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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주/뉴욕 촌뜨기의 일기
2014.10.06 21:51

(56) 이영주: ‘마법의 목소리 나윤선’ 뉴욕 점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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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촌뜨기의 일기 (10)


‘마법의 목소리 나윤선’ 뉴욕 점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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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서 뉴욕으로 돌아오기 이틀 전이었습니다. 카톡에서 호리카 클럽(불금 싱글 모임의 새 이름. 막내 에스더가 우리들의 아지트인 명선씨 댁을 ‘호라이죤 리버 카페’라고 명명했다기에 그 말을 줄여서 우리 모임 이름으로 만들자는 저의 제안에 회원들이 만장일치로 찬성했습니다.) 멤버들이 나윤선 재즈 공연에 간다는 사실이 포착됐습니다. 저는 9월 14일에 뉴욕 도착인데, 공연은 16일이었습니다. 나를 빼고 자기들끼리? 은근히 질투가 나서 즉시 “나도 참가 가능”이라고 카톡을 보냈습니다. 명민한 에스더는 “전화로 간단히 예약이 되었습니다. 그날 뵈요.”하고, 동작 빠르게 회신을 보내왔습니다.

한국 출신의 세계적 재즈 싱어라는 나윤선 재즈 공연은 그렇게 해서 서울서 돌아오자마자 이틀 만에 간 것입니다. 호리카 클럽에서 먹는 일이 빠질 순 없습니다. 우리 다섯 명은 공연보다 두 시간 전에 맨하튼으로 나가서 명선씨 따님인 하이디가 예약한 ‘일본 라멘집 라멘야(Ramenya, 181 West 4th St.)’으로 갔습니다. 라멘집은 공연장인 ‘블루 노트’에서 한 블록 위쪽 W4 스트릿 선상 서쪽에 있었습니다. 사실 저는 일본 라멘의 팬이 아닙니다. 그러나 공연 보기 전에 간단한 식사는 좋으니까 별 기대 없이 따라 갔습니다. 


10-1.jpg 블랙갈릭라멘@라멘야


식당은 매우 작았으나 이상하게 분위기가 따뜻했습니다. 명선씨가 정보가 확실하니 명선씨가 주문한 블랙갈릭라멘을 저도 주문했습니다. 음식이 나오자 먼저 국물을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었습니다. 아니 이게 뭐지? 국물의 맛이 정말 구수하면서도 깊었습니다. 일본라멘 식당에 가서 처음으로 맛을 느꼈습니다. 하이디가 전공이 아니면서도 뉴욕의 맛집의 전문가인데, 하이디의 선택이 탁월했습니다. 


연 30분 전에 ‘블루 노트’에 들어갔습니다. 아시다시피 ‘블루 노트’는 재즈 뮤지션들의 뉴욕 성지(聖地)입니다. 전에도 두어번 연주를 보러 왔었습니다. 세계적인 연주자들을 바로 앞에서 볼 수 있으니 음악이 주는 희열이 화산처럼 폭발하는 곳이라면 과장일까요. 무대 앞쪽에 드문드문 한국인들이 자리하고 있는 모습에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우리는 무대 오른쪽 약간 위쪽이었지만 그래서 오히려 무대는 더 잘 보였습니다. 저녁을 먹었으니 치즈&과일 한 접시와 와인만 한 잔씩 주문했습니다. 술을 못마시는 저를 위해 명선씨가 알콜 성분이 약간만 들어간 칵테일을 제겐 주문해 주었습니다.     
  
저는 나윤선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습니다. 뉴욕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읽은 신문에 나윤선에 관한 기사가 두 면이나 실린 바람에 그걸 열심히 읽었더랬습니다. 나윤선이 재즈 뿐만 아니라 성악을 비롯한 모든 장르의 음악을 공부했다는 사실을 기사를 통해 보면서 부쩍 그녀에 대한 관심이 커졌습니다. 나윤선이 매우 잘 운다는 건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저도 어릴 때 하도 울어서 별명이 ‘울보’였대서 그녀가 펑펑 잘 운다는 게 왠지 친근감이 더해졌습니다.  

장내 아나운서가 “연선 나를 소개한다”고 오프닝을 알렸습니다. ‘윤선’이라 하지 않고 ‘연선’이라고 부르는 게 우스워서 쿡-하고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피규어 스케이팅의 김연아 선수를 외국인들이 ‘유나 킴’이라 부르는 것과 같은 것 같아서 웃음이 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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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데 처음 무대 위에 오른 것은 나윤선과 함께 연주할 스웨덴 출신 기타리스트 ‘울프 바케니우스’였습니다. 울프 바케니우스는 이 시대 최고의 기타리스트 중 한 명이라고 신문에서 읽었지만 보는 것은 처음입니다. 상상했던 것보다 젊어 보였습니다. 전설적인 연주자라면 왠지 머리가 희끗희끗할 것으로 추측하는 저의 적절치 못한 버릇이 이번에도 보기좋게 엇갈린 것입니다. 

마이크를 잡은 바케니우스는 나윤선을 극찬하며 소개하더니 먼저 자신의 연주를 들려줬습니다. 그가 10년 동안 함께 연주했던 재즈 뮤지션 오스카 피터슨(Oscar Peterson, 1925~2007)의 작품이었습니다. 피터슨에 대한 존경을 연주로 대신하는 것 같아 작은 감동이 왔습니다. 그래미상을 일곱 차례나 받은 오스카 피터슨이야말로 전설적인 재즈 피아니스트 입니다. 그의 섬세하면서도 화살처럼 빠르게 몰아치는 연주와 세련된 그루브가 울프에게 얼마나 많은 영향을 주었는지는 그의 연주는 물론 나중에 듣게 된 그가 작곡한 곡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시작부터 신들린 듯한 연주가 끝나자 사람들이 환호했지만,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나윤선이 무대에 올라 작고 가느다란 목소리로 자신을 소개할 때만 해도 저는 아직 감이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노래를 시작하자 문득 신세계가 펼쳐지는 것이었습니다. 나윤선은 성악과 재즈와 록과 라틴 음악과 샹송과 팝, 모든 장르의 음악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사람들을 황홀경에 빠뜨렸습니다. 요술을 부리는 것 같았습니다. 가늘었다가 굵었다가, 작았다가 컸다가, 넓었다가 좁았다가, 길었다가 짧았다가, 찰나적이었다가, 미성이었다가 탁성이었다가, 진성이었다가 가성이었다가, 속삭이다가 포효하다가, 찢어지다 아물다가, 야성적이었다가 부드러웠다가, 고음에서 갑자기 가장 낮은 음으로, 숨소리마저 노래로 승화시키고, 바람 소리며 갈매기 소리, 악기 소리에 나중엔 음향 효과까지 목소리로 분출하고 노래로 예술화하는 것이었습니다. 영혼이 다 빠져나가는 느낌이라고 할까. 마치 천상의 음악을 듣는 것처럼 황홀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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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 기타리스트 울프가 작곡한 곡이 백미였습니다. 원래 악기연주용 곡이라는데, 울프가 나윤선에게 노래로 부르라고 고집을 부렸다는 그 곡들은 창작의 절묘함에 감탄이 절로 나오는 특이한 곡이었습니다. 나윤선은 자신이 악기가 되고 효과음이 되어 그 곡을 연주했습니다. 온몸에 전율이 느껴졌습니다. 기타와 나윤선의 목소리가 펼치는 신세계는 그렇게 경이로웠습니다. 나윤선은 앙콜 곡으로 강원도 아리랑을 불렀습니다. 아리랑이 재즈가 될 줄은 미처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영국과 스웨덴의 민요도 나윤선이 부르니 재즈가 되었습니다.  

나윤선 음악은 제겐 쉽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만들어내는 음악이 재즈인지 아닌지, 아니 도대체 뭐가 재즈인지도 잘 모릅니다. 그럼에도 그녀의 노래엔 떨리는 감동과 생명의 아름다움으로 청중을 뒤흔드는 어떤 힘이 있었습니다. 그게 아마도 예술의 신비일 것입니다. 좋은 예술은 언제나 이렇게 인간의 정신을, 마음을 고양시켜 줍니다. 그 밤, 나윤선은 마법같은 목소리 하나로 뉴욕을 점령했습니다. 

맛있는 음식, 영혼을 흔들어준 음악, 만나면 즐거운 친구들, 이 삼합으로 뉴욕 촌뜨기는 또 한번 행복한 하루의 일기를 썼습니다. 



rhee100.jpg 이영주/수필가
강원도 철원 생. 중앙대 신문학과 졸업 후 충청일보 정치부 기자와 도서출판 학창사 대표를 지냈다. 1981년 미국으로 이주 1990년 '한국수필'을 통해 등단한 후 수필집 '엄마의 요술주머니' '이제는 우리가 엄마를 키울게' '내 인생의 삼중주'를 냈다. 줄리아드 음대 출신 클래식 앙상블 '안 트리오(Ahn Trio)'를 키워낸 장한 어머니이기도 하다. 현재 뉴욕중앙일보에 '뉴욕의 맛과 멋' 칼럼을 연재 중이며, 뉴저지 AWCA에서 '수필교실'과 '북 클럽'을 지도한다. 또, 매월 세번째 토요일엔 음식을 싸갖고 와 영화 감상 후 토론하는 '예사모' 클럽을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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