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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혜진/에피소드&오브제
2015.12.01 05:14

(138) 한혜진: 우리도 그 누구에게 빛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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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 & 오브제 (21) 12월이 오면...



우리도 그 누구에게 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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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ckefeller Center Tree Lighting Ceremony, A View from GE Building, 2007


12월은 우리에게 무엇으로 오는가? 그날 저녁, 그 뉴스를 들을 때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름드리 전나무가 록펠러 쎈터 앞에 옮겨져 뉴욕의 크리스마스 트리가 되어, 장식된 온갖 전구에 불이 밝혀졌다는 뉴스. 그 뉴스와 함께 한 해의 마지막 달, 12월은 시간에 쫓겨사는 우리를 향해, 마치 집달리의 발걸음처럼 성큼거리며 걸어 들어왔다. 


가을나무가 떨구어낸 이파리들을 다 날려보낸 지도 그리 오래지 않은 것 같은데, 마지막 한 장의 달력, 그 얇은 무게로 다가오는  올해의 남은 한달은 2015년이라는 시간의 매듭을 목전에 두고, 마치 무모하게 보내버린 지난 시간을 만회라도 해야한다는 듯이, 우리를 바쁜 마음에 휩싸이게 한다. “한달밖에 안 남았어. 한번 잘 해봐야 하지 않겠나?’ 어디서 이런 소리가 나의 걸음을 채찍질하는 그런 달이다.


가을이 그 속에 들어가고픈 계절이라면, 겨울은 그 언저리에서 마냥 바라보고픈 계절이다. 어스름이 깔리던 저녁,  하늘마저 회색빛으로 변할 땐 “오려나, 눈이 오려나?’ 하면서 첫눈이 오면 만날 사람이라도 있는 듯이, 기대감으로 하늘을 가끔은 올려다 보면서 친구들과 거리를 쏘다니곤 했던 그 시절, 스커트 밑의 종아리가 시려오면, 따뜻한 찻집에 들어가 수다를 떨곤 했었다. 그렇게 겨울은 이야기를 끌고 다녔다. 집으로 가던 버스 속에서, 창 밖을 내다보면 12월의 밤은 전구불로 환하게 밝아져 있었다. 거리 곳곳마다 캐롤이 흐르고, 크리스마스 트리에 밝힌 불은, 마치 ‘하늘의 은총이 모습을 보인다면 이런 것이라네.’라고 얘기하듯이, 영롱하게 맑은 빛을 던지고 있었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21dykerheights3-small (2).jpg Dyker Heights, Brooklyn


30여년이 지난 지금, 똑같이 귀가길에 운전을 하고 있는 이 시간, 차창 밖으로 보이는 12월의 뉴욕 풍경도 별로 다르지 않다. 환하게 불밝힌 상가는 차치하고서라도, 고속도로를 벗어나, 집 가까이 골목길에 들어서면 짙은 어둠 속에 형형색색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환하게 불밝힌 집들이, 마음속까지 환하게 밝혀준다. 12월에 우리는 왜 불을 밝히는 걸까? 차문을 열고 내려서서, 하늘을 본다. 총총히 별이 박힌 어둔 하늘, 그 반짝이는 별이 없었다면, 나는 결코 하늘을 바라보지 않았을 것이다.


별, 은총, 어두운 세상에 대한 희망, 하늘의 은총을 닮고 싶은 마음, 그 마음으로 우리는 불을 밝히는 것이 아닐까?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신 참 뜻,우리에게 구원의 빛이 되심 아니었던가? 책에서 읽은 구절이 하나 생각난다. 길잃은 나그네가  저멀리 불빛을 발견한다. 그 빛이 그를 살려낼 수 있는 건,그에게 그 곳까지 갈 수 있는 힘을 주기 때문이라는 것.


21-IMG_2449 (3)christmas-tree-valley-view.jpg


안으로 들어선다. 12월이 되자마자, 일찌감치 만들어 놓은 크리스마스 트리에  훤하게 전구불을 밝힌다.  어렸을 적부터 이상하게 크리스마스 트리를 좋아했었다.  반짝이는 예쁜 장식을 달아놓고, 전구에 불을 켤 때면,’와’하고 환호성이 절로 나와었다. 누구에게나 빛을 본다는 것은 그렇게 좋은 일인 것이다.  우리 자신도 그 누구에게 그 무엇에게, 빛이 될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내 마음 속, 한 귀퉁이에 남아 있는 심지를 찾아 불을 켜리라.  트리 꼭대기에 달려있는 별장식,  반짝이는 그 별처럼 이 세상의 빛이 되어 보려고, 우리는 어려서부터 ‘트윙클 트윙클 리틀 스타’를 배우고 노래하는 지도 모르겠다.  


12월, 환한 빛으로 다가오는 계절이다. 그 빛이 어둠을 비춘다면 더 아름다울 것이다.  그렇다. 이 12월에 그 무수히 반짝이는 많은 것들은, 우리 자신도  누구를 위해 조그만 빛이 될 수 있음을 가르친다.  조그만 빛이 되어 보는 것, 주변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라는 마음의 불을 돋우는 일에서부터 시작하는 게 아닐까?



hanhyejin3-200.jpg 한혜진/수필집 '길을 묻지 않는 낙타' 저자

서울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영문과 졸업 후 결혼, 1985년 뉴욕으로 이주했다. 한양마트 이사로 일하면서 김정기 시인의 권유로 글쓰기와 연애를 시작, 이민 생활의 균형을 잡기위해 시와 수필을 써왔다. 2011년 뉴저지 리지필드 한양마트에 갤러리1&9을 오픈, 한인 작가들을 소개했으며, 롱아일랜드 집 안에 마련한 공방에서 쥬얼리 디자인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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