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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로댕에 관한 흥미로운 사실 10가지 

Rodin at The Met


September 16, 2017–February 4, 2018

The Met 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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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uste Rodin, The Hand of God, modeled ca. 1896–1902, carved ca. 1907, Marble 



'근대 조각의 시조' 오귀스트 로댕(Auguste Rodin,1840 –1917) 사망 100년을 맞아 메트로폴리탄뮤지엄 소장 로댕 특별전 'Rodin at The Met'이 열리고 있다.


9월 16일 개막되어 내년 1월 15일까지 계속되는 이 특별전에서는 로댕이 제작한 대리석, 청동, 석고, 테라코타 등 조각 50여점과 드로잉, 편지 그리고 조각과 매치되는 회화들이 나란히 전시 중이다. 


로댕의 걸작 '생각하는 사람'과 '키스'를 비롯 '아담' '이브' '신의 손' 등 로댕에게 영감을 준 회화, 로댕의 영감을 받은 회화를 비교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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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exandre Cabanel, Echo, 1874, Oil on canvas/ Auguste Rodin, The Tempest, carved before 1910, Marble  


오귀스트 로댕에 관한 흥미로운 사실 

Auguste Rodin(1840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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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bert MacCameron, Auguste Rodin, 1910, Oil on canvas 


# 시력: 로댕의 시력은 매우 나빴다. 근시라서 미술가가 되는데는 오히려 장점으로 작용했다. 프랑스-프러시아 전쟁에 징집됐지만, 시력 때문에 퇴출됐다.

  

# 낙방 연속: 에콜 데 보자르(Ecole des Beaux-Arts)에서 세번이나 낙방했다. 그래서 상업 조각가로 일하다 누이가 사망한 후 신부가 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동료 신부의 조언으로 미술계로 돌아간다. 


# 실패 연속: 로댕은 프랑스의 미술전람회 살롱에서도 두차례나 퇴짜를 맞았다. 그의 별명은 코가 찌그러진 사나이였다. 르네상스 거장 미켈란젤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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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uste Rodin, The Thinker,  ca. 1880, cast ca. 1910/ Franz von Stuck, Inferno, 1908, Oil on canvas


# '생각하는 사람(The Thinker) 비화: 걸작 '생각하는 사람(Le Penseur)'는 프랑스미술부로부터 새 뮤지엄을 위해 위임받은 '지옥문(Gates of Hell)' 프로젝트 중 센터피스였다. 하지만, 뮤지엄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고, 지옥문도 설치되지 못했다. 



PICT7319.jpg 로댕뮤지엄의 '지옥문'

PICT7243.jpg 오르세뮤지엄의 '지옥문'


오리지널은 파리 로댕 뮤지엄, 모델은 파리 오르세 뮤지엄에 있다. 로댕은 1919년 사망할 때까지 '생각하는 사람'의 주물(casting)을 최소 10점 제작했다. 사후엔 캐스트 판권이 프랑스 정부로 넘어갔고, 28개 로 증가했다. 2013년 '생각하는 사람' 오리지널 청동상(1906)은 1530만 달러에 팔렸다. 현재 개인 소장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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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uste Rodin, Eve, modeled 1881, cast 1910, Bronze(left)/ Adam, modeled 1880 or 1881, cast 1910, Bronze 


# 미켈란젤로: 로댕의 영웅은 미켈란젤로와 르네상스 미술가들이었다. 로댕은 1870년 이탈리아로 여행가서 미켈란젤로의 작품을 본 후 조각에 빠졌다. 루브르박물관의 '죽어가는 노예' 등에서 영감을 받아 아담을 제작했다. 로댕은 "나를 학구적인 조각으로부터 해방시킨 것은 미켈란젤로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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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브르뮤지엄이 소장한 미켈란젤로의 '죽어가는 노예(Dying Slave, 왼쪽)'와 '반항하는 노예(Rebellious Slave).


# 카미유 클로델과 키스: 제라르 드빠르디유와 이사벨 아쟈니 주연의 영화로도 유명한 '카미유 클로델(Camille Claudel, 1988) '. 로댕의 25세 연하 제자이자 연인 이야기였다. 로댕에겐 필생의 여인 로즈 뷰레가 있었지만, 로댕은 20세의 학생이던 클로델과 10년간 열정적인 사랑에 빠졌고, 클로델은 결별 후 30여년간 정신병동에 갖히고 말았다. 로댕은 클로델을 '키스'의 모델로 쓴 것으로 전해진다.  


 

camille-claudel.jpg 영화 '카미유 클로델'(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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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티모어 뮤지엄의 '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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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uste Rodin, Eternal Spring, modeled ca. 1881, carved 1907, Marble

 

# 운명의 여인 로즈 뵈레: 로댕은 카미유 클로델과의 관계가 유명하지만, 생애 진정한 사랑은 어머니처럼 재봉사 로즈 뵈레였다. 1864년 24세의 로댕은 20세의 뵈레와 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로댕의 모델이 되었다가 아이를 낳지만, 로댕은 자식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로댕은 카미유 클로델과 바람 피우기도 했지만, 1917년 마침내 로즈와 결혼식을 올렸는데, 결혼식 한달도 되지 않아 로즈는 세상을 떠났다. 로댕도 그해 겨울 눈을 감는다. 로댕과 뵈레는 나란히 묻혔다. 



001.jpg Auguste Rodin, Mask of Rose Beuret, ca. 1880–82 or 1898 Cast pl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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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로댕뮤지엄의 '생각하는 사람'.


# 지구상의 '생각하는 사람': 지구상엔 '생각하는 사람'이 무수히 카피되었다. 콜라스 머신(Collas Machine)이라는 복제기술로 카피뿐만 아니라 주조(cast)를 확대, 축소할 수 있다. 생각하는 사람은 메트뮤지엄, 디트로이트미술관 등지와 로댕의 무덤에도 있으며, 클리블랜드뮤지엄의 '생각하는 사람'은 1970년 테러 폭격으로 파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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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uste Rodin, The Embrace, 1900-1910, Graphite, watercolor, and gouache/ Study of a nude with drapery, ca. 1908, Graphite 


# 호텔에서 로댕 뮤지엄으로: 로댕은 1900년대 초 파리의 호텔 비롱으로 이주해 들어가 작업했다. 당시 이 호텔엔 앙리 마티스, 장 콕토, 이사도라 던컨 등이 드나들었다. 호텔이 철거될 무럽 로댕은 자신이 사망한 후 자산을 프랑스 정부에 준다는 조건으로 건물을 구조했다. 로댕 사망 후 이 호텔은 로댕 뮤지엄이 된다. 뮤지엄 거실엔 그가 수집했던 반 고흐, 모네, 르노아르 작품이 걸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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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uste Rodin, Final Study for the Monument to Balzac, modeled 1897, cast 1972, Bronze


# 영향: 조각가 로댕의 작품은 당대 모네, 세잔같은 화가 뿐만 아니라 에밀 졸라,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조지 버나드 쇼 등 문학가들에게도 영향을 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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