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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종일/대나무 숲
2014.07.30 01:35

(35) 마종일: 보름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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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 숲 (2) 



보름달 I

끝없이 펼쳐진 파도같은 산의 바다



아주 여리고 가느다란, 밤의 파도 물결같은 산과 산 사이에 깔려있는 구름이 달빛을 자신의 몸 사이사이로 투과시켜 약간은 베일에 쌓인듯한 형상을 연출하고 있었다. 달빛은 차고 밝았다. 그래서 같은 빛이지만 음이라 했나.  늦여름 이 바위 위에 걸터앉은 나에게 더 이상 필요한 것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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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ngil Ma, To You, A Little Bigger Than Sweet Summer Pink Peach,  wood, paint, rope, metal base, 30'x150'x30', 2008  Photo: Young Tae Kim



야 같았다.  밝은 달빛 아래 그만 그만 한 높이와 크기의 산들이 끝이 없이 겹쳐  일렁이는 바다의 파도 같아 보였다. 아스라이 보이는 바깥선은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반증해 보이고 있었다. 국민학교 2학년때 일이었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지구본을 보여주며 지구가 둥글다 했다. 그리고 더욱 신기한 것은 지구가 태양을 돌고 있다는것. 


이내 흥분해서 집에 돌아와 당시 60을 바로보시던 아버지께 '지구가 둥글고 태양을 돌고 있다'고  목덜미가 뻐근하게 나의 깊은 신 지식을 자랑했다. 이내 아버지는 약간은 시니컬하게 미소지으며 ‘에끼, 저 앞의 평평하게 펼쳐져 있는 논밭이 안보이냐. 그리고 내가 수 십년 살아 있는 이곳에서 아침에 저 동쪽 앞산 에서 해가 떠 서쪽 뒷산으로 지는데, 뭐가 어째?  쓸데없는 소리….’ 돌아가시기 전 다시 물어볼 기회는 없었지만 그는 그렇게 믿고 저세상으로 가셨다고 믿는다. 



라이언이 챙겨온 꼬냑을 들이켰다.  모처럼 활발한 등산 운동 탓에 온 몸에 쌓여 있던 찌꺼기가 모두 빠져나간 빈틈을 꼬냑은 순식간에 구석구석으로 퍼져 나갔다. 산 정상 북쪽 끝으로 놓여 있는 커다란 바위마루 끝에 걸터 앉아  본 캣스킬 마운틴. 실로 너무나 오랫만에 느껴 보는 그리고 뉴욕에서의 첫번째  산행. 한국에서는 약 5년동안 한반도 남쪽 웬만한 산은 두루두루 찾아 주말 연휴나 휴가 때면 걷고 또 걸었다. 그땐 산에 가서 텐트를 치고 간단한 음식을 해서 먹고 휴식하고 마냥 걷는 것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저 아래 세상의 모든 것이 구분되고 차별화 된 삶은 산에는 없었다. 가스레인지 오븐이나 자가용이 필요없었고 그래서 만나는 사람이 그저 그런 자연인으로 보이게 하는 산. 어떤이가 말했던 ‘거기 산이 있어 간다’ 는 밑둥아리 없는 이야기가 있기도 하지만, 걷고, 자고, 바라보고, 먹고 하는 단순한 인간의 활동만이 있을뿐. 그곳에서는 내 지식을, 나의 배경을 어느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말할 필요도 없었다.  마주치는 사람들은 천사처럼 친절하고 따뜻했다.  아마도 인류의 놀이중 가장 근원적 행위 일수도. 그러나 한가지 불편하게 하는 것은 언제나 금방, 찰나의 시간 안에 나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 와야 한다는것. 이것이 나를 정말 힘들고 미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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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ncent van Gogh(1853–1890), The Starry Night, June 1889, Oil on canvas, 29 x 36 1/4", Museum of Modern Art



국에서 공자가 도를 이야기하고 제자들과 음악을 그리고 시를 즐거이 놀이할  무렵, 기록된 ‘아름다움에 대한 정설’이 비슷한 시기의  그리스에서부터 출발해서, 독일의 추앙받는 철학자가 리바이벌했던  그 가장 근본적인 예술행위의 명분과 바탕이 되는 것. 끝없이 펼쳐져 있는 파도같은 산의 바다는 내가 한참 열을 올리며 경험하고 배운다는 세계 제일의 문화적 경제적  도시에서의 미술 작품 만들기를 포함 모든 인간의 행위를 압도하며 어떤 고고한 인간들의 행위도 범접할 수 없는 자태의 아름다움을 스스로 그렇게 펼쳐 보이고 있었다. 


아주 여리고 가느다란, 밤의 파도 물결같은 산과 산 사이에  깔려있는 구름이 달빛을 자신의 몸 사이사이로 투과시켜 약간은 베일에 쌓인듯한 형상을 연출하고 있었다. 달빛은 차고 밝았다. 그래서 같은 빛이지만 음이라 했나.  늦여름 이 바위 위에 걸터 앉은 나에게 더이상 필요한 것이 없었다. 이 억장을 움켜쥐는 울렁임을 내가 그렇게 보고자 했던 뉴욕현대미술관의 고호 페인팅에 견줄 수 있을까, 아니면 뉴욕을 그리고 세계의 미술판을 휘젓다 한줌의 재가 되버려 사라져버린 그 흰머리 작가와? 택도 없어 보였다. 



즈음 약 삼년의 세월을 뉴욕에서 막 넘기고 있었다. 흔하디 흔한 가난한 유학생의 그런 경험들을 하나, 둘 쌓아가고 있던 시절. 맨하탄을 떠나 산행을 한다는 것은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뉴욕의 초기 생활때 영어학교에서 나를 가르치던 브라이언을 우연히 첼시 22가의 한  갤러리 앞에서 만났다. 주요 갤러리들이 소호에서 첼시로 한참 옮겨 이주 중이던 그때.  나는 그제서야 브라이언이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인도에서 온 물리분야  교수 아버지와 60년대 한참 힙쓸었던 히피문화의 영향을 받은 미국인 어머니를 둔 나이가 나와 비슷한 영어 선생이었다. 애써 뉴욕에 와서 만난 이 영어 선생이 클래스에서 한국말로 ‘종로 파고다 공원’ 이 어쩌고 할때는 좀 놀랐고 당황했었다. 약간은 낭패감마저 들었었다. 은근히 뉴욕의 순문화 속에서 자란 선생을 보길 원했지 한국의 속살을 경험해 나를 당황케 하는 불편함을 생각하지 않고 있었었다. 


첼시에서 우연히 조우한 후 우리는 가끔씩 바베큐, 생일 모임등을 통해 만났다. 그러던 중 그가 2, 3일 캠핑을 가자는 계획을 세웠고 곧바로 시행에 옮겼던 것이다. 그가 어렸을 때부터 캠핑은 히피 어머니의 덕에 수없이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었고 나는 덕택에 완벽한 첫 산행을 즐기고 있었다.




jong3-100.jpg 마종일/작가

1961년 전라남도 장흥에서 태어나 덕수상고 졸업. 대우 중공업을 거쳐 한겨레 신문사 감사실에서 일하다 1991년 퇴사한 후 박재동 화백 소개로 그의 후배 화실에서 그림을 배웠다. 1996년 뉴욕으로 이주 스쿨오브비주얼아트를 졸업했다. 이후 2006 광주미술관 레지던시 작가, 2008 소크라테스 조각공원 신임미술가로 선정되었으며, 2009 인천여성미술비엔날레, 2010 폴란드 로츠(Lodz) 비엔날레에 초청됐다. 2010 LMCC 거버너스아일랜드, 2011 랜달스아일랜드, 롱아일랜드 이슬립미술관, 브롱스 미술관 전시에 참가했다. 2008 알(AHL)재단 공모전에 당선됐으며, 2012 폴락크래스너 그랜트를 받았다. http://www.majong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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