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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광우/일할 수 있는 행복
2014.05.11 22:30

(20) 남광우: 그만 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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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할 수 있는 행복 (2)



그만 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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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는 우연히 맨하탄의 한 식당에서 날 먼저 알아보았고, 식사 도중에 내 테이블로 달려와서 너무도 반갑게 인사를 했다. “교수님! 저 2년 전에 한국에서 선생님 강의 진짜 잘 들었어요, CPA 합격하고 지금은 맨하탄으로 와서 일하고 있어요. 남교수님을 여기서 뵐 줄이야…” 사실 난 얼굴이 전혀 기억나지 않았지만 학생이 어색하지 않도록 웃으며 악수를 나누었다. 뉴욕에 방문교수로 온 이후 크지 않은 코리아타운 덕분에 길거리에서나 식당에서 자칭 제자라고 하는 사람들을 자주 마주치곤 했다. 


대학에서 기업에서, 회계 법인에서, 학원에서, 온라인으로, 그리고 일부는 어둠의 경로?를 통해 입수한 불법 동영상 파일로 내 강의를 접했던 여러 학생들이 한국 같았으면 그냥 무심코 지나갔을 텐데 뉴욕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는지 자주, 그것도 너무도 반갑게 인사를 청해오곤 했다. S도 그렇게 어색하지만 간단하게 출신 학교와 함께 본인 소개를 했고, 식사 후에 잠깐만 시간을 내 줄 수 있는지 부탁했다.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였건 나를 통해 도움을 받았다 하니 커피 한 잔쯤은 나눌 수 있었다.


“저 교수님 대학 후배인데요. 졸업 후에 K 은행에 입사해서 다니다가 미국으로 꼭 오고 싶어서 CPA 합격하고 인턴쉽으로 뉴욕에 왔어요.. 그런데요….”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는 내내 그녀의 눈에는 지금까지의 억울함과 설움과 어려움이 동시에 밀려오는 듯 눈물이 고이더니 이내 뚝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상황은 그랬다. 유학을 할 수 있을 만큼의 집안 형편은 되지 않고, 하지만 미국에서 꼭 전문직으로 취업을 하고 싶은 마음에 한국에서 2년 동안 직장생활 하면서 번 돈으로 꿈을 찾아 뉴욕으로 왔는데 일하는 곳은 거의 공장 수준의 잡일 밖에 없고, 시급도 최저임금 이하, 영어는 한마디도 안 쓰고, 더구나 일은 회계 관련 업무도 아닌.. 정말 앞이 깜깜한 상황이라는 것. 한국의 대행업체에 항의도 해 보고, 미국의 협력사라는 곳의 주소로 찾아도 가 봤지만 거긴 그냥 가정집이고, 결국엔 아무도 이 상황을 책임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끔 미국에 있는 학생들에게 일을 하려는데, 직장을 구하려는데, 이런 저런 점이 어렵다고 하소연하는 소식을 받긴했지만 그때마다 ‘힘내라, 희망을 가져라’는 상투적인 답변으로 넘기곤 했다. 내가 구체적으로 개인별 상황을 묻고, 따지고, 파악하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는 일단 나는 미국이라는 나라의 채용, 취업에 대해서 전문가가 아니었고, 솔직히 전혀 관심도 없었기 때문이다. 


참 난감했다. 혹시 법률문제나 세무상담이라면 어떻게든 해결 해 줄 수 있으련만… 미국으로의 인턴쉽이라는 것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채용 시장이나 취업 시스템이 외국인들에게 어떤 형태로 연결이 되는지.. 미국 로펌에서 잠시 일했던 경험 외에는 관련 공부도, 경험도 전무했던 나는 무슨 말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일단 한 사람의 인생을 담보로 돈벌이로 전락하고 책임지지 않는 무슨 소개업체라는 곳의 행태에 화가 났지만 동시에 그럼 이런 경우 해결책은 무엇일까?를 처음으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지금 다니는 곳을 그만 두고 다른 공부를 하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회사를 옮기라 해야 할까? 무슨 비자로 어떻게 온 걸까? 합법적으로 회사를 옮길 수는 있을 걸까? 한국으로 돌아가라 해야 할까? 아니면 저녁에 다른 공부를 병행하라고 하는 것이 맞을까?’

무엇보다 혼자서 상의 할 곳도 마땅히 없이 가슴으로 속앓이를 하며 수 개월을 보냈을 S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모든 어려움에는 해결책이 있다. 그건 분명하다. 선택의 갈림길에 섰을 때,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때 좁은 길, 어려운 길을 가는 것이 맞는 선택임을 경험해 왔고, 가진 것들을 온전히 내려 놓을 때 새로운 것으로 채워졌다.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무섭다고 오던 길 뒤돌아 가지 말고, 무조건 앞으로 전진, 그게 가장 확실한 해결책이다.



“그만 울어! 더 좋은 것들이 기다리고 있을 거야. 지금부터 남들이 못했던 새로운 기회를 만들 수 있도록 같이 한번 노력해 보자!”

그날 이후 관련 분야 리서치를 시작하고, 해당 법규도 검토해 보고, 전문가들도 만나보고, 세미나도 가보고, 책도 사서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기저기 아는 사람들에게 S 뿐만 아니라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학생들의 진로에 대해 부탁하기 시작했다. 개인 자격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결국 미국과 한국에 회사도 만들었다. 말은 HR 회사이지만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한 일이었다. 


그로부터 꼭 8년이 지났다. 물론 그 동안 HR 관련 일만 집중해서 해온 것은 아니지만 회사도 많이 성장했고, 개인적으로도 젊은 청년들의 진로와 취업에 대해 함께 계속해서 고민해 오고 있다. 5년 전부터는 미국 현지 대학생들에게 제대로 된 정보를 미리 제공하고자 매년 전국 10여개 이상의 대학들을 방문하여 진로 선택과 취업 준비를 위한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다. 물론 아무도 후원해 주는 사람 없고, 세미나는 무료다. 하지만 이를 통해 꼭 필요하고 정확한 정보들을 접하고, 스스로의 인생을 다시 한번 돌아보고, 미래를 꿈꾸고, 새롭게 도전해서 사회에 첫발을 성공적으로 내딛고 자랑스러워하는 많은 학생들이 내 일의 보람이고, 가치이고, 무엇보다 큰 행복이다.


졸업 시즌이다. 많은 졸업생들이 취업 때문에 고민이고, 어디로 가야 할지 힘들어 연락을 해 온다.  S도 8년 전 그날, 정말 모든 게 절망적이라며 눈믈을 흘렸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고, 계속 쉼 없이 노력했고, 그 사이 미국 회계 법인을 거쳐 지금은 꽤 큰 미국 기업의 매니저가 되어 3년 전에는 결혼도 하고, 아이 엄마가 되었단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일 할 수 있어 정말 행복하다는 소식을 가끔 메일로 보내 오곤 한다.  나도 S의 소식을 듣는 날은 참 행복하다. 



NamKwangWoo200.jpg  남광우/서강대 겸임교수, COED 대표 
서울에서 태어나 고려대 법학과와 동대학원 수석 졸업. 상트 뻬쩨르부르크 음대에서 러시아 오페라 이론을 전공했고, U.C. 버클리 법대를 거쳐 변호사, CPA 자격증 취득 후 아주대 경영대 교수 시절 컬럼비아대 방문교수를 지내면서 뉴욕과 사랑에 빠졌다.  한국 젊은이들, 미국 교민들의 전문직 교육과 취업, 삶에 대해 함께 고민하며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할 것이다" 라는 도스토예프스키의 말을 가슴에 담고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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