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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혜진/에피소드&오브제
2015.06.01 18:01

(99) 한혜진: 6월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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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 & 오브제 (16) 눈부시게 반짝이는 유월에



6월의 노래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열고 맡아보는 공기는 

사과 한입의 맛처럼 사각거리고, 

올려다본 하늘은 경쾌하게 맑고, 

그 찰나, 

나무 위로 날개짓을 하며 솟구치는 새 한마리는 

생명을 느끼게 합니다.



16-6월의노래2.jpg  

Brooklyn Botanic Garden



아이가 산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가다가 물이 얕게 흐르는 도랑을 만났습니다.  그 넓이가 보폭을 넘었으므로 그냥 홀짝 건너기에는 두려움이 앞섰습니다.  뭐 하나 걸쳐놓을 것이 없나 두리번거려 봤으나 여의치가 않았습니다.  몇 발자국 뒤로 물러가, 달려오다가 점프를 하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물러섰다가  달려오면서 매번 도움닫기를 해야하는 순간에는 그만 발걸음이 멈칫거려지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하기를 몇번, 그러나, 이번에는 허공에서 두어 발걸음을 내달리니, 가쁜하게 도랑을 뛰어 넘었습니다.


바야흐로 유월입니다. 그리고, 산길을 가던 아이가 바로 계절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 동안, 쳐진 발걸음으로 뒷걸음을 치던 계절은 오늘 건너뛰기에 성공한 듯 싶습니다.  사쁜히 여름의 문턱을 넘었습니다.  외출을 하였다가 운전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서는 짙푸른 나무들이 만들어내는 굵은 주름의 커튼 속으로 자꾸만 빨려 들어가는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유월은 좀 다른 것 같습니다.  꽃가루 앨러지로 괴로웠던 오월을 접고나니,이제 막 예쁜 세 살을 맞이한 아이처럼 다가온 유월은, 티없이 맑고 순수한 동심의 세계가 되어 우리를 자꾸 들여다보게 합니다.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열고 맡아보는 공기는 사과 한입의 맛처럼 사각거리고, 올려다본 하늘은 경쾌하게 맑고, 그 찰나, 나무 위로 날개짓을 하며 솟구치는 새 한마리는 생명을 느끼게 합니다.  활짝 피어나기 시작하는 꽃들 사이로 벌들이 윙윙거리며 행차하다가, 아주 조신하게 내려 앉는 모습이며, 이에 질세라 쉬파리들도 어디서 나타났는지, 조금은 촌스러운 동작으로 이리저리 분주합니다.



16-6월의노래6.jpg

Brooklyn Botanic Garden



드라이브웨이에 차를 세우고 내리는데, 알맞게 따뜻해진 아스팔트 위로 개미 한마리가 바쁜 걸음을 재촉하고 있습니다.  저 만치 흙속의 집으로 뭔가 가지고 가는 것 같습니다.  산다는 것은 개미처럼 저렇게 먹고 살 것을 저축하며 앞날을 준비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앞으로의 날들을 위해 일하는 개미, 오늘을 노래하며 즐기는 베짱이의 얘기, 모두 유월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왜 유월에는 생명있는 것들이 삶을 구가하는 모습이 이렇게 또렸해지는 걸까요?  개미를 쳐다보다가 떠오른 ‘개미와 베짱이’의 얘기에서 해야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요즈음 우리가 부르짖는 웰빙이 아닌가하고 생각해 봅니다.   



느 패션 브랜드의 광고카피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옷을 입는 것과 잘 입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라는.  그렇다면 사는 것과 잘 사는 것 사이에도 큰 차이가 있다고 말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예전,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던 시절, 잘 살아보자함은 구질구질한 삶을 떨치고, 한번 내보란듯이 살아보자함이었을 것이고, 요즘 우리가 말하는 웰빙바람도 몸에 좋은 공기, 좋은 음식, 그리고, 적당한 운동을 중시하자며, 삶의 외형적 요소에 중요성을 부여한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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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산다는 것을 한마디로 요약해 말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나의 생각은 삶의 우선 순위가 어디에 있는 가를 정립한 다음에, 이에 따라 살려고 노력하는 과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리고, 이는 모든 생명있는 것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시작되어져야  한다는 깨달음이 생깁니다.  유월의 자연을 둘러보면, 모든 것들이 자기 색깔로 피어남을 알 수 있습니다.  노랗게, 빨갛게, 푸르게 피어나는 저 풀꽃들의 어우러짐을 보면서, 더불어 사는 삶, 욕심을 절제하는 삶의 철학을 배워 봅니다.  


유월의 소리란 매일매일 시간에 맞추어 규칙적으로 돌아가는 스프링쿨러의 소리가 아닐까요?  그 단물에 흠씬 젖은 풀꽃들은, 엄마젖을 흠뻑 먹고난 아이와도 같이, 소리없이 속내를 키워가는 계절.  나도 오늘은 그 초록빛에 흥건히 물들여지나  봅니다. 그렇군요. 갑자기 이런 마음이 드는군요. 내일은 머리도 좀 가쁜하게 자르고, 발톱엔 봉숭아빛 매니큐어도 바르고, 팔꿈치엔 로션이라도 한 번 더 발라봐야겠다고요.  


유월의 햇빛은 어느 님의 손거울이었던가 봅니다. 그 하늘거리던 손놀림에 그만, 나무 잎사귀에 부딪치며 무수히 반짝이는 파편이 되어 부숴져 내리고 있는 이 순간, 나는 너무 눈이 부셔 잠깐 눈을 감아봅니다.




hanhyejin3-200.jpg 한혜진/수필집 '길을 묻지 않는 낙타' 저자

서울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영문과 졸업 후 결혼, 1985년 뉴욕으로 이주했다. 한양마트 이사로 일하면서 김정기 시인의 권유로 글쓰기와 연애를 시작, 이민 생활의 균형을 잡기위해 시와 수필을 써왔다. 2011년 뉴저지 리지필드 한양마트에 갤러리1&9을 오픈, 한인 작가들을 소개했으며, 롱아일랜드 집 안에 마련한 공방에서 쥬얼리 디자인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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