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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주/뉴욕 촌뜨기의 일기
2015.03.08 20:48

(84) 이영주: 몬타나에서 맛본 스리랑카 설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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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촌뜨기의 일기 (19)


스리랑카의 설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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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안 안젤라  Photo: Agela Ahn



난 1월, 몬타나의 막내네 집에 갔을 때였습니다. 스리랑카 설음식 시식회에 가겠냐는 막내의 제안에 선뜻 스리랑카 설 음식 디너에 갔습니다. 스리랑카는 우리가 알고 있던 옛 영연방 ‘실론(Ceylon)’의 현재 국명입니다. 인도 끝자락에 눈물처럼 붙어 있어서 ‘인도의 눈물’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1972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고 국명을 ‘스리랑카’로 바꾼 것입니다. 시식회는 주방장 랑가(Ranga Perera)의 친구집에서 열렸습니다. 몽골이나 티벳 풍의 전통적 장식물이 많이 눈에 띄는 집 분위기부터가 흥미로웠습니다. 오래 전에 갔던 네팔의 가정집들과 그렇게 큰 차이는 느낄 수 없었지만, 그들 문화의 배경이 비슷하니 다른 점을 잘 모르겠습니다. 


막내가 사는 보즈맨은 인구 4만 명의 소도시인데, 몬타나 주립대학교가 있어서 학생 수만 1만 5천 명이 되는 대학도시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전문 인력들이 많고, 다양한 문화 행사가 끊임없이 계속되는 젊은 도시인 점이 특색입니다. 놀랍게도 '미국서 살기 좋은 10대 도시'에도 들어있는, 조용하고 평화롭지만, 풍요한 자연 풍광과 더불어 청정한 대기까지 정말 살기 좋은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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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보즈맨에서도 손꼽히는 유명한 셰프입니다. 워낙 타운이 작다 보니 웬만하면 서로들 다 알고 지냅니다. 딸과도 그래서 가깝게 지내는 친구인데, 마침 구정을 앞두고 있는 시점이라 스리랑카의 설음식을 소개하자고 의견을 모아 만든 모임이라고 합니다. 모인 사람은 모두 12명이었습니다. 조각가, 변호사, 시 공무원, 미장원 주인, 대학교수, 고등학교 교사, 거기에 바이얼리니스트인 제 딸과 수필가인 저까지 면면부터도 다양했습니다. 


랑가는 “우리 스리랑카에서는 구정을 쉽니다. 구정은 어린이들에겐 손꼽아 기다리는 일년 중 가장 큰 명절입니다.”로 말문을 열더니 음식이 덥혀지는 동안 그의 설 추억을 풀어놓기 시작했습니다. “설이 가까이 오면 며칠 전부터 가족이며 어머니 친구들이 모여 설을 준비하느라고 북적였습니다. 산더미처럼 많은 파이며 온갖 재료가 들어간 소고기 스프며를 준비하느라고 바쁜 어른들은 짬짬이 와인이나 맥주를 마셨고, 우리 어린애들은 소다수나 스리랑카 아이스 커피를 마셨습니다. 우리가 좀 큰 다음에 형과 저는 우유가 듬뿍 들어간 그 아이스커피에 럼주를 몰래 섞어서 마시기도 했는데, 얼마나 맛있었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음식을 진탕 먹고, 춤과 노래로 잔치를 절정으로 마친 후에는 설 전의 집으로 돌려놓기 위해 대청소 아닌 대청소가 밤늦도록 이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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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스리랑카-IMG_7930 (2).jpg 돼지고기 카레  사진: 안 안젤라  Photo: Agela Ahn



그는 설날 아침, 산더미 같은 음식 홍수 속에서 얼마나 푸짐하게 그 맛있는 음식들을 즐겼는지, 그 시절의 그런 기억들이 얼마나 지금은 고귀한 추억의 큰 재산인지를 고백했습니다. 촉촉이 젖은 그의 목소리는 듣기만 해도 저의 어린 시절 설 풍경이 떠오르고, 그때 받았던 세뱃돈의 기억이며 입에서 사르르 녹던 음식의 맛들이 혀에 그대로 살아나 저도 모르게 가슴이 훈훈하게 달구어졌습니다.


음식은 샐러드와 메인 디시와 디저트의 3코스 였습니다. 그리고 코스마다 그 음식에 맞는 와인이 다시 나왔습니다. 랑가 어머니의 심플한 샐러드는 마이크로 케일이 특히 앙징스러웠는데, 소스가 입에 착 붙었습니다. 메인 디시는 그들의 대표 음식인 카레였습니다. 돼지고기와 레드양파, 레몬, 코코넛 오일이 들어간 카레는 그의 어머니의 특별한 레시피라고 합니다. 디저트 역시 많은 스리랑카인들이 만드는 디저트지만, 그의 것은 그의 어머니의 특별한 비방이 가미된 카슈 콩으로 단장한 생강 푸딩이었습니다. 


그의 음식은 뭐라 말할 수 없는 오묘한 이끌림이 있었습니다. 특별해 보이지 않는 그저 평범한 요리 같은데, 막상 입에 넣으면 입 안에서 그대로 흡수되면서 먹는 느낌조차 들지 않을 정도로 음식이 입 안으로 소리 소문 없이 흡수되었습니다. 짜거나 싱겁거나 시거나 달거나 향이 짙거나 배틀하거나 맵거나 하는 어떤 특징도 없이 그냥 어머니의 음식처럼 편하게, 구수하게, 입에 착착 감기는데, 얼마든지 먹고 또 먹어도 질리지 않을 것 같은 단순한 맛. 사실 이런 음식이 아마도 진짜 고수의 음식일 것입니다. 



19만두 (2).jpg 사진: 안 안젤라  Photo: Agela Ahn



가는 이틀 후에 막내네 집에 와서 제가 만든 떡만두국과 닭강정에 항복했습니다. 그날 제가 만든 한국 요리를 맛본 막내 친구들은 비행기 티켓을 보낼 테니 요리 클래스 하자고 저를 부추기기도 했습니다. 사실 여러 나라 음식을 먹어보지만, 한국음식처럼 맛이 다양하고, 맛의 깊이가 있고, 아름답고, 건강에도 좋은 음식은 없습니다. 음식은 이렇게 국경을 초월하고, 그 안에서 서로의 추억을 나누며 공유하는 촉진제입니다. 추억을 많이 가진 사람이 최고의 부자라던 누군가의 말이 떠오릅니다. 인생이란 결국 이렇게 추억을 만들어가며 한 발자국씩 걸어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추억여행을 계속하기 위해서 저는 설날 아침, 모인 사위들에게 만두를 빚게 했습니다. 만두속은 전날 제가 정성껏 마련했습니다. 돼지고기와 소고기를 반반씩 섞어서 마늘과 생각 다진 것, 후추, 레드 와인을 넣어 밑양념을 한 후, 양배추, 호박, 양파, 파를 다지고, 두부도 다져서 한데 모아 참기름을 듬뿍 넣고 버무렸습니다. 후추와 통깨도 물론 들어갑니다. 그렇게 참기름 양념으로 무쳐 놓으면 생으로 먹어도 될만큼 아주 고소하고 맛있는 만두 속이 됩니다. 사위들은 서로 만든 만두들을 비교해가며 만두 빚는 시간 보다 깔깔 대는 시간이 더 길었습니다.  



이영주000new100.jpg 이영주/수필가
강원도 철원 생. 중앙대 신문학과 졸업 후 충청일보 정치부 기자와 도서출판 학창사 대표를 지냈다. 1981년 미국으로 이주 1990년 '한국수필'을 통해 등단한 후 수필집 '엄마의 요술주머니' '이제는 우리가 엄마를 키울게' '내 인생의 삼중주'를 냈다. 줄리아드 음대 출신 클래식 앙상블 '안 트리오(Ahn Trio)'를 키워낸 장한 어머니이기도 하다. 현재 뉴욕중앙일보에 '뉴욕의 맛과 멋' 칼럼을 연재 중이며, 뉴저지 AWCA에서 '수필교실'과 '북 클럽'을 지도한다. 또, 매월 세번째 토요일엔 음식을 싸갖고 와 영화 감상 후 토론하는 '예사모' 클럽을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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