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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주/뉴욕 촌뜨기의 일기
2014.11.05 18:59

(62) 이영주: 뒤늦게 단풍의 바다에 빠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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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촌뜨기의 일기 (11)



뒤늦게 의 바다에 빠지다   



팜마가트 협곡의 패터슨 펠렛트 전망 지역에 이르자, 우리는 와아! 하고 멈춰서서 눈을 비볐습니다. 그리고 서로 사진을 찍기 바빴습니다. 계속 절벽을 타고 올라가면서 절벽 밑으로 내려다 보이는 계곡이 모두 단풍이었습니다. 아니 단풍의 바다였습니다. 거대한 계곡 전체가 단풍으로 가득 차서 햇볕에 색색으로 반짝이는 광경은 보는 이들을 황홀하게 해주었습니다. 



11단풍4.jpg 사진: 김정수


욕의 단풍은 정말 최고입니다. 그래서 해마다 단풍철이 되면 미친 듯이 산을 찾아 그 풍요와 빛깔의 잔치를 만끽하곤 했습니다. 몇 년 전부터는 단풍이 그 찬란한 빛을 잃은 것 같아 가슴이 먹먹해지긴 합니다만, 그것은 생태계가 무너져가는 지구촌의 병든 현실이기도 합니다. 


단풍의 절정은 대개 10월 중순서 하순 사이입니다. 그래서 10월부터 11월까지 산에 가면 그야말로 단풍과 낙엽의 바다에서 황홀한 꿈을 꾸게 됩니다. 갖가지 색깔의 향연은 클림트의 그림 만큼이나 화려하고, 황금빛 낙엽이 카펫처럼 푹신하게 깔린 산은 어머니의 품 속처럼 따뜻하고 안심이 됩니다.


올해 역시 그런 기대를 품고 단풍을 기다렸는데 10월이 거의 다 가도록 나무들은 잎이 많이 떨어져서 앙상한데도 기대했던 색동옷은 갈아입지를 않았습니다. 지난 주에 미네와스카에 갔을 때도 처음엔 그랬습니다. 미네와스카 호수(Lake Minnewasca)로 가는 길은 가는 길도 아름답습니다. 이미 단풍은 퇴색해서 쓸쓸했지만, 그래도 자동차가 북쪽으로 올라가니 단풍의 흔적이 조금 남아 있었습니다. 



11단풍1.jpg

사진: 김정수



수에 도착해서 호수를 끼고 도는 빨간색 마크의 마차길(Carriage Way)을 걸을 때만 해도 별로 단풍이 남아 있지 않았고, 노란 표지의 해밀튼 포인트(Hamilton Point) 길로 들어섰을 때도 초입은 단풍을 기대했던 우리들에게 쓸쓸함만 안겨 주었습니다. 모처럼 사진 찍으려고 카메라 장비를 가져왔던 친구는 단풍이 없다고 여간 툴툴대지 않았습니다. 아니 우리 모두가 “가을이 쓸쓸하구나!” 느낄 만큼, 우거진 숲에 단풍은 없고 누렇게 바랜 낙엽들만 쌓여 있었습니다.

 

하지만 밀브룩 마운틴 절벽을 끼고 도는 해밀튼 포인트 트레일(Hamilton Point Trail)로 한참 오르다가 팜마가트 협곡의 패터슨 펠렛트 전망 지역에 이르자, 우리는 와아! 하고 멈춰서서 눈을 비볐습니다. 그리고 서로 사진을 찍기 바빴습니다. 계속 절벽을 타고 올라가면서 절벽 밑으로 내려다 보이는 계곡이 모두 단풍이었습니다. 아니 단풍의 바다였습니다. 거대한 계곡 전체가 단풍으로 가득 차서 햇볕에 색색으로 반짝이는 광경은 보는 이들을 황홀하게 해주었습니다. 


맞은 편으로는 거르트루드 노우즈(Gertrude’s nose path)의 책꽂이같이 첩첩 쌓인 바위 병풍이 눈을 즐겁게 해주었습니다.미네와스카 호수를 끼고 있는 이 샤완겅크 마운틴 릿지(Shawangunk Mt. Ridge)는 바위들이 마치 책처럼 차곡차곡 쌓여 있는 거대한 암벽이 성채처럼 쌓여 있어서 놀라운 경관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암벽을 타는 산악인들에겐 훌륭한 암벽 타기 연습장이 되어주기도 합니다. 우리가 경탄의 눈으로 바라보았던 게르트루드 노우즈도 그 일부입니다. 우리는 반대편 바위 위에서 그쪽을 바라본 것입니다.



11단풍2.jpg

사진: 김정수



리나라 전라도 변산반도 서쪽 끝에 가면 채석강이란 명승지가 있습니다. 바닷물 침식으로 이루어진 퇴적암의 형상이 마치 수만 권의 책을 세워놓은 것 같은 모습으로 1km 정도 신비하게 서 있습니다. 그 모습에 매료되었던 적이 있습니다만, 채석강은 미네와스카의 샤왕겅크 릿지와 그 스케일에서 비교는 될 수 없지요. 하지만 위용을 자랑하는 겅크의 거대한 바위들의 군락을 보면서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바위들이 있다며 고국에 대한 그리움을 달랠 수 있습니다.


원래 미네와스카 주립공원은 넓이가 2만1천 에이커가 넘는 방대한 공원입니다. 산은 높으나 바위로 병풍을 두른 듯, 켜켜이 접어진 바위들이 장관으로 동부의 그랜드 캐년이라 불리기도 합니다. 오르는 길도 대부분 바위들이어서 그 바위 위에서 자라는 소나무며 풀들이 신기하기만 합니다. 어쩌다 발 밑의 좁은 바위 틈새를 내려다보면 눈 앞이 아찔할 정도로 그 밑은 깎아지른 절벽입니다. 


해발 2,000피트에 위치한 공원엔 3개의 호수가 있어서 더욱 절묘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있는데, 3개의 호수 중 가장 처음 만나는 미네와스카 호수는 길이가 약 1마일에 폭이 1/4마일로, 넓이가 약 58에이커입니다. 가장 넓은 것은 아워스팅 호수(Lake Awasting)입니다. 미네와스카 호수의 배에 가까운 87에이커나 됩니다. 중간에 머드폰드(Mud Pond)가 하나 더 있습니다. 호수들은 유난히 물이 맑습니다만, 산성 물이어서 물고기들이 살지 못한다고 합니다.



11단풍3.jpg

사진: 김정수



정은 캣슬 포인트(Castle Point) 였습니다. 밀브룩 마운틴 쪽으로 올라가다가 오른쪽으로 틀어서 캣슬 포인트 정상으로 가는 샛길이 있습니다. 돌아가는 길도 있었지만 조금이라도 덜 걸으려고 샛길을 택한 것인데, 그 댓가를 톡톡히 치뤘습니다. 좁고 가파른 바윗길을 꼬불꼬불 오르느라 여간 힘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잠시 동안의 그 고난이도 산행이 아주 재미있었습니다. 밋밋한 길만 걷다가 그렇게 발 딛기가 어려운 바위를 타고 오르니 얼마나 신이 났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정상에 오르자 새로운 세상이 열렸습니다. 온 산이 내려다 보이고, 멀리 캣츠킬까지 보이는 그 광활한 대지를 전망하는 기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희열이었습니다. 그 정상에서 정복자의 기쁨을 누렸다면 과장일까요.


올해는 못 볼 것이라고 포기했던 단풍을 미네와스카에 가서 싫컷 빠져봤습니다. ‘우리를 가슴 울렁거리게 해주고 경탄과 기쁨을 자아내게 하는 자연의 질서와 그 안에 깃든 사소한 것들에 대한 애정과 감사를’ 돌아가신 박완서 선생님은 늘 말씀하셨습니다. 선생님의 그 말씀이 유독 생각나는 계절입니다. 

 

돌아오는 길엔 방향은 좀 다르지만 에둘러 스완 레이크에 가서 장어를 먹었습니다. 지금 세상에 델라웨어 상류에서 잡은 진짜 민물장어를 먹을 수 있다는 것도 행복한 일이었습니다. 



rhee100.jpg 이영주/수필가
강원도 철원 생. 중앙대 신문학과 졸업 후 충청일보 정치부 기자와 도서출판 학창사 대표를 지냈다. 1981년 미국으로 이주 1990년 '한국수필'을 통해 등단한 후 수필집 '엄마의 요술주머니' '이제는 우리가 엄마를 키울게' '내 인생의 삼중주'를 냈다. 줄리아드 음대 출신 클래식 앙상블 '안 트리오(Ahn Trio)'를 키워낸 장한 어머니이기도 하다. 현재 뉴욕중앙일보에 '뉴욕의 맛과 멋' 칼럼을 연재 중이며, 뉴저지 AWCA에서 '수필교실'과 '북 클럽'을 지도한다. 또, 매월 세번째 토요일엔 음식을 싸갖고 와 영화 감상 후 토론하는 '예사모' 클럽을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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