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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주/뉴욕 촌뜨기의 일기
2015.06.15 09:51

(101) 이영주: 문화재와 국가들의 갑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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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촌뜨기의 일기 (22)



문화재, 그리고 국가들의 갑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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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의 대영박물관(The British Museum) 이집트 갤러리.  Photo: Sukie Park/NYCultureBeat



난 4월 25일 일어난 네팔 지진 소식은 참으로 충격적이었습니다. 규모 7.8의 강력한 지진으로 네팔, 중국,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등지에서 8천400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고, 1만 6천 여 명이 부상을 입었다는 소식은 우리들의 가슴이 무너지는 참사였습니다. 


이 지진으로 인해 카트만두 계곡의 카트만두 더르바르 광장과 같은 여러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파괴되었다는 소식에 저는 더욱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몇 년 전, 제가 가서 감탄했던 문화재들이 파괴되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카투만두 시내에 있는 더르바르 광장엔 옛 왕궁도 있고, 특히 살아있는 신이라 불리는 쿠마리가 살고 있어서 그 집에 갔던 일이 기억에 남습니다. 무엇보다 문화재의 파괴는 국경을 넘어 인류 모두의 손실이 아닙니까? 세계를 여행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그 나라의 역사적 흔적인 문화재들입니다. 박물관에 있든 아직도 원래 자리에 세월의 흔적을 담고 존재하든, 현존하는 문화재들의 가치는 바로 인간 존재의 의미인 것 같아 어느 것을 봐도 감동이 있고, 애달프고, 소중하고, 그립습니다.    

 


22-문화재갑질2.jpg 대영박물관의 이집트 유물실



가 처음 세계적인 문화재와 조우한 것은 벌써 36년 전 일입니다. 런던의 대영박물관에 갔습니다. 이집트 소장품들이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워낙 오래 전 일이라 구체적인 기억은 없지만,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하는 것은 금색 찬란한 미이라들이었습니다. 죽은 사람의 몸에 금을 입히고 그림을 그려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 미이라를 처음 보는 것이니 마치 마술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그리고 한참 뒤, 이집트에 갔을 때 국립박물관에 들렀습니다. 세상에나. 명색이 국립박물관인데, 소장품이 대영박물관에서 봤던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빈곤했습니다. “아니, 어떻게 자기 나라 소장품이 이렇게 빈곤하지?”라는 의문이 한동안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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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폴리탄뮤지엄의 이집트 유물.



국에 와서 처음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에 갔을 땐 더 놀랐습니다. 이집트관의 소장품 규모가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집트관 구석진 곳에 부서지거나 깨진 역사적 유물들이 마치 잡동사니를 창고에 쌓아놓은 것처럼 첩첩이 가득한 모습이었습니다. 어디서 배운 것도 아닌데 문득, “아 이것이 강대국의 횡포구나!” 하는 생각이 번쩍 들면서, 내 나라 소장품은 중국관 귀퉁이에 초라하게 도자기 몇 점 놓여있는 사실이 등이 시리도록 서러웠습니다. 학자도, 특별한 애국자도 아닌 제가 강대국과 약소국의 관계, 강자와 약자의 질서를 새삼 자각했던 것입니다. 지금의 한국관이 없던 시절의 얘깁니다.    


이런 서글픈 기억을 끄집어낸 것은 요즘 읽은 ‘클레오파트라의 바늘’이라는 책 때문입니다. 제목인 ‘클레오파트라의 바늘’은 로마에서, 런던, 뉴욕, 파리에서 올려다보던 그 오벨리스크라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알았습니다. 저자는 세계적인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들의 화려함 뒤에 감춰진 문화재 약탈과 탐욕의 역사를 외교관으로서 오랫동안 문화재 반환 문제에 천착해온 자신의 경험과 연구 성과를 통해 꼼꼼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역사적 뿌리부터 약탈의 흔적, 반환을 놓고 벌이는 첨예한 이해관계의 대립까지 역사적 서술 뿐만 아니라 문화재 반환운동에 대한 각국의 입장과 논리까지 참으로 성실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세계에서 얼마나 많은 문화재가 강대국에 의해 강탈되고 도둑맞고 있는지 알려주었다고 보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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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영박물관이 소장한 엘긴 마블(Elgin Marbles)은 1801년 영국 엘긴백작 토마스 브루스가 그리스 아네테의 파르테논 신전에서 떼어온 것으로, 그리스 정부가 약탈로 간주,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  Photo: Sukie Park




써 참고 싶지 않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계속 더 화가 났고, 더 가슴이 아팠습니다. 우리 한국도 미국으로, 일본으로, 프랑스로 속절없이 새어나가 그 규모와 수준을 가늠하지 못하는 수많은 문화재가 있습니다. 그런 문화재에 대해서 더 깊은 관심과 노력으로 적극적인 반환을 도모해야 하지 않는가, 라는 비감이 가슴을 갈기갈기 찢었습니다.     


얼마 전까지 한국에선 땅콩회항 사건으로 온 나라가 들썩이도록 부당한 갑질에 대한 지탄의 목소리가 요란했습니다. 생각해보면 인류 역사는, 아니 모든 생명체는 약육강식의 역사, 갑질의 횡포의 역사가 아닐까 싶습니다. 갑질의 횡포에 이기려면 갑이 갑질을 할 수 없는 을만의 힘을 길러야 합니다. 어떻게 그 힘을 키울 수 있는지는 을의 숙제일 것입니다. 


국력이란 단어에 대해 저는 늘 예민합니다. 문화재는 인류의 역사이므로 잘 유지, 보관해야 합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강대국들의 힘겨루기 제물이어선 아니 될 것입니다. 요즘 온국민을 공포로 몰아넣고 있는 ‘메르스’ 사태‘를 보면서 한국의 국력을 새삼 생각해 봅니다. 언제고 우리도 국제사회에서 갑질 할 수 있는 국력으로 성장할 것을 희망하는 것은 비단 저 한 사람만이 갖고 있는 소망은 아닐 것입니다. 혼란한 정부, 힘없는 정부로 인해 더 많은 고통을 견뎌야 하는 네팔인 들에게 마음으로나마 뜨거운 응원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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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eopatra’s Needle in Central Park on a postcard published in 1917 by American Art Publishing Company, MCNY 


*갑을 관계’에서 ‘갑’과 행동을 뜻하는 접미사 ‘질’을 붙인 신조어. 권력이나 권리 관계에서 우위에 있는 갑이 약자 을에게 하는 부당행위를 의미.




이영주000new100.jpg 이영주/수필가
강원도 철원 생. 중앙대 신문학과 졸업 후 충청일보 정치부 기자와 도서출판 학창사 대표를 지냈다. 1981년 미국으로 이주 1990년 '한국수필'을 통해 등단한 후 수필집 '엄마의 요술주머니' '이제는 우리가 엄마를 키울게' '내 인생의 삼중주'를 냈다. 줄리아드 음대 출신 클래식 앙상블 '안 트리오(Ahn Trio)'를 키워낸 장한 어머니이기도 하다. 현재 뉴욕중앙일보에 '뉴욕의 맛과 멋' 칼럼을 연재 중이며, 뉴저지 AWCA에서 '수필교실'과 '북 클럽'을 지도한다. 또, 매월 세번째 토요일엔 음식을 싸갖고 와 영화 감상 후 토론하는 '예사모' 클럽을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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