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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주/뉴욕 촌뜨기의 일기
2015.10.13 02:49

(122) 이영주: 참으로 행복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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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촌뜨기의 일기 (25)



으로 행복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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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일요일이 제 생일이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만 70세가 되는 생일입니다. 그날은 둘째 루시아네 집에서 점심 먹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13일이면 3살이 되는 손자 블루가 있으므로 고급식당에 가기엔 무리도 있고, 또 일요일 점심은 대개 문을 열지 않는 까닭에 마음 먹은 식당은 예약을 할 수 없었다며 딸들이 양해를 구한 바 있습니다. 대신 랍스터와 생선회, 엄마가 좋아하는 생굴을 준비하겠다며 친구도 부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집에서 하는 소박한 자리니 가족끼리만 하자고 하고, 베프인 명선씨만 함께 가자고 했습니다. 


명선씨를 함께 가자고 해놓곤 걱정이 돼서 큰딸 마리아에게 “명선 이모도 오시는데 디저트가 있어야지. 티라미수 만들어줄래?”, 물었습니다. 마리아는 “아휴, 내가 만들려고 마음 먹고 있는데, 엄만 언제나 미리 말해서 산통을 깨는데 선수얘요.”, 하며 섭섭해 했습니다. 사실 명선씨는 음식도 잘 하고, 더군다나 테이블 세팅이 예술가 급이어서 신경이 쓰였습니다. 


점심 시간에 블루네 집에 우리 둘이 들어서자 딸들은 요란스럽게 “해피 버스데이, 맘!!!” 하면서 달려들어 키스를 퍼부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몬태나에 사는 막내 안젤라가 그 뒤에 서있었습니다. 오마이갓!!! 내가 놀라자 딸들은 박장대소를 하며 “서프라이즈!”라며 방방 뛰었습니다. 안젤라가 있으면 걱정 없습니다. 안젤라는 거의 엄마 수준으로 요리 솜씨가 뛰어납니다. 한식은 엄마보다 2% 부족하지만, 서양음식이며 일본음식은 훨씬 더 잘합니다. 보즈맨에 한국식당이 두 개 있지만, 주로 집에서 해먹기 때문에 날로 요리 실력이 일취월장한 까닭입니다.  


점심은 랍스터와 생선회, 새우 칵테일, 문어 샐러드로 신선한 야채와 더불어 풍성하고 아름답게 준비되었습니다. 명선씨가 박스로 사온 흰 포도주는 맛이 뛰어났고, 생선들도 얼마나 싱싱한지 최고급 식당에서 먹는 것보다도 백배는 더 맛있었습니다. 와인과 해산물, 꽃으로 장식된 식탁에서 사랑하는 세 딸과 두 사위와 손자 그리고 제일 귀하게 여기는 친구와 함께 한 점심은 웃음꽃으로 점철되었습니다. 마무리는 명선씨가 끓여온 미역국에 밥을 먹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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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리아가 만든 티라미수(둥글게 만들어서 가운데에 Happy Birthday Mom이라 써 있었습니다. 하트도 뿅뿅 있고요)와 커피로 디저트가 끝난 후에는 딸들의 친구인 피아니스트 주형기가 작곡한 곡으로 특별연주까지 해주었습니다. 주형기가 태어난 아들을 위해 작곡했다는 곡은 얼마나 아름답던지 앙코르 연주를 부탁했습니다. 딸들은 기꺼이 한번 더 연주해 주었습니다. 가슴이 뭉클하고 축복이 쏟아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아빠 품에 안겨 있던 손자 블루가 ‘에이 비 씨!’ 하며 아기들의 에이비씨 송을 신청했습니다. 그러자 세 딸들은 또 에이비씨 송을 연주했고, 블루는 열심히 함께 노래를 불렀습니다. 해피버스데이 송으로 연주는 마무리 되었지만, 희망곡을 신청한 블루 때문에 분위기는 더 할 수 없이 부풀었습니다. 연주자인 딸들이 생일에 연주해준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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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 일요일의 생일 파티는 금년 제 생일의 4번째 생일파티였습니다. 첫 번째 파티는 8월 16일, 하와이 카일루아에서 있었습니다. 생일이 10월이지만, 10월엔 사위들이 휴가갈 수 없으니 당겨서 8월에 생일파티를 열어주겠다고 딸들이 생각한 것은 금년 초부터였습니다. 그래서 제 친구들에게 이메일로 초대장을 보내고, 엄마 생일을 축하하자고 한 것입니다. 자기들이 클래식 음악을 하는 연주자들이라 돈을 많이 못 벌어서 친구분들에게 비행기표와 호텔을 제공하진 못하지만, 그냥 휴가 겸 오셔서 하루 즐겁게 보내자는 초대장을 보고 많은 친구들이 귀엽다며 자기들이 더 감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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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일루아 비치에 집을 얻어 우리 가족들 모두 모여서 함께 열흘 동안 지내면서 저는 꿈같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딸들은 엄마 생일 축하 여행이니 아무 것도 하지 말라고 했지만, 저는 모든 가족이 한데 모인 게 기뻐서 자주 음식을 해주었습니다. 


생일파티는 환상 그 자체였습니다. 제가 파티를 한다니까 카일루아 비치 지척 수녀원에 사시는 김유수 수녀님께서 우리 가족의 레이를 준비해 주셨고(제게는 머리 화관 레이까지), 정원에서 나무 가지와 잎사귀들을 가지고 오셔서 식탁까지 멋지게 꾸며 주셨습니다. 수녀님은 원래 무용을 하시지만 화가로도 활동하시는 분이라 예술적 안목이 뛰어나십니다. 생일파티엔 딸들의 하와이 친구들이 왔고, 배우 다니엘 데이 킴 부부도 왔습니다. 뉴욕에서 오래 전에 친하게 지내던 유숙렬, 박수헌 박사 부부는 서울에서까지 참석해 주었습니다. 환갑을 맞은 박수헌 박사 축하도 겸해서 해준 자리라 더욱 뜻깊었습니다. 


자칫 캐주얼하기만 할 뻔했던 파티는 수녀님 친구 샐리가 하와이식 의식으로 축복의 챈팅을 부르는 것으로 시작해서 멋지고 품격 있는 특별한 파티가 되었습니다. 음식은 딸들과 딸들 친구 카푸아네가 엄청 많이 준비했고, 다니엘 아내 미아씨가 여러 종류의 치즈도 준비하는 바람에 멋진 식탁이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조지아집 정원에 그득한 꽃들을 얼마나 많이 꺾어줬는지 온 집안과 테이블도 꽃 잔치까지 겸해서 더 할 수 없이 아름다웠습니다. 이 날, 딸들은 제게 사진집을 만들어 주었고, 친구들이 사인한 책도 전해 주었습니다. 서울과 뉴욕, 하와이 친구들 모두 한 페이지씩 정감 있는 이야기들을 써주어서 얼마나 가슴이 찡-했는지 모릅니다. 이 하와이 파티가 정식 세리모니 여서 뉴욕선 간단히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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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째는 제 문우(文友)들이 마련해 주었습니다. 9월말에 만났는데 생일축하 한다며 식사와 케이크, 선물까지 준비한 바람에 깜짝 놀랐습니다. 평생 친구란 아마도 이런 우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평소에 끊임없이 책을 많이 읽고 글을 쓰는 문우들은 인품까지 고매해서 나이 불문, 무조건 제가 존경하는 친구들입니다. 


세 번째는 호리카 멤버들의 축하였습니다. 맨해튼의 한 건축가 집에서 모인다기에 그런가보다, 하고 갔는데, 가서 보니 제 생일 파티였습니다. 꽃과 그림 같은 음식과 와인, 치즈, 케이크, 무엇 하나 빠진 것 없이 호리카 답게 다정하고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특히 화가 강익중씨가 함께 했는데, 이 날은 할 얘기가 너무 많아서 다음에 자세히 쓸 예정입니다. 강익중씨는 싱글들의 모임인 우리들 호리카 클럽을 “홀로이거나 이별하고 돌아온...”이라고 해서 모두들 항의하니까 “홀로이거나 이별하고 돌아온 퀸카들”이라고 정정해서 용서 받았습니다. 멤버들은 청소하기 싫어하는 저를 어떻게 알았는지 로버트 청소기를 선물해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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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일년에 4번의 생일 치를 받았으니 저만큼 복 많은 사람도 없을 듯싶습니다. 서울서는 지인들이 선물, 혹은 금일봉들을 주는 바람에(뉴욕서도 마찬가지구요) 금일봉으로 멋진 드레스며 모자를 장만했습니다. 갑자기 부자가 된 것처럼 여름옷도 몇 벌 장만했습니다. 돈쓰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하하.


하지만, 매번 가족이나 친구들의 축하를 받을 때마다 가슴 속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흘렀습니다. 무엇 하나 내세울 것 없는 보잘 것 없는 제게 이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큰 진심을 주는 일이 더없이 감사하고 감사했습니다. 이들에게 보은하기 위해서라도 저는 나이 들면 들수록 더 겸손하게, 더 배려심 많은, 더 좋은 사람으로 살아갈 것입니다. 저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이영주000new100.jpg 

이영주/수필가 강원도 철원 생. 중앙대 신문학과 졸업 후 충청일보 정치부 기자와 도서출판 학창사 대표를 지냈다. 1981년 미국으로 이주 1990년 '한국수필'을 통해 등단한 후 수필집 '엄마의 요술주머니' '이제는 우리가 엄마를 키울게' '내 인생의 삼중주'를 냈다. 줄리아드 음대 출신 클래식 앙상블 '안 트리오(Ahn Trio)'를 키워낸 장한 어머니이기도 하다. 현재 뉴욕중앙일보에 '뉴욕의 맛과 멋' 칼럼을 연재 중이며, 뉴저지 AWCA에서 '수필교실'과 '북 클럽'을 지도한다. 또, 매월 세번째 토요일엔 음식을 싸갖고 와 영화 감상 후 토론하는 '예사모' 클럽을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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