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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종일/대나무 숲
2014.08.06 12:42

(37) 마종일: 보름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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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 숲 (3) 




보름달 II


불확실한 미래와 불안감을 짊어졌던 산행



맨하탄 42가 공용 정류장을 출발한 애드론댁 트레일 버스는 킹스턴에서 휴식을 취했다. 승객들은 다이너로 향했고 브라이언과 나도 이곳에서 간단한 브런치를 가졌다. 우드스탁을 지나 한적한 마을 입구에서 내려 산행을 시작했다.  한국에서는 나는 보통 산에 오르기전에 등산로에 대한 모든 상황 파악을 했었다. 이번 산행에 관해서는  브라이언이  등산로에 대해 파악해 놓았기에 마음 편하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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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ngil Ma, Wow Baby, That Sounds Fantastic And You Look So Beautiful Indeed,  wood, rope,  14’ x 50’ x 12’, 2010  Installation, Yegam Gallery, Bayside. Photo: John F. Morgan



등산로에 들어설 무렵 나의 복잡한 마음 상태처럼 몸도 적응이 되어 있지 않았다. 마치 사이즈가 훨씬 큰 옷을 입는 것처럼.  10여년전 그렇게 미치도록 왜 산에 가려했었는지, 그리고 산으로 가야만했던 그 복잡하게  얽힌 수많은 과거의 현실들이 빽빽하게 머리를 채우고 있었다. 이제 그 현실이 달라진 이곳에서의 산행은 더이상 나에게 필요한지, 아니, 이런 여유를 가질 수 있는지에 회의도 있었다.  발걸음을 한발한발 옮길때 마다 어떻게든 좀더 쉽게 갈 수 있도록 집중하려 노력했다. 그렇지만 좀체로 온화하고 기쁨의 합일점에 이르기에는 엇나가고 있었다. 


그 도시에 남겨져 있는 나의 일상들 때문에, 그리고 한국에 남겨진 나의 의무적 현실 때문에 그것들이 마구 뒤섞여져 짓누르고 있었다.  쉽사리 해결 될 수 없었던 것들이었다. 그 때쯤 10개월 정도의 영어학교를 마친후 미술학교에 2년차 다니고 있었다.  예술을 배운다는 것은 단지 그림을 그리거나 조각품을 깍아내는 것은 아니라 믿었다. 시대 정신을 읽어야 한다고 믿었었다. 내가 그렇게 알고 싶었던 오늘날의 예술현상이 어디서부터 어떤 근거로 시작되었는지를 알고 싶었다. 그것들은 내가 알아보고자 했던 미학이론 그리고 그 역사, 일반철학, 그리고 관련된 문학적 텍스트들이었다. 


때마침 이 학교에서는 교양에 대한 이수를 강화 시켜가고 있었다. 교양부문들과 그리고 교수진중 뉴욕의 예술계에서 나름 탄탄하게 이력을 쌓고 있던 작가들, 이론가들이 많아  동시대 미술 세계를 가장 가까이서 경험 할 수 있는 곳이었다. 충분히 흥분되고도 남을 이 시간에  아직은 나의 욕망의 당위성이 현실세계에서 완전히 인정되지 않았었다. 거기다  매 학기마다 몰려오는 청구서들은 나의 모든 감각을 완전 마비시키고, 나의 불확실한  미래때문에 제 정신을 차려  살기 힘든 시기였다. 항상 나를 묵직하게 짓누르는 불안감과 함께 살아 오면서 어느덧 3학년 1학기 과정을 마쳐가고 있었다. 그래서 그렇게 불가능하게만 보였던 졸업도 이제는 어쩌면 가능 할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갖기 시작한 때이기도 했다. 적어도 내가 그렇게 맘 조리던 공부를 마치는 것에서는 이제 중간 정도의 위치에 서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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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ngil Ma, Wow Baby, That Sounds Fantastic And You Look So Beautiful Indeed,  wood, rope,  14’ x 50’ x 12’, 2010  Installation, Yegam Gallery, Bayside. Photo: John F. Morgan



산행을 해 본지 오래된 탓인지 그리 무겁지 않은 15 파운드 정도 되는 배낭이었지만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 무척 힘들었다. 약 5시간 정도를 거의 쉬지 않고 걸어 캣스킬에서 두 번째 높은 그 산의 정상에 올랐을 때, 해는 거의 지고 있었다. 길다 하면 길고, 짧다 하면 아주 짧은 이 산행길에서 힘에 붙이면 항상 그런 것처럼 과거의 힘든 기억들이 나의 온몸을 움켜 쥐곤했다. 


그렇게 몇 해의 강원도 방랑을 마친 나는 2년여 정도 흔히들 백수들이 쉽게 접하는 건축 노동, 일명 노가다, 택시 운전 그리고 한 번의 자가용 운전 등을 하면서 그 사회의  바닥을 헤매고 있었다. 그 노동을 할 때에 나는 그런 험한 세상이 내가 속하지 않은 곳이라고 줄곧 거부하고 있었다. 나는 그곳에 속하지 않은 임시적 삶을 살고 있다고 강하게 믿고 있었다.  조그마한 일에서도 나의 자존감을 상하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그 허세는 아주 쉽게 무너지곤 했다. 간단하게 말해서  사람들의 눈앞에서 나는 내가 하고 있는 것들을 통해 나 자신을 적나라게  노출하고 있었음에야. 내면에서의 나의 강한 부정은 하등의 상관이 없었다. 허위의식이었든 아니면 그 당시 현재 나 자신의 제한적 틀을 부수려 했든 적어도 그 순간에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jong3-100.jpg 마종일/작가

1961년 전라남도 장흥에서 태어나 덕수상고 졸업. 대우 중공업을 거쳐 한겨레 신문사 감사실에서 일하다 1991년 퇴사한 후 박재동 화백 소개로 그의 후배 화실에서 그림을 배웠다. 1996년 뉴욕으로 이주 스쿨오브비주얼아트를 졸업했다. 이후 2006 광주미술관 레지던시 작가, 2008 소크라테스 조각공원 신임미술가로 선정되었으며, 2009 인천여성미술비엔날레, 2010 폴란드 로츠(Lodz) 비엔날레에 초청됐다. 2010 LMCC 거버너스아일랜드, 2011 랜달스아일랜드, 롱아일랜드 이슬립미술관, 브롱스 미술관 전시에 참가했다. 2008 알(AHL)재단 공모전에 당선됐으며, 2012 폴락크래스너 그랜트를 받았다. http://www.majong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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