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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숙희/수다만리
2014.05.21 15:23

(21) 박숙희: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조회 수 7062 댓글 4

수다만리 (1)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해고된 뉴욕타임스 편집국장   에이브람슨이 에이브람슨이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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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는 것은 상당히 불쾌한 일이다.

채여본 사람은 다 안다. 유명인사일 경우는 더 괴롭다. 할리우드 스타 제니퍼 애니스턴은 2005년 안젤리나 졸리와 사랑에 빠진 남편 브래드 핏에게 차인 후 ‘불쌍녀’가 됐고, 이제까지 타블로이드로부터 수모를 겪고 있다. 샤론 스톤조차 "남자에게 차이는 것이 무척 두려워 차이기 전에 늘 먼저 차게 됐다"고 말한 적이 있다.


짤리는 건 더 불쾌한 일이다.

직장에서 해고됐을 경우엔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정서적으로 다중으로 괴로워진다. 유명인사일 경우, 사적인 해고는 공적인 사건이다. 특히 ‘최초의’라는 영광스러운 수식어를 단 여성일 경우엔 상징하는 바가 크다. 이 세상 절반의 여성들의 울타리, 페미니즘의 퇴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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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트오소리티 앞 8애브뉴의 뉴욕타임스 건물 전경. 내부 편집과 경영의 갈들...뉴욕타임스의 권위가 흔들리고 있다.


 

지난 14일 뉴욕타임스의 편집국장 질 에이브람슨(Jill Abramson, 60)이 짤렸다. 

2011년 뉴욕타임스 162년 역사상 최초의 여성 편집국장(executive editor)으로 등극해 화려한 조명을 받아왔고, 2012년 포브스지에 의해 세계에서 가장 파워풀한 여성 제 5위에 랭크됐던 인물이다. 그 해 1위는 독일 수상 앙겔라 메르켈, 2위는 힐러리 클린턴, 7위는 미셸 오바마였다.

 

그런데, 질 에이브람슨 편집국장이 3년도 채 되지않아 해고된 것이다. 뉴욕타임스의 정년은 65세다.

아서 설즈버거 주니어(Arthur Sulzberger, Jr.) 뉴욕타임스 발행인 겸 회장은 14일 기자들을 모아놓고, 편집국 제 2인자인 매니징 에디터(managing editor) 딘 배퀘이(Dean Baquet, 57)를 편집국장으로 임명했다. 이로써 배퀘이는 뉴욕타임스 역사상 최초의 흑인 편집국장이 됐다. 참고로 셜즈버거와 에이브람슨은 유대인이다.


 

뉴욕타임스 내분: 그리스 비극? 할리우드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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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 에이브람슨 전 편집국장                    아서 설즈버거 주니어 발행인                딘 배퀘이 신임 편집국장                         



왜 파워 우먼 질 에이브람슨이 짤렸을까? 


질 에이브람슨은 공식 해고일 며칠 전 설즈버거와 만났고, 해고된다는 것을 알았다. 설즈버거 발행인은 사임을 종용했지만, 에이브람슨은 자발적인 사임 대신 불명예스럽고, 수치스러운 ‘해고’를 택했다. 14일 설즈버거가 편집국장 교체를 발표하는 자리에 물론 나타나지 않았다. 에이브람슨은 이날부로 뉴욕타임스를 떠난 것이다.



최초의 여성 편집국장에서 최초의 흑인 편집국장으로...

세계 최고 권위의 신문 뉴욕타임스 편집국의 지각변동 뉴스가 나가자 주간 ‘뉴요커’를 비롯 미 언론들은 야단법석을 떨었다. 무엇보다도  해고 사유가 석연치 않았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의 여왕' 질 에이브람슨은 3년이 채 되지 않는 기간 NYT 편집국을 지휘하면서 8개의 퓰리처상을 받아냈다. 

2001년 하웰 레인스 편집국장이 제이슨 블레어 기자의 날조기사 스캔달로 2년만에 사임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런데, 왜 설즈버거는 1등공신 질 에이브람스의 등에 도끼를 찍었을까?



 

성차별인가, 자질 부족인가? They Said, He sa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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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지 뉴요커는 3차에 걸쳐서 질 에이브람스가 해고된 이유가 성차별에 근거한 것이라는 폭로기사를 실었다. 이에 따라 대부분의 언론들이 해고 스캔달이 성차별주의라는 나름대로의 시나리오를 써댔다.


첫째, MONEY. 성차별 연봉이었을까?


뉴요커는 에이브람슨이 자신의 연봉이 전임 남자 편집국장(빌 켈러)보다 적은 것을 두고 경영인에 불평했으며, 변호사도 선임한 후로 사이가 벌어졌다고 전했다. 

뉴요커의 연봉 불평등 기사와 함께 성차별에 근거한 해고라는 보도가 확산되자 설즈버거는 17일 보도자료를 통해 공식 입장을 밝혔다. 먼저 연봉에 대해서는 패키지로 전임자와 같은 수준이며, 지난해는 전임자보다 10% 많았다고 항변했다.

 

둘째, LEADERSHIP. 인격탓? 자질 부족이었나?


아서 설즈버거는 “에이브람슨이 탁월한 언론인이자 편집자이지만, 애석하게도 그녀의 편집국 경영술은 단순히 먹히지 않았다”고 밝혔다.


뉴욕 토박이 질 에이브람슨은 래드클리프대 영문과 졸업 후 월트스팃저널을 거쳐 1997년부터 뉴욕타임스에서 일해왔다. 워싱턴 지국장을 지낸 후 본사에 들어와 매니징 에디터를 거쳤다. 에이브람슨은 자신의 애완견 이야기를 기록한 'The Puppy Diaries: Raising a Dog Named Scout'(2011)의 저자이기도 하다.



1newsweek_cover_abramson_double.jpg Nobody's perfect, but women should be perfect?



2011년 9월 에이브람슨이 뉴욕타임스 편집국장으로 승진한 후 폴리티코(Politico)와 뉴스위크 등 언론에서 뉴욕타임스 인사이더의 말을 인용, 에이브람슨의 인격을 해부, 비판하는 기사를 실었다.

이를 종합하면, 에이브람슨은  '밀어붙이고(pushy)' '무뚝뚝하고(brusque)' '고집 세고(stubborn)'  '잘난체 하는(condescending)' 부정적인 인물로 평가됐다.


한편, 폴리티코의 보도에서는 에이브람슨과 배퀘이가 기사를 두고 언쟁을 했다고 전했다. 질은 어느날 딘의 기사 판단이 '지루하다'고 했고, 이에 반발한  딘이 에이브람슨의 사무실에서 뛰쳐나가 주먹으로 벽을 쳤다는 일화도 언급했다. 그러나, 여기서 배케이가  '폭력적(violent)'이라는 평가는 유보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여자의 태도는 가차없이 질타되고, 남자의 폭력은 너그럽게 용서된다. 

만일, 질(JILL) 에이브람슨이 짐(JIM) 에이브람슨이었다면, 다시 말해 남자 편집국장이었다면, 어떤 형용사를 썼을까? '철두철미하고(perfect)' '과묵하고(taciturne)' '자신감에 찬(confident)'이 되지 않았을까?



1-arthur-1GELB-sfSpan-v2.jpg 아서 겔브



마침 뉴욕타임스는  5월 20일 전 매니징 에디터 아서 겔브(90)씨의 사망기사를 1면에 실었다. 50여년간 뉴욕타임스에서 일한 겔브씨는 메트로폴리탄오페라 단장 피터 겔브의 아버지다. 부고 기사를 보니...


"겔브씨는 특히 뉴스 감각으로 존경을 받았다... 어떤 역할을 하던간에 6피트 2인치의 멀쑥한 겔브씨는 집요하며(relentless), 초초해하며(fidgety), 대담한(in your face) 사람이었다...".


아서 겔브가 여성이었다면, 부고 기사엔 어떤 형용사로 대체될까? 남자들의 사전과 여자들의 사전이 따로 있는 것일까?


아직도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여성들은 이중잣대(double standard)에 휘둘려지기 십상이다.

지도자 여성은 강하되, 부드러워야 한다. 공격적이거나 저돌적이지 않고, 까칠하거나 무뚝뚝해서도 안된다. 말하자면, 착한 여자여야 한다. 아내가 낮에는 곰같고, 밤에는 여우가 되기를 바라는 남편의 욕망과 다를 바 없다. 

착한 뉴욕타임스 편집국장이 탐사보도로 퓰리처상을 받아낼 수 있을까? 그것이 궁금하다.

 


세째, POWER GAME. 남남/녀녀 파워게임의 결과인가?


뉴욕타임스의 트라이앵글. 아서(설즈버거), 질(에이브람슨)과 딘(배퀘이)의 3각관계에서 신라와 백제, 당나라의 관계가 연상된다.

아서는 2011년 같은 유대계인 질을 최초의 여성 편집국장에 임명했지만, 사실상 총애하는 것은 흑인 딘이었다. 뉴올리언스 출신 딘은 1988년 시카고 트리뷴지 기자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넉살좋고, 인간관계가 양호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한편, 질은 편집국장직에 오른 후 "많은 여성들을 간부직에 등용한 것에 긍지를 갖는다"고 말해왔다. 

그런데, 최근 질은 영국 일간지 가디언의 미국지사 편집국장 재닌 깁슨을 디지털 미디어를 관리할 공동 매니징 에디터로 데려올 예정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딘은 이것을 자신과 상의하지 않아 격노했고, 설즈버거에게 불평했다. 이것이 불씨에 부채질을 자초했다는 분석이다.


딘에게도 플랜 B가 있었다. 그는 최근 블룸버그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설즈버거에게 최후통첩을 보냈다는 것. 즉, 설즈버거에게 질과 딘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몰았다는 이야기다.


여성과 흑인, 이 사회의 소수계가 파워 게임을 벌였고 결국 여자가 밀려난 셈인가?  다분히 나당 연합군과 백제의 고립으로 읽혀진다.

 



유리 천장(glass ceiling) 깬 후 유리 절벽(glass ceiling)으로 추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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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9월 편집국장으로 임명됐을 당시 질 에이브람슨. Photo: The New York Times



왜 여성 지도자는 해고되기 쉬울까? 왜 성공한 여성은 욕을 먹을까?


질 에이브람스가 해고된 날 프랑스의 대표신문 르 몽드(Le Monde) 사상 첫 여성 편집국장 나탈리 누게이레드도 사임했다. 이것은 우연일까?  질 에이브람슨 해고 파문 이후 전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리의 편집국장 아만다 베네트가 워싱턴포스트에 미 언론계의 성차별에 관한 칼럼을 기고했다. 베네트는 2003년 이 신문 최초의 여성 편집국장으로 임명됐으나, 3년 후 해고된 인물이다.



페이스북 최고경영자이자 역시 파워우먼 셰릴 샌드버그는 베스트셀러 ‘린 인(Lean In: Women, Work, and the Will to Lead)’에서 2003년 남녀 리더에 관한 실험을 인용했다. 

성공한 벤처투자가를 이름만 하워드와 하이디로 바꾸어 평가하는 실험에서 남녀에 대한 같은 묘사에도 불구하고 평가자들은 남자 ‘하워드’와는 함께 일하고 싶어한 반면, 여자 ‘하이디’는 이기적이라며, 함께 일하기를 기피했다는 것이다. 


(솔직히 위 에이브람슨과 배퀘이 관상만 보고 누구와 일하고 싶냐고 내게 묻는 실험을 한다면 나도 배퀘이를 택할지 모른다. 질 에이브람슨이 '기숙사 사감형'이고, 배퀘이는 '착한 남자'로 보이기 때문이다. 인간인 걸 어찌하랴?)



성공한 여성, 리더들은 남성보다 정상에서 해고되기 더 쉽다.


이 세상의 많은 회사들이 위기에 처했을 때 경비를 감소 전략으로 여성 리더를 택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봉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 그러나, 불안정한 조직에서 여성 리더가 실패했을 경우 능력 부족으로 비난받는다. 그래서 해고도 빠르다는 분석이다. 결과적으로 여성의 고위직 진출을 저해하는 셈이다.


흑인과 여성은 여전히 소수다. 그러나 여성은 흑인 남자보다 더 리더로서 살아남기 어렵다는 불편한 진실이다. 그리고 같은 일을 해도 월급은 25% 적게 받는 세상, 여자에게 무서운 진실이다. 


충분한 능력을 갖추었어도 성차별이나 인종차별로 고위직을 맡지 못하는 상황을 이르는 '유리천장(glass ceiling)' 이론이 있다. 아시안에게는 '대나무 천장(bamboo ceiling)'이라는 이중의 굴레가 씌워진다. 그러면, 탁월한 능력을 보여 톱의 자리에 올라간 질 에이브람슨은 유리 천장은 깼지만, 유리 절벽(glass cliff)으로 떨어진 셈이다.

 


우리 시대 아마조네스들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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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는 금발을 좋아한다. 남자는 부드러운 여자를 선호한다. 

질 에이브람슨은 강인하고 부드러워야 했을까? 남자 전임자보다 적은 연봉도 감수하고, 기자들에게 늘 친절하고, 경영진과 마찰없는 수장으로 정년 퇴임때까지 버텨야했을까?


뉴욕타임스는 역사상 최초로 여성을 편집국장에 임명하며 진 일보했지만, 무책임한 해고로 2보 후퇴한 것은 아닐까?


에이브람스는 졸지에 실직자로 전락했다. 그녀의 등에는 뉴욕타임스의 T자를 고딕체로 한 문신이 있다고 한다. 의사 딸은 엄마가 해고된 후 복싱하는 모습을 인스태그램에 올렸다. “엄마의 공격적인 새 취미. #소녀들 #저돌적으로”.


해고된 지 닷새만인 19일 질 에이브람슨은 침묵을 깼다. 노스캐롤라이나 웨이크 포레스트대학교 졸업식 초청 연설자로 입을 열었다.

그녀는 축사에서 "난 차인 적이 있는 사람들, 원했던 일자리를 갖지 못한 사람들, 혹은 대학원에서 불쾌한 거절 통지를 받은 적이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갖고 있던 걸 잃어버리거나 절실히 원했던 것을 갖지 못하는데서 오는 실망감에 대해 알고 있지요. 이런 일이 발생하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주세요."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에이브람슨은 졸업생들에게 "다음 계획이 무어냐고요? 나도 몰라요. 그래서 난 여러분들과 같은 배에 타고 있지요. 여러분들처럼, 나도 약간은 무섭지만 한편으론 신나기도 해요"라고 덧붙였다.



1jill-abramson_0-newsweek.jpg AP



‘최초의’라는 수식어를 달게 된 여성들은 짐이 무겁다. 

아무리 탁월한 능력을 발휘해도 이 사회에서는 ‘여자에게 요구하는 그 무엇’이 있다. 조직의 사닥다리를 올라갈수록 여성 동료는 적어진다. 정상에 올라서도 남성들의 리그 속에서 가부장적인 이중잣대에 부딪힌다. 그에 맞추어 춤을 추는 것이 장수의 비결일지도 모른다. 짤리기 싫다면.


예전에 줄리아 로버츠가 TV 아침 토크쇼에 나와서 할리우드의 성차별에 대패 비판한 것이 떠오른다. “남자에게 고추가 하나 있는 반면, 여자들에겐 젖꼭지가 두 개씩인데, 왜 우리가 출연료를 덜 받아야 하나요?"


미국에서조차 여성들이 리더가 되기는 멀고 험난한 길이다. 그들은 올라간 정상은 '장미의 정원'보다 낯설은 '선인장 가시밭'이다. 그곳 게임의 규칙에서 살아남는 수퍼우먼이 되어야 한다.


‘페미니즘의 대모’ 글로리아 스타이넘이 66세에 결혼하자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고, 미 TV 최초의 여성 뉴스 앵커 바바라 월터스는 공동 남자앵커로부터 공공연하게 미움을 받았다. 페미니스트 화가 주디 시카고는 뉴욕타임스 남자 비평가의 혹평으로 23년간 저주받으며 빚더미에 올랐다고 회고했다.

블록버스터 뮤지컬 ‘라이온 킹’의 연출가 줄리 테이머는 뮤지컬 ‘스파이더맨’ 제작자들로부터 돌연 해고됐고, 법정 소송까지 갔지만 명예를 회복하지는 못했다. 1994년 TV 최초의 아시안 가정 소재 시트콤 ‘올 아메리칸 걸’에 주연으로 발탁됐던 한국계 코미디언 마가렛 조. 그녀는 ABC-TV 제작팀으로부터 뚱뚱하다며 체중감량 지시를 받고, 쇼가 취소되자 마약에 빠져들었고, 자신 선언 ‘나는 내가 원하는 나’로 복귀했다.


그러나, 이 선구자들은 살아남았고 많은 여성들의 롤 모델이 됐다. 

지뢰가 곳곳에 있는 가부장의 정글 속에서 유리 천장과 대나무 천장을 부수면서 투쟁해온 우리와 우리 딸들의 롤 모델들, 그 위대한 아마조네스들이여!




sukiepark100.jpg 박숙희/블로거

서울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후 한양대 대학원 연극영화과 수료. 사진, 비디오, 영화 잡지 기자, 대우비디오 카피라이터, KBS-2FM '영화음악실', MBC-TV '출발! 비디오 여행' 작가로 일한 후 1996년 뉴욕으로 이주했다. Korean Press Agency와 뉴욕중앙일보 문화 & 레저 담당 기자를 거쳐 2012년 3월부터 뉴욕컬처비트(NYCultureBeat)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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