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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주/뉴욕 촌뜨기의 일기
2014.07.09 15:07

(28) 이영주: 젊은 세대의 조국 소통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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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촌뜨기의 일기 (6)



젊은 세대의 조국 소통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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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전, 화가 강익중씨 댁에서 소설가 신경숙씨를 초대한 파티가 열렸습니다. 북파티인지 무슨 종류의 파티인지, 누가 주최하는지도 잘 모르고 갔습니다. 알재단에서 미술강의를 하는 변경희 교수가 내 건강이 좋아진 것을 축하해준다고 멋진 식당서 점심을 사주더니 티켓을 두 장 샀다며 그 파티에도 초대해준 것입니다. 강익중씨는 제 친구이기도 한 명선씨의 베스트 프렌드입니다. 그날, 명선씨는 파티를 돕겠다며 일찍 가자고 했습니다. 저는 덩달아 명선씨 차를 타고 편하게 갔습니다. 

익중씨 댁 부엌에서는 파티 음식 담당자와 익중씨 부인이 파티 음식 준비를 열심히 하고 있었습니다. 익중씨 부인은 대단히 유명한 거물 변호사인데, 음식 차려내는 솜씨도 완전 프로였습니다. 작은 체구에서 어떻게 그런 에너지가 나오는지 모르겠습니다. 명선씨의 손은 번개였습니다. 음식 접시들을 모양 있게 척척척 만들어내고, 그 옆에서 저는 슬로우 모션으로 조금 손을 거들었습니다. 왕샌드위치를 만들고 썰어서 접시에 담는 것도 순식간이었습니다. 

얘기가 삼천포로 빠졌습니다. 다른 이야기 하려던 건데, 음식 얘기만 나오면 제가 이렇게 흥분합니다. 하하하.

그날 파티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젊은 남녀였습니다. 저같이 나이 먹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3, 40대로 추정되는 그들은 그러니까 소설가 신경숙씨 팰로우어들이라고 합니다. 뉴욕에 살고 있는 그들이 이번에 새로이 미국서 책을 출간한 신경숙씨가 뉴욕을 방문하자 그들만의 모임을 갖고 서로 소통하는 시간을 가진 것입니다. 

사실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물론 외국어로 출간되기도 하지만, 한국서 한국어로 소설을 쓰고 활동하는 작가를 미국에 살고 있는 젊은이들이 그렇게 많이 관심 가지고 있다고는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을 보면서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미국서 살고 있으니 미국 문화에 젖어서 모국인 대한민국을 잊는 것은 아닌가, 은근히 1.5세나 2세들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있었는데, 그들이 우리보다 더 적극적으로 한국문화 지킴이를 하고 있구나 싶어서, 가슴이 찡하기까지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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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가지 고백도 있습니다. 제 딸들이 저를 일깨워준 북한 이야깁니다. 딸들은 6월에 워싱턴에서 탈북 인권운동가인 신동혁씨가 주최하는 음악회에서 연주를 하고 돌아왔습니다. 연주하러 가기 전부터 딸들은 미국 언론인 블레인 하든(Blaine Harden)씨가 쓴 신동혁씨의 이야기 ‘ESCAPE FROM CAMP 14(14호 수용소 탈출)’를 읽었습니다. 그러면서 그 참담한 수용소의 현실을 제게 이야기해주면서, 책을 좋아하는 엄마가 어떻게 그 책을 아직 읽지 않았는지 의아해 했습니다. 나중에 인터넷을 뒤져보니 신동혁씨에 대해서 무지 많은 기사들이 있었습니다. 


탈북하는 사람들은 다 저마다의 가슴 아픈 가족사, 인생사가 있지만, 신동혁씨가 그들과 차별되는 점은 그는 그 수용소 안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이란 사실입니다. 그의 우주는 오직 수용소 뿐으로, 탈출하기 전 새로 들어온 사람에게 처음으로 중국이 있고, 남한도 있다는 얘길 들었다고 합니다. 

수용소에서 규칙을 잘 지키고 일을 잘하면 그 상으로 ‘포상 결혼’을 시켜준다고 합니다. 신동혁씨는 부모의 포상 결혼으로 태어난 것입니다. 결혼했다고 해서 일상적인 부부 생활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일년에 5번만 동침할 수 있는데, 그 다섯 번도 정해진 날이 있는 게 아니고 포상 받을 행위를 했을 때에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렇게 태어난 아기들은 수용소 안에서 키워집니다. 


6북한2.jpg 다큐멘터리 '캠프 14' 중에서.


그 애들도 나이 차면 학교에 가서 형식적으로 공부하지만, 10살 때부터는 강제 노역이 시작된다고 합니다. 혹시 수용소 남녀간에 눈이 맞아서 아이가 생기면 아기와 산모는 사람들 보는 앞에서 그냥 쇠파이프로 때려 죽인답니다. 먹는 음식이라야 약간의 강냉이죽과 소금 뿐이라 그들은 항상 배가 고프고, 운이 좋아 밖으로 일을 나갔을 때 쥐나 벌레를 잡아 먹으면 횡재한 것이라고 합니다. 

수용소에서 사육되는 아이들은 그들의 우주가 곧 수용소이므로, 수용소 안에서 배가 고프고, 맞고, 고문 받고, 병들고, 죽고, 하는 일이 일상입니다. 그래서 부모형제도 개념이 없고 모든 존재는 나와 음식을 두고 경쟁해야 할 경쟁자일뿐, 인성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신동혁씨는 어머니 음식을 몰래 먹었다가 엄마한테 몹시 얻어 맞기도 했습니다. 13살 땐 어머니와 형이 탈출 모의 하는 것을 듣고 밀고해서 그의 눈 앞에서 어머니는 처형되고, 형은 총살됐다고 합니다. 물론 그도 불고문 등 몇 달 동안 모진 고문을 당했습니다. 

그의 탈북 동기를 들으면 더욱 처연해집니다. 자유가 그립거나 이념이 달라서가 아니라 단지 맛있는 고기를 먹고 싶었던 게 이유였습니다. 신참자로부터 중국에 가면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를 맛있게 구워 먹을 수 있단 말에 도망칠 것을 결심했고, 성공했습니다. 


6북한1.jpg '캠프 14'에서 신동혁씨.


들의 연주가 끝난 후 신동혁씨는 음악이 사람의 마음을 평화롭게 해주는 경험을 처음했다면서 고마워했다고 합니다. 음악을 듣는 동안 마음이 편안해지더랍니다. 그날의 음악회는 신동혁씨의 강연과 지휘자 로린 마젤의 부인 찬조연설도 있어서 더욱 감동적인 연주회가 되었다고 딸들이 말했습니다. 로린 마젤 부인과 그 아들이 신동혁씨 단체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돕고 있다는 얘기를 들으니 제가 더 고마웠습니다.

딸들은 음악회에서 돌아와서 정말 큰 감동을 받았다며 북한의 실상에 가슴 아파했습니다. 그러면서 같은 한국인인데, 왜 아프리카나 남미의 가난과 인권 문제엔 적극 관여하면서 북한의 참상엔 두 손 놓고 있는 것이냐고 물었습니다. 그 외면한 사람 중에 저도 포함됩니다. 현재의 저는 북한의 참담한 현실을 의도적이든 아니든 외면하고 있었던 건 사실입니다. 딸들의 날카로운 질문에 당당하게 대답할 수 없어 부끄러웠습니다. 

신경숙씨의 독자들이나 제 딸들이나 두 개로 갈라진 조국에 대한 관심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한 개인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은 없지만 우리 모두가 한 가지 희망을 가지고 노력해가다 보면 지혜로운 해답도 얻게 될 것입니다. 기성세대가 애써 외면하는 일을 한 가지씩 부딪쳐가는 젊은이들을 보면서 저는 거기서 희망을 봅니다. 저도 그들과 한 시선을 유지할 것입니다. 

그날 강익중씨 집 정원에서 명선씨가 들깨를 8뿌리 뽑아줬는데, 5뿌리만 살았습니다. 살아난 녀석들은 건강하게 잘 크고 있습니다.  



rhee1.jpg 이영주/수필가
강원도 철원 생. 중앙대 신문학과 졸업 후 충청일보 정치부 기자와 도서출판 학창사 대표를 지냈다. 1981년 미국으로 이주 1990년 '한국수필'을 통해 등단한 후 수필집 '엄마의 요술주머니' '이제는 우리가 엄마를 키울게' '내 인생의 삼중주'를 냈다. 줄리아드 음대 출신 클래식 앙상블 '안 트리오(Ahn Trio)'를 키워낸 장한 어머니이기도 하다. 현재 뉴욕중앙일보에 '뉴욕의 맛과 멋' 칼럼을 연재 중이며, 뉴저지 AWCA에서 '수필교실'과 '북 클럽'을 지도한다. 또, 매월 세번째 토요일엔 음식을 싸갖고 와 영화 감상 후 토론하는 '예사모' 클럽을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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