등학교 졸업 후 1996년 뉴욕으로 이주했다. 프랫인스티튜트 학부에서 그래픽디자인을 전공한 후 맨해튼 마케팅회사, 세무회사, 법률회사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다가 딸을 출산하면서 한동안 전업 주부생활을 했다. 2010년 한국 방문 중 우연히 접한 민화에 매료되어 창작민화 작업을 시작했다. 2014년 한국민화연구소(Korean Folk Art)를 창설, 플러싱 타운홀의 티칭아티스트로 활동하며, 전시도 기획하고 있다. http://www.stephaniesle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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